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복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707
한자 孫福山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형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9년 5월 8일연표보기 - 손복산 출생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손복산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에서 3·1운동 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손복산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3·1운동에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연표보기 - 손복산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 손복산 대통령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1년연표보기 - 손복산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월산리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월산리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활동지 화도면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손복산(孫福山)[1889~1919]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에 해당하는 양주군 화도면 월산리 출신이다. 손복산은 1919년 3월 18일 화도면 월산리에서 일어난 3·1운동에 마을 주민들과 함께 참여하였다가 순국하였다.

[활동 사항]

화도면에서는 이달용(李達鎔) 등의 주도 아래 만세 운동이 추진되다가 3월 16일에 일본 경찰에 사전 발각되었고, 이재하(李載夏), 이택주(李宅周) 등 여러 사람들이 체포되었다. 그러자 1907년 설립된 월산교회와 배인학당에서 선교와 교육 양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있던 김필규(金弼圭)가 전열을 정비하여, 1919년 3월 18일로 거사일을 다시 정하여 만세 시위를 일으켰다.

1919년 3월 18일 화도면 월산리와 답내리[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답내리] 일대 주민이 총궐기하여 면사무소가 있던 화도면 마석우리[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로 행진하였다. 손복산도 대열에 동참하였고, 이틀 전 시위 계획이 발각되어 체포된 이재하 등의 석방을 요구하며 헌병 주재소 앞에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행진을 시작할 때 200여 명이었던 시위 군중은 어느새 1,000여 명으로 늘어났고, 이에 일본 헌병대는 시위대를 향하여 총격을 가하며 독립 만세 운동을 탄압하였다.

일본 헌병대의 발포로 인하여 손복산을 비롯하여 이달용, 신영희(申榮熙), 유상규(兪相奎), 이교직(李敎稙) 등 5명이 현장에서 순국하였고, 다수의 중상자가 발생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새벽에는 김필규를 비롯하여 강선원(姜善遠), 윤준(尹俊), 김원석(金元石) 등이 주동자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

[상훈과 추모]

3·1운동 현장에서 일제의 통치에 맹렬하게 저항하였던 손복산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정부는 197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어서 1991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월산교회와 경기도 남양주시 차원의 추모 사업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답내리 월산교회 앞마당에 화도면 월산리 3·1운동에 참여한 손복산 등의 인물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1993년 설립한 3·1운동 기념비가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99번지에도 손복산을 비롯하여 당시 만세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기리고자 3·1운동 기념비가 건립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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