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834
한자 羅在星
영어공식명칭 Na Jaeseong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진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7년 1월 26일연표보기 - 나재성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나재성 창수면 3.1독립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61년 11월 12일연표보기 - 나재성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나재성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나재성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창수면 3.1독립운동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 지도보기
활동지 창수경찰관주재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나재성(羅在星)은 1887년 1월 26일에 태어났으며, 거주지는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이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8일 오후 1시경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동 시장에서 정규하(丁奎河)·권상호(權相鎬)·박의락(朴義洛) 등의 주도로 영해면 3.1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영해면 만세운동 소식을 들은 창수면의 주민들도 3월 19일 영해면 3.1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영해로 향하였다. 그런 가운데 영해로 향하던 창수면 오촌동·삼계동·갈상동·신리동 주민들이 신기동에 이르렀을 때, 이미 신기동 주민들은 영해로 향한 후였다. 시간이 늦어 제때 다다르기 힘들 것이라 판단한 군중들은 창수동에서 만세운동을 하기로 결의하였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창수동의 방가동 구장 이수각(李壽珏) 등이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나재성은 박재복의 권유를 받고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3월 19일 오후 4시경 창수경찰관주재소 부근에 약 200명의 군중들이 결집함으로써, 창수면 3.1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군중들은 각자 몽둥이를 휴대한 채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주재소로 향하였다. 김재수(金在守)·권덕명(權德明) 등이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선창한 뒤 주재소를 파괴하라며 소리쳤다. 나재성은 같은 동리 출신의 맹학근(孟學根)·김상준(金尙俊)·김화원(金華元)·나성운(羅星雲)·남출이(南出伊) 등과 함께 주재소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군중들이 주재소에 들어가 일경들의 대검을 탈취하려고 하자, 순사와 순사보들이 도주하였다. 그러자 이현설·이수각 등의 지휘 하에 군중들은 주재소 건물·창·벽 등을 파괴하고 서류·장부·공문서·서적 등을 찢거나 의자·기물 등을 사무실 밖으로 내던졌다. 나재성맹학근·김화원·남출이·김도치(金道致) 등과 함께 주재소에 들어가 서류·장부·공문서 등을 찢어버리고 파기하였다.

창수면 3.1독립운동 이후 나재성을 비롯한 참여자들이 일경에 의해 체포되었다. 나재성은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 방해, 건조물 손괴, 기물 손괴, 공문서 훼기, 상해 및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일제의 판결에 공소를 제기하여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 부분취소에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칙령 제120호로 감형되어 6월 31일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6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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