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810
한자 金季圭
영어공식명칭 Kim Gyegyu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진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7년 11월 10일연표보기 - 김계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김계규 창수면 3.1독립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60년 12월 23일연표보기 - 김계규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2년연표보기 - 김계규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김계규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창수면 3.1독립운동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갈상리
활동지 창수경찰관주재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김계규(金季圭) 는 1897년 11월 10일에 태어났으며, 거주지는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갈상동이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8일 일어난 영해면 3.1독립운동을 시작으로 영덕군 전역에 3.1운동이 확산되었다. 그런 가운데 창수면 3.1독립운동은 3월 19일 일어났다. 창수면 만세운동에 앞서 영양의 이종구(李鍾龜)가 이끄는 오촌동·삼계동 주민, 신리동 및 갈상동 주민들이 영해면 3.1독립운동에 가담하기 위해 이동하다가 신기동에 이르렀다. 김계규(金季圭)[1897~1960]는 당시 이현우(李鉉佑) 등에게 권유를 받았었다. 신기동에 모인 군중들은 시간상 영해에 가기 어려우니, 창수동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협의하였다.

3월 19일 오후 4시경 약 200명의 군중들이 각자 몽둥이를 휴대하기도 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창수경찰관주재소로 향하면서 창수면 3.1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창수동 구장 김재수(金在守)와 신리동 권덕명(權德明) 등이 큰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재소를 파괴하라고 독려하였다. 이에 김계규는 주재소에서 김중규·김응상 등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군중들이 주재소를 공격하고 사무실로 들어가 일경들의 대검을 탈취하려고 하자, 일경들이 황급히 도주하였다. 그러자 이현우·이현설·권재형·박재복 등이 주재소로 진입하였고, 이수각·이현설 등의 지휘 하에 다른 군중들도 주재소 안으로 들어왔다. 김계규를 비롯한 군중들은 주재소 건물과 집기 및 서류 등을 파기하였다.

창수면 3.1독립운동이 끝난 후 일경의 검거가 시작되었다. 김계규도 체포되어 4월 5일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에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 방해, 건조물 손괴, 기물 손괴, 공문서 훼기, 상해 및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상훈과 추모]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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