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981
한자 任惟政
영어공식명칭 Im Yu Jeong
이칭/별칭 임응규(任應奎),이환(離幻),사명당(四溟堂),송운(松雲),종봉(鍾峯),유정(惟政),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
분야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조명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44년연표보기 - 임유정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559년 - 임유정 직지사에서 출가
몰년 시기/일시 1610년 8월 26일연표보기 - 임유정 사망
출생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활동지 직지사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길 95[운수리 216]
성격 승려
성별 남성
대표 경력 직지사 주지|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

[정의]

조선 후기 밀양 출신의 승려.

[개설]

임유정(任惟政)[1544~1610]의 본관은 풍천(豊川)이며, 속명은 임응규(任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 또는 송운(松雲), 별호는 종봉(鍾峯)이다. 법명이 유정(惟政)이다. 1544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임유정은 14세, 15세에 부모가 잇달이 죽은 후에 김천 직지사(直指寺) 신묵(信默)의 문하에서 출가하였다. 3년 뒤에 승과(僧科)에 합격하였고, 직지사 주지를 지냈다. 묘향산의 휴정(休靜)에게 나아가 수행하고 휴정의 법통을 이었다.

임진왜란 때에 휴정을 대신하여 승군을 통솔하였고, 평양성 전투를 비롯한 각종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1594년에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진영에 다녀온 후에 일본군의 상황과 토벌의 당위성을 논한 상소문을 올렸다. 또한 팔공산성·금오산성 등 산성 수축에 힘썼다. 선조가 임유정의 공로를 인정하여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 벼슬을 내렸다.

1604년에 선조의 명으로 일본에 가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만나 강화를 맺고, 전란 때에 잡혀간 3,000여 명을 인솔하고 귀국하였다. 1610년 8월 26일 해인사에서 입적하였다.

[사상과 저술]

임유정의 저서로는 『사명당대사집』 7권과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 1권 등이 있다.

[묘소]

임유정은 제자들이 다비하여 합천 해인사 홍제암(陜川海印寺弘齊庵) 옆에 부도와 비를 세웠다.

[상훈과 추모]

임유정은 밀양의 표충사(表忠祠), 묘향산의 수충사(酬忠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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