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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지도』 「성주목」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219
한자 海東地圖星州牧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재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8년 12월 22일연표보기 - 『해동지도』 보물로 지정
현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고지도
서체/기법 회화식 채색 지도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조선 후기에 제작한 『해동지도』에 수록된 성주목 지도.

[형태 및 구성]

『해동지도』는 총 8책으로 규격은 세로 47.0㎝, 가로 30.5㎝이다. 지도집에는 조선전도, 도별도, 군현지도뿐만 아니라 천하도, 중국도, 황성도, 북경궁궐도, 왜국지도, 유구지도 등이 망라되어 있다. 1748년(영조 24)부터 1750년까지 상황이 적혀 있고, 1750년부터 시행되는 균역법(均役法)에 관한 내용이 반영되지 않은 점, 1751년(영조 27) 초기에 폐지되는 경상도의 7개 진보(鎭堡) 관련 정보가 담겨 있지 않은 점 등으로 보아 1750년대 초에 작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징]

『해동지도(海東地圖)』는 조선 후기 지방 통치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지방 정책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자 제작된 회화식 군현 지도집이다. 성주목은 제5책 영남전도(嶺南全圖)에 포함되어 있다. 가운데에 지도를 두고, 상하에 호구, 전결, 곡물총수(穀物摠數), 군병총수(軍兵摠數), 읍성, 강역, 각면, 창고, 군명, 형승, 봉수, 누정, 서원, 묘원[관왕묘], 궁실 등을 지도 바깥에 주기(注記)하여 한 장으로 작성한 읍지라 할 수 있다. 원호가 1만 2721호이며, 서울까지의 거리는 627리로 기재하였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동일하다.

성주목은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전체, 고령군 다산면, 덕곡면, 운수면을 포함하는 지역으로서 현 성주군보다 훨씬 넓었다. 각면을 지도에서는 방(坊)으로 표시하였다. 지도의 용산리방은 용산면인데, 이전에는 용산리라 불리던 곳이다. 읍내 지역의 용산리, 남산리, 본아리, 북산리도 다른 지역들처럼 리 뒤에 방을 붙인 것이다. 주기에는 읍내 지역도 리를 빼고 용산면 등으로 표시하였다. 조선 후기 리·방·면의 명칭이 혼재된 사례이다.

지도에는 산천과 도로, 사찰과 서원, 봉대, 각방(各坊), 인접 고을을 표시하였다. 서원들은 서원이라고만 표시하였으나, 사찰은 안봉사·쌍계사 등으로 적시하였다. 가운데는 읍성과 관아 및 향교와 관왕묘를, 서북쪽에는 독용산성(禿用山城)과 관아를, 낙동강을 접하고 있는 남쪽의 벌지방에만 창(倉) 표시를 하고, 읍창·천야창·가리창·노다창·동안창·산창·화원창은 지도 바깥에 기재하였다.

[의의와 평가]

『해동지도』 「성주목」 은 지도와 함께 읍지 수록 항목 다수를 압축적으로 기재하여 한 장으로 제작한 성주목의 읍지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해동지도』 (서울대학교 규장각, 1995)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https://kyu.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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