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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교육구국운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338
한자 新敎育救國運動
이칭/별칭 신교육운동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
관련 인물/단체 권영조|교남교육회

[정의]

1905년부터 1910년까지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서 전개된 교육을 통한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전개된 운동.

[역사적 배경]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실력’과 ‘힘’을 길러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애국계몽운동이 전개되었는데, 그 방법 중 하나가 신교육구국운동이었다.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대구광문사·대동광문회·대구광학회·교남교육회·강의단·봉성광학회·영북학회·경주군교육회·영북학회·간친교육회·운산친목회 등과 같은 애국계몽단체가 생겨나 신교육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06년(광무 10) 3월 「흥학조칙(興學詔勅)」이 만들어지자,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申泰休)는 「흥학훈령(興學訓令)」을 발표해 신교육사조를 보급하기 위한 근대학교를 경상북도 각 지역에 설립하기 시작하였다. 기독교계에서도 교육 선교를 위해 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런 가운데 영덕 지역에서도 근대학교가 설립되어 민족 교육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경과]

1. 교남교육회 활동

교남교육회는 1908년 3월 14일 교육 진흥을 표방하고자 서울 보광학교에서 발기 대회를 열고 설립되었다. 서울에 사범학교를 세워 교원을 양성하는 한편, 지회는 영남 각 지역에 학교를 세워 교육을 진흥하고자 하였다. 또한, 잡지인 『교남교육회잡지』와 각종 서적 등을 간행해 교육 의식을 높이고 양질의 교육을 보급하였다. 교남교육회의 교육 진흥 운동에 영향을 받아 영남 지역의 전현직 관료, 유생, 신교육을 받은 학생, 일본 유학생 출신들이 교남교육회에 가입하였는데, 이때 영해 지역에서는 권영조(權寧祚)가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2. 학교 설립 운동

신교육구국운동의 일환으로 영덕 지역에 설립된 사립 교육기관으로는 동명학원(東明學院)·융덕학원(隆德學院)·협창학교(協昌學校)·영신학교(盈新學校) 등이 있다.

[결과]

신교육구국운동을 통해 설립된 교육기관은 주로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기 때문에 일제의 탄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일제는 「사립학교령」[1908], 「사립학교규칙」[1911], 「서당규칙」[1918] 등과 같은 교육 법령을 만들어 이를 탄압하였다. 그런 가운데 영덕 지역 내 대다수 학교도 공립학교로 전환되거나 폐교되었다. 협창학교는 1910년 영해공립보통학교[현 영해초등학교], 영신학교는 1911년 영덕공립보통학교[현 영덕야성초등학교]로 전환되었다. 다만, 영덕군 강구면 삼사리에 세워진 동명학원은 일제 강점기에도 지속적으로 운영이 이루어졌다.

[의의와 평가]

사립학교 설립으로 대표되는 영덕 지역의 신교육구국운동은 영덕군 내 정치·행정·경제의 중심지인 영해·영덕·강구 지역에서 전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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