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으로 일궈 낸 대마리 마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1302
한자 開拓-大馬里-
영어공식명칭 Assart of Daemari-maeul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강원도 철원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경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9년 - 철원읍 월하리에 첫 민북마을 개척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7년 - 재건촌 건설계획에 의거 150명 입주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8년 8월 30일 - 철원읍 대마리 재건촌 입주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6년 - 농가별 토지분배 완료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9년 - 농촌주택계량사업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3년 - 오대벼 장려품종 보급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1년 - 두루미평화마을 영농조합법인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2년 - 오대벼 고급품종 새오대벼 개발 및 시험 성공

[정의]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에 건설된 재건촌 민북마을 개척사.

[개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는 1967년 정부의 재건촌 건립 계획을 통해 조성된 민간인통제선 이북 마을[민북마을]이다. 개척 초기 입주민들이 제대군인 출신 150명과 그 가족들이었기 때문에 ‘향군촌’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마을이 형성되기 1년 전인 1967년 남자 150명이 먼저 입주하여 천막생활을 하며 농토를 개간하고 주택 및 기본 시설을 건설하였다. 1년간의 개척 작업을 완료한 후 1968년 8월 30일 150세대 830명의 주민들이 입주식을 하고 정식으로 입주하였다. 입주 당시 경작지는 논 310㏊, 밭 45㏊였으며, 주택 150채, 초등학교, 공동창고, 공회당 등이 건설되었다. 1970년대 중반, 입주 1세대 자녀들이 장성하여 분가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거주지 확장이 이루어졌다. 1968년 1세대가 입주한 150세대가 있는 곳을 본동 또는 안동네라고 하고, 1976년 확대된 거주지를 새마을동네, 1979년 새로 조성된 거주지를 모시울동네와 개울동네라고 이름 붙였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는 「군사시설보호법」상 통제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1998년 1월부로 제한보호구역으로 완화되면서 법률상 민간인출입통제선 지역에서 해제되었다. 이에 따른 조치로 1999년 3월부터 출입 통제가 해제되어 초소 통과 절차가 간편해졌고, 2000년 3월에 이르러 마을 입구에 있던 검문 초소가 철거되면서 대마리는 민북마을에서 해제되었다.

[폐허와 황무지된 철원]

1930년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경원선 철도 교통과 도시 인프라를 바탕으로 인구 8만 명의 비교적 큰 규모의 도시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철원은 해방 직후 소련군이 주둔하면서 공산 치하로 넘어갔고 1950년부터 1953년 사이에 6·25전쟁을 겪으면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특히 강원도 철원군-김화군-평강군을 잇는 이른바 ‘철의 삼각지’는 강원도의 평야지대이자 곡창으로서 전략적 중요도가 높았기 때문에 6·25전쟁 기간 동안 가장 치열한 격전지 중 하나였다. 전쟁 과정에서 강원도 철원군 주민들의 생활터전이 피폐해졌으며, 전후 수복한 강원도 철원군은 대부분 폐허가 되었다. 휴전 후 군사분계선을 두고 북한과 맞닿은 접적지역(接敵地域)의 특성상 오랜 시간 동안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고 비옥하였던 농토는 황무지로 변하였다.

[민북마을 건설]

민간인 통제 구역 원주민들은 영농 출입증을 발급 받아 아침에 들어가고 일몰 전에 민통선 밖으로 나와야 하였고, 주민들은 생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군사분계선을 지키는 군부대는 보안과 경계를 위해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여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민들과 군인들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주민들의 농업 편의, 식량 증산, 대북 전시효과를 통한 심리전 우위 획득 등을 목적으로 민통선 북방 미개척 토지를 개간하여 민북마을이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민북마을은 크게 자립안정촌, 재건촌, 통일촌 등으로 구분된다. 6·25전쟁 이전 원주민으로 구성된 민북마을이 자립안정촌이다. 민간인 보호와 대북 우위성 목적으로 정부 지원을 받아 토지 개간 및 주택 건설이 이루어진 건설된 민북마을이 재건촌이다. 재건촌을 보완하여 기반 시설을 확보하고 경작권을 보호해 주는 민북마을이 통일촌이다.

1959년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원하리에 72세대가 입주한 것을 시작으로 1960년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1968년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1리, 대마2리, 1970년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1973년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유곡리, 1974년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동막리정연리, 1979년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양지리, 1960년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 등 총 14개 민북마을을 조성하여 975세대가 입주하였다.

[주민들의 피와 땀으로 개척한 대마리마을]

입주 당시 민통선 이북에 있었던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는 정부에 의해 1968년 최초의 재건촌으로 건설되었다. 대마리 마을 건설 목적은 국방력 강화, 대공 심리전, 식량 증산 등이었기 때문에 정부는 반공정신이 투철한 재향군인 150명과 그 가족을 초기 입주민으로 모집하였다. 이 때문에 대마리를 ‘향군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마리는 이스라엘의 키부츠(Kibbutz)를 모델을 적용하여 전투와 영농이 결합된 대단위 협업 영농 방식을 채택하였다. 키부츠라는 말은 이스라엘 말로 ‘공동체’를 의미하는데, 키부츠는 집단 농업 공동체로서 토지, 생산 및 생활용품 등을 공동 소유로 하고 구성원의 전체 수입을 키부츠에 귀속하여 공동으로 소비하거나 균등하게 분배하는 방식이다. 키부츠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구성원들이 황폐한 농경지에서 정주하기 위한 방식이었기 때문에 민북마을 개척의 모델이 될 수 있었다. 민간인통제선 이북 지역은 대부분 6·25전쟁으로 인하여 황무지가 된 지역이었고 수리 시설 등 농업 활동을 위한 기반 시설이 없었다. 그래서 정부는 대마리 개척 초기에 이스라엘의 키부츠와 같은 대단위 협업농업 모델을 적용하였다. 대단위 협업농업은 1968년 대마리 마을 입주 후 3년간 계속되었다. 이후 농가별 토지분배가 점차 이루어졌고 입주 후 8년째인 1976년에 이르러 농가별 토지 분배가 완료되면서 개별 농가 단위로 영농할 수 있게 되었다.

대마리 마을 개척 초기, 선발된 150명의 재향군인들은 1967년 3월에 먼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에 들어와 군용천막에서 생활하면서 거주에 필요한 기본 시설을 건설하고 농토를 개간하였다. 초기 입주민들은 낮에는 농지를 개간하고 밤에는 경계 작전에 동원되었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농지를 개간하는 과정에서 7,000여 발의 지뢰를 제거하였고, 지뢰나 폭발물 사고로 7명이 사망하고 8명이 다리를 잃는 큰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대마리에 설치되어 있는 개척비에는 “피 흘려 찾은 땅, 피땀 흘려 개척했다.”라고 적혀 있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는 전쟁을 겪으면서 피 흘려 수복한 땅이었고, 그 땅을 다시 사람이 살 수 있게 만들기 위하여 또다시 피와 땀을 흘려 개척하였다는 뜻이다. 자립갱생(自立更生)은 대마리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 주민들이 꾸준히 황무지와 지뢰지대를 개척한 끝에 초기 355㏊였던 농경지가 2000년 832㏊까지 확대되었다.

어려운 개척 과정을 거쳐 1968년 8월 30일 초기 입주민 150세대가 참석한 가운데 입주식이 거행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초기 정착 당시 정부는 입주민 150세대에게 경운기 15대를 지원하였고, 1979년에는 농촌 주택 개량 사업을 지원하였으며, 기계화 영농 지원 사업도 하였다. 입주 기념식은 대마리의 특징적이고 전통적인 마을 행사이며, 대마리의 개척정신과 통일에 대한 의지를 다짐하며 지금도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의 지뢰지대와 황무지가 주민들에 의해 개간되자 농지의 원소유자들이 나타나 토지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하였다. 원소유자들과 마을 주민들 사이에 법적 분쟁이 발생하게 되었다. 문제는 원소유자들이 입주 정책을 시행한 국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이나 반환청구를 하지 않고 토지를 개척하고 경작하고 있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였다는 점이다. 대마리 주민들은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고 사건은 대법원까지 항소되었으나, 결국 판결은 원소유자의 소유권을 대부분 인정하는 것으로 나왔다. 일부 농가들은 3년 상환의 방법으로 농토를 매입하여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기도 하였지만 많은 주민들이 땅을 잃어버린 경우가 발생하였다. 1983년 정부의 미복구 토지의 복구 등록과 보존 등기에 관한 특별조치법[「수복지역내소유자미복구토지의복구등록과보존등기등에관한특별조치법」]이 시행되었지만, 토지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은 지금도 언제 어디에서 불거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1995년 환경부는 민통선 지역에 대한 자연환경 조사를 실시하여 보전 가치가 높은 지역을 ‘자연생태계 보호지역’으로 지정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천연기념물인 두루미, 재두루미 등 희귀 철새들이 월동하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일대를 ‘철원평야 자연생태계 보호지역’으로 지정하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마리 주민들은 보호구역 지정 시 영농활동 및 지역 개발에 지장을 주고 땅값이 하락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인식하고 보호지역 지정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였고, 철원군 및 군의회, 지역언론, 지역구 국회의원 등의 지원을 받아 보호지역 지정 계획이 철회되었다. 그러나 환경단체와 환경부 등이 철새 보호를 위한 각종 계획을 발표하면 대마리 주민들은 적극적으로 반대하면서 철새 보호를 둘러싼 갈등이 종종 발생하였다.

[철원오대쌀의 주산지]

강원도 철원군의 철원평야는 신생대 제4기 용암분출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크게 대야잔평재송평으로 나뉜다. 대야잔평은 강원도 평강군으로부터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으로 이어지는 평야지대이고, 재송평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월정리, 강산리, 양지리, 월하리, 대마리 전역에 걸쳐 형성된 약 2만 5000㏊의 평야이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일대는 철원평야재송평에 위치하여 넓은 평지와 역곡천의 풍부한 물을 이용한 농업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철원오대쌀의 주산지로 알려져 있다. 본래 오대벼는 생육기간은 짧으면서 수확성이 좋아지도록 내병 다수성인 아끼쓰호에 내냉 내도복 다수성인 후지269호를 인공교배하여 1975년 개발된 품종이다. 오대벼는 내냉, 양질 다수성이 우수하여 1983년 장려품종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오대벼는 중북부 중산간지와 북부내륙 평야지 및 중남부 고랭지, 동해안 중북부 지역에서 재배하는 것이 권장되었다. 이후 쌀품위 등급제 시행에 따라 오대벼 품종을 대체할 고품위 품종 개발이 진행되었으며, 그루벼와 수원472호를 교배하여 2001년 새오대[철원81호] 품종이 개발되었다. 새오대벼 품종은 2008년~2009년간 생산력 검정과 2010년~2012년간 지역 적응 시험을 철원 지역에서 마쳤다. 새오대품종은 기존의 오대벼보다 저온 발아성이 뛰어나고 생육일수가 기존의 오대벼보다 짧아 조생으로 수확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는 백마고지 오대쌀 이외에도 백마고지 느타리 버섯, 백마고지 오이, 백마고지 삼지구엽초, 백마고지 벌꿀을 비롯해 꽈리고추, 토마토, 파프리카, 단호박과 밤호박, 여주 등을 생산하고 있다.

[체험마을 대마리마을]

대마리는 2000년 3월 민간인 통제선이 북상하고 검문소가 이전하면서 민북마을에서 해제되었다. 그 대신 대마리두루미평화마을[오대미마을]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농가소득 확대를 꾀하고 있다. 두루미평화마을대마리의 개척 과정을 모사한 지뢰 찾기 체험, 천막 체험, 병영 체험과 함께 백마고지 오대쌀의 재배 과정과 생산과정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테마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대마리는 인근에 백마고지가 있기 때문에 백마고지 전적비와 백마고지전시관 등 안보관광지와 연계한 관광 코스가 운영되기도 한다.

한편 철원용암대지는 철새들이 물과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어 9월 중순~10월 중순 사이에 두루미, 재두루미, 기러기, 독수리 등 많은 철새들이 시베리아로부터 내려와 겨울을 지내고 있다. 대마리 일대에도 겨울 철새들이 찾아와 월동을 하고 있다. 대마리두루미, 독수리, 청둥오리, 박새 등 자연생태를 보고 관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도시민들과 교류를 증진하고 있으며, 마을 농작물의 판로 개척 및 마을 수입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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