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564
한자 石里金海金氏集姓村
영어공식명칭 Single-Clan Village of Gimhae-Kim Clan in Seok-ri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석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가구수 45가구[1992년 기준]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석리에 있는 김해 김씨 집성촌.

[개설]

김해김씨는 경상남도 김해시를 관향, 가락국의 개조인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석리 김해김씨의 입향조는 김학희(金鶴凞)[1691~1764]이다. 김학희는 18세기 초 김자점 모반사건의 연루를 피하기 위해 파주 교하로부터 영덕읍 석리로 이거하여 정착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세거하여 김해김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마을입지]

석리 김해김씨 집성촌강구항에서 축산항에 이르는 영덕대게로 가에 자리한 마을이다. 영덕읍에서 약 12㎞, 강구항에서 약 17㎞ 거리에 있다. 동쪽은 동해바다이고, 서쪽은 높은 산등성이가 바다에 바짝 붙어서 남북으로 뻗어내려 해안의 경사가 심하다. 남쪽은 영덕읍 노물리와 접하고, 북쪽은 축산면 경정3리와 접하고 있다. 마을에 돌이 많아 돌미역의 특산지이다. 경정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 쪽에 골재를 채취하는 석산이 있다.

[명칭 유래]

마을의 서편 내륙 쪽은 돌이 많다고 하여 돌면(乭面)이라 불렀고, 바다 쪽 경사진 마을은 바닷물이 가깝다고 하여 예진(芮津)이라 불렀다. 『경상도속찬지리지』[1469]에는 석면포(石面浦)로 기록되어 있고, 『호구총수』[1789]에는 돌면과 예진육리, 해리로 나눠져 있다. 조선 말에 영덕군 동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예진리와 돌면리를 합하여 오보면 석동이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오보면이 폐지되면서 영덕면에 속하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17세기에 순흥안씨가 피란 와서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하며, 18세기에 김해김씨와 김녕김씨가 차례로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마을을 '안씨터전에 김씨골매기'라 부른다. 석리에 세거하는 김해김씨는 가락국 김수로왕과 신라 김유신의 후예로 고려 때 삼중대광 김녕군 김목경(金牧卿)을 중조로 하고, 횡성현감을 지낸 김영서(金永瑞)를 파조로 한다. 김해김씨 석리 입촌조 김학희는 파조 김영서의 9세손으로 1700년대 초 파주 교하에서 석동으로 이거하였다. 효종 때 김자점의 모반사건 연루를 피하기 위해 맏집은 영덕 석리로, 둘째 집은 영천 임고로, 셋째 집은 축산면 염장으로, 사촌은 남정면 도천으로 각각 피신했다고 한다.

[현황]

『영덕군 향토사』[1992]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총 78가구 중 김해김씨가 45가구로 과반을 점하고 있으며, 그 외 파평윤씨 8가구, 월성이씨 8가구, 전주이씨 7가구, 기타 성씨 10가구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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