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111
한자 錦湖里
영어공식명칭 Geumho-ri
이칭/별칭 아릿거무,중간금호,웃거무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금호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 1일연표보기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면 금호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4년 4월 1일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면 금호동에서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금호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 1일연표보기 -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금호동에서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금호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4.60㎢
가구수 340가구
인구[남/여] 629명[남 314명|여 315명]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에 속해 있는 법정리.

[개설]

금호리영덕군 강구면 북동쪽에 자리하며, 행정리는 금호1리·금호2리·금호3리로 되어 있다. 자연 마을은 아릿거무[아릿금호·하금호], 중간금호·큰마을, 웃거무[웃금호·상금호] 등이 있다.

[명칭 유래]

금호리(錦湖里)의 지명 유래는 큰 물가[오십천]가 되므로 거무리[거무·검호(劍湖)·거동(巨洞)·금동(今洞)]이라 부르다가 '금호'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오십천이 한 줄기로 합쳐지기 전에 현 금호리 앞으로 세 갈래의 강줄기가 흘렀는데, 이것을 삼강이라 하였으며, 이 삼강의 물줄기가 호호대(浩浩臺) 앞에서 칼날같이 날카롭게 금호리 앞을 찔러 흐르기 때문에 검호(劒里)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1925년 큰 홍수 시 오십천 유로가 현 남산리 마을 앞으로 변경되면서 칼 검(劍) 자 대신 비단 금(錦) 자를 써서 금호(錦湖)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금호1리금호리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아릿거무[아릿금호·하금호(下錦湖)]라고 불린다. 금호2리는 마을 중심부에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고 해서 금호(錦湖)라고 불렸으며, 3개 마을 중 중간에 자리하여 중간금호(中間錦湖), 제일 큰 마을이라고 해서 큰마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금호3리는 금호리 윗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웃거무[웃금호·상금호(上錦湖)]라고 불리는데, 마을 서쪽 오십천 건너 소월리 들온산[入來山][49.2m]이 마을을 향해 서 있다고 하여 외지에서 이 마을로 들어와 사는 사람이 잘산다는 이야기가 있다.

[형성 및 변천]

금호리는 15세기 초 평산신씨(平山申氏)금호2리·금호3리 마을을 개척하였고, 조선 중종 연간에 울진임씨(蔚珍林氏)가 금호1리 마을에 정착한 뒤 영천이씨(永川李氏)가 입주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盈德縣) 중남면(中南面) 지역으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현을 군(郡)으로 개칭할 때 영덕군에 속하였다. 1914년 3월 1일 일제강점기 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해 전국의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상금동·하금동·둔전·소월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금호동이라 하고 영덕면에 편입되었다. 1934년 4월 1일 강구면이 신설됨에 따라 강구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5월 1일 군조례 제972호로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금호동은 금호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환경]

금호리는 동해로 유입되는 오십천의 좌안에 자리한다. 오십천의 범람으로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어 마을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동쪽은 산지로 고불봉[235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나온 산줄기가 민봉[182.4m], 봉화산[141m]까지 이어지고,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선상지를 형성한다.

[현황]

금호리의 2020년 말 면적은 4.60㎢이고, 2021년 5월 기준 총 340가구에 629명[남 314명, 여 315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금호리 동쪽은 금진리하저리, 서쪽은 오십천을 경계로 원직리영덕읍 남산리, 남쪽은 강구리, 북쪽은 영덕읍 남산리우곡리가 접해 있다. 금호리 북서쪽으로는 강구역에서 영덕역으로 이어지는 철로가 지나가고 영덕군환경사업소가 자리잡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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