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5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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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潤植 |
영어공식명칭 | Kim Yunsik |
이칭/별칭 | 김상희(金祥熙)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종헌 |
출생 시기/일시 | 1928년 3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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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43년 - 김윤식 대구공업고등학교 기계과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44년~1948년 - 김윤식 경북 경산 용성초등학교 교사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50년~1952년 - 김윤식 『대구신보』 기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52년~1958년 - 김윤식 흥해중학교·경주여자고등학교 교사 역임 |
수학 시기/일시 | 1954년 - 김윤식 홍익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55년 - 김윤식 시 동인 『청맥』 창여 |
활동 시기/일시 | 1959년 - 김윤식 시 동인 『시림(詩林)』 창립 |
활동 시기/일시 | 1957년 - 김윤식 시집 『오늘』 출간 |
활동 시기/일시 | 1964년 - 김윤식 『대구일보』 신춘문예에 시 「고난을 헤치고」 당선 |
활동 시기/일시 | 1969년~1972년 - 김윤식 『영남일보』 기자 |
활동 시기/일시 | 1979년 - 김윤식 경산문학회 창립 |
활동 시기/일시 | 1991년~1996년 - 김윤식 『경산신문』 초대 주필 |
몰년 시기/일시 | 1996년 8월 29일![]() |
학교|수학지 | 대구공업고등학교 -
대구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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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수학지 | 홍익대학교 - 서울특별시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성격 | 시인 |
성별 | 남성 |
본관 | 경주 |
대표 경력 | 『영남일보』 기자|『경산신문』 초대 주필|4·19혁명 유공자 |
1960년대 대구에서 활동한 저항시인.
김윤식(金潤植)[1928~1996]은 1928년 3월 5일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다. 김윤식은 1943년 대구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하고 1954년 홍익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64년 『대구일보』 신춘문예에 시 「고난을 헤치고」를 김상희(金祥熙)라는 필명으로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불교의 영향이 짙은 시로 출발하여 1960년대에는 현실의 부조리에 항거하는 저항시를 발표하였다. 1970년대 이후 경산 용성면에서 농촌 생활을 하며 농민시를 발표하였다.
김윤식은 1944년부터 1948년까지 경산 용성공립국민학교[현 용성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50년부터 1952년까지 『대구신보』 기자로 활동하였고, 1952년부터 1958년까지 흥해중학교와 경주여자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김윤식은 1955년 경주에서 유치환 등과 시 동인 『청맥(靑麥)』을 창립하였다. 1957년 경주여자고등학교 교사 시절 시집 『오늘』을 출간하였다. 1959년 전상렬·윤혜승 등과 시 동인 『시림(詩林)』 회원으로 대구 문단에서 활동하였다.
김윤식은 ‘2·28 대구학생데모를 보고’라는 부제를 단 시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을 1960년 3월 1일 『대구일보』에 발표하였다.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은 김윤식이 1960년 2월 28일 농사지은 땅콩을 팔러 염매시장에 가는 길에 삼덕동 일대에서 학생 시위대를 목격하고 쓴 시로 알려져 있다. 1960년 「사이비 학자 교사에게」를 『대구매일신문』[현 『매일신문』]에 3월 30일과 31일 2회에 걸쳐 발표하였다. 혼탁한 사회를 방치하고 있는 사회 지도층을 비판하였다는 이유로 피신 생활을 하던 중 4·19혁명 직전에는 대구 봉덕동에 있던 전상렬 시인의 집에 잠시 숨어 지내기도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3·15 마산의거 희생자인 김주열 열사를 애도하는 시 「강이여 산이여 봄이여」를 1960년 4월 15일 『대구매일신문』에 발표하는 등 1960년대 대구 지역의 저항시인으로 활동하였다.
김윤식은 1979년 고향 경산에서 도광의·서석달·안태중·윤혜승·전상렬·정석모 등과 함께 경산문학회[현 한국문인협회 경산지회]를 창립하였다. 김윤식은 『경산신문』 초대 주필[1991~1996], 『영남일보』[1969~1972] 기자,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대구광역시연합회 사무국장, 경산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김윤식은 1996년 8월 29일 사망하였다.
김윤식은 1962년 3월~4월 사이에 『석굴암』을 필명 김상희로 『대구매일신문』에 연재하였다. 『오늘』[1957],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1960], 『산촌근일초』[1973], 『하늘이여 너에게』[1984], 『아직도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은』[제2시집 재간][1991] 등을 발간하였다.
김윤식의 시비 ‘합장’이 1995년 4·19국립묘지에 조성되었다. 2010년 10월에 고향 경상북도 경산 남매공원에 시비 ‘아직도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이 세워졌다. 2018년 6월 경상북도 경산시 용천면 덕천리 생가에 생가 표지석을 세웠다. 김윤식은 2019년 4·19혁명 유공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