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476
한자 密陽邑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영남루1길 16-11[내일동 37]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변광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479년연표보기 - 밀양읍성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590년 - 밀양읍성 보수
문화재 지정 일시 1997년 12월 31일연표보기 - 밀양읍성 경상남도 기념물 제167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6월 29일 - 밀양읍성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기념물 지정 번호 삭제
현 소재지 밀양읍성 - 경상남도 밀양시 영남루1길 16-11[내일동 37]지도보기
원소재지 밀양읍성 - 경상남도 밀양시 영남루1길 16-11[내일동 37]
성격 성곽
양식 평저식[남서쪽]|야산식[동북쪽]
관련 인물 신잡
크기(높이,길이,둘레) 9척[높이]|4,670척[둘레]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167호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에 있는 조선시대 성곽.

[개설]

밀양읍성(密陽邑城)은 조선 성종 대에 왜적 방어와 수비 강화를 위하여 읍성을 축조하고 관아 건물을 세웠다. 이어 선조 대에는 못을 파서 치수(治水)하는 등 성곽 일부를 보수하였다.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밀양부」에 의하면 장군정(將軍井)이라는 우물이 객사의 동북쪽에 있으며, 연꽃을 심은 못[연지(蓮池)]이 응향문(凝香門) 밖에 있다고 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읍성이 폐허가 된 후 성벽의 재건과 건물의 복구를 하면서 구조가 변경되었고, 조선 후기에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사대문과 성벽이 훼철되었다.

[건립 경위]

『성종실록(成宗實錄)』의 기록에 따르면 밀양읍성과 관련하여 ‘내륙에 있기는 하나, 변방이고 왜객(倭客)이 경유하는 길이므로 성(城)이 없는 것은 불안하니 급히 성을 쌓아 대비해야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위치]

밀양읍성은 경상남도 밀양시의 내일동(內一洞) 전 구역에 분포한다.

[형태]

밀양읍성은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형태로서 뒤[北]는 아북산, 왼쪽[東]은 아동산, 오른쪽[西]은 해자(垓子)를 두르고 성벽이 축조, 앞[南]은 남천강을 임하고 있다. 동북쪽으로는 무봉산(舞鳳山)[또는 아동산]과 아북산(衙北山)의 능선을 따라 북성(北城)길에 이어졌고, 동남쪽으로는 아동산(衙東山)의 능선이 밀양 영남루 방향으로 연결되었으며, 서쪽으로는 북성사거리를 거쳐 남천강(南川江) 쪽으로 일부가 조선시대에 읍성의 해자였던 해천(垓川)을 끼고 성벽이 연결되었다. 남천강 변을 따라 중간쯤이 남문(南門) 자리로 추정되며, 밀양 영남루 앞까지 성벽이 연결되어 있었다.

[현황]

밀양읍성은 현재 읍성의 동문지(東門址)에서 밀양 영남루 방향까지 ㄱ자 형태로 일부 복원되어 있다. 1997년 12월 31 경상남도 기념물 제167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기념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의의와 평가]

밀양읍성은 조선시대 영남의 큰 고을이었던 밀양도호부의 규모와 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유적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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