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구리 대흥백씨 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574
한자 元邱里大興白氏集姓村
영어공식명칭 Single-Clan Village of Daehung-Baek Clan in Wongu-ri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1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가구수 22가구[2014년 기준]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 있는 대흥 백씨 집성촌.

[개설]

대흥백씨는 충청남도 예산군을 관향으로 하고, 백문보(白文寶)를 득관조로 하는 성씨이다. 원구리 대흥백씨는 1556년 경에 백인국(白仁國)[1530~1613]이 창수면 인량리에서 원구마을로 입촌한 이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많은 인물을 배출하여 영양남씨, 무안박씨와 더불어 세 성씨가 나란히 정립하는 집성촌을 이루었다.

[마을입지]

영해면 소재지에서 영양 방면으로 통하는 지방도 제918호선의 2㎞ 지점에 있는 마을이다. 울티재에서 발원하여 송천강의 주류를 이루는 서천과 대동에서 발원하여 마을 앞을 돌아 송천강으로 합류하는 남천 사이의 삼각 지점에 중구봉을 등지고 자리 잡고 있다. 두 하천 주변에 펼쳐진 넓고 비옥한 농경지들이 주민들의 생활 터전이 되고 있다.

[명칭 유래]

원구(元邱)는 원래 으뜸 거북이란 뜻으로 원구(元龜), 둔덕진 곳에 있는 들이라 해서 원두들, 으뜸 언덕이란 뜻으로 원고(元皐, 元鼓), 넓은 들이라는 뜻으로 원파(元坡) 등으로 불렸다. 1895년 관제 개편 때 영해군 묘곡면 원구동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영덕군 영해면에 편입되었다.

[형성 및 변천]

이 마을은 조선 중기 이후 무안박씨, 영양남씨, 대흥백씨가 나란히 세거하는 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흥백씨로 이 마을에 처음 입촌한 인물은 영덕군 입향조 백문보의 8세손인 백인국이다. 1556년 경에 창수면 인량리에서 원구로 입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인국은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어받아 영해 지역에 성리학을 펼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로 유일재 김언기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6읍 교수를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을 맞아 의병을 규합하여 축산포에서 적을 격파하는 한편 외아들 백민수를 곽재우 장군 휘하에 보내 참전케 하였다. 백민수는 이 공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3등에 올라 내자시 직장(內資寺直長)을 제수받았다. 후손들이 원구리에 세거하여 영양남씨, 무안박씨와 더불어 삼성 정립(三姓鼎立)의 집성촌을 이루었다

[현황]

원구리에는 조선 중기 이후 500년 가까이 세 종족이 나란히 세거하고 있는 전통이 근세에까지 이어져 1930년에도 대흥백씨 31호, 무안박씨 45호, 영양남씨 40호, 기타 타성 35호로 세 종족이 공존하고 있다. 2014년 5월 기준 총 97호 중 대흥백씨 22호, 무안박씨 22호, 영양남씨 23호, 기타 성씨 30호로 나타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