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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983
한자 趙存華
영어음역 Jo Jonhwa
이칭/별칭 성천(聖天),연소(蓮巢)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조도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04년연표보기 - 조존화 생
활동 시기/일시 1884년연표보기 - 초시 합격
활동 시기/ 일시 1885년연표보기 - 생원시 합격
몰년 시기/일시 1889년연표보기 - 조존화 졸
추모 시기/일시 1901년연표보기 - 윤희승이 업적을 찬함
성격 유학자
성별
본관 평양
대표 관직 동지중추부사

[정의]

조선 후기 서산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가계]

본관은 평양. 자는 성천(聖天), 호는 연소(蓮巢). 고려 충선왕 때의 공신인 조인규(趙仁規)의 후손으로, 여러 대에 걸쳐 태안 풍천촌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조의석(趙毅錫)이고 어머니는 파평 윤씨이다.

[활동 사항]

조존화(趙存華)[1804~1889]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글을 잘 지어 고을에서 이름을 떨쳤다. 평생 독서와 시부(詩賦) 공부에 힘써 높은 경지에 이르렀는데, 특히 학문적 연구를 통해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성명이기학(性命理氣學)’에 능하였다. 성현(聖賢)의 책을 읽을 때는 경건한 자세를 취하고, 열과 성의를 다하여 후학을 가르치니 그를 따르는 문사가 수백 명이었다. 집이 몹시 가난하였으나 구차한 티를 내지 않고,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안분지족(安分知足)하였다. 부모에 대한 효성도 지극하였다.

1927년에 편찬된 『서산군지』에 따르면 이 고을의 문사가 모두 조존화의 문하생이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조존화는 제자 조희천(趙羲天)이 활동하기 이전 향촌의 교육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존화는 1884년 여든한 살에 과거를 치러 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생원시에 합격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 등을 지냈다. 생원시에 응시했던 시권(試券)과 백패(白牌)가 집안에 남아 전한다.

[묘소]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대기리 6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01년(고종 38) 윤희승이 조존화의 업적을 찬한 글이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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