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476
한자 鄭湛旌閭碑
영어공식명칭 Commemorative Stele of Jeong Dam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170-1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창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90년연표보기 - 정담정려비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72년 - 정담정려비 이건
이전 시기/일시 2002년 11월 - 정담정려비 이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548년 - 정담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592년 - 정담 사망
문화재 지정 일시 1999년 12월 30일연표보기 - 정담정려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80호로 지정
현 소재지 정담정려비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170-12 지도보기
원소재지 정담정려비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마을 앞
원소재지 정담정려비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225-1
성격 정려비
관련 인물 정담
재질 사암[비신]|사암[비수]|화강암[비석받침]
크기(높이, 너비, 두께) 비석받침: 9㎝[높이]|70㎝[너비]|60㎝[두께]|비신: 101㎝[높이]|52㎝[너비]|12㎝[두께]|비수: 49㎝[높이]|70㎝[너비]|16.5m[두께]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80호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비.

[개설]

정담(鄭湛)[1548~1592]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정담의 본관은 야성(野城), 자는 언결(彦潔), 호는 일헌(逸軒), 시호는 장렬(壯烈)이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한 뒤, 경원판관(慶源判官)·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도사(都事)·청주목사(淸州牧使)·김제군수(金堤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호남 방위의 중책을 맡고 웅치(熊峙)를 방어하다 순국하였다.

[건립 경위]

임진왜란 때 웅치전투에서 순국한 정담을 기리기 위해 1690년(숙종 16) 건립하였다. 최초의 정려는 목비(木碑)로 제작되었고 마을 앞에 자리하였다. 1782년(정조 5) 마을 앞 길가에 비각을 중건하고 석비로 다시 고쳐 세웠다. 1972년 인량리 225-1번지로 이건하였는데, 1975년 농지정리를 하면서 비각 앞의 도로를 비각 뒤 담장 밑으로 옮기게 되자 2002년 11월에 현재의 자리로 이건하였다.

[위치]

창수면 인량리 전통마을에는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된 갈암종택이 있다. 이 갈암종택 동남쪽 약 150m 지점의 도로변에 비각이 있는데, 이곳에 정려비가 자리하고 있다.

[형태]

비는 비신과 비수, 비석받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비신과 비수의 재질은 사암, 비석받침의 재질은 화강암이다. 비수는 연잎의 형태로 윗면에 보주가 올려져 있고, 앞면과 뒷면에 연잎의 잎맥을 양각하였다. 양 측면은 잎이 둥글게 말린 형태이다. 비신의 글자 안에는 붉은색 안료가 메워져 있다. 비는 하단 일부가 매몰된 3단의 비석받침, 비신, 하엽형(荷葉形)의 비수로 구성되어 있으며, 비신과 비수는 한 돌로 제작되었다. 크기는 비석받침이 높이 9㎝, 너비 70㎝, 두께 60㎝, 비신이 높이 101㎝, 너비 52㎝, 두께 12㎝, 비수가 높이 49㎝, 너비 70㎝, 두께 16.5㎝이다.

[금석문]

비는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비문은 전면에 비제(碑題)만 새겨져 있다. 비신의 전면 우측에는 ‘유명 조선국 충신 증 가선대부 병조참(有明朝鮮國忠臣 贈嘉善大夫兵曺參)’이, 좌측에는 ‘판행통훈대부 김제군수 정담지려(判行通訓大夫金堤郡守鄭湛之閭)’가 새겨져 있으며, 다른 3면에는 글자가 없다.

[현황]

1999년 12월 30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하였다.

[의의와 평가]

정담정려비는 정담의 생애와 임진왜란 때의 활약상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교육장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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