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783
한자 申東松
영어공식명칭 Shin Dongsong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0년 3월 26일연표보기 - 신동송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신동송 영해면 3.1독립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신동송 병곡면 3.1독립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연표보기 - 신동송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0년연표보기 - 신동송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1년연표보기 - 신동송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영해면 3.1독립운동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병곡면 3.1독립운동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원황리 886 지도보기
활동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신동송(申東松)[1870~1919]은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원황리 886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1919년 영덕 지역의 3.1운동은 서울에서 만세시위운동을 목격하고 돌아온 지품면 낙평리 예수교 장로교회 조사 김세영(金世榮)과 구세군(救世軍) 참위(參尉) 권태원(權泰源), 병곡면 송천리 예수교 장로교회 조사 정규하(丁奎河)를 비롯해 남여명(南汝明)·남효직(南孝直)·권상호(權相鎬) 등 기독교 교인들에 의해 계획되었다. 김세영, 권태원 등은 3월 18일 영해면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영덕지역의 토착 향반(鄕班)과 농민들을 규합하였다. 신동송도 만세시위 계획에 적극적으로 찬동하였다.

3월 18일 오후 1시경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 장터에서 영해면 3.1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신동송은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2,000여 명의 군중을 선도하였다. 그리고 시위군중과 영해주재소·영해공립보통학교·영해면사무소·영해우편소 등을 공격하여 건물과 집기 등을 파괴하였다.

오후 2시경 신동송을 필두로 한 시위군중 200여 명은 병곡면으로 이동하여 만세시위운동을 이어 나갔다. 시위군중은 역시 병곡주재소·병곡면사무소 등을 공격하여 건물을 파괴하였다. 그러나 평해(平海)에서 증원된 일본 헌병 3명과 주재소 순사가 합세하여 총을 겨누며 위협하자, 희생을 염려한 정규하의 설득에 따라 오후 7시경 해산하였다.

3월 19일 영해를 비롯해 병곡·창수·영덕·지품·남정면 일원에서 만세시위운동이 지속되었다. 오후 5시경 대구 주둔 일본군 보병 60연대로부터 장교 이하 17명의 군대가 증원되어 헌병과 함께 무차별 사격을 가함으로써 시위 군중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신동송은 1919년 3월 19일 성내리 장터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이어 나가다 일본 경찰이 발포한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6년 대통령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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