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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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北地藏寺 三層石塔 |
영어공식명칭 | Three-story Stone Pagoda of Bukjijang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도장길 243[도학동 620]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배성혁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1년 - 북지장사삼층석탑 보수, 정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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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2년 3월 4일 - 북지장사삼층석탑,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대구 북지장사삼층석탑,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
현 소재지 | 북지장사삼층석탑 - 대구광역시 동구 도장길 243[도학동 620] |
원소재지 | 북지장사삼층석탑 - 대구광역시 동구 도장길 243[도학동 620] |
성격 | 석탑 |
양식 | 삼층석탑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 | 3.8m |
소유자 | 대한불교조계종 |
관리자 | 북지장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에 위치한 북지장사 대웅전 동편에 나란히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 쌍탑.
[개설]
북지장사 창건자와 창건 시기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극달화상이 485년[신라 소지왕 7년] 창건하였다는 설과 보조국사 지눌이 1191년(명종 21)에 창건하였다는 설이다. 연기설화인 극달화상 창건설은 신라 법흥왕 때인 528년(법흥 15) 이전이라 믿기가 어렵다. 고려시대 창건설은 신라시대 창건설보다는 신빙성이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천룡사 중창과 관련해 언급한 『삼국유사』권제3 「탑상」제4 천룡사조의 신서에 “공산 지장사[현 북지장사로 추정]의 납입전이 200결”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전부터 사찰이 존속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창건 이후 북지장사에 대한 상세한 문헌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대구 도학동 북지장사 대웅전지 1차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기와편에 적인 ‘지장수도장(地藏藪道長) ’, 1731년 건립을 알려주는 ‘지장사유공인영세불망비(地藏寺有功人永世不忘碑)’ 등을 참고하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북지장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치]
북지장사삼층석탑은 대구방짜유기박물관에서 북동쪽 골짜기로 2㎞ 지난 지점에 있는 북지장사 경내 대웅전 앞에 나란히 2기가 세워져 있다. 북지장사삼층석탑이 있는 곳은 팔공산 준봉 중 하나인 인봉의 남동편 아래에 해당한다.
[형태]
북지장사삼층석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두 탑의 규모와 형식이 거의 같다. 전체 높이는 각각 3.8m 정도이다. 지복석(地覆石)[토대에 쓰이는 돌]은 두개 판석을 접합시켜 깔았으며 기단면석에는 받침기둥인 버팀기둥[탱주(撑柱)] 1개와 모서리 기둥[우주(隅柱)] 2개씩을 조각했다. 갑석(甲石)에는 부연(副椽)[덧얹는 짧고 네모진 서까래]과 두단의 굄을 조각하였다. 옥신(屋身)[탑의 몸체]의 옥개(屋蓋)[석탑 위에 지붕처럼 덮는 돌]는 모두 1개 돌로서 옥신면석에는 모서리 기둥 2개씩을 조각하고 옥개에는 4단 받침과 1단의 굄을 조각하였는데,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다.
[현황]
북지장사삼층석탑은 원래 제2층 옥개까지만 남아 있었다. 제2층 이상 3층 옥신, 옥개는 매몰되었거나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81년 보수, 정화하여 지금 상태로 보존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북지장사삼층석탑은 1982년 3월 4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