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정양산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582
한자 寧越 正陽山城
이칭/별칭 왕검성(王儉城),계족산성(雞足山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 산1-1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유재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3년 6월 2일연표보기 - 영월 정양산성 사적 지정
현 소재지 영월 정양산성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 산1-1 지도보기
성격 산성

[정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에 있는 고대 산성.

[개설]

영월(寧越) 정양산성(正陽山城)왕검성(王儉城)으로 불리며, 계족산성(雞足山城)이라고도 한다. 정양산성에 대한 문헌 기록은 조선 시대 역대 지리지 등에서 대부분 ‘정양산성(正陽山城)’으로 표기하여 관련 내용이 간략하게 전하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서는 “정양산석성은 군 동쪽 10리[3.93㎞]에 있으며, 둘레가 798보이다. 안에 샘이 하나 있는데 큰 가뭄이 들면 간혹 마르기도 한다. 또 군창 5칸이 있다.”라고 하였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정양산성은 석축으로 둘레가 2,314척[700m]이며 높이가 19척[5.7m]이다.”라고 하였다. 이외에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등 여러 문헌에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었다. 「고적조」에 따르면 16세기 중반 이전에 이미 폐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영월 정양산성은 2003년 6월 2일 사적 제446호로 지정되었으나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위치]

영월 정양산성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 산1-1번지에 있다. 영월 읍내 동쪽 편에 있는 계족산(鷄足山)[정양산, 889.6m]의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지맥에 축조된 석축성이다. 서북쪽에 남한강 지류인 동강서강이 각각 흘러 영월읍 남동쪽에서 합류하여 남한강 본류를 형성하여 흐르고 있다. 지리적으로 요충에 자리 잡고 있어서, 산성에서 남쪽 밑을 바라보면 남한강의 흐름이 한눈에 파악되고, 영월로 진입하는 모든 교통로를 조망할 수 있는 지점이다.

[변천]

영월 정양산성은 고려 시대에 확장하여 외성을 축조하였고, 대체로 조선 전기까지 사용하였다.

[형태]

영월 정양산성의 성벽은 내성 1,060m, 외성 570m로, 총 둘레가 1,630m에 이른다. 내성 남벽 서쪽의 일부 구간과 외성의 일부 구간은 자연적인 험준한 지세를 이용하여, 실제로 축조한 성벽은 1,360m 정도이다.

전체적인 평면 형태는 마치 삼태기 모습 같아 부정형의 삼각형에 가깝다. 성벽은 내탁, 혹은 내외협축으로 축조되었으며, 납작하고 반듯한 점판암 석재를 적당히 치석하여 장방형으로 매우 정교하게 쌓았다. 동쪽에서 북문지로 연결되는 성벽은 가장 보존 상태가 양호한 곳으로 구간에 따라 높이 10~12m 정도 되는 곳도 있다. 부분적으로 무너진 곳이 있지만 전체적인 성벽의 잔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대부분의 성벽은 처음에 축조한 그대로이며 상단 부분에 부분적으로 후대에 개수한 흔적이 발견된다. 특히 북문지 남쪽 일대의 성벽에는 여장이 남아 있는데, 축조 상태가 다른 성벽과는 명백히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아 후대에 다시 쌓은 것으로 보인다. 여장의 형태는 원주 영원산성이나 인제 한계산성과 마찬가지로 타(垜)의 구분이 없는 평여장(平女墻)으로 되어 있다.

산성의 남서쪽 저지대 일대에는 비교적 넓은 평지가 형성되어 있고 일대에서 기와편과 토기, 도기편이 다량으로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성내 주요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우물지가 있으며 앞쪽에는 연못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지는 북·서·남문지 3곳이 모두 잘 남아 있는데, 최근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현문(懸門)[다락문] 형식의 문터로 확인되었다.

발굴 조사를 통하여 입수구 시설, 저수시설, 주거지, 건물지, 내성과 외성의 성벽, 곡성, 여장, 용도, 성문 등의 구조와 형식이 확인되었으며, 삼국 시대 및 고려 시대의 토기편 및 기와편을 비롯한 철제품 등의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현황]

영월 정양산성은 1995년 간략한 지표조사가 이루어졌고, 2000년 정밀 지표조사가 진행되면서 산성의 기본적인 현황과 성격 등이 부분적으로 밝혀졌다. 이후 2004년 문화유적분포지도 제작의 일환으로 간단한 기초조사가 진행되었으며, 2010년부터 산성의 체계적인 복원과 보존을 위한 종합 정비 계획에 따른 발굴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2018년까지 총 9차례의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발굴 조사 결과, 삼국 시대에 만들어진 집수시설 및 배수 시설,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으며, 통일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집수정이 확인되었다. 또한 3곳의 현문 형식의 문터가 확인되었고, 성벽이 꺾이는 곳에서는 성벽 바깥으로 돌출된 치성(雉城) 혹은 곡성(曲城)을 시설한 흔적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하여 성벽, 곡성, 문지, 수구, 저수시설, 건물지, 각종 유물 등의 구체적인 자료가 다수 확보되면서 산성의 축조 및 운영 시기뿐 아니라 구조 및 성격 등이 대부분 파악되었다.

[의의와 평가]

영월 정양산성남한강 수계의 고대 교통로 및 요충지에 축조된 단양 온달산성을 비롯하여 고대 신라 산성인 보은 삼년산성, 문경 고모산성 등과 같이 전형적인 신라 산성의 축조 기법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성내에서 신라 토기가 다수 출토되고 있다. 또한 삼국 시대 5~6세기경 신라의 남한강 진출과 북진을 진행한 역사적 정황과 맞물려 군사적 전략 기지와 교통로의 주거점성으로 축조되어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영월 정양산성은 삼국 시대 영월 지역의 군사적 중요성을 보여 주는 중요한 관방 유적이다. 또한 중세나 근세에 와서 산성을 확장하고 보완하여 사용한 사례를 잘 보여 주고 있는 점에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큰 성곽 유적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