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득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616
한자 申得淸
영어공식명칭 Shin Deukcheong
이칭/별칭 신중청(申仲淸),평산부원군(平山府院君)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배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332년연표보기 - 신득청 출생
활동 시기/일시 1358년 - 신득청 과거 급제
몰년 시기/일시 1392년연표보기 - 신득청 사망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평산
대표 관직 이부상서

[정의]

고려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개설]

신득청(申得淸)[1332~1392]은 공민왕 때 과거에 합격한 문신으로 「역대전리가(歷代轉理歌)」를 지었다.

[가계]

신득청의 본관은 평산(平山), 본명은 신중청(申仲淸)이다.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화해사전(華海師全)』의 주인공 불훤재(不暄齋) 신현(申賢), 아버지는 정몽주(鄭夢周) 등이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천거한 바 있는 신용희(申用羲)이다.

[활동 사항]

신득청이 27세 되던 1358년(공민왕 7)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공민왕은 신득청을 얻어 조정이 맑아졌다는 의미로 이름을 득청(得淸)으로 고쳐 불렀다. 과거에 급제 후 장령(掌令)을 시작으로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으며, 신돈(辛旽)이 참살당한 1371년(공민왕 20) 「역대전리가(歷代轉理歌)」를 지어 왕에게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퇴거하였다.

1378년(우왕 4) 이부상서대광첨의판문하부당상판사(吏部尙書大匡僉議判門下府堂上判事) 평산부원군(平山府院君)에 피봉되었다. 이때도 「역대전리가」를 불렀으나 왕이 받아들이지 않자 영해로 물러났다.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통곡하면서 동해에 투신하여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신득청이 지은 「역대전리가」는 군주가 듣고 스스로를 경계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가사이다. 걸주(桀紂)의 정치적 횡포, 진시황의 우매함, 한무제의 구선(求仙), 명제(明帝)의 사불(事佛), 진대의 청담, 오호(五胡)의 소란 등을 소재로 삼고 있다.

[상훈과 추모]

이색(李穡)은 봉정산 아래 신득청의 집을 봉정재(鳳停齋)라 명명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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