-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의령(宜寧). 태종의 부마(駙馬) 남휘(南暉)와 정선공주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남빈(南份), 어머니는 현감 홍여공(洪汝恭)의 딸이다. 부인은 태종의 외손인 좌의정 권람(權擥)의 4녀이다. 1457년(세조 3) 17세의 나이로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세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1467년에 이시애(李施愛)가 난을 일으키자 우상대장(右廂大...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분충(奮忠). 증좌찬성(贈左贊成) 민수산(閔壽山)의 아들이고, 증문하시중(贈門下侍中) 여원군(驪源君) 민백훤(閔佰萱)의 손자이다. 친형은 민서(閔叙)이다. 민발은 어려서부터 기골이 크고 힘이 세어 13세 때 무술 연마를 위해 마을 앞 큰 바위를 움직여 등에 지고 사장(射場) 터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음보(蔭補)로...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驢興). 아버지는 서운부정(書雲副正)을 지낸 민함계(閔咸啓)이고, 아들은 조선 초기 문신인 민수산(閔壽山), 손자는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공신에 오른 민발(閔發)이다. 민백훤은 어렸을 때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전평리 새눈이에서 살았으며 1374년(우왕 즉위) 11월에 전공판서(典工判書)로 사신이 되어 밀직사...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고려시대 서운부정(書雲副正)을 지낸 민함계(閔咸啓)의 손자이고, 고려 후기 문신이었던 민백훤(閔伯萱)의 아들이다.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민발(閔發)이 아들이다. 민수산은 어려서부터 글을 잘하여 1382년에 어전 시회(詩會)에서 장원하였다. 1411년(태종 11)에 어머니가 죽자 형제인 민방보(閔邦寶)와...
-
고려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고려시대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 민의(閔懿)의 아들이다. 처는 배씨(裵氏)이며 아들로 민식(閔湜)·민공규(閔公珪)가 있다. 배씨의 동생은 유익겸(柳益謙)의 처가 되었다. 민영모는 인종·의종·명종 때 활동한 인물로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였다. 민영모가 처음 과거에 응시했을 때 부(賦)를 지었는데 격식에 맞지 않아서 동지공거(同知貢擧) 이지저...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민충길(閔忠吉)이다. 민침(閔忱)[1600~?]은 1627년(인조 5) 27살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1년(효종 2) 51살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지 정창주(鄭昌胄)가 “세무(世務)에 통달하고 강어(强禦)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천거하여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이어서 문의현감(文...
-
조선 전기 음성박씨 출신의 문신.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음성군 명묘조(名墓條)에 등재되어 있다. 본관은 음성(陰城). 충민공 박순(朴淳)의 손자이며, 증참판 박흔(朴昕)의 둘째아들이다. 형은 박숙진(朴叔蓁)이며, 아들은 박윤진(朴胤陳)이다. 박숙무(朴叔楙)는 1467년(세조 13) 12월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한 공로로 1469년 사헌부감찰이 되었고, 1471년(성종 2)...
-
조선 전기 음성박씨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정지(挺之). 음성백 박서(朴犀)의 7세손이고, 함흥차사로 알려진 박순(朴淳)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박흔(朴昕)이며, 동생은 박숙무(朴叔楙)이다. 박숙진(朴叔蓁)[1424~1481]은 1447년(세종 29) 사마시에 급제하고, 1453년(단종 1)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455년 권지정자(權知正字)로 벼슬에 나...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이자 음성박씨의 선조. 본관은 음성(陰城). 고려 평장사(平章事) 박서(朴犀)의 후손이며 시랑(侍郞) 박문길(朴文吉)의 아들이다. 효자문이 남아 있는 박호원(朴浩遠)이 박순의 아들이며 대사헌까지 지낸 박숙채(朴菽蔡)가 손자이다. 조선 중기의 선비인 박유겸(朴惟謙)은 박순의 후손이다. 박순의 처 장흥임씨(長興任氏)는 고려시대 대사헌(大司憲) 임헌...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이자 순천박씨 음성 입향조.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여구(汝久). 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박원상(朴元象)이고, 아들은 단종 때 중부녹사(中部錄事)를 지낸 박추(朴樞)이다. 박팽년(朴彭年)은 그의 종손(從孫)이다. 박장생은 문과에 급제한 후 이조판서를 거쳐 대제학(大提學)에 이르렀으나 만년에는 개성윤(開城尹)에서 물러나 산수(山水)를 소요하며...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공하(公夏), 호는 삼평와(三平窩). 현감 박경진(朴敬鎭)의 아들이다. 박재순은 1774년(영조 50) 37세에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1783년(정조 7) 46세에 식년 병과 문과로 급제하여 수찬(修撰)·응교(應敎)·좌승지(左承旨)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그 후 1790년(정조 14)에 공조참판에 이르렀다. 박재순이 쓴 책으로 『삼평...
-
조선 말기에 음성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고령. 자는 길보(吉甫), 호는 설초(雪樵). 아버지는 승지(承旨)를 지냈던 박준우(朴浚遇)이다. 35세인 1864년(고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교하현감과 횡성군수를 지냈다. 이때 여러 치적이 있어서 군민들에게 만인산(萬人傘)을 받았다. 79세 되던 해인 1908년(순종 2) 3월 12일 음성군수로 부임하였다가 8월 29일 그만 두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덕삼(德三), 호는 정산(貞山). 박화철(朴和喆)의 아들이다. 박준우는 1844년(헌종 10) 39세로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수찬(修撰)·교리(校理)를 거쳐 1850년(철종 1) 50세에 좌승지가 되었다. 이어 5년 뒤에 사간원대사간이 되었다. 박준우의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소여리(所餘里)에 있다...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 자는 도기(道器). 아버지는 박근순(朴謹淳)이다. 26세 때인 1780년(정조 4)에 음보(蔭補)로 인릉참봉(仁陵參奉)이 되었고 1801년(순조 1) 화순현감으로 부임하여 초하루와 보름에 청소년을 모아 향약을 베풀고 경서를 강의하였다. 문장이 뛰어나고 글을 잘하여 명성이 높았고 효자로도 널리 알려졌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충도리 벳돈마을...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자형(自馨), 호는 연균(緣筠) 또는 어수(漁叟). 유사근(柳士根)의 손자이고, 교리 유승순(柳承順)의 아들이며, 사육신(死六臣) 유성원의 큰 조카이다. 아들로는 서경(瑞卿) 유인종(柳鱗鍾)이 있다. 유계분은 1441년(세종 23) 20세에 진사(進士)가 된 후 1453년(단종 1)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承...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아버지는 한성부판윤을 지냈던 유호(柳滸)이며, 아들은 사육신의 한 사람인 유성원(柳誠源)이다. 유사근(柳士根)은 1401년(태종 1)에 문과에 급제하여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이 되었다가 1425년(세종 7)에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거쳤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에 있다. 아들 유성원이 1691년(숙종...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태초(太初), 호는 낭간(琅玕)이다. 사인(舍人) 유사근(柳士根)의 아들이며 조부는 한성부판윤 유호(柳滸)이다. 연균(緣筠) 유계분(柳桂芬)이 큰 조카이다. 유성원은 1444년 문과에 급제한 후 『의방유취(醫方類聚)』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3년 후에는 문과 중시에 합격, 집현전 학사를 지내며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
조선 전기 음죽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서경(瑞卿). 아버지는 괴산군수 유계분(柳桂芬)이다. 유인종(柳麟種)[1450~1513]은 1472년(성종 3) 진사가 되고 8년 뒤인 1480년(성종 11)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484년(성종 15)에 이조좌랑이 되었고 이듬해 음죽현감(陰竹縣監)이 되었다. 1487년(성종 18)에 헌납·사간을 지냈다. 정언으로...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나주(羅州). 아버지는 교리(校理) 정수곤(丁壽崑)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 덕고개에 살았던 인물로, 1498년(연산군 4)에 22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1505년(연산군 11)에 사직(司直)이 되었으며, 3년 뒤인 1508년(중종 3)에는 현감을 지냈다. 그의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자인(子仁), 호는 우헌(遇軒). 아버지는 정경례(鄭景禮)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서 생활하였으며, 1573년(선조 6) 17세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어 3년 뒤인 20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의금부도사, 병조정랑을 거쳤으며, 맹산군수를 지냈다. 1602년(선조 35) 46세에 별세하였다. 저서로는...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사고(士皐). 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냈던 정석오(鄭錫五)이고, 아버지는 군수를 역임했던 정양순(鄭養淳)이다. 1768년(영조 44)에 음보(蔭補)로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가 된 이후 장흥고직장(長興庫直長), 의영고주부(義盈庫主簿)를 거쳐 1775년(영조 51)에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 그리고 2년 뒤에 사복시판관...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언술(彦述). 할아버지는 교리를 지낸 정수곤(丁壽崑)이고, 아버지는 현감을 지냈던 정담(丁聃)이다. 1504년(연산군 10)에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에서 태어나 생활하였으며, 26세인 1530년(중종 25)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이어 벼슬이 별좌에 이르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 산봉오리 위에...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유호(攸好), 시호는 정간(貞簡). 정혁선(鄭赫先)의 아들이며 진주목사를 지낸 정동협(鄭東協)은 정석오의 손자이다. 정석오는 1715년(숙종 41)에 식년문과 병과로 급제한 후 검열·문학을 거치고 경종이 즉위하면서 부수찬·교리를 지냈다. 1721년 30세 때 지평으로 김일경(金一鏡)과 함께 노론 사대신(四大臣)을...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불붕(不崩), 호는 월헌(月軒). 소격서령(昭格署令) 정자급(丁子伋)의 아들이며, 교리(校理) 정수곤(丁壽崑)의 아우이다. 정수강은 1474년(성종 5) 20세에 진사가 되고 1477년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지냈다. 1482년에는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으...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불건(不騫). 소격서령(昭格署令)을 지낸 정자급(丁子伋)의 아들이며, 호조참판 정수강(丁壽崗)의 형이다. 정수곤의 아들은 현감을 지낸 정담(丁聃)이고, 처는 상주김씨(尙州金氏)다. 정수곤은 1472년(성종 3)에 식년(式年)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교리(校理)를 지내고, 그 후 공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성공(聖功)이라 하다가 후에 회숙(晦淑)으로 고쳤다, 할아버지는 정혁선(鄭赫先)이며, 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냈던 정석오(鄭錫五)이다. 1745년(영조 21)에 음보(蔭補)로 돈령부참봉(敦寧府參奉),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를 지내고 5년 뒤인 1750년(영조 26)에는 광흥창수(廣興倉守)가 되었다. 이듬해 개령현감에...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의병. 시조 정배걸의 31세손이고, 내급사공파의 증좌승지 정인호(鄭仁鎬)의 현손이며, 정인성(鄭寅晟)의 아들로 음성군 금왕읍 내송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자는 군소(君素)이며 본관은 초계이다. 정이헌은 1896년에 운강(雲崗) 이강년(李康秊) 의병진에 가담하여 충주 금목(金目)[금왕읍 쌍봉리] 일대에서 의병의 모집 및 전투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경국(景國), 호는 유당(留堂). 정희조(鄭喜朝)의 아들이다. 정인학은 1870년(고종 7) 31세로 생원시에 합격하고 1880년 알성문과(謁聖文科) 병과에 급제하였다. 처음에 주서(注書)로 기용되어 다음해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와 응교(應敎)를 거쳐 병조정랑(兵曹正郞)이 되었다. 1884년에는 이조참판에 이어서...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백헌(佰憲), 호는 해관(海觀). 아버지는 동래부사를 지낸 정인학(鄭寅學)이다.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으며, 1885년(고종 22) 22살에 증광문과 병과에 급제하였으며, 4년 뒤인 1889년(고종 26)에는 부교리, 사간을 지내고 이듬해에 응교(應敎), 장령(掌令)을 지냈다. 1891년(고종 28) 28살에는...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자는 문옥(文玉), 호는 정암(靜岩)이며 아버지는 조광하(趙光夏)이다. 충청북도 음성읍 평곡리(平谷里)에서 살았으며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다. 조동환은 1910년 25세에 도지부주사(度支部主事)에 기용되었고 이어서 강원도 춘천재무소(財務所) 주사(主事)가 되었다. 1928년 43세에 음성면장을 지내고 2년 후 사직하였다가 1931년 음성면...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자선 사업가. 조륵(趙玏)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삼봉리에서 출생하였다. 조륵이 재산을 모은 일과 관련하여 음성 지역과 충주 지역에는 많은 일화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지금은 자린고비라 하여 구두쇠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지만 실은 자선 사업가를 의미하는 대명사로 씀이 바람직할 것이다. 본관은 한양(漢陽). 선조 때 성균진사(成均進士)를 지낸 조경...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순창(淳昌). 형은 조복(趙服)이다. 조반은 1592년 임진왜란 때 형 조복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켰다. 월고산(月高山) 국사봉(國師峯)[소이면 금고리 소재]에서 힘을 다해 왜군과 싸웠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우목야(牛牧野)[소이면 갑산리 소재]에서 형과 함께 전사하였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 활동으로 공조참판(工曹參判)으로 증직...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순창(淳昌). 동생은 조반(趙胖)이다. 조복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동생 조반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월고산(月高山) 국사봉(國師峯)[소이면 금고리 소재]에서 목숨을 바쳐 왜군과 싸웠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우목야(牛牧野)[소이면 갑산리 소재]에서 동생과 함께 전사하였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 활동으로 병조판서(兵曹判書)에...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자직(子直), 호는 동강(東岡). 예조판서 조형(趙珩)의 아들이며, 할아버지는 승지 조희보(趙希輔)이다. 조상우는 1657년(효종 8) 17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천거되어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연천현감(連川縣監)을 지냈다. 1675년(숙종 1)에는 스승인 송준길(宋浚吉)이 삭직을 당하자 홍득우(洪...
-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군계(君啓). 판도판서(判圖判書) 조돈(趙暾)의 아들이다. 조인옥은 1373년(공민왕 22)에 음보(蔭補)로 생원이 되고 1387년(우왕 13)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를 거쳐 이듬해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 이성계의 휘하에 종군하여 최영(崔塋) 등 구세력 숙청에 가담하였다. 위화도에서 회군할 때 남은(南誾) 등과 더불어 이...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군헌(君獻), 호는 취병(翠屛). 승지(承旨) 조희보(趙希輔)의 아들이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지낸 조상우(趙相愚)는 그의 아들이다. 조형은 어려서 장난이 심하였으나 일찍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9세에 경서(經書)를 해득하여 세상 사람들이 경탄하였다. 1630년(인조 8)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선비.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광여(光汝). 문공 주희(朱憙)의 26대손이다. 주응동은 청빈하게 살았으나 서원을 건립할 자격이 없었다. 이에 사림회의(士林會議)를 통하여 서류를 관아에 제출하여, 순영(巡營)으로부터 당우를 건축하라는 단자(單子)를 받았다. 1856년(철종 7)에 주응동은 안성에 사는 김문웅으로부터 문공 주희(朱憙)의 영정을...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기지(耆之), 호는 나재(懶齋) 또는 청허자(淸虛子). 아버지는 부사를 지냈던 채신보(蔡申葆)이며 할아버지는 사예(司藝) 채윤(蔡倫)이다. 채수는 1468년(세조 14)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1469년에 추장문과(秋場文科)에 장원하여 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에 제수되었고,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어 『세조실...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자휴(子休), 호는 만계(灣溪). 아버지는 사예(司藝) 채륜(蔡倫)이고, 아들은 나재(懶齋) 채수(蔡壽)이다. 채신보는 1438년(세종 20) 18세에 진사(進士)가 되고 함창현감(咸昌縣監)을 거쳐 1458년(세조 4)부터 1465년(세조 11년)까지 7년간을 음성현감으로 재직했다. 그 후 경산현감(慶山縣監)·...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수겸(秀謙). 지헌(之軒) 채유희가 형이고, 아들로 우담(雩潭) 채득기(蔡得沂)가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 물언덕에서 태어났다.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한 후 1592년(선조 25) 31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채유희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웠으며, 그 뒤 봉상시직장(奉常寺直長)을 역임하였다....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 문신. 채정은 본래 음성의 이속(吏屬)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과거에 급제하였다. 고려 후기인 무인집권기 때 동도(東都)[지금의 경주]의 장서기(掌書記)가 되어 청렴하게 자기 직분을 다하고 백성들에게 많은 덕을 베풀었다. 임기를 마치고 국학학정(國學學正)이 되었는데 칠재(七齋: 고려 예종 때 국자감에 설치한 일곱 과목의 전문 강좌)의 학생들...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의병. 최난수는 임진왜란때에 충청북도 음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우고서도 조정의 포상을 사양한 뒤 전사한 의인이다. 최난수(崔鸞壽)은 고려 좌참찬 최유경(崔有慶)의 5세손이고, 선략부호군 최우령(崔禹齡)의 아들이다. 최난수는 참봉을 제수하였으나 나가지 않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반인후(潘仁後)와 더불어 의병을 모집하여 전과를 올렸다. 도(...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 활동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중(成仲), 호는 사우당(四友堂). 관찰사 최상익(崔商翼)이 형이다. 1674년(현종 15)에 40세에 사마시에 합격한 후 군자감직장(軍資監直長)을 지냈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소의장씨(昭儀張氏)의 아들을 원자로 세우려는 숙종의 뜻을 서인 송시열(宋時烈) 등이 반대하였다. 이에 실각...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항(汝恒), 호는 설파(雪坡). 1819년(순조 19)에 충청북도 음성 지역에서 태어나 1851년(철종 2) 32살에 정시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집의까지 지냈으나,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시와 술을 벗 삼으며 여생을 보냈다. 저서로 『설파집(雪坡集)』을 남겼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 새고...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이자 자선사업가. 피학용은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살았으며, 천석(千石)의 부자였다. 1805년(순조 5) 38세 때 충주 지방에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돈 백 냥과 수십 석의 쌀로 구휼하였다. 충주목사가 이 사실을 당시 충청도관찰사였던 박윤수(朴崙壽)에게 알렸으며, 이 사실로 표창을 받았다. 1819년(순조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