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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664
한자 朴萬守
영어공식명칭 Park Man Soo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구진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7년 2월 2일연표보기 - 박만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 - 박만수 3·13 만세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4일 - 박만수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74년 12월 17일연표보기 - 박만수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2년연표보기 - 박만수 대통령 표창 추서
출생지 내이동 - 경상남도 밀양시 내이동 지도보기
활동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박만수(朴萬守)[1897~1974]의 아버지는 박윤옥(朴允玉)이다. 박만수는 1897년 2월 2일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내이동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박만수는 1919년 밀양 3·13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윤세주윤치형3·1운동 당시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동화학교 교장 전홍표(全鴻杓)에게 상황을 알렸다. 박만수전홍표의 지도로 동지들과 함께 시위를 준비하였다. 밀양면 사무소와 부북면 사무소의 등사판을 몰래 가져와 「독립선언서」 수천 매를 등사하였고, 태극기 수백 매를 만들어 윤세주의 집과 김병환의 집에 숨겨 두었다. 3월 13일 밀양 장날에 독립 만세 시위를 하기로 결정한 뒤에는 인근의 동지들을 비밀리에 모았다.

시위 당일 박만수를 비롯한 여러 동지들이 장터에 모인 군중 속으로 파고들어 오후 1시 30분경 ‘조선독립만세’라고 크게 쓴 깃발을 세웠다. 윤세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동안 박만수를 비롯한 이들이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낭독을 마치자 수천 명의 군중들은 일제히 태국기를 휘날리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큰 깃발을 따라 행진을 시작하였다. 그러자 밀양 주재 10여 명의 헌병과 경찰 병력이 총칼로 해산시키려 하였고, 부산 일본 헌병수비대 병력이 급파되어서야 가까스로 진압되었다. 많은 참여자들이 연행되어 고문을 당하였다.

박만수는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박만수는 1974년 12월 17일에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박만수에게는 2002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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