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414
한자 慕古齋
영어공식명칭 Mogoja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팔각산로 1659-6[용평리 70]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순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20년연표보기 - 모고재 건립
이전 시기/일시 1670년 - 모고재 이건
문화재 지정 일시 1989년 5월 29일연표보기 - 모고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1호로 지정
현 소재지 모고재 -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팔각산로 1659-6[용평리 70]지도보기
원소재지 모고재 -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용평리
성격 정자
양식 홑처마집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영천이씨 대지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1호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용평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개설]

모고재(慕古齋)는 영천인 이명발(李明發)·이춘발(李春發) 형제를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이명발과 이춘발 형제는 사마시에 입격하여 성균관에서 학업을 쌓고 있었으나, 단종 폐위 소식을 듣자 바로 모고산(慕古山) 입구에 은거하였다.

[위치]

모고재가 있는 용평리는 상자평(床子坪)들 가운데 자리한다. 세종 연간 죽산(竹山)이라는 인물이 마을을 개척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을 앞에 3개의 폭포가 있었는데, 계곡의 물이 맑고 깊어 용(龍)이 물을 먹었다고 하여 용천이라 불렀다고 한다. 전씨터전의 이씨골목이라 전해진다.

[변천]

1520년(중종 20) 이명발과 이춘발의 후손 이학(李鶴)이 선조가 은거한 모고산 입구에 모고재를 건립하여 후학을 양성하고 학문에 전념하며 여생을 보냈다. 세월이 흘러 건물이 퇴락하자 1670년(현종 11) 후손인 이명선(李明善)이 원형 그대로 현재의 자리에 이건하였다.

[형태]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흙으로 다진 기단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정면과 좌우 측면 첫 칸은 민흘림기둥을, 뒤쪽은 네모기둥을 세웠다. 중앙에 방 2칸을 두고 나머지는 우물마루로 이어지며, 대청 정면과 좌우 측면 우물마루에 계자난간을 둘렀다. 기둥 상부는 이익공(二翼工)으로, 가구는 5량가(五樑架) 구조를 하고 있다.

[현황]

1989년 5월 29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하였다.

[의의와 평가]

모고재는 조선 후기 용평리에 세거하는 영천이씨 가문의 향촌 사회활동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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