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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632
한자 裵湛
영어공식명칭 Bae Dam
이칭/별칭 화여(和汝),야은(野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오천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채광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386년연표보기 - 배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14년 - 배담 무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28년 - 배담 영덕현사겸 권농병마단련부사 제수
몰년 시기/일시 1462년연표보기 - 배담 사망
거주|이주지 영덕현 -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오천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오천리 지도보기
성격 무신
성별
본관 분성
대표 관직 영덕현령

[정의]

조선 전기 영덕에 정착한 분성배씨 입향조.

[개설]

배담(裵湛)[1386~1462]은 영덕 지역의 분성배씨(盆城裵氏) 입향조로서 무과 급제 후 영덕현령(盈德縣令) 등을 지냈다.

[가계]

배담의 본관은 분성(盆城), 자는 화여(和汝), 호는 야은(野隱)이다. 분성배씨의 시조 배원룡(裵元龍)의 8세손이며, 아버지는 통덕랑 배인(裵仁)이다.

[활동 사항]

배담은 1414년(태종 14) 무과에 급제한 뒤 훈도관(訓導官), 영덕현령 겸 권농병마단련부사 등을 역임하면서 청백리로서 명성이 높았다. 상호군(上護軍)에 있던 1455년(세조 1)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데 공을 세운 자에게 포상한 원종공신 3등에 녹훈이 되었다. 다음 해에는 군사와 병법을 정리한 무경(武經)을 편찬해 세조에게 바친 바 있다.

관직에서 물러나면서 영덕 군자동(君子洞)으로 이거하여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영덕현령 재직 시 군자동의 산수에 반해 복거지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학문과 저술]

어려서 숙부 배진(裵縉)에게 글을 배웠으며 바른 행실과 글 솜씨를 지녔다.

[묘소]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오천리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오천리에는 배담의 공덕을 추모하기 위한 송락정(松樂亭)이 세워져 있다. 1428년(세종 10)에 작성된 배담의 왕지(王旨)가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후손들이 허훈(許薰)[1836~1907]에게 글을 받아 유허비를 세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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