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017
한자 改新敎
영어공식명칭 Protestantism
이칭/별칭 프로테스탄티즘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신무철

[정의]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서 활동하는, 종교개혁 이후 성립된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설]

영덕지역 개신교는 낙평교회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전파되었다. 김혁동을 설립자로 한 낙평교회가 1901년 지품면 낙평리에 세워진 것으로 보아 개신교 전도는 교회 설립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래]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 동방정교회와 더불어 기독교의 3대 교파이다. 개신교[프로테스탄티즘]란 말이 등장하게 된 것은 독일 종교개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가 개신교라는 번역하는 프로테스탄티즘은 1529년 독일 슈파이어 제국의회에서 통과된 결의(보름스 칙령 재확인)에 대해 루터가 주장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 및 제도, 신앙생활의 개혁을 지지한 독일 제후와 도시들의 항의(Protest)에서 연유한다.

우리나라에 개신교가 전파된 것은 1884년 9월 22일 미국의 북장로교 의료선교사 알렌(Allen, H. N.)에 의해서다. 개신교 선교의 외교적 허가가 외국과의 수호조약에 명기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알렌은 처음에 미국공사관의 공의(公醫) 자격으로 입국하였다. 갑신정변으로 중상을 입은 민영익(閔泳翊)을 서양 의술로 치료하여 민척(閔戚)과 왕실의 신임을 얻게 되어 1885년 4월 광혜원(廣惠院)을 개원하였고, 이를 계기로 선교의 문호가 열리게 되었다. 그 후 북장로교의 선교사인 언더우드(Underwood, H. G.)와 북감리교의 아펜젤러(Appenzeller, H. G.)가 인천에 왔으며, 5월에 북감리교의 스크랜턴(Scranton, W. B.) 모자가 도착하였다.

1892년에는 미국 남장로교의 레이놀드(Reynolds, W. D.)·테이트(Tate, L. B.)·젠킨(Jenkin, W. M.) 등의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전라도 지방을 중심으로 선교하기 시작하였고, 남감리교에서는 윤치호(尹致昊)의 기금이 자극이 되어 1895년 10월에 리드(Reid, C. F.)를 우리나라에 파송하여 개성 지방을 중심으로 선교하기 시작하였다. 성공회는 1891년에, 오스트레일리아 장로교 선교부는 1889년에, 캐나다 장로교는 1893년에, 침례교(浸禮敎)는 1889년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는 1904년에, 성결교(聖潔敎)는 1907년에, 구세군은 1908년에 각각 특징 있는 선교를 전개하면서 확고한 전도의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감리교는 선교 역량을 교육과 부녀사업에 치중하였고, 장로교는 네비우스 방법이라는 토착과 자립 원칙의 선교 정책을 적용하여 서북 지방에서 복음 전파를 중심으로 한 선교를 추진하였다. 구세군은 처음부터 사회봉사와 자선사업에 치중하였고, 침례교는 만주와 시베리아 지방으로 선교 방향을 돌렸다.

[현황]

영덕 지역에서 개신교 전파는 상당히 빠른 시기에 이루어졌다. 김혁동을 설립자로 한 낙평교회가 1901년에 지품면 낙평리에 설립되었다. 이어서 김용규에 의해 영덕읍 화천리화천교회가 1903년에, 강우근에 의해 영덕읍교회가 1908년에 세워지는 등, 1900년대 초부터 점차 개신교가 영덕 지역에서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개신교 전파를 위하여 활동한 인사로는 김영옥, 주재면, 김세영, 김우일, 허도, 강우근, 정규하, 노계식 등이었다. 현재 영덕군 내에는 대한 예수교장로회 통합·합동 측과 성결교, 침례교, 안식교 등의 다수의 교파들이 전도와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대략 70여 개의 교회가 있다.

이외에 구세군의 활동도 이루어지고 있다. 영덕에서 구세군 전래는 1910년 3월 15일 지품면 낙평리의 최봉희가 서울에서 구세군 사령관 일행을 초청하여 사랑채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군내에 19개의 영문(營門)이 있을 정도로 번창하였다가 현재는 6개의 영문만이 남아 복음을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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