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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1396
한자 洪大容
영어공식명칭 Hong Daeyong
이칭/별칭 덕보(德保),담헌(湛軒),홍지(弘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채홍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31년연표보기 - 홍대용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65년 - 홍대용 동지사행 수행군관으로 북경 방문
활동 시기/일시 1774년 2월 - 홍대용 돈녕부참봉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74년 11월 - 홍대용 세손익위사시직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75년 - 홍대용 선공감감역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76년 - 홍대용 사헌부감찰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77년 - 홍대용 태인현감 부임
활동 시기/일시 1780년 - 홍대용 영천군수 부임
몰년 시기/일시 1783년연표보기 - 홍대용 사망
수학|강학지 석실서원 -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 지도보기
묘소|단소 홍대용 묘소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장산리 462-22
성격 문신
성별 남성
본관 남양(南陽)
대표 관직|경력 영천군수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에 있었던 석실서원에서 수학한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홍대용(洪大容)[1731~1783]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덕보(德保), 호는 담헌(湛軒)·홍지(弘之)이다. 할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 홍용조(洪龍祚)이며, 아버지는 나주목사 홍역(洪櫟)이다. 어머니는 청풍 김씨(淸風 金氏)이다. 부인은 한산 이씨(韓山 李氏)이며, 아들은 홍원(洪薳)이다.

[활동 사항]

홍대용은 12세 무렵부터 석실서원에서 김창협(金昌協)의 손자이자 이재(李梓)의 문인이었던 김원행(金元行)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석실서원에서 박지원(朴趾源)·박제가(朴齊家) 등과 교유하였고, 1765년 동지사행(冬至使行)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임명된 작은아버지 홍억(洪檍)의 수행군관 자격으로 북경(北京)을 방문하였다. 홍대용은 북경에 체류하는 동안 청나라의 문인·학자들과도 교류를 맺었으며 귀국 후에도 소통을 이어 갔다.

홍대용은 음보(蔭補)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첫 관직은 1774년(영조 50) 2월에 임명된 돈녕부참봉이다. 1774년 11월 세손익위사시직에 제수되었는데, 당시 세손이었던 정조에게 홍대용이 경사(經史)를 강의하고 문답을 진행한 내용을 담은 일기 자료인 「계방일기(桂坊日記)」가 홍대용의 문집 『담헌서(湛軒書)』에 수록되어 있다. 이후 홍대용은 1775년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에, 1776년(정조 즉위년)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와 사헌부감찰에 임명되었으며, 1777년 의빈부도사와 태인현감에 제수되었고, 1780년 영천군수에 임명되었다. 1783년에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홍대용은 북학파(北學派)의 일원이며 지전설(地轉說)과 우주무한론(宇宙無限論)을 주장한 것으로 잘 알려진 학자이다.

홍대용의 학문관 형성에는 낙론계의 영향이 지대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석실서원에서 홍대용을 가르친 김원행에게 영향을 주었던 김창협과 이재는 김창흡(金昌翕)·박필주(朴弼周)·어유봉(魚有鳳) 등과 함께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주장하는 낙론계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김원행 또한 박윤원(朴胤源)과 함께 18세기 중반 이래 낙론계를 주도하는 인물이었다.

홍대용은 당시의 주자학 관련 학풍이 교조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학문적 수양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실천을 강조하였다. 실제로 이후 홍대용의 소위 ‘실학(實學)’ 또는 ‘북학’ 사상은 장자(莊子)의 사상에서 양명학(陽明學)과 서구 과학기술에 이르는 다양한 사상을 종합한 것이었다.

홍대용은 1765년 동지사행에 참여하여 중국을 다녀오면서 다양한 문물을 접하고, 청의 문인·학자뿐만 아니라 유럽 출신 선교사로 당시 청나라 흠천감(欽天監)의 정(正)으로 있던 유송령(劉松齡)과 부정(副正)으로 있던 포우관(鮑友管) 등 여러 인물과도 교류하며 지식을 넓혔다.

홍대용은 1765년 북경을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저술을 남겼다. 홍대용의 문집 『담헌서』에는 홍대용의 과학사상과 자연에 대한 관점이 담겨 있는 「의산문답(醫山問答)」과 나라를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할 개혁안을 제시한 「임하경륜(林下經綸)」을 비롯하여 1765~1766년의 연행 경험 이후 청의 학자·문인들과의 교유를 알 수 있는 「항전척독(杭傳尺牘)」·「건정동필담(乾淨衕筆談)」과 서구의 수학·천문학 지식을 수용하여 저술한 수학서인 「주해수용(籌解需用)」 등이 수록되어 있다. 홍대용의 연행 경험에 대한 저술로 청나라의 문물을 묘사하고 그에 대한 감상을 자유로운 한문 문체로 기록한 『담헌서』의 「연기(燕記)」 외에도 일기 형태의 한글 필사본 『을병연행록(乙丙燕行錄)』이 있다.

[묘소]

홍대용과 부인 한산 이씨의 묘는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장산리 462-22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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