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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796
한자 丁奎河
영어공식명칭 Jeong Gyuha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5년연표보기 - 정규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정규하 영해면·병곡면 3.1독립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68년연표보기 - 정규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 정규하 건국포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정규하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영해면 3.1독립운동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원황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조사

[정의]

일제 강점기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정규하(丁奎河)[1885~1968]는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원황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정규하는 1919년에 영덕군 병곡면 송천리에서 기독교 조사(助事)로 활동하고 있었다. 정규하권태원(權泰源) 등과 함께 고종 황제의 국장에 참례하기 위하여 서울로 갔다가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고향 영덕으로 왔다. 3월 8일경 정규하는 기독교 신자들 및 청년 3명 등과 협의하여 '조선독립경고문'을 작성해 영덕군내와 인접한 군에 배포하고자 하였으나, 경고문 작성이 여의치 않아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하지만 3월 15일 권태원이 만세운동을 협의하자, 정규하는 "3월 18일 영해 시장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독립운동을 하자."고 제의하였다. 권태원이 동의하자, 정규하는 바로 지역 양반들의 참가 권유를 부탁하였으며, 3월 16일에는 병곡면 송천리 예배당에서 90여 명의 기독교 신자들에게도 계획을 알리고 참여를 권유하였다. 또 3월 17일에는 자신의 집에서 태극기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3월 18일 정규하는 기독교 신자들을 이끌고 영해면 시장으로 갔다. 정규하는 시장에 약 2천명의 군중이 운집하자, 준비한 태극기를 배포한 후, 오후 1시경 남계병(南啓炳)·남효직(南孝直) 등과 함께 군중들을 이끌며 만세운동을 펼쳤다. 군중들은 영해면에 있는 주재소·면사무소·우편소·학교 등지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어서 정규하는 오후 2시경 약 200여 명의 군중들을 이끌고 병곡면으로 이동하여 주재소·면사무소 등지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하지만 일제의 검거 작전으로 정규하는 붙잡혔고, 영덕과 경주를 거쳐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정규하는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량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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