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675
한자 李彦儀
영어공식명칭 I Eonui
이칭/별칭 윤칙(允則)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진갑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00년연표보기 - 이언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36년 - 이언의 의병으로 경기도 광주 쌍령 전투 참전
몰년 시기/일시 1637년연표보기 - 이언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41년 - 이언의 추모 영모재 건립
출생지 이언의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도평리
활동지 이언의 활동지 - 경기도 광주시 쌍령동
묘소 이언의 묘소 -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도평리 소용골 마을 뒤
성격 의병장
성별
대표 경력 충장위호군(忠壯衛護軍)

[정의]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의병장.

[가계]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윤칙(允則).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1347~1392]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용담현령 이검송(李儉松)이고, 아버지는 진사 이근동(李根東)이다. 어머니는 완산 이씨(完山李氏)이다.

[활동 사항]

이언의(李彦儀)[1600~1637]는 1600년(선조 33) 경상도 성주군 신곡면(薪谷面)[현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도평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남달랐고, 연이어 부모상을 당하자 6년간 시묘하며 밤낮으로 곡을 했다고 한다. 주변의 권유에도 과거 시험을 보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사재를 청산해 인근에서 의병을 모아 여러 전투에 나아가 공을 세웠다.

1637년(인조 15) 인조가 남한산성에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경상도 일대의 의병과 관군 4만 명이 합세하여 경상좌병사 허완(許完), 우병사 민영(閔栐)을 지휘관으로 하는 근왕병(勤王兵)을 구성하고 남한산성으로 진격하였다. 당시 이언의는 같은 해 1월 3일에 경기도 광주 쌍령(雙嶺)에서 청나라 기병대와 전투를 벌이다 전사하였다. 전투가 끝난 뒤 우리 군사들의 시신을 불에 태우는 청군의 만행으로 인해, 이언의의 시신은 수습할 수가 없게 되었다.

전하는 말로는, 전투가 끝난 지 3일 후 마을 뒷산에서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 식솔들이 가 보니 이언의가 타던 말이 창상을 입은 채 피 묻은 투구를 물고 쓰러져 있었고 3일 후 주인의 뒤를 따라 죽었다고 한다. 집안에서는 말이 물고 온 투구를 안장하는 의관장(衣冠葬)으로 대신 장사 지내고, 의로운 말을 기려 마을 뒷산에 말을 묻은 의마총(義馬塚)을 만들고 의마비(義馬碑)를 세웠다.

[묘소]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도평리 소용골 마을 뒤에 있다.

[상훈과 추모]

병자호란 후 충장위호군(忠壯衛護軍)에 추서되었고, 1841년(헌종 7) 후손들이 영모재(永慕齋)를 건립하여 추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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