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622
한자 白受廉
영어공식명칭 Baek Suryeom
이칭/별칭 사겸(士謙),모정(茅亭)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몰년 시기/일시 1622년연표보기 - 백수렴 사망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가산리 불모동 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본관 대흥(大興)
대표 관직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개설]

백수렴(白受廉)[?~1622]은 가학(家學)을 통해 학문을 익혔지만 수령과 함께 학제를 논의할 만큼 학식이 뛰어났던 인물이다.

[가계]

백수렴의 본관은 대흥(大興), 자는 사겸(士謙), 호는 모정(茅亭)이다. 대호군 백승의 6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백계근(白繼根)이며, 할아버지는 기자전 참봉 백형(白珩), 아버지는 헌릉참봉 백문보(白文輔)[1303~1374]이며, 어머니는 충순위 권희언(權希彦)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부인은 인의(引儀) 김호(金浩)의 딸 수안김씨(遂安金氏)이다. 아들은 두암(杜庵) 백득인(白得仁)이며, 손자는 성암(省庵) 백표(白彪)이다. 아들 백구인(白求仁)은 신천훈도(信川訓導)를 지냈다.

[활동 사항]

백수렴은 가학을 계승하였으며, 지역에서 학문으로 명망이 있었다. 이에 영해도호부사 정세필(鄭世弼), 김언기(金彦璣)와 함께 학제(學制)를 마련하여 향내 선비들을 이끌었다. 또한 향촌의 선비들과 모정(茅亭)을 건립하였으며, 이때 시를 주고받은 『사우수창록(師友酬唱錄)』을 남겼다고 한다.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제수(除授)되었다.

[묘소]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가산(佳山) 뒷 계곡 불모동(佛母洞) 선영(先塋)에 묘소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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