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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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緯地 |
영어공식명칭 | Ha Wiji |
이칭/별칭 | 천장(天章),중장(仲章),단계(丹溪),적촌(赤村),충렬(忠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우진 |
출생 시기/일시 | 1412년 - 하위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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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35년 - 하위지 생원시(生員試)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438년 - 하위지 식년문과(式年文科) 장원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444년 - 하위지 집현전 부교리(副校理)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48년 - 하위지 집현전 교리(校理)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50년 - 하위지 사헌부 장령(掌令)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53년 - 하위지 사헌부 집의(執義) 승진 |
활동 시기/일시 | 1454년 - 하위지 집현전 부제학(副提學)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55년 - 하위지 예조참판(禮曹參判) 임명, 세자 좌부빈객(世子左副賓客) 겸직 |
몰년 시기/일시 | 1456년 - 하위지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81년 - 민절서원(愍節書院) 창건 및 하위지 배향 |
추모 시기/일시 | 1685년 - 창절서원(彰節書院) 창건 및 하위지 배향 |
추모 시기/일시 | 1691년 - 하위지 관작(官爵)이 복원됨. 사육신묘 치제(致祭) |
추모 시기/일시 | 1758년 - 하위지 이조판서(吏曹判書) 추증, 충렬(忠烈) 추시(追諡) |
추모 시기/일시 | 1777년 - 하위지 정문(旌門)이 세워짐 |
추모 시기/일시 | 1782년 - 하위지 신도비(神道碑) 건립 |
출생지 | 선산현(善山縣)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
묘소|단소 | 사육신묘(死六臣墓)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
사당|배향지 | 민절사(愍節祠, 민절서원)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
사당|배향지 | 창절사(彰節祠, 창절서원)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진주 |
대표 관직 | 예조참판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 사당과 가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개설]
하위지(河緯地)[1412~1456]는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다 처형된 사육신(死六臣)의 한 명으로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 가묘(假墓)와 사당이 마련되었다.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천장(天章)·중장(仲章), 호는 단계(丹溪)·적촌(赤村),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증조부는 하윤(河胤), 조부는 문하평리(門下評理) 하지백(河之伯), 아버지는 지청송군사(知靑松郡事) 하담(河澹)이며 어머니는 인동 유씨(仁同兪氏)로 지흥해군사(知興海郡事) 유면(兪勉)의 딸이다.
[활동 사항]
1438년(세종 20)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집현전(集賢殿)에서 부수찬(副修撰), 부교리(副校理), 교리(校理) 등을 거치며 『오례의주(五禮儀註)』의 편찬과 『고려사(高麗史)』의 개찬 등에 참여하였다. 문종이 즉위한 후에는 사헌부(司憲府)의 장령(掌令)으로서 정사(政事)에 관한 직언을 아끼지 않았다. 단종 즉위 후 사헌부 집의(執義)와 집현전 부제학(副提學) 등을 역임하다가 1453년(단종 1) 수양대군(首陽大君)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키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은거하였다.
1455년(세조 1) 세조가 즉위하여 하위지를 예조참판(禮曹參判)에 임명하자 겉으로는 호응하는 듯 직위를 받아들였으나 단종을 복위시키고자 하였다. 1456년(세조 2) 성삼문(成三問) 등과 함께 한 단종 복위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어 다른 사육신들과 함께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졌다.
[학문과 저술]
하위지의 시(詩)·문(文)을 수록한 문집으로 『단계선생유고(丹溪先生遺稿)』 3권 1책이 있다. 1768년(영조 44) 후손인 하룡익(河龍翼) 등이 사육신의 문집인 『육선생유고(六先生遺稿)』 권3에 수록되어 있던 하위지의 글을 토대로 재편집하여 간행하였다.
[묘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에 위치한 사육신묘(死六臣墓)에 가묘가 있다. 하위지는 군기감(軍器監) 부근에서 거열형을 당한 후 부인이 선산부(善山府) 고방산(古方山) 언덕에 반장(返葬)하였다고 하나 어느 곳에 묻혔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1977~1978년 사육신묘 정비 사업 때 박팽년(朴彭年)·유응부(兪應孚)·이개(李塏)·성삼문(成三問)의 묘와 사육신공원이 자리한 동작구 노량진동에 하위지·유성원(柳誠源)의 가묘가 추가로 조성되었다.
[상훈과 추모]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지역에 1681년(숙종 7) 하위지를 비롯한 사육신을 배향한 사당이 건립되어 1691년(숙종 17) ‘민절사(愍絶祠)’라는 편액이 하사되고 관작(官爵)이 복원되었다. 민절사는 이듬해 서원(書院)으로 변경되었다. 1685년(숙종 11)에는 강원도 영월에도 하위지 등을 배향한 서원이 건립되었으며 1699년(숙종 25) ‘창절사(彰節祠)’라고 사액되었다. 1758년(영조 34)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충렬(忠烈)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며 1777년(정조 1)에는 하위지 후손의 문중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1782년(정조 6)에는 신도비(神道碑)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