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1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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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農旗文化 |
영어공식명칭 | Culture of Farmers Symbol Flag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고대영 |
[정의]
마을 공동체를 상징하는 농기와 이와 관련된 민속.
[개설]
농기는 대나무 장대 꼭대기에 꿩의 깃으로 장식한 꿩 장목[꿩의 꽁지깃을 모아 묶어서 깃대 따위의 끝에 꽂는 장식]을 꽂고, 기폭에는 농자 천하지 대본(農者天下之大本), 신농유업(神農遺業) 따위의 글을 새기거나 승천하는 용을 그린 깃발을 말한다. 용대기, 용기, 장목기 등으로 불리며, 당진을 포함한 내포 지역에서는 특히 용을 그린 깃발을 많이 사용했다. 농기는 두레와 마을 공동체의 상징이며, 농기와 관련된 민속인 두레에서는 농기의 활용, 농기싸움, 기세배, 기쓸기, 농기고사, 풍물굿 등을 포괄한다. 농기는 단순한 두레와 마을의 상징이 아니라 동제의 대상이었으며, 매우 신성시되었다. 당진에서 농기가 언급되는 기록은 면천에 귀양 온 운양 김윤식의 『속음청사(續陰晴史)』에 1891년(고종 28) ‘두뢰’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여기에 용 한 마리가 그려진 깃발을 세웠는데 장대가 3장이나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두 마을의 두레패가 지나가는데 선생기를 존중하고, 기세배를 했다는 내용도 있어 농기의 오랜 역사를 짐작케 한다. 기지시 줄다리기에서의 농기 접수, 추첨과 농기의 참여 등은 이러한 지역의 농기에 대한 문화를 반증한다. 두레와 마을 공동체가 빠르게 소멸되어 가는 과정에서 기지시 줄다리기의 농기 참여와 지역 농악의 활성화 등으로 당진 지역에는 다른 지역보다 훨씬 다양하고 많은 수의 농기가 남아 있게 되었다. 이러한 농기는 각 마을단위로 보관되고 있으며, 일부 농기의 경우 기지시 줄다리기 박물관에 전시, 보관되고 있다.
[당진의 농기]
농기는 기폭에 담겨진 내용에 따라 크게 세 종류로 나누어진다. 용대기, 대본기, 신농기로 볼 수 있는데, 당진에는 용대기 혹은 대본기가 대부분이다. 2015년 조사 내용에 따르면 대호지면 적서리, 송악읍 본당리의 농기는 용대기이자 대본기이며, 대호지면 마중리, 송악읍 가학리는 대본기, 합덕읍 하궁원리, 면천면 삼웅리, 신평면 도성리, 송악읍 기지시리는 용대기의 형태이다. 대호지면 적서리 농기는 용을 중앙에 배치하면서 기폭 한 편에 ‘농자 천하지 대본’을 함께 표기한 사례이며, 송악읍 본당리는 용 그림과 '농자 천하지 대본'을 앞뒤로 양면에 그린 형태이다.
용의 형태로 보면, 적서리나 도성리의 사례에서는 구름이나 상서로운 기운에 둘러싸인 용을 묘사하고, 제작 연도를 기록하는 것이 특징이다. 당진 지역 농기의 특징으로는 하사기가 많다는 것이 있다. 국가 혹은 지방 관청에서 농기를 마을에 하사하는 것이다. 면천면 삼웅리 농기는 1954년 퇴비 증산 대회에서 당진 군수가 부상으로 내린 것으로 기폭 가운데 ‘상’이라는 글씨와 당진 군수 ‘이원량’의 이름과 관인이 찍혀 있다. 송악읍 반촌리의 농기는 농악대회 우승 기념으로 송악면장이 내린 것이다. 기지시 줄다리기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국풍 81’ 농기는 제5 공화국 신군부가 하사한 농기로 알려져 있다.
[농기와 관련된 민속]
두레 조직은 농기를 만든 역사나 마을의 규모에 따라 서열이 구분되는데, 두 마을의 두레가 마주치면 아우 두레, 제자 두레가 형 두레, 선생 두레에 예를 갖춰서 기세배를 하곤 했다. 이러한 절차를 무시하면 두레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기 쓸기는 기세배를 하면 용대기를 쓸어내리며 하게 되는데, 마을의 위용을 과시하거나 힘자랑을 할 때, 힘이 센 장정들이 묘기를 부리기도 하였다.
용대기싸움은 두레패가 서로 만나 서로 다툼으로 비화되었을 때 이루어지는데, 상대방의 기를 쓰러뜨려 꿩 장목을 빼앗기면 지는 식으로 진행된다. 마을의 자존심이 걸려 있어 거칠게 저항하며, 또 꿩 장목을 빼앗기 위해 달려든다. 싸움이 정리되면 지는 편 두레꾼이 모두 나와 잘못했다고 빌어야 끝이 난다.
마을의 정월대보름이나 2월 초하루, 칠석, 백중 등에도 농기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거북놀이나 지신밟기의 놀이와 행사에서 용대기를 앞세우거나 대오의 선두에 서곤 했다. 첫 두레가 나서 김매기를 시작하는 날 농기 고사를 지내는데, 두레꾼이 다 모이면 풍년을 기원하는 농기 고사를 지내고, 두레꾼들은 재배를 올린다. 칠석에도 김매기가 모두 끝났음을 알리는 고사를 지낸다. 산신제와 볏가릿대 세우기 등 마을 공동체의 상징, 물을 다스리는 용을 상징하는 상징물로서 기우제, 동제의 대상이자 행렬의 앞에서 무리를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하곤 하였다. 오늘날 두레의 해체와 마을 공동체의 약화로 인해 농기가 많이 사라지고, 이에 따라 농기와 관련한 민속 역시 사라지고 있으나 기지시 줄다리기의 농기 접수와 추첨 행사로 다른 지역에 비해 농기의 보전이나 농기 민속이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