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527
한자 先史
영어공식명칭 Prehistor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강원도 영월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방기철

[정의]

강원도 영월군에서 문자로 남긴 역사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의 역사.

[개설]

선사 시대는 역사를 문자로 기록하기 이전 시대를 가리킨다. 한국사에서 선사 시대는 구석기·중석기·신석기의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전기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시기는 약 70만 년 전부터 시작하여 기원전·후까지를 의미한다. 선사 시대에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던 만큼, 선사 시대 연구는 유적과 유물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강원도 영월군의 경우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초기 유적과 유물이 존재하는 만큼 선사 시대부터 인간의 삶이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석기시대]

석기 시대는 뗀석기[打製石器]를 주로 활용하였던 구석기 시대와 간석기[磨製石器]가 주도구였던 신석기 시대로 구분된다. 영월군은 1989년 후탄리(後灘里)옹정리(瓮亭里)에서 찍개[chopper]와 긁개[scraper] 등이 처음 발견된 이후 총 11곳의 구석기 유적이 확인되었다. 구석기 유적을 통하여 영월 지역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동굴·구릉지·바위그늘[岩陰] 등을 주거지로 활용하고, 수렵을 생계유지의 수단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 각동리에서 간돌칼[磨製石劍]과 간돌화살촉[磨製石鏃]이 수습되어 영월 지역에 신석기 시대가 존재하였음이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10여 곳의 신석기 유적이 확인되었다. 신석기 유적에서 발견된 가락바퀴[紡錘車]를 통하여 당시 사람들이 실로 옷을 만들어 입었고 낚싯바늘[釣針]과 그물추[漁網錐] 등을 통하여 수렵뿐 아니라 어로도 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방절리 유적은 구석기 중기부터 후기 유적이며, 꽃병굴 유적은 신석기 중기부터 후기 유적이다. 연당 피난굴[쌍굴] 유적은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에 주거지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유적을 통하여 영월 지역의 역사는 석기 시대부터 지속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청동기시대]

청동을 이용하여 연모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가 청동기 시대인데, 기원전 2000년경부터 1500년경 본격화되었다. 영월에 청동기 시대가 존재하였음이 처음 알려진 것은 1916년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가 영월읍에서 요석(凹石)을 채집하면서부터이다. 2019년 영월군에 존재하는 청동기 시대 유적은 20여 곳에 이르며, 강안의 충적대지상에 분포하는 유적, 동굴유적, 하안단구(河岸段丘)에 형성된 유적 등으로 구분된다. 유적의 성격은 동굴이나 수혈주거지 등의 취락유적, 고인돌[支石墓]과 돌덧널무덤[石槨墓] 등의 무덤유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 영월의 청동기 유적에서 주목되는 것이 고인돌이다. 고인돌의 분포를 통하여 남면들골, 영월읍방절리, 영흥리, 김삿갓면외룡리 등에 상당한 세력을 가진 권력자가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철기시대]

인간이 철을 도구로 사용한 시기가 철기 시대인데, 한국사에서는 철기가 사용되기 시작한 때부터 300년까지에 해당한다. 철기 시대는 다시 청동기 시대 후기와 겹치는 기원전 3000년부터 기원전·후까지를 초기 철기 시대, 서기 300년까지를 원삼국 시대로 구분하기도 한다. 1989년 영월군 영월읍 방절리에서 경질무문토기(硬質無文土器) 조각이 채집되면서 철기 시대 유적의 존재 가능성이 처음 제기되었다. 1990년대 이후 발굴 조사를 통하여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 등 20여 곳에 이르는 철기 시대 유적들이 확인되었다. 영월에 존재하는 철기 시대 유적은 원삼국 시대 유적이 많으며, 또 대부분 생활 유적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구석기 시대부터 철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선사 시대 영월은 인간의 삶에 중요한 생활 터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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