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867
한자 安商植
영어공식명칭 An Sangsik
이칭/별칭 은서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5년 6월 11일연표보기 - 안상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안상식 영해면 3.1독립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39년 3월 16일연표보기 - 안상식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2년연표보기 - 안상식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안상식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영해면 3.1독립운동
출생지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원황리 지도보기
활동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원황동 구장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안상식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은서(殷瑞)이다. 1865년 6월 11일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원황리로 이거하였다.

[활동 사항]

안상식은 일찍이 한학을 공부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는 구국운동의 방책을 모색하고 독립사상 고취에 전념하였다. 이후 원황동[원황리] 동민들의 간청으로 구장(區長)을 맡았다. 그러던 중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확산되었다.

1919년 영덕 지역의 3.1운동은 서울에서 만세시위운동을 목격하고 돌아온 지품면 낙평리 예수교 장로교회 조사 김세영(金世榮)과 구세군(救世軍) 참위(參尉) 권태원(權泰源), 병곡면 송천리 예수교 장로교회 조사 정규하(丁奎河)를 비롯해 남여명(南汝明)·남효직(南孝直)·권상호(權相鎬) 등 기독교 교인들에 의해 계획되었다. 김세영 등은 3월 18일 영해면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영덕 지역의 토착 향반(鄕班)과 농민들을 규합하였다. 당시 구장을 맡고 있던 안상식정규하의 계획에 찬동하여, 주민들을 설득해 나갔다.

3월 18일 오후 1시경 안상식은 원황동 주민들과 함께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 장터에 집결하였다. 성내리 장터에서 안상식 등은 시위군중 3,000여 명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였다. 아울러 시위대는 영해주재소를 필두로 영해주재소·영해공립보통학교·영해면사무소·영해우편소를 공격해 건물과 집기, 그리고 각종 서류를 파괴하였다. 만세시위운동은 3월 19일에도 이어졌다. 그러나 오후 5시경 대구(大邱)에 주둔 중이던 일본군 보병 80연대로부터 장교 이하 17명이 파견되었다. 대구에서 파견된 일본군들은 헌병들과 합세하여 무차별 사격을 가함으로써,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그 뒤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어 안상식도 체포되었다.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공소하였다.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으로 감형되었다.

[상훈과 추모]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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