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020
한자 文化藝術
영어공식명칭 Culture and Art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정식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문학·음악·미술·영화·사진 등의 예술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나 작품.

[개설]

영덕군 지역은 내륙 문화와 해양 문화가 내재된 다양한 형태의 문화예술이 투영된 곳이다. 농경 문화의 바탕에서 유학의 번창은 경상북도 최초의 영해향교가 건립되면서 발아되었고, 해안 일대에서 널리 행해진 「월월이청청」 등을 통해 발산된 기질은 임진왜란의 의병, 민족해방투쟁, 3.18만세운동 등으로 표출되었다.

[불교 문화]

신라의 불교 공인 이후 영덕군 지역에서도 여러 사찰이 건립되어 사람들의 정신적 평안과 문화적 양식을 형성하는 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전하는 불교 관련 자료는 대개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것으로 대표적인 사찰로 유금사와 범흥사, 옥천사, 경수사, 청련사, 칠성사, 하운사 등을 들 수 있다.

고려시대의 사찰로는 위장사, 장육사, 망곡사가 있으며, 특히 오늘의 영덕군 창수면 가산리 불암골에서 태어나 고려말 불교의 선사로 활약한 나옹화상은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나옹화상(懶翁和尙)[1320~1376]은 어려운 불법(佛法)을 뛰어난 문학적 표현을 사용하여 중생의 제도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로, 그가 읊은 게송은 『나옹집(懶翁集)』에 300여 수가 실려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불교는 정치적 이념에 따라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영덕군 지역의 사찰도 그러한 기조에 벗어나지 않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불교에 대한 억압은 한층 더해졌다. 8.15 광복 이후 지역에서는 조계종을 비롯하여 다양한 종파의 사찰이 건립되기 시작하면서 종교로서의 불교 문화는 기층 문화로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유교 문화]

불교가 일반 백성들의 정신적인 구심점으로 작용하였다면 유교는 일찍부터 국가 통치의 이념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성리학의 도입으로 유학은 학문으로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이념으로 발전하여 그 위치를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영해부에 부임하여 음사(陰事)를 일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역동(易東) 우탁(禹倬)[1263~1342]에 의한 영덕 지역의 유학 보급은 그 분명한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여러 유학자들이 지역에서 학문을 진작시켰으며 철학적인 배양을 넘어 정치제도와 사상, 그리고 민간의 생활방식에 이르기까지 유학적 면모의 확산은 지속되었다.

고려시대 말,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지역의 유학은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영해향교, 영덕향교를 통해 많은 학자와 관리들이 배출되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서는 많은 서원이 창건되어 지역 유학의 본산으로 향촌 사회를 교화하고 수기치인(修己治人)하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문학]

영덕을 대표하는 문학 작품으로 가사 문학을 들 수 있다. 신득청의 「역대전리가(歷代轉理歌)」, 이휘일의 「전가팔곡(田家八曲)」, 김한홍의 「해유가(海遊歌)」, 박문용의 「우국가(憂國歌)」가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영덕 지역에서 수많은 학자와 묵객들이 남긴 다양한 고시문(古詩文)이 문집 등에 남아 있다.

광복과 함께 우리 글과 말로 우리의 사상과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면서 지역의 문학 활동도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문예』지에 최해운의 「유성(流星)」, 『신문학』지에 박윤환의 「매아미에게」가 실리면서 시인들의 등단이 이루어졌고, 지역을 대표하는 시인들이 배출되기 시작하였다. 1955년에는 최해운을 중심으로 지역의 문학 애호인들이 모여 『토벽(土壁)』이라는 동인지를 발간하면서 본격적인 지역 문학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후 영해에서 건전한 문학 풍토 마련을 위해 박윤환, 최복해, 남병규, 권경달, 남용진 등이 주축이 되어 『향림』이라는 동인지가 발간되었다. 1960년에는 ‘꽃조개’라는 문학동인회가 발족되어 향토 시화전, 아동 시화전 등 다채로운 문화 활동을 이어나갔다.

1960년대 후반 지역의 문학 활동은 ‘칠령문학회’가 담당하였다. 칠령문학회는『칠령』이란 문학지로 시작하여 『영덕문학』으로 제호를 바꿔 문학 작품을 꾸준하게 게재하였다.

[음악]

영덕에서 불리던 음악의 연원은 민요로부터 시작된다. 1960년대까지 영덕의 곳곳에서는 민요를 흔히 접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할 때 부르던 노동요이다. 영덕에서 불리던 노동요로는 정자소리[모내기 소리, 이앙가], 삼삼기 노래, 베틀 노래, 배 끌어내는 노래, 노 젓는 소리, 가래 노래, 마개 노래, 논매기 소리, 어새이 소리, 보리타작 소리, 목화 따기 노래, 밭매기 노래 등이 있다. 의식을 거행하면서 부르는 노래로는 지신밟기, 지점소리[도덕가], 섭소리[상여소리], 덜구 소리 등이 있으며,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유희요로는 월월이청청, 꼬리따기 노래, 동애따기, 대문 열기, 방귀 타령, 총각처녀 노래, 물레방아 타령, 노래가락, 창부타령, 추천놀이, 성주풀이 등이 전한다. 어린이들이 부르던 동요로는 임금 놀이, 애기 달래는 노래, 자장가 등이 있으며, 이야기를 노래 형식으로 부르는 서사 민요로 총각처녀 노래, 빨래 노래가 있다.

[문화·예술 단체]

영덕군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단체로는 영덕 한시 부문 단체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1962년 발족한 야성시사(野城詩社), ‘밝고 아름다운 삶을 누리며 향토 문화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지성인의 조직의 요구’에 의해 1968년 조직된 영덕문인협회, 영덕 출신의 미술인들의 모임으로 1985년에 창립한 예맥회 등이 있다. 이밖에도 영덕군 내 33개 문화·예술 단체가 있다.

[문화·예술 시설]

영덕군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시설로는 경상북도립영덕공공도서관, 영덕군민회관, 영덕군민운동장, 영덕문화원, 영덕문화체육센터, 어촌민속전시관, 영덕군청소년야영장, 삼사해상공원 야외공연장, 예주문화예술회관, 신재생에너지전시관, 고래불 국민야영장, 영덕문화예술체험장 등이 있으며 군민들에게 다양한 예술의 향유와 품격 있는 문화 수요에 보탬이 되고 있다.

[문화·예술 행사]

매년 개최되는 문화·예술 행사는 매우 다채롭다. 동해안에서 개최되는 해맞이축제 중 가장 오래된 영덕해맞이축제를 비롯해서 3.18 독립만세 문화제, 군민의 날, 복사꽃큰잔치, 목은문화제, 영덕물가자미축제, 영덕황금은어축제, 영덕대게축제, 영덕문화예술제, 영덕국제로봇필름페어, 영덕썸머뮤직페스티벌 등이 연중 개최되어 다양한 문화·예술의 향연이 이어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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