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도서』 「안동진관 영덕현·영해도호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545
한자 輿地圖書安東鎭管盈德縣寧海都護府
영어공식명칭 『Yeojidoseo』 「Andong Jingwan Yeongdeok-hyun·Yeonghae-dohobu」
이칭/별칭 「안동진관 영덕현」,「안동진관 영해도호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재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760년연표보기 - 『여지도서』 「안동진관 영덕현·영해도호부」 편찬
간행 시기/일시 1973년 - 국사편찬위원회 『여지도서』 영인본 간행
간행 시기/일시 2009년 - 전주대학교 『국역 여지도서』 간행
소장처 한국교회사연구소 - 서울특별시 중구 삼일대로 330[저동1가 2-3]
성격 읍지
편자 영덕현|영해도호부
권책 「안동진관 영덕현」 8장|「안동진관 영해도호부」 13장
행자 20행×20자
규격 31㎝[세로]|20.5㎝[가로]
어미 무어미(無魚尾)
권수제 안동진관 영덕현(安東鎭管盈德縣)|안동진관 영해도호부(安東鎭管寧海都護府)

[정의]

1760년 편찬된 영덕현영해도호부의 읍지.

[개설]

1760년(영조 36)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수록되어 있다. 총 55책에 이르는 『여지도서』는 총 313개 지지[읍지 295개, 영지(營誌) 17개, 진지(鎭誌) 1개]로 구성된 전국 읍지이다. 『여지도서』는 현재 한국교회사연구소에 소장되어 있으며, 1973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영인하였고, 2009년 전주대학교에서 번역본을 출판하였다.

[저자]

홍문관 범례에 따라 영덕현령과 영해도호부사가 각각 편찬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홍문관에서 하달한 규정에 따라 영덕현영해도호부에서 각각 편찬하였다. 당초 홍문관에서 하달한 규정에는 35개 항목을 수록하도록 했으나, 경상도에서는 5개 항목을 추가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모든 항목을 반영하였다. 이때 경상도 각 고을은 중앙에 올려 보낼 3권[어람·홍문관·성균관], 감영에 비치할 2권을 만들어 감영에 바쳤다. 홍문관에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수록 순서에 따라 수집한 읍지를 일률적으로 재단하고 장정하여 『여지도서』로 엮었다.

[형태/서지]

권수제는 ‘안동진관 영덕현(安東鎭管盈德縣)’과 ‘안동진관 영해도호부(安東鎭管寧海都護府)’이며, 분량은 각각 8장과 13장, 규격은 세로 31㎝, 가로 20.5㎝이다. 첫 장은 회화식 채색지도 2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문은 인찰공책지에 장당 20행 20자로 정서하였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여지도서』 권차로는 영덕현은 권39-7, 영해부는 권43-3에 각각 수록되어 있다.

[구성/내용]

「안동진관 영덕현」의 항목은 36개로, 지도, 강역, 방리[호구 포함], 도로, 건치연혁, 군명, 형승, 성지, 관직, 산천, 성씨, 풍속, 궁실, 학교, 단묘, 공해, 제언, 창고, 물산, 역원, 목장, 관애, 봉수, 누정, 사찰, 고적, 명환, 인물, 제영, 한전, 수전, 진공, 조적, 전세, 대동, 균세, 봉름, 군병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동진관 영해도호부」도 36개 항목을 수록하였다. 「안동진관 영덕현」과 비교해 궁실 편이 없으나, 교량(橋梁) 편이 추가되어 있다. 교량 편에는 소혼교·열녀교·남문교를 실어 놓았다.

두 고을 모두 수록할 내용이 없는 능침·총묘·진보는 싣지 않았다. 원래 홍문관에서 제외하도록 한 학교·명환·제영·궁실·총묘는 『여지도서』 경상도 편에 추가된 항목이다. 권두의 방리·도로와 한전부터 군병까지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없는 신설항목이다.

인구를 살펴보면 영덕은 현령이 파견되는 곳이지만 도호부사가 파견된 영해도호부보다 많다. 영덕현의 경우 6개면에 1759년 가구는 3,199호로, 인구가 11,037명이지만, 영해도호부는 7개 면에 가구는 2,355호로, 인구가 8,021명으로 나타난다. 명환 편은 영덕현에 정자(鄭磁)와 주박(周博), 영해도호부에 이수준(李壽俊)·정경세(鄭經世)·노경임(盧景任)을 신증해 놓았다. 특히 영해도호부 인물 편에는 박종문·정담·박의장·박홍장·박선·권경·이휘일·이숭일 등 다수를 신증하였다.

[의의와 평가]

1760년 영덕현영해도호부에서 편찬한 관찬읍지(官撰邑誌)이며, 당시 조선 정부가 파악하고자 했던 두 고을의 정보가 상세하게 담겨져 있다. 두 고을의 인문 환경은 물론, 당시 조세와 군역의 규모도 확인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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