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837
한자 南柄九
영어공식명칭 Nam Byeonggu
이칭/별칭 남일동,남훈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8년 3월 4일연표보기 - 남병구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2년 8월 - 남병구 대한통의부 군사위원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26년 - 남병구 한족노동당 중앙집행위원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27년 - 남병구 조선독립자후원회 발기인 참여
추모 시기/일시 2014년연표보기 - 남병구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 지도보기
활동지 중국 만주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대한통의부 군사위원|한족노동당 중앙집행위원|조선독립자후원회 발기인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남병구는 1888년 3월 4일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남일동(南一東)·남훈(南薰) 등을 사용하였다.

[활동 사항]

1922년 8월 봉천성(奉天省) 환인현(桓仁縣) 마권자(馬圈子)에서 열린 남만한족통일회(南滿韓族統一會)에서 대한통의부가 조직되었다. 결성 초기 중앙본부는 마권자에 두었으며, 조직체계는 총장제로 총장 아래에 민사부·교섭부·군사부·법무부·재무부·학무부·실업부·권업부·교통부·참모부 등 10개 부서를 설치하고 비서과와 사판소(査判所)를 둠으로써, 민정과 군정을 겸비한 군정부(軍政府) 형태를 갖추었다. 남병구도 대한통의부에 가담하여 흥경현(興京縣) 왕청문(旺淸門)에서 1924년 2월경 군사부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6년에는 반석현(磐石縣)에 근거를 둔 한족노동당에서 김응섭(金應燮)·이광민(李光民)·김원식(金元植)·박동초(朴東初)·김상덕(金相德) 등과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한족노동당은 노동자의 단결과 실력 함양, 독립운동에 대한 민중적 자각정신의 환기를 목표로 결성된 독립운동 단체로 재만 한인의 보호를 위해 보호회(保護會)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이어 1927년 1월에는 북만주의 무순에서 조선독립자후원회를 조직하고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5월 14일 체포되어 철령일본영사관(鐵嶺日本領事館)으로 압송되었으며, 1927년 8월 29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신의주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