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887
한자 李海日
영어공식명칭 Lee Haeil
이칭/별칭 이해일(李海逸),고목해일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신진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2년 2월 11일연표보기 - 이해일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이해일 창수면 3.1독립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59년 8월 28일연표보기 - 이해일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2년연표보기 - 이해일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이해일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창수면 3.1독립운동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수암동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 226 지도보기
활동지 창수주재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3길 20-3 지도보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이해일(李海日)[1892~1959]의 본적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수암동, 출생지는 영덕군 동면 고실동이며, 주소는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이다. 이명은 이해일(李海逸), 창씨개명한 이름은 고목해일(古木海日)이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9일 오후 4시 무렵 창수주재소 부근에서 이수각(李壽珏)·이현설(李鉉卨)·이종구(李鍾龜) 등의 주도로 약 200명의 군중이 참여한 가운데 창수면 3.1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이해일은 당시 방가동 구장이었던 이수각과 그의 둘째 아들 이학술(李學述), 그리고 김금석(金錦石)의 권유를 받고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군중은 만세를 고창한 후 창수주재소를 공격하였는데, 이해일도 가담하여 주재소를 파괴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에 체포된 이해일은 4월 10일 대구지검 경주지청에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으며,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주거침입, 건조물 손괴, 문서 훼기,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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