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155
한자 外基里
영어공식명칭 Oegi-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외기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외기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외기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외기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8.32㎢
가구수 133가구
인구[남/여] 239명[남 129명/여 110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외원동의 ‘외’ 자와 장기동의 ‘기’ 자를 따와 ‘외기(外基)’라고 이름하였다. 외기1리의 자연 마을로 장기(長基)[장귀(長歸·將歸)]가 있고, 외기2리의 자연 마을로 바깥원[외원(外院)], 외기3리의 자연 마을로 안원[내원(內院)·원흥(元興)·원동(元洞·院洞)] 등이 있다.

장기는 1600년경 성산 여씨(星山呂氏) 여양유(吕良裕)의 후손 여효증(吕孝曾)이 입향하여 장귀정(將歸亭)이라는 정자를 건립하고, 정자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장귀라고 하였는데, 후손들이 마을의 터가 길다 하여 장기로 개칭하였다. 외원은 연봉산(迎鳳山)[229.1m] 서쪽에 있는데, 연봉산 아래 천곡서원(川谷書院) 밖에 있어 원외(院外)라 하였으나, 여양 진씨(驪陽陳氏) 진시재(陳是載)가 마을 앞들을 개간하면서 외원으로 개칭하였다. 안원은 적산[510.1m] 북동쪽 산악지에 자리한다. 해주 오씨(海州吳氏)가 이 마을에 입향하여 부촌이 될 것을 기원하면서 원흥(元興)이라 하였다가 영봉산(迎鳳山) 아래 천곡서원 안에 있다 하여 안원이라 개칭하였고, 그 후 도상욱(都尙郁)이 내원으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 암회방(岩回坊)[바회]에 속하였다. 1555년(명종 10) 목사 노경린(盧慶麟)이 암회방과 명간방(明澗坊)[밝간이]을 합하고 명암방(明岩坊)이라 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내원동, 외원동, 장기동, 사당동 등을 합하여 외기동으로 하고 명암면과 운곡면(雲谷面)을 합한 벽진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벽진면 외기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외기리의 서쪽에는 남서쪽 적산을 포함하여 500m 높이의 산지, 남쪽에는 약 400m 높이의 산지, 북쪽에는 250~300m 높이의 산지가 넓게 분포하고, 동쪽에는 평탄지를 지나 연봉산과 약 200m 높이의 산지가 있다. 남서쪽 적산 동쪽에 차별 침식 작용에 따라 낮은 저지로 이루어진 그릇 모양의 침식 분지가 발달하였다. 서쪽 산지와 동쪽 연봉산 사이에는 남쪽으로 흘러가는 이천(伊川)의 범람원이 남북 방향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서쪽 산지에서 발원한 장기천(長基川)이 외기1리 장기에서, 오증골천이 외기3리 내원을 거쳐 외기2리 외원에서 이천으로 유입된다.

[현황]

외기리벽진면의 중서부에 자리하여 북부와 동부는 벽진면봉학리자산리, 수촌리, 남부와 서부는 벽진면 매수리금수면어은리, 후평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8.32㎢이며, 외기1리와 외기2리, 외기3리 3개 행정리에 133가구, 239명[남 129명, 여 11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벽진면 행정복지센터가 자리한 수촌리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약 1.8㎞ 떨어져 있다. 지방도 제913호선에서 북서쪽으로 빠져나온 도로가 외기리의 동쪽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통과한다. 이천의 범람원에서는 대부분 비닐하우스를 설치하여 성주군의 특산물인 참외를 시설 재배하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 조선 경종(景宗)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제수된 여응화(呂應和)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한 청간재(聽澗齋), 성산 여씨 여효두(呂孝杜)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한 회산재(檜山齋) 등이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