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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 하랴, 살림하랴, 도장 마을 여성들은 늘 시간이 부족했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도 친한 부인들끼리 모여 노는 즐거움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은 여성들이 바쁜 농사일에서 잠깐 해방이 되는 날이다. 시부모님 눈치 덜 보는 집에 옹기종기 모여서 놀다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고 한다. “친한 부인들끼리 집에 모여서 놀았어. 비가 오면 놀고. 계란 삶아 먹고. 장구치고 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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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기본 생활 습관을 길러 바른 품성을 지닌 착한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며 지혜를 키우는 똑똑한 어린이, 소질과 취미를 찾아 특기를 계발하는 유능한 어린이, 몸이 건강하고 의지가 굳센 튼튼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꿈과 슬기를 지닌 참되고 창의적인 아산인 육성’이다. 1922년 7월 19일 아산 공립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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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기본 생활 습관을 길러 바른 품성을 지닌 착한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며 지혜를 키우는 똑똑한 어린이, 소질과 취미를 찾아 특기를 계발하는 유능한 어린이, 몸이 건강하고 의지가 굳센 튼튼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꿈과 슬기를 지닌 참되고 창의적인 아산인 육성’이다. 1922년 7월 19일 아산 공립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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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사명(士明), 호는 아산(鵝山). 판결사 정인례(丁仁禮)의 8세손이며, 정인남(丁仁男)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성주 형씨(星州邢氏) 형관(刑寬)의 딸이다. 정호민(丁好敏)[1598~1678]은 어려서 사서삼경(四書三經)과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를 통독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에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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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기본 생활 습관을 길러 바른 품성을 지닌 착한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며 지혜를 키우는 똑똑한 어린이, 소질과 취미를 찾아 특기를 계발하는 유능한 어린이, 몸이 건강하고 의지가 굳센 튼튼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꿈과 슬기를 지닌 참되고 창의적인 아산인 육성’이다. 1922년 7월 19일 아산 공립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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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동복 현감을 지낸 무신. 본관은 장수(長水)이고, 자는 명보(明甫), 시호는 무민(武愍)이다. 1591년 동복현감을 지냈고, 익산 군수,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순절하였다. 황희(黃喜)의 5세손이고, 지중추부사 황사효(黃事孝)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부사직 황개(黃塏)이고, 아버지는 증좌의정 황윤공(黃允恭), 어머니는 방씨(房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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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과 도암면 일대에서 재배되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화순군에서는 2008년에 ‘읍면 특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화순군 춘양면 8개 농가에서 아스파라거스 재배가 시작되었다. 아스파라거스는 2011년에 일본으로 처음 수출되었다. 2012년에는 도암면에서도 아스파라거스가 재배되고 있다. 아스파라거스는 봄채소이며, 여러해살이 속씨식물이다. 온대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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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아이를 단골이나 무당에게 거짓으로 파는 행위. 지금과 같이 현대화된 병원이 없던 과거 시절에는 홍역과 같은 전염병이 마을에 돌면 어린 아이들이 죽는 일이 많았다. 그러한 까닭에 예전에는 태어난 아이의 사주에 명이 짧다고 하면 여러 가지 ‘뱅이[액막이]’를 했다. 이러한 뱅이의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단골이나 점쟁이, 혹은 절이나 바위에 아이를 팔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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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 마을 회관의 겉모습은 아메리카노 커피 혹은 이탈리안 파스타를 팔 것 같은 레스토랑이다. 하지만 회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다. 구석 구석 채워진 옛 물건들과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을 보고 박물관인지 도서관인지 혼동하게 되는 것이다. 도장 마을 회관은 향토적이고 전통적인 것들이 도회적인 건축물과 만나 하모니를 빚어낸 하나의 작품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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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는 공동 주택 양식.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1977년 「주택 건설 촉진법」이 제정된 이후 본격적으로 건립되기 시작했다. 화순군의 건축 형태는 1980년대까지 단독 주택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비교적 인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아파트는 199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건축되었다. 화순군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공동 주택으로는 1988년에 건축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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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국악인 가야금 산조 명인 안기옥의 동생이며 서편제 판소리의 맥을 잇는 여류 명창인 안채봉의 사촌 오빠이고, 딸은 창극인 안행련이다. 안기선(安基善)[1904~?]은 판소리 다섯 마당을 두루 잘했다. 지방에서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고, 성우향, 박초선, 신영희, 박송희에게 소리를 가르쳤다. 부인과 딸들은 안향련을 제외하고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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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동복면 안성리는 안림(安林)·석당·성황(城隍)·월봉(月峰) 등 4개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월봉 마을은 1950년 6·25 전쟁 전후로 폐촌이 되고 신성(新城)이 새로 형성되었다. 안성리의 지명은 안림 마을의 지명에서 안(安)자를 취하고 성황 마을의 성(城)자를 각각 취하여 만들었다. 안림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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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안수(安水). 구봉(九峰) 조엽(曺熀)의 후손이며, 진사 조익은(曺翊殷)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조유승(曺有承)이다. 조병식(曺秉植)[?~?]은 1878년(고종 15)에 무과에 급제하여 우후(虞侯)와 금구 군수(金溝郡守)를 역임하였다. 고을이 크게 다스려져서 거사비(去思碑)가 있다. 1905년에 통정대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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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안심리에 있는 저수지. 안심 저수지는 안심제라고도 하며, 농업 수리 시설물로 1종 저수지이다. 농업용수 개발을 위해 1982년 착공하여, 1987년 준공되었다. 총 저수량 122만 7000㎥, 유효 저수량 117만 3000㎥로 1종 저수지이다. 유역 면적 430㏊, 인가 면적 190㏊, 관개 면적 153.7㏊, 홍수 면적 12.1㏊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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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이서면 안심리는 자연 마을인 안심(安心)·사마동(司馬洞)·하반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심리의 지명은 안심 마을의 이름을 취하여 지어졌다. 본래 안심사(安心寺) 입구에 있어 동개라 불렀는데 후에 사찰의 이름을 취하여 마을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사마동 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마을 뒤쪽이 몰매[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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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안심리에 있는 저수지. 안심 저수지는 안심제라고도 하며, 농업 수리 시설물로 1종 저수지이다. 농업용수 개발을 위해 1982년 착공하여, 1987년 준공되었다. 총 저수량 122만 7000㎥, 유효 저수량 117만 3000㎥로 1종 저수지이다. 유역 면적 430㏊, 인가 면적 190㏊, 관개 면적 153.7㏊, 홍수 면적 12.1㏊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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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수만리와 이서면 안심리에 걸쳐 있는 산. 안양산(安養山)[853m]은 동쪽으로 화순군 이서면 안심리와 서쪽으로 화순군 화순읍 수만리에 걸쳐 있다. 무등산 서쪽 장불재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낙타봉의 백마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끝머리에 편평하고 두툼한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 안양산이다. 화순읍의 북동쪽이며 무등산의 남쪽에 위치한다. 안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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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수만리 들국화 마을에서 매년 5월 초에 열리는 축제. 2005년부터 매년 5월 초에 열리는 축제로서 아름다운 철쭉이 피어나는 계절에 맞추어 산행객과 관광객이 함께 어울리는 축제이다. 무등산 등반 대회 및 체험 행사로 구성되어 있다.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수만리 들국화 마을에는 안양산을 등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등산로가 있어 매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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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안심리 안양산에 있는 휴양림. 무등산 편백 자연 휴양림은 무등산 동쪽 안양산[853m] 기슭 해발 300~400m에 자리하고 있는 20여만 평 규모의 개인이 운영하는 자연 휴양림이다. 휴양림의 주요 수종인 편백나무와 40~50년생의 삼나무는 인체에 유익한 피톤치드 성분을 소나무보다 2~3배나 많은 양을 배출하여 삼림욕으로 심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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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에서 활동한 서화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안여(顔汝), 호는 사호(沙湖). 만년에는 노호(老湖)라 하기도 하였으며 동복(同福)에 은거하여 살았다. 호남 지방에서 일생동안 서화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소치 허련의 화풍에 영향을 받아 산수화와 묵죽도, 매화도 등 많은 작품을 남긴 예술가이다. 송수면(宋修勉)[1847~1916]은 화순군 남면 사평리에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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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에 은거한 문인.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겸숙(謙叔), 호는 야옹(野翁). 안축(安舳)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안중돈(安重敦)이고, 아버지는 우산(牛山) 안방준(安邦俊)이다. 어머니는 경주 정씨(慶州鄭氏) 정승복(鄭承復)의 딸이고 부인은 김의명(金義鳴)의 딸이다. 안익지(安益之)[1608~1687]는 효우(孝友)가 뛰어나고 재주가 명민하였다. 아버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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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정월에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가정신(家庭神)에게 비는 의례. 안택은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는 일련의 종교적 의례를 일컫는다. 이는 흔히 굿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안택굿이라고도 한다. 일 년 간 집안의 가장을 비롯한 가족 구성원들의 평안과 무사태평을 기원하기 위해 하는데, 대체로 전문 사제인 법사나 무당이 맡아 행하는 종교 의례이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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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정월에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가정신(家庭神)에게 비는 의례. 안택은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는 일련의 종교적 의례를 일컫는다. 이는 흔히 굿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안택굿이라고도 한다. 일 년 간 집안의 가장을 비롯한 가족 구성원들의 평안과 무사태평을 기원하기 위해 하는데, 대체로 전문 사제인 법사나 무당이 맡아 행하는 종교 의례이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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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정월에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가정신(家庭神)에게 비는 의례. 안택은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는 일련의 종교적 의례를 일컫는다. 이는 흔히 굿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안택굿이라고도 한다. 일 년 간 집안의 가장을 비롯한 가족 구성원들의 평안과 무사태평을 기원하기 위해 하는데, 대체로 전문 사제인 법사나 무당이 맡아 행하는 종교 의례이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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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여은(汝恩), 호는 삼희당(三希堂). 은봉(隱峰) 안방준(安邦俊)의 9대손으로, 아버지는 안순(安栒)이고, 어머니는 수원 백씨(水原白氏) 백진훈(白鎭勳)의 딸이다. 부인은 밀양 박씨(密陽朴氏) 박현수(朴賢秀)의 딸이다. 안택환(安澤煥)[1844~1917] 은 자질이 순박하고 성품이 인후하였다. 어려서 백부(伯父) 안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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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도로변에 있는 미륵불과 미륵골이라는 들판에 얽힌 이야기.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미륵골이라는 곳에 조담 선사라는 분이 미륵불을 모셨는데, 이 미륵불이 내려다보는 마을에 역병이 돌고 부녀자들이 음탕해진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이 미륵불을 무너뜨렸는데, 그 후로 절에 빈대가 끓고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을 상하게 해서 결국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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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화순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앙지(仰止), 호는 경재(敬齋). 구환(具桓)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진사(進士) 구문(具紋)이다. 구이첨(具爾瞻)[?~?]은 가학을 계승하여 학문의 바탕이 넉넉하고 풍부하였다. 고향에 은거하며 다수의 후학을 길러냈다. 1519년(중종 14)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장흥 교수(長興敎授)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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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일대에서 전해지는 효자에 관한 이야기. 「보암리 효자 이야기」는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보암리에서 어머니를 지극히 봉양하였던 정자근노미의 효행담이다. 1981년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발행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에 「효자 정자근과 적벽」이란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설』에 「보암리 효자」라는 제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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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구례리와 전라남도 보성군 노동면 신천리를 연결하는 고개. 예재는 화순군의 남동부 끝자락인 이양면 구례리와 보성군 노동면 신천리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호남 정맥의 계당산과 봉화산을 연결하는 안부(鞍部)[산의 능선이 말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이다. 예부터 주요 고갯길이었으며 화순군과 보성군을 남북으로 연결한다. 현재는 경전선 철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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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에 있는 교량. 국가 지원 지방도 55호선을 연결하기 위해 1992년도에 준공하였다. 앵남리의 지명은 앵무촌(鸚鵡村) 마을의 앵(鸚)자와 화남리(花南里) 마을의 남(南)자를 각각 취한 것이다. 앵남교는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앵남교는 총 길이가 31m이고 폭은 9m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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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는 앵무동·화남·신기촌·쌍계동 등 4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앵남리의 지명은 앵무동 마을의 앵(鸚)자와 화남리(花南里)의 남(南)자를 각각 취한 것이다다. 앵무동 마을은 앵무봉충의 명당이 있는 앵무산 아래에 있어 앵무동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화남 마을은 뒷산이 꽃봉오리 형국이라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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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 밀암골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 앵무촌에서 경전선 철도 굴다리를 지나 철로와 도로를 따라 밀암골이라 부르는 곳으로 올라가면 도로 왼편 기슭에 ‘전주 이씨 순양군세천(全州 李氏 順陽君世阡)’ 비가 있고, 도로 오른쪽에 고인돌 2기가 있다. 여기서 좀 더 올라가면 전주 이씨 제각인 양이재가 있다. 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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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 밀암골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 앵무촌에서 경전선 철도 굴다리를 지나 철로와 도로를 따라 밀암골이라 부르는 곳으로 올라가면 도로 왼편 기슭에 ‘전주 이씨 순양군세천(全州 李氏 順陽君世阡)’ 비가 있고, 도로 오른쪽에 고인돌 2기가 있다. 여기서 좀 더 올라가면 전주 이씨 제각인 양이재가 있다. 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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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 앵무동 마을에 있는 선돌. 마을에서는 예부터 마을 입구에 세워진 나쁜 액을 막아주는 선돌을 ‘선독’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98년에 간행된 『화순군의 민속과 축제』에 의하면, 마을에서는 옛날에 마을의 기강을 해치는 풍기 문란한 자가 있으면 이 선돌에 묶어서 체벌하였다는 내용을 조사, 기록하였다. 앵남리 앵무 선돌은 앵무동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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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에 있는 경전선의 옛 철도역. 코레일 광주 지사에 소속된 역으로서 역명은 역이 위치한 앵남리 지명을 따라 지었다. 일제 강점기에 최초 개설된 후 폐설되었다가 해방 후에 다시 운영되었으나 2008년에 최종 폐역됐다. 일제 강점기 쌀과 면화를 반출시키기 위해 전라남북도 및 경상남도의 곡창 지대와 부산을 연결하기 위한 목적과 여수항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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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이루어지는 야구 관련 활동이나 현황. 화순군에서 야구 활동은 엘리트 선수를 발굴하는 학교 야구부와 지역 사회인 야구 연합회 활동으로 나누어진다. 화순 초등학교, 화순 중학교, 화순 고등학교 야구부는 지역의 체육 인재를 육성할 뿐만 아니라 화순군이 야구의 명문이라는 이미지를 제고하고 있으며, 화순군 야구 연합회는 1,300여 명의 동호인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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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 마을로 들어서기 전 야사제1교 왼편으로 공터가 보인다. 버스 정류장 좌측이 강변이다. 1984년부터 재래시장인 이서장이 서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도석리 이서장터를 중심으로 번화가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서장을 이용하던 인근 마을들이 3차에 걸친 동복댐 공사로 수몰되면서 도석리에 있던 이서장[방석굴장]도 수몰되었다. “도석리에 있던 이서장은 겁나게 장이 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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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것이 돌아요, 이 동자가. 돌면서 땅땅 쳐서 시간을 알려줘요. 몸체는 전부 놋쇠로 되어 있어. 이것이 테입이 있어. 테입을 감아주면 이 동자가 돌면서 종을 때려서 시간을 알려줘.” 가로 20㎝, 세로 25㎝ 정도의 크기였다는 「자명종 그림」을 보면서 야사 마을 출신 하장호 씨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 「자명종 그림」은 하장호 씨가 그렸는데, 본래 자명종은 야사 마을 출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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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 마을은 깊은 산과 맑은 물 그리고 들녘이 어우러진 절경의 산골 마을이다. 서쪽으로는 1,000m가 넘는 무등산이 있고, 북쪽으로는 방아재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마을 뒤까지 이어진다. 남쪽으로는 마을 앞 이서천 너머가 별산 등성이고, 동쪽으로는 멀리 적벽산이 보인다. 이런 첩첩 산중이지만 맑은 하천이 넓은 들을 이룬다. 야사 마을은 이서천을 사이에 두고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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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현재 야사 마을에는 52가구가 살고 있다. 하씨, 나씨, 이씨, 김씨, 조씨, 정씨, 송씨, 최씨 등 8개 성씨가 모여 살고 있으며 혼인으로 인한 이주 성씨인 유씨, 한씨, 박씨, 임씨, 천씨, 성씨 등 14개 성씨가 합해져 100여명이 마을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진양 하씨는 마을 인구 전체의 약 45%이상 차지하고 있다. 1934년 조선 총독부에 임시국제조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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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 마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호남 실학에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들이 있는데 바로 석당 나경적(羅景績)[1690~1762]과 규남 하백원(河百源)[1781~1844]이다. 이 둘은 조선 후기 농업과 상공업의 한계성과 모순 등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실학에 대한 뜻을 호남에서 누구보다도 선구적으로 이끌었던 인물들이다. 나경적은 16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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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 마을을 들어서서 규남 박물관 길 건너에는 넝쿨 숲을 배경으로 조그마한 정려각 하나가 외롭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띤다. 이것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은 야사 마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하다. 진양 하씨 집안의 하성래 씨에 의하면, 쌍렬문은 정려각 두 개를 한자리에 모아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하대붕의 처인 동복 오씨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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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 마을의 길은 사람과 문화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며, 마을의 위상을 변화시켜 왔다. 현재 야사 마을은 교통이 불편한 산골 오지이다. 그러나 과거 차가 없던 도보시절, 전라남도 남쪽 지역과 북쪽의 도시들을 연결하는 길목이었다. 순천·보성 지역에서 광주나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지름길인 야사 마을을 거쳐가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규남 할아버지는 신경준, 홍대용 그런 분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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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는 자연 마을인 야사·산사(山沙)·태평동·용호(龍湖)·갑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야사리의 지명은 야사 마을의 지명을 취하여 이름이 붙었다. 야사(野沙) 마을의 뜻은 ‘들모실’[들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한자화한 것이다. 야사 마을은 처음에는 평사(平沙)라 했고 이후 금사(錦沙)·사촌(沙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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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산사 마을에서 음력 정월 14일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산사 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14일 자시[밤 11시~오전 1시]경에 할머니 당산에서 마을 공동으로 제를 지낸다. 제관은 마을 회의를 거쳐 뽑으며, 제비는 마을 전답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충당한다. 제의 절차는 진설 → 분향 → 초헌 → 독축 → 아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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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산사 마을에 있는 조탑과 선돌. 야사리 산사 마을 입구에 조탑[돌탑]이 세워져 있고, 조탑에서 북쪽으로 1m 지점에 음각의 명문이 새겨진 입석[선돌]이 있는데, 모두 마을 지킴이로서의 성격이 강한 귀중한 지역 문화 유산이다. 산사 마을 한가운데에는 할머니당산 숲이 있고, 마을 입구 논두렁에 할아버지당산과 조탑이 조성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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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에서 음력 정월 14일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에서는 ‘당산제’라 하여 매년 음력 정월 14일 밤 11시경에 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당산, 은행나무 당산에서 제를 지낸다. 제관은 섣달그믐 경에 마을 회의에서 뽑으며, 제비는 마을 전탑에서 나오는 수입금으로 충당한다. 제의 절차는 세 곳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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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용호 마을에서 음력 정월 14일 밤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용호 마을에서는 당산제라 하여 음력 정월 14일 밤 10시경에 당산과 당산 할머니 앞에서 제를 지낸다. 제관은 마을 총회에서 뽑으며, 제비는 호구전으로 마련한다. 제의 절차는 유교식 제차에 따라 엄숙하게 진행된다. 당산제를 언제부터 지냈는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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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용호 마을에 있는 조탑. 야사리 용호 조탑[돌탑]은 마을 어귀에 원형의 탑을 쌓고 그 위에 입석을 올려놓은 것으로 마을 지킴이로서의 성격이 강한 귀중한 지역 문화유산이다. 이서 면사무소에서 이서천 건너편에 있는 용호 마을은 ‘도룡굴’이라고도 부르며, 산사 마을과 마주보고 있다. 풍수지리상으로 용이 물을 먹으러 내려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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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를 중심으로 세거하는 진주 하씨 집성촌. 야사 마을은 처음에 평사라 했고 이후 금사, 사촌, 사천이라 하다가 야사라 했다고 한다. ‘야사’는 들모실의 뜻이다. 1600년경 진주 하씨 사간공파 하윤구(河潤九)[1570~1646]가 영신에서 입향하여 금사정(錦沙亭)을 짓고 거주하면서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입향조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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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의 규봉암이 훤히 올려다보이는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초입에 ‘연정 국악 연수원’이라는 푯말이 보인다. 그리고 그곳에는 전라남도 무형 문화재 가야금 산조 제47호 예능 보유자 선영숙 명인이 살고 있다. 처음에 그곳을 찾을 때는 국악 연수원이라고 하기에는 평범한 양옥집의 외관에다 마을 가운데 들어서 있어서 이곳이 맞나 싶었지만, 이내 마을의 다른 집들과 나란히 모양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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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에 은거한 문인.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겸숙(謙叔), 호는 야옹(野翁). 안축(安舳)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안중돈(安重敦)이고, 아버지는 우산(牛山) 안방준(安邦俊)이다. 어머니는 경주 정씨(慶州鄭氏) 정승복(鄭承復)의 딸이고 부인은 김의명(金義鳴)의 딸이다. 안익지(安益之)[1608~1687]는 효우(孝友)가 뛰어나고 재주가 명민하였다. 아버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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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용곡리 약수 마을에서 샘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용곡리 약수 이야기」는 몸은 비록 불구지만 효심이 깊은 맹씨가 꿈속에서 금방울을 얻었는데, 실제로 매를 얻어 사냥을 하였다는 신이담과 매가 들어간 동굴 안의 샘물로 자신의 몸을 고치고, 맹인인 어머니까지 치료하였다는 효행담이 합쳐진 이야기이다.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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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화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字)는 약우(若祐), 호(號)는 수졸(守拙). 교리(校理) 운곡(雲谷) 조호(曺浩)의 8세손이고, 조창적(曺昌績)의 아들이다. 조홍천(曺弘天)[?~?]은 천성이 인자하고 효성스러워 몸소 음식을 바치고 봉양하였다. 부모님의 병환이 위급하여 손가락을 끊어 피를 드려 회생시켰다. 부모의 상(喪)을 당하여 묘에 움막을 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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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천백(遷伯), 호는 육화(六化).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후예이다. 할아버지는 남주 고사(南州高士) 양지남(梁砥南)이며, 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양우규(梁禹圭)이다. 양지남은 은봉(隱峰) 안방준(安邦俊)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양거안(梁居安)[1652~1731]은 경사(經史)를 널리 섭렵하여 문사(文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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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덕수(德受), 호는 양곡(良谷). 청심당(淸心堂) 이조원(李調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동표(李東杓)이고 어머니는 장흥 고씨 고경진(高敬鎭)의 딸이다. 생부는 이동고(李東高)이다. 이승복(李承福)[1886-1961]은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으며, 종형인 죽곡(竹谷)에게서 수학하였고, 자라서는 일신재(日新齋) 정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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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춘양면 양곡리는 단양(丹陽)·장곡(長谷)·해하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양곡리의 지명은 단양 마을의 양(陽)자와 장곡 마을의 곡(谷)자를 합하여 양곡리라 하였다. 단양 마을은 원래 템부라 부르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다년부(多年富)라고 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점촌이라고도 했다. 원래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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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양곡리 단양 마을에서 음력 정월 14일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 화순군 춘양면 양곡리 단양 마을에서는 마을 공동의 제의를 ‘당산제’라 하여 음력 정월 14일 밤에 천룡과 할머니 당산에 유교식으로 제를 지낸다. 당산제를 언제부터 행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마을이 생긴 이래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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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양곡리 단양 마을에 있는 선돌. 단양 마을에서는 마을 앞과 중앙에 있는 액을 막아주는 선돌 2기를 ‘선독’이라고 부르고, 이 선돌이 있는 곳을 ‘선독거리’ 혹은 ‘선독배미’라고 칭한다. 마을 뒤쪽에 위치한 선돌은 ‘뒷선독’이라 부른다. 새마을 사업을 하던 중 마을 앞에 위치한 선돌 1기를 넘어뜨렸는데, 이후 마을의 개가 성치 않아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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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양농주(梁弄珠)[1875~?]는 말과 행동이 무거웠고 맵시가 뛰어나 재색을 겸비한 명기로 이름을 날렸다. 가무에 능했으며 가곡과 가사에 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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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에 있는 효열 사적비. 근대 인물 제주 양씨 양동묵[1880~1911]의 처 죽산 안씨[1886~1934]의 효열 사적비로 1966년에 세웠다. 죽산 안씨는 안택환의 딸로, 1906년에 부군이 창의하였으나 얻은 병이 악화되어 일어나지 못하자 자결하려 하다가 시할머니, 시어머니, 세 자녀가 있어서 마음을 고쳐먹고는 대상을 극진히 치렀으며 세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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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 무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득일(得一), 호는 북애정(北涯亭).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양제용(梁濟容)이고, 어머니는 광산인 김잠(金潛)의 딸이다. 여흥인 민숭경(閔崇慶)의 딸과 혼인하였다. 양두남(梁斗南)[1578~1640]은 화순 출신으로,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하여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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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제주, 자는 명우(明宇)이다. 할아버지는 양팽손(梁彭孫)이고, 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 양응필(梁應畢)이다. 양산욱(梁山旭)[1551~1606]은 임진왜란 때 화순의 유위장(留衛將)으로 단양역까지 진군하여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의병장 최경회(崔慶會)에게 인솔해 간 군졸을 귀속시키고 군량을 실어 보내는 등 왜군 격퇴의 일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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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전지(甸之), 호는 오봉(鰲峰).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5대손이며, 양응기(梁應箕)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구봉(九峰) 양위남(梁渭南)이고, 어머니는 남평 문씨(南平文氏) 문관도(文貫道)의 딸이다. 부인은 강화 최씨(江華崔氏) 최동헌(崔東獻)의 딸이다. 양우전(梁禹甸)[1595~1672]은 가업을 잘 계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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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경섭(景涉), 호는 구봉(九峯).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현손이다. 양응기(梁應箕)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양인용(梁仁容)이고, 어머니는 풍산 홍씨(豊山洪氏) 홍진(洪縝)의 딸이다. 부인은 남평 문씨(南平文氏) 문관도(文貫道)의 딸이다. 양위남(梁渭南)[1574~1633]은 어려서부터 재기(才氣)가 남달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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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공섭(公燮), 호는 송천(松川). 양담(梁湛)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양이하(梁以河)이고, 아버지는 교리 양팽손(梁彭孫)이며, 어머니는 금산 김씨(錦山金氏) 김섬(金銛)의 딸이다. 동래 부사 양응태(梁應台)의 아우로 능주 월곡리에서 태어났다. 양응정(梁應鼎)[1519~1581]은 재주와 지혜가 총명하여 5세에 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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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숙전(叔躔), 호는 후포(後圃). 양담(梁湛)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양이하(梁以河)이고, 아버지는 교리 양팽손(梁彭孫)이며, 어머니는 금산(錦山)김씨 김섬(金銛)의 딸이고, 부인은 광산 김씨이다. 양응정(梁應鼎)의 형이다. 양응태(梁應台)[?~?]는 타고난 자질이 영특하여 문사를 일찍 성취하고, 경전의 뜻을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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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에 있는 전주 이씨 문중 재각. 양이재(兩履齋)는 전주 이씨 완창 대군 순양군파 회에서 관리하고 있는 전주 이씨 문중 재각이다. 1918년 건립되었으며 재각 뒤편으로는 문중 묘가 있다. 양이재는 화순역에서 앵남리로 넘어가는 땀재 정상에서 남쪽에 보이는 종괘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일명 밀암동이라고도 한다. 건립 이후 큰 변화는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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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제주(濟州). 호는 수월당(睡月堂). 고려 때 유격장군(遊擊將軍)이었던 양보숭(梁保崇)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사복시 정(司僕寺正) 양담(梁湛)이다. 아들은 양팽손(梁彭孫)이다. 양이하(梁以河)[?~?]는 당시에 학교가 퇴폐하고 학술(學術)이 지리멸렬하게 되어 후학을 진작시켜 지도할 방책이 없음을 개탄하고, 학문을 일으키고 영재를 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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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여함(汝涵), 호는 송석정(松石亭). 양팽손(梁彭孫)의 증손으로 호조 참판(戶曹參判) 양산립(梁山立)의 아들이다. 양인용(梁仁容)[1555-1615]은 학식이 풍부하고 지조가 뚜렷하였다. 조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첨정을 지내다가 광해군 때 고향인 화순에 내려와 송석정(松石亭)을 축조하고 그곳에서 시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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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여정(汝正), 호는 희암(希庵). 학포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양귀모(梁龜模)이며, 아버지는 양준묵(梁俊默)이고, 어머니는 하동 정씨(河東鄭氏) 정승렬(鄭承烈)의 딸이다. 양재경(梁在慶)[1859~1918]은 타고난 자질이 탁월하여 스승에게 나아가 수학할 때 요지를 해득하고 송독함에 있어서는 물이 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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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순집(順集), 호는 화은(華隱),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이고, 양제묵(梁悌默)의 아들이다. 양재해(梁在海)[1854~1924]는 면암(勉庵) 최익현(益鉉)의 문인이다. 1906년(광무 10)에 스승 최익현이 태인 무성 서원(武城書院)에서 거의할 때 합류했다. 하지만 남원에서 관군의 공격을 받아 패하게 되었다. 최익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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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양제용의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여공(汝恭), 호는 칠송(七松). 양팽손(梁彭孫)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봉사(奉事) 양산욱(梁山旭)이다. 양제용(梁悌容)[?~?]은 1627년(인조 5)에 발발한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거의(擧義)하여 근왕(勤王)한 바 있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옥과 현감(玉果縣監) 이흥발(李興浡)과 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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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자경(子擎), 호는 사송(四松).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양효용(梁孝容)이고, 어머니는 송제민(宋齊民)의 딸이다. 양주남(梁柱南)[1610~1656]은 안방준(安邦俊)의 문인으로, 김집(金集),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의 문하(門下)에도 출입했다고 한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스승인 안방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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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전승되고 있는 양재(禳災)와 주술(呪術) 등 토속 신앙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책. 『양주방』은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전승되고 있는 토속 신앙과 관련한 각종 자료를 모아서 정리한 책이다. 세시, 신수, 사주, 관상 등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토속 신앙이 알기 쉽게 서술되어 있다. 멸실 위기에 놓인 전라남도 화순 지역 민속자료들을 찾아 정리하여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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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제주. 자는 경원(景遠), 호는 만희재(晩羲齋)·재원(梓園)·학음(鶴陰). 학포 양팽손(梁彭孫)의 후예이다. 아버지는 양윤주(梁潤周)이고 어머니는 진주 김씨 김시향(金時香)의 딸이다. 양진영(梁進永)[1788~1860]은 4세에 다른 사람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스스로 문자를 깨달았고, 6세에는 8괘(八卦)와 6갑(六甲)을 외웠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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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삶은 흑염소 고기와 토란대, 머위대, 깻잎, 부추 등을 넣어 만든 탕. 국은 어패류나 채소류 등을 넣고 끓인 국물 요리이다. 곰에서 찌개와 국으로 분화되어 발달되었으며, 찌개는 국보다 국물이 적고 건더기가 많은 것을 말한다. 국은 갱과 탕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구 기준은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와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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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대춘(大春), 호는 학포(學圃). 직장 양사위(梁思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양담(梁湛)이고, 아버지는 양이하(梁以河)이며, 어머니는 해주인(海州人) 최혼(崔渾)의 딸이다. 시호는 혜강(惠康)이다. 양팽손(梁彭孫)[1488~1545]은 송흠(宋欽)의 문인으로,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신동이라고 불렸는데, 송흠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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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화순군 능주면 출신의 문신·학자인 양팽손의 시문집. 양팽손(梁彭孫)[1488~1545]의 자는 대춘(大春), 호는 학포(學圃)이다. 중종 대의 문신으로 조광조(趙光祖)[1482~1519]가 유배되었을 때 곁에서 함께했다. 조광조가 타계하자 학포는 조광조의 사신(捨身)을 수습하였다. 송흠(宋欽)[1459~1547] 문하에서 수학했고,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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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양팽손 후손인 제주 양씨 종가에서 매년 음력 8월 18일에 모시는 양팽손 기제사. 양팽손 불천위 제례를 ‘부조묘 제사’, ‘학포 선생 제사’, ‘큰할아버지 제사’라 부른다. 매년 음력 8월 18일 오전 11시부터 12시에 모신다. 30여 년 전에는 제일 새벽에 모셨으나 제례를 문중이 주도하면서 시간을 변경하여 모시고 있다.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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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양팽손 후손인 제주 양씨 종가에서 매년 음력 8월 18일에 모시는 양팽손 기제사. 양팽손 불천위 제례를 ‘부조묘 제사’, ‘학포 선생 제사’, ‘큰할아버지 제사’라 부른다. 매년 음력 8월 18일 오전 11시부터 12시에 모신다. 30여 년 전에는 제일 새벽에 모셨으나 제례를 문중이 주도하면서 시간을 변경하여 모시고 있다.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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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기녀. 양학(梁鶴)[1875~?]은 제주 양씨로서 인품이 단아하고 학문 또한 깊었다고 한다. 시조·가곡·가사에 능통했으며 한시와 사군자에도 능하여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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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으로 화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제주. 자(字)는 길중(吉仲)·경조(景朝), 호(號)는 지강(芝江). 아버지는 양상태(梁相泰)이고 어머니는 낭주 최씨(郎州崔氏)이고 부인은 풍산 홍씨이다. 양한묵(梁漢默)[1862~1919]은 1895년 탁지부 주사가 되어 1895년 능주에서 세무관으로 근무하였다. 1897년 사직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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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에 있는 3·1 운동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지강 양한묵의 무덤. 양한묵(梁漢默) [1862~1919]은 1919년 3·1 운동을 일으킨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 선언서」에 서명하고 3월 1일 태화관에서 개최된 독립 선언식에 참여한 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26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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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에서 활동했던 학자. 본관은 제주(濟州). 초명은 회을(會乙), 자는 원숙(元淑), 호는 정재(正齋). 학포 양팽손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양호묵(梁虎黙)이며, 아버지는 현재(弦齋) 양재덕(梁在德)이다. 양회갑(梁會甲)[1884~1961]은 재주와 지혜가 총명하고 영특하여 문리를 일찍부터 성취하였다. 6세부터 할아버지인 양호묵(梁虎黙)에게서 글을 배웠고, 일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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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상류 주택. 양회두 가옥은 학포 양팽손[1488~1545]의 8대손인 양명구[1710~1794]가 건립한 가옥이다. 당시 양명구는 만석꾼의 대지주로서 양동호·양승수 가옥 등 양씨 문중의 여러 가옥 건립에도 관여하였다고 전해진다. 골짜기에 조성된 월곡 마을을 진입하면 화순 양동호 가옥, 화순 양승수 가옥이 우측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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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처중(處仲), 호는 동계(東溪).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양재욱(梁在郁)이고, 어머니는 안협(安浹)의 딸이다. 한말 의병장 양회일(梁會一)의 동생이다. 양회락(梁會洛)[1862~1935]은 천성이 총명하고 행동거지가 심중하였으며, 10세에 경전을 통달하였다.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과 노백헌(老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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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이견(而見), 호는 연파(蓮坡).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양재욱(梁在郁)이다. 양회일(梁會一)이 형이다. 양회룡(梁會龍)[1881~1959]은 1907년에 형 양회일과 함께 화순군 이양면 쌍산리에서 의병을 모아 거의하였다. 그 후 능주, 화순, 동복의 관아 등을 공격하였고, 광주(光州)로 진군하던 도중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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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제주. 자는 녹여(祿汝), 호는 죽촌(竹村). 양팽손(梁彭孫)의 후예이고, 아버지는 양재연(梁在淵)이다. 양회익(梁會益)[1861~?]은 용모가 단아하고 재주가 뛰어나 사서(四書)·육경(六經)·제자백가(諸子百家)를 두루 섭렵하였다. 시문(詩文)을 잘 지었고 특히 필법이 오묘하였다. 1888년(고종 25)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고,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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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해심(海心), 호는 행사(杏史).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양재욱(梁在郁)이다. 양회룡(梁會龍)이 동생이다. 양회일(梁會一)[1856년~1908]은 1883년(고종 20)에 쌍봉으로 이사한 후에 근 10여 년을 서울에서 보냈다. 1901년에 다시 쌍봉으로 돌아와 1904년 도적들이 횡행하자 도약장(都約長)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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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회총(梁會鏦)[1919~?]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 공립 보통학교 재학 중인 1936년 동맹 휴학을 주도하였다. 이 때문에 국내 진학이 어렵게 되자 도일하여 동경 정칙 중학교(正則中學校)에 입학하였으나, 1937년 항일적 내용이 담긴 일기장이 발각되어 40일간 구금되고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지바현[千葉縣] 소재 명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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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청풍면 어리는 어촌(漁村)·금동의 2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어리의 지명은 어촌 마을의 어(漁)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어촌 마을은 어릿물이라 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마을 뒷산에 삿갓봉과 꾸덕봉이 있고 옆으로는 황새등과 당산등이 있는데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황새등은 잉어형, 당산등은 낚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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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어리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어리 고인돌 떼는 마을 입구 신안 주씨의 선산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어리 전272번지와 임273-1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어리 고인돌 군은 신안 주씨 묘역을 중심으로 12기가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고인돌 상석의 장축 방향은 대부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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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어리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어리 고인돌 떼는 마을 입구 신안 주씨의 선산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어리 전272번지와 임273-1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어리 고인돌 군은 신안 주씨 묘역을 중심으로 12기가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고인돌 상석의 장축 방향은 대부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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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는 영유아 보육 기관. 어린이집 초창기에는 취업모(就業母)가 필요할 때 아이를 맡긴다는 의미에서 탁아소(託兒所)라 불렀으나, 어린이의 보호와 교육을 위한 기관이라는 의미를 강화하고자 하는 정부 방침에 의하여 1968년 어린이집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1982년부터 한동안 새마을 유아원으로 지칭되기도 하였으나 1991년에 「영유아 보육법」에 의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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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만연리에 있는 여성 및 가족 문제 상담 민간 여성 복지 시설. 전라남도 화순 지역 여성들의 복지 증진을 도모하고, 증가하는 가정 폭력과 여성 폭력의 예방을 위해 상담과 교육·법률 지원 등을 목적으로 2003년 6월 9일 민간에 의해 설립 운영되고 있다. 화순군 관내에서 가정 폭력 피해 여성이 증가하고 이에 따른 가정의 위기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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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동면 언도리는 언동(彦洞)·오도미(吾道味) 등 2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언도리는 언동 마을의 언(彦)과 오도미 마을의 도(道)를 각각 취하여 이름을 만들었다. 언동 마을은 용등(龍登), 또는 예산(禮山)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언동 마을의 뜻은 큰 마을이라는 뜻으로 엉굴[어은굴]과 같은 의미[큰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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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언도리 오도미 마을을 중심으로 세거하는 문화 유씨 집성촌. 오도미 마을은 윗마을이란 뜻의 ‘우데미’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유봉운(柳鳳運)[1713~1793]을 입향조로 하여 세대를 이어오는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언도리의 문화 유씨 집성촌이다. 1730년경 유봉운이 화순현 동면 하서 마을에서 분가하여 오도미 마을로 입향하여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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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언도리 오도미 마을에서 음력 정월 14일 자정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 화순군 동면 언도리 오도미 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14일 밤 9시경에 당산 할머니와 당산 할아버지 앞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지금까지 제일을 옮긴 적은 없으며 마을에 초상이 나더라도 그 집만 당산제에 참여하지 못하고 당산제는 그대로 진행된다. 제관은 정초에 마을 회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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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방송, 신문, 잡지, 인터넷, 인쇄물 등의 매체를 통해 사실을 전달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전라남도 화순군에는 중앙 종합 일간지와 지방 종합 일간지, 지역 신문 등의 언론 매체가 있으며, 연속 간행물과 향토지, 조사 보고서 등 화순과 관련한 출판물이 있다.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 신문이 보급된 것은 개화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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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사용하는 서북 방언에 해당하는 언어. 방언은 특정 지역에서 사용하는 말을 일컫는 용어로, 표준어와 대치되는 개념이다. 전라남도 지역 방언의 특징은 ‘ㅔ’를 ‘ㅣ’로 발음한다. 예를 들어 ‘게’를 ‘기’로, ‘베개’를 ‘비개’, ‘베어 먹다’를 ‘비어 먹다’ 등으로 발음하며, 종결 어미 반말에 해당하는 ‘-랑께’와 ‘해요’ 체에 해당하는 ‘~라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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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액을 막기 위해 안방 문 위에 엄나무 가지를 걸어두는 풍속.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궂은 사람이나 잡귀, 역귀(疫鬼)가 집안으로 범접하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엄나무를 걸어 두는 풍속이다. 예로부터 엄나무 줄기나 가지에는 날카롭고 굵은 가시가 촘촘히 나 있어 잡귀나 병마가 이 나무를 보면 무서워 감히 범접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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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액을 막기 위해 안방 문 위에 엄나무 가지를 걸어두는 풍속.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궂은 사람이나 잡귀, 역귀(疫鬼)가 집안으로 범접하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엄나무를 걸어 두는 풍속이다. 예로부터 엄나무 줄기나 가지에는 날카롭고 굵은 가시가 촘촘히 나 있어 잡귀나 병마가 이 나무를 보면 무서워 감히 범접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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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액을 막기 위해 안방 문 위에 엄나무 가지를 걸어두는 풍속.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궂은 사람이나 잡귀, 역귀(疫鬼)가 집안으로 범접하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엄나무를 걸어 두는 풍속이다. 예로부터 엄나무 줄기나 가지에는 날카롭고 굵은 가시가 촘촘히 나 있어 잡귀나 병마가 이 나무를 보면 무서워 감히 범접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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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재복(財福)을 관장한다고 믿는 신. 화순군에서의 업은 성주, 조상, 조왕, 삼신에 비해 그 신앙의 강도가 약하며 정기적으로 의례를 거행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업은 구렁이나 두꺼비, 족제비 등의 동물로 형상화되는데 주로 구렁이로 나타난다. 업은 일정한 거처 없이 집안의 광이나 지붕의 용마름 밑 등 집안 어딘가에 존재한 것으로 믿으며 조심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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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감도리에 있는 화장품 제조 기업. 에코 산업은 화장품, 화장품 관련 제품, 바이오 관련 제품 등을 제조, 판매하는 기업이다. 화장품 제조 및 판매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2009년 4월 20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오선동에 에코 산업을 설립하였다. 2010년 2월 벤처 기업 확인을 받았다. 2010년 11월 12일 기업 부설 연구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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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양제용의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여공(汝恭), 호는 칠송(七松). 양팽손(梁彭孫)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봉사(奉事) 양산욱(梁山旭)이다. 양제용(梁悌容)[?~?]은 1627년(인조 5)에 발발한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거의(擧義)하여 근왕(勤王)한 바 있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옥과 현감(玉果縣監) 이흥발(李興浡)과 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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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과 도곡면 일대에 있었다고 비정되는 삼한 시대 마한의 소국. 마한 지역에는 기원전 2세기 말엽부터 기원전 1세기 무렵 본격적인 철기 문화 단계에 이르러 원시적인 공동체가 붕괴되고 소국, 혹은 성읍 국가(城邑國家)라고 하는 정치체들이 등장하였다.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에 따르면 전라남도 지역에는 상당한 숫자의 소국이 존재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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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화순 전남 대학교 병원에 있는 화순 오성 초등학교와 화순 제일 중학교에서 운영하는 병원 학교. 여미 사랑 병원 학교는 전라남도 화순 교육 지원청과 화순 전남 대학교 병원의 협의 하에 건강 장애로 장기 치료를 받고 있는 학생들에게 학업의 연속성 및 또래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여 학습 결손 및 출석 부담감을 최소화시키고 심리적·정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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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일대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지방 군현. 여미현(汝湄縣)은 백제 때의 잉리아현(仍利阿縣)으로,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여미현으로 이름을 고쳤다. ‘여미(汝湄)’ 외에 ‘여빈(汝濱)’ 등으로 불렸으며, 능성군(綾城郡)의 관할 아래에 있었다. 신라는 통일을 달성한 후 전국을 9주로 나누어 지배하였고, 옛 신라 지역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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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일대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지방 군현. 여미현(汝湄縣)은 백제 때의 잉리아현(仍利阿縣)으로,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여미현으로 이름을 고쳤다. ‘여미(汝湄)’ 외에 ‘여빈(汝濱)’ 등으로 불렸으며, 능성군(綾城郡)의 관할 아래에 있었다. 신라는 통일을 달성한 후 전국을 9주로 나누어 지배하였고, 옛 신라 지역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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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김학섭(金鶴燮)[?~?]의 호는 여송(與松)으로 박식한 선비로 존경받았다. 일본 유학시절에는 항일운동을 한 애국 지사이기도 한 김학섭은 고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판소리에 조예가 깊었다. 「춘향가」 중 범피중류가 특징이었다고 한다. 가곡과 가사에도 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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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능주 목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여수(汝受). 아버지는 신이명(愼爾明)이다. 신유익(愼惟益)[1671~?]은 1693년(숙종 19)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이듬해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01년 5월 무장 현감으로 부임하고 여러 지역의 수령을 거쳐 사헌부 장령을 지냈다. 1722년 9월 능주 목사로 부임하고, 1723년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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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여옥(如玉), 호는 천은(川隱). 충간공(忠簡公) 배문우(裴文祐)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배수철(裴壽鐵)이고 아버지는 배응인(裴應絪)이다. 배구(裵玖)[1569~1640]는 사림의 천거로 사옹원 참봉을 제수받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1636년(인조 14)에 조수성(曺守誠)과 함께 창의하여 화순 지역에서 병사 50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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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동복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여옥(汝沃), 호는 금사(錦沙). 군수(郡守) 하치(河治)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참군(參軍) 하대표(河大豹)이며, 어머니는 경주 배씨(慶州裵氏)이다. 하윤구(河潤九)[1570~1646]는 타고난 자질이 탁월하고, 기우가 단정하였으며, 어려서부터 학문하길 좋아하였다. 문장을 일찍 성취하여 약관의 나이에 정구(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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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여은(汝恩), 호는 삼희당(三希堂). 은봉(隱峰) 안방준(安邦俊)의 9대손으로, 아버지는 안순(安栒)이고, 어머니는 수원 백씨(水原白氏) 백진훈(白鎭勳)의 딸이다. 부인은 밀양 박씨(密陽朴氏) 박현수(朴賢秀)의 딸이다. 안택환(安澤煥)[1844~1917] 은 자질이 순박하고 성품이 인후하였다. 어려서 백부(伯父) 안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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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네 씨는, 젊은 시절에 읍내라도 나갈 요량이면 미용실에 들러서 ‘고대’를 했다. 고대는 젓가락처럼 생긴 도구를 불에 가열해서 머리카락을 둥글게 마는 것을 말하는데, 마을 안에 미용실이 두 개나 있어서 천운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인근 시골 마을에서도 머리를 만지러 왔다. 당시에 천운 마을 여자들이 미용실에서 ‘고데’를 하고 외출을 했다면, 남자들은 양복점에서 맞춘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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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여정(汝正), 호는 희암(希庵). 학포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양귀모(梁龜模)이며, 아버지는 양준묵(梁俊默)이고, 어머니는 하동 정씨(河東鄭氏) 정승렬(鄭承烈)의 딸이다. 양재경(梁在慶)[1859~1918]은 타고난 자질이 탁월하여 스승에게 나아가 수학할 때 요지를 해득하고 송독함에 있어서는 물이 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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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여즙(汝楫), 호는 칙이당(則以堂). 집의(執義) 민회삼(閔懷蔘)의 후예이다. 민백희(閔百爔)의 손자이고 병조참판 민주현(閔冑顯)의 아들이다. 민부(閔埠)[1845~?]는 가학을 계승하여 학문에 뛰어났고 문장에도 능하였다. 1876년(고종 13)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내려오는 길에 고산(鼓山) 임헌회(任憲晦)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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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여지도』에 포함된 화순군 능주 지역의 지도. 『여지도』는 ‘비경위선 표식 군현 지도집’으로 전국 모든 군현을 비교적 작은 크기로 그린 18세기에 제작된 지도책이다. 이용에 매우 편리한 장점을 지녔으며, 군현 지도의 보급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화순 지역의 옛 모습은 조선 8도의 대축척 군현 지도가 수록된 『여지도』 2첩 중 전라도 부분의 「능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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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여지도』에 포함된 화순군 동복 지역의 지도. 『여지도』는 비경위선 표식 군현 지도집으로 전국 모든 군현을 비교적 작은 크기의 지도책에 그림으로써 이용에 매우 편리한 장점을 지닌다. 이를 통해 군현 지도의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의 『여지도』는 3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3첩 중 2첩은 팔도가 경기도·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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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여지도』에 포함된 화순 지역의 지도. 『여지도』는 비경위선 표식 군현 지도집으로 전국 모든 군현을 비교적 작은 크기의 지도책에 그림으로써 이용에 편리한 장점을 지닌다. 이를 통해 군현 지도의 보급에 기여하였으며, 지지적인 내용을 지도 뒷면에 상세하게 기록함으로써 지지를 지도의 부록으로 활용하여 지도만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각 지역에 대한 역사·사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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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화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신평(新平). 자(字)는 여진(汝眞)이고, 호(號)는 운호(雲湖).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를 지낸 송자은(宋自殷)의 후손이다. 송상언(宋相彦)[?~?]은 어버이를 섬김에 지극한 효도로써 하고, 부모님께서 병에 드시니 수십 년 동안 약 시중을 한결같이 하였다. 병이 매우 심해져서 하늘에 기원하니 천신(天神)이 감응하였다. 부모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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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여징(汝徵), 호는 경암(敬菴)·송계(松溪). 충숙공(忠肅公) 문익점(文益漸)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진사(進士) 문검(文儉)이고, 어머니는 청주 한씨로 예조 판서(禮曹判書) 한엽(韓曄)의 딸이다. 문홍헌(文弘獻)[1551~1593]은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582년(선조 15) 진사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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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여함(汝涵), 호는 송석정(松石亭). 양팽손(梁彭孫)의 증손으로 호조 참판(戶曹參判) 양산립(梁山立)의 아들이다. 양인용(梁仁容)[1555-1615]은 학식이 풍부하고 지조가 뚜렷하였다. 조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첨정을 지내다가 광해군 때 고향인 화순에 내려와 송석정(松石亭)을 축조하고 그곳에서 시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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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삼천리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 회관. 여호와의 증인은 천년 왕국 신앙, 성서적 엄격 주의 등 미국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독특한 흐름을 바탕으로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발생한 기독교 종파의 하나로, 공식 이름은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이다. 1872년 찰스 러셀(C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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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병인양요 때 활동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여화(汝化), 호는 송곡(松谷). 죽림(竹林) 조수문(曺秀文)의 후손이고, 조령원(曺齡源)의 아들이다. 조병섭(曺秉燮)[?~?]은 병인양요에 창의(倡義)하여 강화(江華)에 이르렀으나 강화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면서 돌아왔다. 1869년(고종 6) 광양 농민 봉기(光陽農民蜂起)에 화순 현감(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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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역사.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역사는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선사 시대와 문자 기록이 있는 역사 시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선사 시대의 경우 발굴된 유적과 유물을 통해서 보면 구석기 중기인 약 5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한반도에서는 청동기 시대에서 초기 철기 시대에 삼한 소국들이 형성되었다고 추정되는데, 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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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 설치·운영되었던 교통·통신 기관. 화순 지역에는 조선 시대에 화순현·동복현·능주목 등 3개의 고을이 있었는데, 화순현에는 가림역(加林驛)·신원(新院)·내화원(乃火院)·고자원(古者院)·삼원(三院)이 있었고, 동복현에는 검부역(黔富驛)·남비원(攪轡院)·방석원(方席院)·남덕원(南德院)·사평원(沙坪院)·여점원(餘岾院)이 있었으며, 능주목에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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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에 있는 창녕 조씨 사당. 부일사는 조선 세종 때 병조 판서를 지낸 조흡(曺恰)을 주벽으로 조대중(曺大中), 조수성(曺守誠), 조성홍(曺誠弘), 조황(曺煌) 등을 배향하는 창녕 조씨 사우이다. 1785년(정조 9)에 고을 유림의 발의로 역정사(櫟亭祠)를 건립하였고 1868년(고종 5)의 서원 철폐 명령으로 훼철되었다. 후손들이 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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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승려. 법호 연경(演瓊)만 전해지고, 세속의 성, 법명 등은 알려진 것이 없다. 연경(演瓊)[?~?]은 화순군 이서면 월산리[당시 동복면 내서면 경산]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규봉암 중창 상량기(圭峰庵重創上樑記)」가 남아 있어 화순 출신 승려인 연경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규봉암 중창 상량기」에 의하면,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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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만수리에 있는 배석면(裵錫冕)의 강학소. 배석면(裵錫冕)[1885~1978]이 강학의 장소로 활용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자는 순문(純文), 호는 노암(魯庵), 본관은 달성(達城)으로 일신재(一新齋) 정의림(鄭義林)의 문인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서 태어났다. 수산 정사에 관한 한시 원운이 남아 있는데, 다음과 같다. 일사구성죽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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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무대 위 배우가 관객에게 보여주는 종합 예술이자 행위 예술. 전라남도 화순군의 연극 활동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청년 운동 단체에 의해 시작된 소인극에서 비롯되었다. 소인극(素人劇)은 전문 배우가 아닌 사람들이 하는 연극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회 혁신과 계몽 차원에서 기획·연출된 연극을 말한다. 일제 강점기 화순군의 연극 활동은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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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청소년들이 정월 초부터 보름 사이에 바람이 잘 부는 넓은 들판이나 언덕에서 연을 만들어 줄을 달아 하늘 높이 날리는 민속놀이. 연날리기는 정초에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갖가지 모양의 연을 하늘 높이 띄우며 노는 민속놀이다.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 사이에 주로 즐겼으며, 그해의 재난을 멀리 보낸다는 뜻에서 송액이라 쓴 연을 띄워 일부러 연줄을 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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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승려. 자는 무이(無二), 법호는 연담(蓮潭). 속세의 성은 천씨(千氏)이다. 유일(有一)[1720~1799]은 화순군 적천리에서 태어났다. 『통감』·『대학』·『맹자』·『중용』 등 유가 경전을 공부하였다. 1737년 18세에 승달산 법천사(法泉寺)의 성철(性哲)을 따라 출가하였고, 이듬해 안빈 노사(安賓老師)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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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동복면 연둔리는 연동·둔동 2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연둔리의 지명은 연동 마을의 연(蓮)과 둔동 마을의 둔(屯)을 각각 취하여 만들어졌다. 둔동 마을에는 과거 군인들이나 역민(驛民)들이 경작하는 둔전이 있었다. 이 둔전에서 나온 생산물로 군대나 역을 운영하도록 했다. 둔전이 있어 둔골이라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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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화순읍 연양리는 연동(蓮洞)·양촌(陽村) 2개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연양리의 지명은 연동 마을의 연(蓮)자와 양촌 마을의 양(陽)자를 각각 취한 것이다. 연동 마을은 마을 가운데 연못이 있고 연방죽이 있어 방죽골이라 부르다가 연꽃 연(蓮)자를 취하여 연동이라 하였다. 양촌 마을은 햇볕이 잘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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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연양리 양촌 마을에서 음력 정월 14일 자정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 화순군 화순읍 연양리 양촌 마을에서는 ‘당산제’라 하여 매년 음력 정월 14일 자정에 할아버지 당산과 할머니 당산 앞에서 제를 지낸다. 당산제를 지내기 1주일 전에 마을 회의를 통해 헌관, 축관, 화주 세 사람을 선출하며 제비는 마을 각 호에서 갹출하고 부족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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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연양리에 위치한 삼국시대 무덤 유적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연양리 양촌 마을 북쪽 구릉에 위치하였으나 발굴 조사 후 도로가 개설되면서 소멸되었다. 능주·화순 간 도로 공사와 관련하여 1997년 전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를 실시한 다음 1999년 전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여 2기의 옹관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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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동복면 연월리는 월송(月松)·복녕(福寧)·연곡(蓮谷)·도수동(倒水洞) 등 4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나 도수동 마을은 폐촌이 되었다. 연월리의 지명은 연곡 마을의 연(蓮)과 월송 마을의 월(月)을 각각 취한 것이다. 월송 마을은 월송쟁이라 불러졌는데, 마을이 반달 형국이고 소나무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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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화순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연지(年之), 호는 동계(東溪).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의 후손으로, 진사 임회(林檜)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임명(林蓂)이다. 임대년(林大年)[1539~?]은 1606년(선조 39)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주부(訓練院主簿)가 되었다. 전라남도 화순군 대리 대동 마을로 이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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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연화리에 있는 황채오의 강학소. 연촌 정사는 장수 황씨 연촌(蓮村) 황채오(黃采五)[1895~1965]가 1963년에 건립하고 강학하던 곳이다. 정사에는 1963년에 황채오가 쓴 「연촌 자서」와 「하계당 추서」가 걸려 있다. 황채오의 자는 성백(性伯), 호는 연촌(蓮村), 본관은 장수이다. 1895년 능성의 도림리에서 황하원의 아들로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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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이견(而見), 호는 연파(蓮坡).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양재욱(梁在郁)이다. 양회일(梁會一)이 형이다. 양회룡(梁會龍)[1881~1959]은 1907년에 형 양회일과 함께 화순군 이양면 쌍산리에서 의병을 모아 거의하였다. 그 후 능주, 화순, 동복의 관아 등을 공격하였고, 광주(光州)로 진군하던 도중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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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이양면 연화리는 쥐암골[하추동]·뒷마을[둣물]·연화동(蓮花洞)·샛터·추동 등 5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뒷마을과 샛터 마을은 폐촌이 되었다. 연화리의 이름은 연화동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연화동 마을은 처음에 제비연소가 있어서 연화리(鳶花里)라고 했으나, 연화도수(蓮花倒水) 형국의 이름을 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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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연화리에 있는 선돌. 연화리에서는 액운을 막아주는 선돌을 ‘선독’이라고 부른다. 또한 선돌이 있는 곳을 ‘선독거리’라고 부른다. 마을 도로 변 양쪽에 선돌 2기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선돌 1기, 즉 선돌 3기가 전해져 왔다. 현재 선돌 1기만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연화리 선돌은 마을로부터 북쪽 도로변에 위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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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연화리에 있는 선돌. 연화리에서는 액운을 막아주는 선돌을 ‘선독’이라고 부른다. 또한 선돌이 있는 곳을 ‘선독거리’라고 부른다. 마을 도로 변 양쪽에 선돌 2기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선돌 1기, 즉 선돌 3기가 전해져 왔다. 현재 선돌 1기만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연화리 선돌은 마을로부터 북쪽 도로변에 위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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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연화리에 있는 선돌. 연화리에서는 액운을 막아주는 선돌을 ‘선독’이라고 부른다. 또한 선돌이 있는 곳을 ‘선독거리’라고 부른다. 마을 도로 변 양쪽에 선돌 2기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선돌 1기, 즉 선돌 3기가 전해져 왔다. 현재 선돌 1기만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연화리 선돌은 마을로부터 북쪽 도로변에 위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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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주사에 있는 이형 석탑. 운주사는 한 계곡에 수많은 석불과 석탑이 무리지어 있다는 점이나 토속적인 조형성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스러운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처럼 운주사는 워낙 신비스러운 사찰인지라 석탑의 건립 배경이나 건립 연대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다. 양식적으로 보면 운주사의 석탑은 대부분 고려 중기 이후에 건립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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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 화순에서 남편을 잘 섬기고 절개를 지킨 부녀자. 열녀(烈女)는 오랜 세월 고난과 싸우며 수절하거나 위급할 때 목숨으로 정조를 지킨 부녀자를 일컫는 말이다. 열부(烈婦)라 하기도 한다. 조선 시대 들어 성리학이 뿌리를 내리면서 “부녀자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는 정절 사상이 일종의 계율로 장려되었고, 수절은 부인이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 덕목으로 간주되었다. 제도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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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맛집, 농촌 진흥청이 인증한 우리의 맛, 열두 달이 즐거운 밭노래 밥상” 도장 마을로 들어가는 길가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이다. 카페처럼 멋진 도장 마을 회관에도 역시 같은 문구의 안내판이 걸려 있다. “열두 달이 즐거운 밭노래 밥상!” 왠지 이름만 들어도 어머니의 정성이 가득한 향토적이고 친환경적인 먹거리를 떠올리게 된다. 마을 회관으로 들어서니 방 한켠에 50여개의 네모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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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있는 공공 도서관. 2011년에 개관한 화순 열린 도서관은 지역 주민에게 새로운 지식과 다양한 정보를 서비스하고, 맞춤형 도서관 문화프로그램으로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여 생활의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지역 주민에게 폭넓은 정보 및 다양한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개관하였다.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 공간 이상으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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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군민을 대상으로 화순군청에서 주관하는 평생 학습 프로그램. 세계화와 정보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문학적 소양을 배양하고 화순 군민들의 정서 함양을 위하여, 화순군청이 매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개최하는 교양 강좌 프로그램이다. 전라남도 화순군청에서 운영하는 평생 학습 프로그램으로 각계각층의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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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 화순에서 남편을 잘 섬기고 절개를 지킨 부녀자. 열녀(烈女)는 오랜 세월 고난과 싸우며 수절하거나 위급할 때 목숨으로 정조를 지킨 부녀자를 일컫는 말이다. 열부(烈婦)라 하기도 한다. 조선 시대 들어 성리학이 뿌리를 내리면서 “부녀자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는 정절 사상이 일종의 계율로 장려되었고, 수절은 부인이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 덕목으로 간주되었다. 제도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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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활동한 국악인 염금달(廉今達)[1920~1950]은 1920년 화순군 이서면 안심리에서 태어나 어릴 적에 화순읍 유천리로 이거하였다 천부적인 성대와 뛰어난 맵시를 지닌 소리꾼으로 예인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누렸다. 조선 후기에 더늠 소리를 넣어 득음하였던 창자들을 8명창으로 구분하였는데, 그 당시 8명창의 뒤를 이을 뛰어난 소리꾼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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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옷이나 천에 물을 들이는 방법. 전통적인 염색은 자연에서 채취한 꽃, 나무, 흙, 벌레, 조개 등의 천연 염료를 사용하여 물들이는 천연 염색의 방식으로 한다. 천연 염색의 종류는 쪽물 염색, 감 염색, 치자 염색, 소목(蘇木) 염색 등 매우 다양하다. 천연 염료의 종류로는 색깔이 있는 돌이나 흙에 함유된 광물성 염료, 식물의 잎·꽃·열매의 즙·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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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삶은 흑염소 고기와 토란대, 머위대, 깻잎, 부추 등을 넣어 만든 탕. 국은 어패류나 채소류 등을 넣고 끓인 국물 요리이다. 곰에서 찌개와 국으로 분화되어 발달되었으며, 찌개는 국보다 국물이 적고 건더기가 많은 것을 말한다. 국은 갱과 탕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구 기준은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와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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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오류리에 있는 양우승의 강학소. 염수당은 양회한(梁會澣)이 건립하고, 아들 양우승(梁佑承)이 강학의 장소로 활용하였다. 양회한은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에게서 수학하였고, 양우승은 양회락(梁會洛)에게서 수학한 후 오준선(吳俊善)과 고광선(高光善) 등에게서 취정(就正)하였다. 양우승은 「염수당기」를 지었는데, 부친이 염수당을 건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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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서화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평숙(平叔), 호는 염재(念齋)·염재거사(念齋居士), 또는 염재옹(念翁)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송긍면(宋兢勉)이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 교육에 헌신한 서화가로 근대 호남 화단의 마지막 시(詩)·서(書)·화(畵)의 삼절(三絶)로 일컬어지고 있다. 송태회(宋泰會)[1872~1941]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천재성을 발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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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서화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평숙(平叔), 호는 염재(念齋)·염재거사(念齋居士), 또는 염재옹(念翁)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송긍면(宋兢勉)이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 교육에 헌신한 서화가로 근대 호남 화단의 마지막 시(詩)·서(書)·화(畵)의 삼절(三絶)로 일컬어지고 있다. 송태회(宋泰會)[1872~1941]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천재성을 발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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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화순 출신 한문학자이자 서화가인 염재 송태회의 미간행 필사본 문집. 송태회(宋泰會)[1872~1941]는 호가 염재(念齋), 염재거사(念齋居士), 염재(恬齋), 염와노부(恬窩老夫), 호산(壺山)이며 전라남도 화순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한문학자이자 서화가이다. 숙부인 사호(沙湖) 송수면(宋修勉)[1847~1916]의 제자로 16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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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서화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평숙(平叔), 호는 염재(念齋)·염재거사(念齋居士), 또는 염재옹(念翁)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송긍면(宋兢勉)이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 교육에 헌신한 서화가로 근대 호남 화단의 마지막 시(詩)·서(書)·화(畵)의 삼절(三絶)로 일컬어지고 있다. 송태회(宋泰會)[1872~1941]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천재성을 발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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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서화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평숙(平叔), 호는 염재(念齋)·염재거사(念齋居士), 또는 염재옹(念翁)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송긍면(宋兢勉)이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 교육에 헌신한 서화가로 근대 호남 화단의 마지막 시(詩)·서(書)·화(畵)의 삼절(三絶)로 일컬어지고 있다. 송태회(宋泰會)[1872~1941]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천재성을 발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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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서화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평숙(平叔), 호는 염재(念齋)·염재거사(念齋居士), 또는 염재옹(念翁)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송긍면(宋兢勉)이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 교육에 헌신한 서화가로 근대 호남 화단의 마지막 시(詩)·서(書)·화(畵)의 삼절(三絶)로 일컬어지고 있다. 송태회(宋泰會)[1872~1941]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천재성을 발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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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서화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평숙(平叔), 호는 염재(念齋)·염재거사(念齋居士), 또는 염재옹(念翁)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송긍면(宋兢勉)이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 교육에 헌신한 서화가로 근대 호남 화단의 마지막 시(詩)·서(書)·화(畵)의 삼절(三絶)로 일컬어지고 있다. 송태회(宋泰會)[1872~1941]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천재성을 발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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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회송리 칠송 마을에 있는 정의림의 강학소. 영귀정은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회송리 칠송 마을에 정의림(鄭義林)[1845~1910]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한 장소로 활용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자는 계방(季方), 호는 일신재(日新齋), 본관은 광산(光山)으로 노사(盧沙) 기정진(奇正鎭)의 3대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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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민제장이 지은 시조. 민제장(閔濟章)[1671~1729]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호는 삼금당(三錦堂)이다. 『삼금당행록(三錦堂行錄)』의 연보 ‘신묘(辛卯)’[1711년, 민제장의 나이 41세] 부분에 「영남발선가」가 수록되어 있다. 연보에는 “처음 영남으로부터 배를 띄워 출발할 때에 공이 노래를 지었다[初自嶺南發船公作歌].”라고 한 후 한 구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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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의 현지 농어민이 발기인으로 하여 만든 조합 법인. 영농 조합 법인 및 영어 조합 법인은 현지 농어민 5명 이상을 발기인으로 하여 만들 수 있는 조합 법인이다. 협업적 농업 및 어업 경영을 통하여 생산성을 향상하고, 농수산물의 출하, 유통, 가공, 수출 등을 공동으로 전개하는 법인이다. 화순군 내의 영농 조합 법인의 전체 숫자를 파악하기는 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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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세청리에 있는 감자 재배 영농 조합 법인. 영농 조합 법인 화순 청풍 돼지 감자는 돼지 감자의 재배 및 관련 제품 생산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2010년 3월 22일 돼지 감자의 작물 재배업으로 협동조합을 설립한 이후 돼지 감자 재배와 관련 식품들을 생산하였다. 2011년 홈페이지를 개장해 돼지 감자와 가공 식품, 울금 관련 식품들을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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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에 있는 활터. 영덕정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지역 주민의 궁도 활동을 도모하고자 마련된 궁도장이다. 영덕정은 능주 주민과 화순 군민의 궁도 발전에 도모하고자 1920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에 국립 사장(射場)으로 개설되었다. 1920년에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에 국립 사장(射場)으로 개설하였는데, 이후 사정(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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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영등신을 맞아들이는 의례. ‘영등신’ 또는 ‘영등 할머니’라고도 부르는 영등은 음력 2월에 하늘에서 내려와 비바람을 일으킨다는 신이다. 화순군에서는 영등 할머니가 음력 2월 초하루에 내려와서 15일에서 20일 사이에 하늘로 다시 올라간다고 여긴다. 영등 할머니가 처음 내려올 때 비가 오는 등 날씨가 좋지 않으면 며느리를 데리고 내려오는 것이고 날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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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남면에 있는 조선 전기 김곤변이 지은 누정. 영롱대의 주인 김곤변은 퇴계의 문인으로 한강 정구, 은봉 안방준, 송강 정철,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등의 당대 명사들과 교우하였다. 김곤섭은 산수를 사랑하여 광주에서 일부러 이곳으로 이거하여 마을 동쪽 농암(瓏巖) 위에 이 영롱대를 지었으며, 이로 인해 자신의 호를 농재산인(瓏齋散人)이라고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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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에 있는 광산 이씨 문중의 재각. 영모각은 고려 상서 좌복야 충장공 이순백(李珣白)[?~?]을 비롯해 진현관 학사 상호군기 밀직제학 개성 부윤 이홍길, 청심당 이조원, 성심당 이형원, 좌찬성 이복선, 황해 감사 이행선, 대사성 이호선, 좌승지 이달선, 춘추관 기사 이기동 등 광산 이씨 문중에서 누대의 묘제를 행하기 위해 만든 재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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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학모(學模), 호는 영모재(永慕齋). 아버지는 조하필(趙夏弼)이다. 조석우(曺錫佑)[?~?]는 성품이 인자하고 행동이 돈독하며 학문(學問)이 해박(該博)하여 주위의 호평을 받았다. 여러 유자들이 호남 고사(湖南高士)라 칭하며 학행으로 천거한 결과 통정대부(通政大夫)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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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에 있는 조선 전기 관청에서 지은 누정.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 산1번지, 연주산 자락 지석강 상류의 영벽강 변에 위치해 있다. 15세기 초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누정은 1872년(고종 9)에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 1873년에 능주 목사인 한치조가 중건하였다. 1920년 군민들이 출연하여 중수하였고, 이후 보수를 거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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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 있는 영벽정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영벽정 이야기」는 진 처사라고 하는 사람이 산신의 도움을 받아 영벽정을 세우게 되는 신비한 과정을 설명하는 이야기이다.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설』에 「영벽정」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고, 화순군청 홈페이지의 ‘향토 사료’ 항목에도 「영벽정」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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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에 있는 영벽정에 대해 양팽손, 김종직, 정의림 등이 읊은 한시. 시의 배경인 ‘영벽정’은 계절에 따라 변하는 연주산(聯珠山)의 경치가 맑은 지석 강물에 투영되어 운치 있게 바라볼 수 있다 하여 이름이 붙여진 정자이다. 능주 팔경의 하나로 연주산 밑 지석강의 상류 영벽 강변(映碧江邊)에 있다. 정자의 건립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양팽손(梁彭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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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 있는 영벽정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영벽정 이야기」는 진 처사라고 하는 사람이 산신의 도움을 받아 영벽정을 세우게 되는 신비한 과정을 설명하는 이야기이다.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설』에 「영벽정」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고, 화순군청 홈페이지의 ‘향토 사료’ 항목에도 「영벽정」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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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에 있는 제주 양씨 재각. 영사재(永思齋)는 8·15 해방 이후인 1950년대에 지어진 제주 양씨 문중의 재각이다. 여느 문중이나 조상을 사모하는 뜻으로 영사재라는 재각을 두는데 이 문중에서도 영사재라 하였다. 그러나 이 재각은 조선 시대의 재각과 건물 규모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영사재는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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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에 있는 재가 노인 대상 방문 요양 기관. 영산 노인 복지 센터는 비영리 사회 복지 법인인 소향 복지 재단에서 운영하는 방문 요양 시설이다. 화순 지역 노인들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돕기 위해 설립되었다. 노인 관련 복지 사업을 전문적으로 운영해온 소향 복지 재단의 경험을 바탕으로 화순군 춘양면 인근 재가 노인들의 생활 적응 및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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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에 있는 재가 노인 대상 방문 요양 기관. 영산 노인 복지 센터는 비영리 사회 복지 법인인 소향 복지 재단에서 운영하는 방문 요양 시설이다. 화순 지역 노인들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돕기 위해 설립되었다. 노인 관련 복지 사업을 전문적으로 운영해온 소향 복지 재단의 경험을 바탕으로 화순군 춘양면 인근 재가 노인들의 생활 적응 및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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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에 있는 재가 노인 대상 방문 요양 기관. 영산 노인 복지 센터는 비영리 사회 복지 법인인 소향 복지 재단에서 운영하는 방문 요양 시설이다. 화순 지역 노인들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돕기 위해 설립되었다. 노인 관련 복지 사업을 전문적으로 운영해온 소향 복지 재단의 경험을 바탕으로 화순군 춘양면 인근 재가 노인들의 생활 적응 및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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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윤씨 가문으로 출가해 온 자수장(刺繡匠). 영산 신씨 부인(靈山 辛氏 夫人)[?~?]은 윤씨 가문에 출가하여 일찍 상배하고 홀로 살면서 바느질과 자수를 전공하게 되었는데 솜씨가 비범하여 화초봉접(花草蜂蝶)·매란국죽(梅蘭菊竹)·십장생도(十長生圖) 등을 능달한 솜씨로써 표현하여 세상 사람들을 감탄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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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화순 출신의 승려. 자는 영을(永乙), 자호는 무의자(無衣子). 아버지는 최완(崔琬)이며, 어머니는 배씨(裵氏)이다. 속명은 최식(崔寔)이다, 혜심(慧諶)[1178~1234]은 1201년(신종 4) 사마시에 합격한 후 태학에 들어가서 입신출세의 길에 들어섰으나 어머니 병환 때문에 고향에 되돌아와 족형 배광한(裵光漢)의 집에 머물며 간병하였다. 부친이 일찍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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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는 원래 자연 마을인 영신(永神)·유평(柳坪)·하장복·장복동(長福洞)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현재는 영평·도원(桃源)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평리의 지명은 영신 마을의 영(永)자와 유평 마을의 평(坪)자를 각각 취한 것이다. 영신 마을의 이름은 영신사(靈神寺)라는 절이 있어 절 이름을 취한 것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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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에서 연속 촬영한 필름 영상을 보여주는 행위 및 그 작품.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갖고 있는 전라남도 화순 지역을 배경으로 영화를 촬영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2006년 전라남도 영상 위원회가 창립된 이래 전라남도 지역으로의 영화 촬영 로케이션을 적극적으로 유치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화순군에서 촬영된 영화는 다음과 같다. 송강호 주연의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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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우. 예산사는 묵은공(黙隱公) 정희(鄭熙)와 문절공(文節公) 정수충(鄭守忠)을 향사하는 사우로 1885년(고종 22)에 건립하였다. 정희는 고려 말 정몽주의 문인으로 조선 초기 정도전을 탄핵하다 낙도로 유배되었으며 후에 사면을 받고 좌찬성으로 증직되었다. 정수충은 세종 때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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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과 청풍면 경계에 있는 산성. 산성은 산세를 따라서 산에 쌓은 성으로 특히, 우리나라에서 잘 발달되어 현재 중부 이남에만 1,200여 개의 산성터가 남아 있다. 산성은 평상시에 군창(軍倉)을 두고 여기에 곡식과 무기를 준비하여 두며, 적이 침입하여 오면 평지의 주민들을 모두 들어오게 하여 농성하는 곳이다. 지형에 따라 테뫼식·포곡식으로 구분한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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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구례리와 전라남도 보성군 노동면 신천리를 연결하는 고개. 예재는 화순군의 남동부 끝자락인 이양면 구례리와 보성군 노동면 신천리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호남 정맥의 계당산과 봉화산을 연결하는 안부(鞍部)[산의 능선이 말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이다. 예부터 주요 고갯길이었으며 화순군과 보성군을 남북으로 연결한다. 현재는 경전선 철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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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구례리에 있는 터널. 봉화산에서 전라남도 보성군 노동면 신천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예재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예재 터널이라 이름 붙었다. 옛 기록으로는 여재[여점(呂岾)]로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는 예재[古峙], 왜재[倭峙], 예재[禮峙]로 표기하고 있다. 예재 터널 상행선의 총 길이는 830m, 총 폭은 9.6m, 유효 폭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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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한약재 우린 물에 오골계와 대추와 밤 등을 넣고 끓인 탕. 화순군의 오골계탕은 지역에서 생산된 약재인 엄나무, 천궁, 당귀, 황기, 녹각, 구기자, 창출, 감초를 넣고 푹 끓여낸 국물에 살짝 데친 오골계와 손질한 대추와 밤 등을 넣어 다시 한 번 푹 삶아낸 약선(藥膳) 요리의 하나이다. 국은 어패류나 채소류 등을 넣고 끓인 국물 요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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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동복 오씨의 동복 입향조가 된 문신. 본관은 동복(同福). 시호(諡號)는 문헌(文獻). 동복군(同福君) 오현좌(吳賢佐)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동복 오씨의 시조인 동복군 오영(吳寧)이고, 아버지는 오중환(吳仲環)이며, 어머니는 동복인 화식보(和式甫)의 딸이다. 오대승(吳大陞)[?~?]은 현(縣)의 향리 출신으로, 1260년(고려 원종 1)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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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인좌의 난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동복(同福). 자(字)는 공익(公益), 호(號)는 회당(晦堂). 문헌공(文獻公) 오대승(吳大陞)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오정열(吳廷說)이고 어머니는 오막소(吳邈蘇)의 딸이며, 부인은 김해 김씨(金海金氏) 김유삼(金有三)의 딸이다. 오덕노(吳德老)[1692~?]는 1728년(영조 4)에 발발한 이인좌의 난[무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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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동면 오동리는 천운동·오곡(梧谷)·동림(桐林)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오동리의 지명은 오곡 마을의 오(梧)자와 동림 마을의 동(桐)자를 각각 취하였다. 천운동 마을은 원래 오곡 마을의 일부로 도로반이라 불렀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 석탄 개발과 함께 개발의 붐이 일어났고 당시 외부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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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장 마을에서 음력 정월 15일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장 마을에서는 30여 년 전부터 매년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음력 정월 15일 오후 4시경에 굴암제를 지낸다. 제의는 마을에 있는 굴 근처에서 고사 형식으로 비교적 간소하게 지내고 있다. 30여 년 전부터 굴암제를 지내게 된 이유는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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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오곡 마을을 중심으로 세거하는 해주 최씨 집성촌. 오곡 마을은 본디 먹굴이라 부른다. 주변에 석탄 광산이 있다. ‘오곡’이라 함은 오동나무가 많았기에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최신헌(崔新憲)[1611~?]을 입향조로 하여 세대를 이어오는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의 해주 최씨 집성촌이다. 1685년경 해주 최씨 최신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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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활동한 거문고 명인. 오똘남(吳突男)[1920~1950]은 거문고 명인이다. 오진석의 조카이며 양자이고, 명창 조몽실의 조카이다. 거문고로 새소리 등 모든 소리를 만들어낼 정도의 명인으로 백결 선생의 후신이라고 일컬어졌다. 6·25 전쟁 당시 공비들이 그를 사살하려 하자 마을 사람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표창을 받은 거문고의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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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이양면 오류리는 연동·안모실·새터·양촌·용촌·웃모실·달동네·조평 등 8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오류리는 오류촌(五柳村)에서 유래되었다. 오류촌 마을은 원래 내촌 마을로 안모실이라 부르는데 이는 마을이 안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이를 한자로 쓰면서 내촌(內村)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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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오류리를 중심으로 세거하는 여흥 민씨 집성촌. 민정수(閔挺洙)[1712~1783]를 입향조로 하여 이어오는 화순군 이양면 오류리의 여흥 민씨 집성촌이다. 1730년(영조 6) 무렵 민정수가 도암면 지월리에서 입향 정착하였다. 민정수의 자는 호여(浩汝)이고 호는 신암(愼庵)이며, 민수구(閔壽龜)[1690~1752]의 아들이다. 섬촌(蟾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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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에 있는 섬유 화학 기업. 오륜 기업은 합성수지 정화조 관련 제품 제조를 하는 기업으로 2000년 7월 26일 설립되었다 오륜 기업은 섬유 화학 제조 기업으로 PE정 화조 및 저장용, 위생용 플라스틱 제품을 제조하고 납품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오륜 기업은 전라남도 화순군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직원 28명이 근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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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순절한 화순 출신의 무신. 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원중(元仲), 호는 상의재(尙義齋). 상서(尙書) 오순(吳淳)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부호군 오안적(吳安迪)이다. 오방한(吳邦翰)[?~1593]은 일찍이 박광전(朴光前)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장성하여서는 기사(騎射)에도 능하였다. 1590년(선조 23)에 무과에 급제하여 개운 만호(開雲萬戶)에 임명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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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전지(甸之), 호는 오봉(鰲峰).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5대손이며, 양응기(梁應箕)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구봉(九峰) 양위남(梁渭南)이고, 어머니는 남평 문씨(南平文氏) 문관도(文貫道)의 딸이다. 부인은 강화 최씨(江華崔氏) 최동헌(崔東獻)의 딸이다. 양우전(梁禹甸)[1595~1672]은 가업을 잘 계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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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삼천리에 있는 음식료 생산 기업. 오성 식품은 호남 지방 최초로 포장 두부류를 출시한 것을 시작으로, 두부, 묵, 콩나물, 청국장 등의 연식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1980년 오성 식품을 설립하여, 1983년 포장 두부류인 ‘오성 순두부’를 출시하였다. 1999년에는 생산 공장을 증축하여 생산 라인을 이원화하여 국산과 수입산을 분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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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벽라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고운 심성으로 바르게 행동하는 학생, 새로운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학생, 소질을 계발하여 자기 길을 열어가는 학생, 협동하고 봉사하며 더불어 사는 학생, 건강한 정신과 몸이 튼튼한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큰 꿈을 가꾸자’로 큰 꿈을 가지고 세계와 미래로 웅비하는 참되고 창의적인 화순 오성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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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정유재란 때 화순 지역 의병장 최경운(崔慶雲)과 주민 500여 명이 오성산성에서 왜병 3,000여 명과 3일간 격전을 벌인 전투. 최경운은 정유재란 때에 왜군들이 전라도 일대에서 잔학한 만행을 자행하자, 주민 및 가솔과 함께 오성산성에 올라 항전을 벌였다. 그는 진주성에서 전사한 최경회(崔慶會)[1532~1593]의 장형으로 당시 73세의 노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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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벽라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고운 심성으로 바르게 행동하는 학생, 새로운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학생, 소질을 계발하여 자기 길을 열어가는 학생, 협동하고 봉사하며 더불어 사는 학생, 건강한 정신과 몸이 튼튼한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큰 꿈을 가꾸자’로 큰 꿈을 가지고 세계와 미래로 웅비하는 참되고 창의적인 화순 오성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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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한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민 가옥. 오세탁 가옥은 1800년대 중엽에 지어진 이 지역의 보편적인 서민 주택이다. 1985년 전남 대학교 팀이 조사할 당시 오세탁 가족이 4대째 살고 있었다. 오세탁 가옥은 동복면 한천리 한천 마을 내에 자리하고 있다. 한천 마을의 가구 수는 약 110호가 되며 마을에는 군도 4호선이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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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서양화가. 오승윤(吳承潤)[1940~2006]은 오지호 화백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조선 대학교 부속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왔으며 홍익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의 아카데미 드 라그랑드 쇼미에르 등에서 공부했다. 특히 한국의 자연과 전통 문화 등을 표현한 구상 미술에 몰두했다. 1982년 전남 대학교 예술 대학을 창설하여 후학 양성에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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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일대에서 생산되는 자두나무의 열매. 화순군청의 지원을 받아 영농 조합 법인을 설립하고,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일대에서 자두를 재배하고 있다. 화순군 차원에서 『잘 사는 화순 만들기 Vision 1030 전략』 기반 구축과 소득 증대 사업의 일환으로 ‘읍면 특성화 사업’을 전개했는데, 한천면에서는 자두를 선정했다. 자두가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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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년 전라남도 화순 지역 동복현(同福縣)의 호장(戶長) 오언복(吳彦福) 등이 일으킨 난. 동복현은 조선 시대에 현령이 파견된 지역이었다. 중앙에서 동복현에 파견된 현령은 향리의 보좌를 받아 지방을 통치하였다. 조선 시대 지방관의 주요 임무는 수령 칠사(首領七事)를 들 수 있다. 농상을 성하게 함[農桑盛], 호구를 늘림[戶口增], 학교를 일으킴[學校興], 군정을 닦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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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한천면 오음리는 오산(午山)·산음(山陰)[가리실]·삼거리·돗재의 4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오음리의 지명은 오산 마을의 오(午)자와 산음 마을의 음(陰)자를 각각 취하여 오음리라 하였다. 오산 마을은 처음에 금오산(金鰲山) 아래에 있으므로 오산(鰲山)이라 했는데 마을에서는 용암산의 줄기가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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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오음리 오음 마을에서 음력 정월 14일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 화순군 한천면 오음리 오음 마을에서는 ‘당산제’라 하여 매년 음력 정월 14일 밤 9시경에 천륭, 당산, 부죽 세 곳에서 제를 지낸다. 제관은 정초에 마을 회의를 통해 선정하며, 제비는 마을 전답의 수입금으로 충당한다. 제의 절차는 당산에 준비한 제물을 진설하고 유교식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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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보성(寶城). 자(字)는 찬형(贊亨), 호(號)는 지암(芝庵). 오현필(吳賢弼)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첨중추(僉中樞) 오경관(吳慶寬)이다. 오인혁(吳仁爀)[?~?]은 부모님의 병환에 눈물 흘리고 근심하며 먹지 않고 정성으로 돌보았다. 병이 깊어지니 하늘에 빌고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드려서 부모님께서 수일 간 연명하게 하였다.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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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광주 지역에서 벌어진 계엄군의 민간인 살상에 반대하여 전라남도 화순 지역민들이 시민군에게 무기를 제공하거나 직접 시위 및 시민군에 참여한 사건. 1980년 5월 17일 신군부가 장악한 정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김대중 등 정치인을 수감하거나 연금했다. 아울러 모든 대학에 휴교령을 내리고 계엄군을 교내까지 배치했다. 광주 지역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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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춘경(春卿) 또는 춘유(春逾)이고, 호는 오재(梧齋)이다. 아버지는 현감(縣監) 김조언(金朝彦)이고, 어머니는 절강 편씨(浙江片氏)이며, 부인은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김인갑(金仁甲)[1564~1593]은 1579년(선조 12)에 무과에 급제하여 주부(主簿), 도사(都事)를 거쳐 1591년 훈련원(訓練院) 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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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국악인. 오재민(吳在珉)[1918~?]은 명문 가문인 동복 오씨 후예로 박학다식하며 전통 예술에 남다른 관심과 조예가 깊었다. 일찍이 전국 궁도 대회에서 개인 부분 장원을 차지할 정도로 궁도도 잘하였다. 사실 여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전주 대사습 고수 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했다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전해질 정도로 명고수이다. 판소리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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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관인. 본관은 동복(同福), 호는 소재(小齋). 교관(敎官) 오한추(吳漢樞)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오연수(吳然琇)이다. 아들은 서양화가 오지호(吳之湖)이다. 오재영(吳在永)[1865~1919]은 1907년 광주(光州)에서 9품직에 임용되고 광주부 지방 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1909년 보성 군수가 되고 1910년 10월 일제의 강제 병합 후 조선 총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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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화순군 출신의 의병. 오죽령(吳竹齡)은 1592년(선조 25)에 발발한 임진왜란 때 화순군 동복에서 거의(擧義)한 의병이다. 오죽령의 본관은 동복(同福). 호는 송재(松齋)이다. 문헌공(文獻公) 오대승(吳大陞)의 후손이고, 오억동(吳億東)의 아들이다. 오죽령(吳竹齡)[?~?]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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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오중(五重), 호는 율재(栗齋). 옥천군(玉川君) 조흡(曺恰)과 화순 입향조인 조온(曺穩)의 후손으로, 조세명(曺世明)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조굉중(曺閎中)이고, 아버지는 조수천(曺守天)이다. 어머니는 전의 이씨(全義李氏) 이섬지(李暹之)의 딸이고, 부인은 정민행(鄭敏行)의 딸이다. 조정(曺烶)[1610~1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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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출신의 서양화가. 본명은 점수(占壽), 호는 모후산인(母后山人). 아버지는 한말 보성 군수를 지낸 오재영(吳在永)이고 어머니는 김선군(金宣君)이다. 서구의 인상주의 회화 양식을 추구하며 빛과 색이 이루어내는 자연을 맑고 밝은 색채로 그려냈다. 오지호는 서구의 인상주의를 한국적 풍광과 정감으로 토착화시킨 화순 출신의 대표적인 서양화가이다. 오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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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 인상파 화가 오지호를 추모하기 위한 기념관. 오지호 기념관은 호남 지역의 서양 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오지호 화백이 태어난 화순군 동복면에 그의 삶과 예술 세계를 추모하기 위하여 화순군청과 유족이 뜻을 합쳐 세운 기념관이다. 1992년에 기념관 건립 추진 위원회 위원장 박운학[전 동복 면장]이 주축이 되어 건립을 추진하였다.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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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대금 명인. 오진석(吳鎭錫)[?~?]은 재인 집안 출신으로 거문고 명인인 오똘남의 양아버지이며 대금 명인 한주환의 이모부이기도 하다. 항상 묵묵히 말이 없으며 품행이 방정해서 많은 한량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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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오현당(五賢堂)은 필문(畢門) 이선제(李先齊)[1399~1454]를 주향으로 이조원(李調元)[?~?], 이중호(李仲虎)[1512~?], 이발(李潑)[1544~?], 이길(李洁)[1547~?] 등 5위를 향사하는 광산 이씨(光山李氏)의 사당이다. 문중의 저명한 문인 5현을 모셨다고 하여 오현당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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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연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상류 가옥의 문간채. 오형석 가옥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화순 지역의 부농 가옥이다. 본래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 문간채, 뒤채 등 모두 7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1950년대에 안채와 문간채만 남기고 다른 건물은 모두 매도하였다. 현재는 문간채만이 본래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오형석 가옥은 유한 킴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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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있는 우물의 유래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옥거리 샘 이야기」는 남편을 여읜 남원 윤씨 부인이 공덕을 쌓기 위해 감옥이 있는 거리 부근에 살면서 죄수들에게 물을 떠 주는 등의 일로 공덕을 쌓으면서 만든 우물의 명칭 유래담이다.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설』에 「옥거리 샘」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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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에 있는 옥녀봉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옥녀봉 이야기」는 어느 마을 청년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의 거울을 훔쳐 자신의 아내로 삼고자 하였으나 구슬피 우는 선녀의 노래를 듣고 죄책감을 느껴 다시 하늘로 올려 보냈다는 이야기이다. 신이담 중에서 백조 처녀 설화 유형에 속한다.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설』에 「옥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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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옥리 구수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떼. 옥리 구수 고인돌 떼는 총 4기로 옥리 구수 마을 버스 정류장 일원의 밭에 두 곳으로 나누어져 분포하고 있다. 옥리 구수 고인돌 떼 중 일부 고인돌은 파괴되어 땅에 매몰되어 있다. 고인돌의 장축 방향은 북남 방향이며, 상석의 평면 형태는 원형, 타원형, 장방형이다. 고인돌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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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옥리 구수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떼. 옥리 구수 고인돌 떼는 총 4기로 옥리 구수 마을 버스 정류장 일원의 밭에 두 곳으로 나누어져 분포하고 있다. 옥리 구수 고인돌 떼 중 일부 고인돌은 파괴되어 땅에 매몰되어 있다. 고인돌의 장축 방향은 북남 방향이며, 상석의 평면 형태는 원형, 타원형, 장방형이다. 고인돌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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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북면 옥리는 자연 마을인 옥동(玉洞)·구수·압곡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압곡 마을은 폐촌이 되고 옥동 마을과 구수 마을만 남아 있다. 옥리의 지명은 옥동 마을에서 유래하였다. 옥동 마을의 뜻은 구실 마을과 똑같은데 ‘구실’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구슬 옥(玉)자를 쓴 것이다. 구수 마을은 원래 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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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이양면 옥리는 상촌·중촌[옥동] 등 2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옥리의 지명의 유래는 옥동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중촌 마을은 처음에 옥동으로 불렀는데 후에 중촌 마을로 변경되었다. 옥동 마을은 원래 구실이라 하였는데, 이는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소구시처럼 생겼다 하여 이렇게 불렀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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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 마을 김기종, 이순남 부부는 마을에서 옥수수 농사를 가장 먼저 시작한 집이다. 그리고 가장 많이 옥수수 농사를 짓는 집이기도 하다. 김기종, 이순남 부부는 옥수수 농사를 2000년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적게 심었는데 생각보다 수익이 괜찮아서 점점 규모를 늘려 작년[2012년]에는 이천 평에 옥수수를 심게 되었다고 한다. 김기종 씨 부부의 농사가 논 약 1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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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동면 옥호리는 옥림(玉琳)·호동(壺洞)·운산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옥호리는 옥림 마을의 옥(玉)과 호동 마을의 호(壺)를 각각 취하여 옥호리라 이름하였다. 옥림 마을은 옥림사가 있어서 마을 이름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운산 마을은 천운산의 지명을 취하여 운산이라 하였다고 하며, 한편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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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옥호리 호동 마을을 중심으로 세거하는 목천 장씨 집성촌. 호동 마을은 지형이 병 모양처럼 생겼다 하여 이렇게 부른다. 장구소(張九素)[?~1675]를 입향조로 하여 이어오는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옥호리의 목천 장씨 집성촌이다. 1625년경 목천 장씨 장구소가 승주 쌍암에서 거주하다가 호동 마을로 입향하여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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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옥호 2리 운산 마을에 있는 선돌. 운산 마을은 천운산의 지명을 취하여 운산이라 했다. 마을은 동쪽으로 진등이, 서쪽으로 초장굴, 용난이, 서남쪽으로 안산이, 북쪽으로 비석등, 장성등이 있다. 마을은 북쪽이 개광된 지세를 가지고 있으며, 마을 입구는 북쪽이다. 마을 앞 북쪽 50㎝ 지점에 동서 배열 50m 간격으로 2기의 선돌이 배치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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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그해에 생산한 첫 나락을 베어서 조상에게 천신(薦新)하는 의례 행위. 올벼란 일찍 수확한 벼로 벼가 다 여문 무렵이나 채 여물기 전에 여문 부분만 골라 찧은 쌀이다. 올벼심리는 1년에 한 번 추석 무렵에 조상에게 햅쌀인 올벼를 올리는 의례를 말하며 그해 처음 수확한 것을 드린다는 의미를 갖는다. 올벼쌀로 지은 밥을 비롯한 햇곡식과 햇과일로 상을 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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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그해에 생산한 첫 나락을 베어서 조상에게 천신(薦新)하는 의례 행위. 올벼란 일찍 수확한 벼로 벼가 다 여문 무렵이나 채 여물기 전에 여문 부분만 골라 찧은 쌀이다. 올벼심리는 1년에 한 번 추석 무렵에 조상에게 햅쌀인 올벼를 올리는 의례를 말하며 그해 처음 수확한 것을 드린다는 의미를 갖는다. 올벼쌀로 지은 밥을 비롯한 햇곡식과 햇과일로 상을 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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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그해에 생산한 첫 나락을 베어서 조상에게 천신(薦新)하는 의례 행위. 올벼란 일찍 수확한 벼로 벼가 다 여문 무렵이나 채 여물기 전에 여문 부분만 골라 찧은 쌀이다. 올벼심리는 1년에 한 번 추석 무렵에 조상에게 햅쌀인 올벼를 올리는 의례를 말하며 그해 처음 수확한 것을 드린다는 의미를 갖는다. 올벼쌀로 지은 밥을 비롯한 햇곡식과 햇과일로 상을 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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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일원에서 흙으로 빚어 만든 질그릇과 오지 그릇. 옹(甕, 瓮)은 ‘독’의 우리말 한자어로서 그릇의 형태를 일컫는 말이다. 옹기(甕器)는 단순히 그릇의 형태로 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황갈색의 유약(柚藥)을 입힌 질그릇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독을 비롯하여 소래기·단지·식초병·시루·거름통·약탕기 등 황갈색의 유약을 입힌 생활 용기들을 말하는 것으로, 형태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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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과 북면과 동복면에 걸쳐 있는 산. 옹성산은 화산 활동에 의해 형성된 산지로 커다란 옹기를 엎어 놓은 모양의 바위산이다. 화순군 이서면·북면·동복면의 경계에 있고 인근에 있는 백아산의 흰색과 대비되는 검은 색을 띠고 있다.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에는 옹성산에 대해 “동복현의 서쪽 15리에 있으며, 산의 동북쪽 모서리에 세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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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옻 껍질을 우려낸 물에 닭을 넣고 푹 익힌 백숙. 옻닭은 옻을 이용하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옻 껍질을 벗겨 닭과 함께 끓여 먹는다. 옻나무의 수액에는 알레르기성 물질인 우루시올[urushiol]이 들어있어서 옻나무 수액이 묻거나 증기를 쐴 경우 가려움증과 함께 심각한 발진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독성이 있음에도 옻을 먹는 이유는 소화를 돕고 피를 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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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북면 와천리는 자연 마을인 와촌(瓦村)·모릿내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모릿내 마을은 수몰되고 와촌 마을도 1985년 동복댐 확장 공사로 원래의 위치에서 현재의 지역으로 이설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타지로 이거하고 십여 가구만 남아 새로 마을을 형성하여 와촌 마을이라 부른다. 와천리의 지명은 와촌 마을의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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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부터 조선 초까지 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와천리 일대에 있었던 특수 지방 행정 구역. 소(所)·부곡(部曲)은 일반적으로 집단 천민의 거주지로 여겨진다. 특히 소(所)는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금·은·동·철·실[絲]·종이·도기(陶器)·먹 등을 만들기 위하여 두었던 특수 기관이었다. 와촌소는 화순군 백아면 와천리(瓦川里)와 다곡리(多谷里) 일대에 자리하였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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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민주현이 완산부의 명승과 지세 등을 읊은 가사. 민주현(閔胄顯)[1808~1882]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관직 생활 초기인 1854년(철종 5)에 종실의 시조를 모신 완주부[전라북도 전주의 옛 이름] 조경묘(肇慶廟) 별검(別檢)이 되었으며, 이듬해 봄에 지인들과 한벽당(寒碧堂)·만경대(萬景臺)·옥류동(玉流洞) 등 전주의 명승을 유람하였다.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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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일대에서 서식하고 있는 버드나무과의 낙엽 관목. 왕버들은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갈잎 큰키나무이다. 원산지는 한국이며 일본·대만·중국에서도 서식한다. 키는 10~20m로 주로 습지나 냇가에서 자라고 물속에서도 썩지 않고 살 수 있다. 줄기가 굵고 몸집이 커서 마을의 정자 나무로 많이 심었다.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이거나 긴 타원 모양이며 새로 돋을 때 붉은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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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동학 농민 운동 당시 화순의 농민군 지도자. 왕일신[?~1894]은 동학 농민군 지도자로서 전라도 화순에서 동학 농민 봉기에 참여하였다. 1894년 음력 12월 1일 광주에서 퇴각한 농민군 지도자 최경선이 동복으로 내려와 3일 외남면의 벽송리(碧松里)·사평리(沙坪里)에 유숙하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이를 알게 된 민보군 300여 명이 4일 벽송리를 급습하여 치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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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동학 농민 운동 당시 화순의 농민군 지도자. 왕일신[?~1894]은 동학 농민군 지도자로서 전라도 화순에서 동학 농민 봉기에 참여하였다. 1894년 음력 12월 1일 광주에서 퇴각한 농민군 지도자 최경선이 동복으로 내려와 3일 외남면의 벽송리(碧松里)·사평리(沙坪里)에 유숙하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이를 알게 된 민보군 300여 명이 4일 벽송리를 급습하여 치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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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도암면 왕정리는 전라남도 나주시의 국사봉과 화순군의 광덕산 사이 좁은 계곡에 위치한 산간 마을이다. 왕정리는 원래 왕정·상고기(上高基) 2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상고기 마을은 폐촌이 되고 왕정 마을만 남게 되었다. 왕정리의 지명은 왕정 마을에서 비롯된 것이다. 왕정 마을은 어름박굴에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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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왜구가 전라남도 화순 지역을 침입한 사건. 고려 말에 이르면 한반도 해안 전역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해졌고, 나중에는 내륙 지역까지 피해의 대상이 되었다. 왜구의 침입은 삼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고려 말에는 그 피해가 특히 심하였다. 화순 지역 역시 왜구의 침입을 받아 큰 피해를 겪었다. 고려 시대 왜구가 침입한 기록은 1223년(고종 10) 금주(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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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고시리에서 발원하여 사평면 사평리를 거쳐 동복천으로 유입하는 하천. 화순군 한천면 고시리에서 발원하여 화순군 사평면 사평리에서 동복천으로 합수되는 섬진강 수계의 지방 2급 하천이다. 사평면에서 동복천으로 합류하는 두 하천이 있는데, 모후산에서 발원한 내남천과 구분하기 위해 외남천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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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에서 추석 무렵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어 행했던 민속놀이. 외따먹기 놀이는 추석 무렵에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어 행했던 놀이를 재현한 것으로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 수확하는 오이 농사 과정을 담고 있다.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에서는 추석 무렵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어 ‘외[오이] 따먹기’를 하며 놀았다. 두 편으로 나누어 앞 사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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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에는 하룡·상룡·추동·중장터 등 4개 자연 마을이 있다. 용강리는 용강 1리·용강 2리·용강 3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용강 1리는 하룡 마을, 용강 2리는 상룡 마을, 용강 3리는 추동 마을과 중장터 마을로 이루어진다. 용강리의 지명은 산[미르=용(龍)] 아래 물[강(江)]이 흐르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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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에 있는 수령 약 120년의 참나무. 상수리나무는 참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교목으로 학명은 Quercus acutissima Carruth.이다. 생물학적 분류로는 현화식물 문〉목련 강〉참나무 목〉참나무 과〉참나무 속이다. 상수리나무는 25m까지 곧게 자라고, 나무껍질은 검은 회색이며 세로로 갈라진다. 잎은 밤나무 잎과 비슷하게 생긴 긴 타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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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에서 발굴된 삼국 시대 유적. 용강리 유적은 운주사 관광지를 위한 정비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1989년에 실시한 운주사 3차 발굴 과정에서 토광묘와 옹관묘가 처음 확인되었다. 그 후 용강리에서 운주사로 진입하는 부지가 화순 군청에서 추진하는 운주사 관광지 조성지에 포함되어 조사가 이루어졌다. 2007년 전남 문화재 연구원에서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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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 하룡 마을에 있는 선돌. 하룡 마을은 용강리의 아래쪽에 해당되므로 하룡이라 했고, 마을의 동쪽으로 탕실제, 서쪽으로 국사봉, 남쪽으로 살구재, 북쪽으로 운주사가 있다. 마을의 형국은 서쪽이 개광이 되어 있는 형국이며, 마을 입구는 서쪽이다. 용강리 하룡 선돌은 하룡 마을 앞 서쪽에 동서 배열 150m 간격으로 배치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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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용곡리 용촌 마을에서 음력 정월 14일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 화순군 백아면 용곡리 용촌 마을에서는 ‘당산제’라 하여 음력 정월 14일 저녁에 산신, 천룡, 당산에서 각각 제를 지낸다. 사전에 마을 회의를 통해 화주를 선정하고, 제비는 마을 기금으로 충당한다. 제의는 유교식 절차에 준하여 비교적 엄숙하게 거행된다. 마을 사람들은 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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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북면 용곡리는 자연 마을인 용촌(龍村)·약수(藥水)·상곡(上谷)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6·25 전쟁 이후 금성(金城)이 새로 추가되었다. 용곡리의 지명은 용촌 마을의 용(龍)자와 상곡 마을의 곡(谷)자를 각각 취한 것이다. 용촌 마을은 원래 용시암이라 하였다. ‘용시암’이라는 이름은 과거 지명이었던 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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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춘양면 용곡리는 용계(龍溪)·통안·천곡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용곡리의 지명은 용계 마을의 용(龍)자와 천곡 마을의 곡(谷)자를 합하여 만들어졌다. 용계 마을의 뜻은 산등성이 아래 골짜기[溪]에 형성된 마을을 의미한다. 천곡 마을은 마을에 샘이 있어 시암실 마을이라 하는데 이를 한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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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용곡리 약수 마을에서 샘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용곡리 약수 이야기」는 몸은 비록 불구지만 효심이 깊은 맹씨가 꿈속에서 금방울을 얻었는데, 실제로 매를 얻어 사냥을 하였다는 신이담과 매가 들어간 동굴 안의 샘물로 자신의 몸을 고치고, 맹인인 어머니까지 치료하였다는 효행담이 합쳐진 이야기이다.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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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에서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면서 행했던 놀이. 화순군 청풍면 세청리 선화동에서 정월 대보름에 풍년 농사를 기원하며 솟대를 세우고 용줄다리기 등을 행했다. 화순군 청풍면 세청리 산하동(船下洞)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에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줄다리기를 행하였다. 2005년 ‘제24회 화순 군민의 날’ 민속 경연 대회 행사에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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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용두리에 있는 터널. 화순군 춘양면 용두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용두 터널이라 이름 붙었다. 용두 터널은 상행선과 하행선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왕복 4차선이다. 상행선은 총 길이 265m, 총 폭 10m, 유효 폭 7m, 높이 5m이며, 하행선은 총 길이 265m, 총 폭 10m, 유효 폭 7m, 높이 5m이다.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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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춘양면 용두리는 용두·새터 2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용두리의 지명은 용두 마을의 지명을 따서 만들어졌다. 용두 마을은 원래 도자기를 굽던 점골이라 불렀는데 언제부턴가 용암산 아래에 있다고 해서 용머리라 한다고 전한다. 1789년 『호구 총수』에는 능주목(綾州牧) 남일면(南一面) 용두리(龍頭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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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남면 용리는 원래 주평(舟坪)·용안(龍安)·매구정(埋龜亭)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매구정 마을은 인구가 감소하여 마을세가 약화되었다. 용리의 지명은 용안 마을의 이름을 취하여 지어졌다. 주평 마을은 배 나들이라 하여 동복천에 배가 드나들던 곳으로, 나룻터나 선착장의 의미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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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용리에 있는 교량. 용리교는 지방도 822호선에 놓였으며, 동복천을 사이에 둔 지역 간의 원활한 교통 흐름을 위해 2002년에 준공되었다. 용리(龍里)의 지명은 산등[용] 마을을 감싸고 있는데 산등 안쪽에 형성된 마을이라 ‘용안(龍安)’이라 칭한 용안 마을의 이름을 취하여 이름하였다. 용리교는 화순군 남면 용리에 위치하고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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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이양면 용반리는 용반촌(龍盤村)·고암촌(鼓巖村)·여우내[乾川里]·오룡동(五龍洞)[말용동] 등 4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여우내 마을은 1950년 6·25 전쟁으로 폐촌이 되었고, 오룡동 마을은 일제 침략기에 폐촌이 되었다. 1976년경에 더실고랑에 새로 마을이 형성되어 더실 마을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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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용곡리 용촌 마을에서 효자 송 장자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용선암과 송 장자 이야기」는 가난했지만 효행이 깊었던 송씨 총각이 용선암의 노스님이 잡아준 묏자리에 아버지를 장사(葬事)하여 부자가 되었지만, 노스님의 당부를 잊어버려 망했다는 이야기이다.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설』에 「용선암과 송 장자」라는 제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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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일대에서 용소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용소 이야기」는 신성한 용이 머물고 있는 용소에 동복 현감 등이 여흥을 즐기다가 사람이 빠져 죽으면서 용을 노하게 한 이야기로 신이담에 속한다.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설』에 「용소」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으며, 화순군청 홈페이지의 ‘향토 사료’ 항목에도 「용소」라는 제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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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영혼을 건져 올리기 위해 하는 굿. 혼건지기는 독립된 굿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물에 빠져 죽은 수사자(水死者)를 위한 씻김굿 중의 한 절차로 설명한다. 수사자가 빠져 죽은 물가에 간단한 제사상을 차리고 용왕기를 세운다. 긴 장대에 곳베를 매달고 그 끝에 쌀을 담은 주발을 매달아 물에 넣고 굿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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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한계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용암사는 화순군 한천면 한계리 용암산(聳巖山)의 기슭에 있는데 1890년 조정기가 창건하였다. 임진왜란으로 폐사가 된 금오사(金鰲寺) 자리에 사찰을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조선 시대 사료에서는 금오사에 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사찰 이름을 인근에 폐사된 조선 시대 사찰 용암사(聳巖寺)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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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과 춘양면과 이양면의 경계에 있는 산. 용암산(聳巖山)[547m]은 산 정상 지역이 험준하고 경사가 급한 암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용암산은 금오산과 남북으로 붙어 있어 하나의 산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용암산의 산등성이에는 고려 때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금오산 성지[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18호]가 있다. 금오산성은 용암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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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영혼을 건져 올리기 위해 하는 굿. 혼건지기는 독립된 굿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물에 빠져 죽은 수사자(水死者)를 위한 씻김굿 중의 한 절차로 설명한다. 수사자가 빠져 죽은 물가에 간단한 제사상을 차리고 용왕기를 세운다. 긴 장대에 곳베를 매달고 그 끝에 쌀을 담은 주발을 매달아 물에 넣고 굿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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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정월에 액을 풀기 위해 샘에 가서 지내는 제의.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가정의 평안과 가족의 무병장수를 위해 주부가 정월에 용왕에게 행하는 의례이다. 용은 우리나라 역사에 흔하게 등장하는 신적 존재이다. 고구려의 주몽 신화에서 해모수의 수레를 끄는 오룡(五龍)이 바로 용이다. 주몽도 죽은 후 용을 타고 승천한다. 신라의 국모 알영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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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정월에 액을 풀기 위해 샘에 가서 지내는 제의.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가정의 평안과 가족의 무병장수를 위해 주부가 정월에 용왕에게 행하는 의례이다. 용은 우리나라 역사에 흔하게 등장하는 신적 존재이다. 고구려의 주몽 신화에서 해모수의 수레를 끄는 오룡(五龍)이 바로 용이다. 주몽도 죽은 후 용을 타고 승천한다. 신라의 국모 알영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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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에서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면서 행했던 놀이. 화순군 청풍면 세청리 선화동에서 정월 대보름에 풍년 농사를 기원하며 솟대를 세우고 용줄다리기 등을 행했다. 화순군 청풍면 세청리 산하동(船下洞)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에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줄다리기를 행하였다. 2005년 ‘제24회 화순 군민의 날’ 민속 경연 대회 행사에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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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계의(季毅), 호는 사촌(沙村)·용헌(用軒). 옥천군(玉川君) 조흡(曺恰)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참봉 조세명(曹世明)이며, 아버지는 조민중(曺敏中)이다. 어머니는 상산 김씨 김충걸(金忠傑)의 딸이며 부인은 문화 유씨 유응서(柳應瑞)의 딸과 홍주송씨 송방형(宋邦衡)의 딸이다. 정곡(鼎谷) 조대중(曺大中)의 조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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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청도(淸道). 자는 사길(士吉), 호는 우곡(愚谷).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岱)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진석(金晉錫)이다. 김윤형(金潤亨)[1876~1905]은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의 문인으로, 경전공부에 잠심하고, 후학 교육에 매진하였다. 1965년에 『우곡 유고(愚谷遺稿)』 2책이 간행되었다. 화순군 춘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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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 마을 여성들은 자신들의 힘겨운 삶을 노래로 풀어냈다. 시집살이의 고단함, 농사일과 가사일로 쉴 틈이 없었던 여성들에게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것은 동무들이었고 노래였다. 『도장리 밭노래』는 주로 목화밭을 매면서 부른 노래이다. 목화밭을 맬 때 도장 마을 여성들은 품앗이를 했다. 열댓 명이 모여서 오늘은 누구네 밭을 매고, 다음날은 누구네 밭을 매는 식으로 돌아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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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에 있는 전통 마을. 우봉 마을은 법정리인 우봉리를 구성하는 단일 마을이다. 인접한 부곡리의 밖우메기[부춘동] 마을과 구분하여 안우메기라 부른다. 화순군은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산간오지 마을이 많지만 우봉 마을은 예외이다. 마을 안쪽[동쪽]으로 용암산[547m] 골짜기를 따라 기름진 논밭이 약 16만㎡나 존재하고, 마을 앞을 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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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에 있는 전통 마을. 우봉 마을은 법정리인 우봉리를 구성하는 단일 마을이다. 인접한 부곡리의 밖우메기[부춘동] 마을과 구분하여 안우메기라 부른다. 화순군은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산간오지 마을이 많지만 우봉 마을은 예외이다. 마을 안쪽[동쪽]으로 용암산[547m] 골짜기를 따라 기름진 논밭이 약 16만㎡나 존재하고, 마을 앞을 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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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는 우봉[안우메기] 단일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우봉리 지명은 우메기 마을의 지명에서 ‘우’자를 소 우(牛)자로, ‘메’자를 뫼, 즉 산의 뜻을 가진 산봉우리 봉(峰)자를 써서 만들었다. 1789년 『호구 총수』에는 능주목(綾州牧) 남일면(南一面) 상우촌(上牛村)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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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봉리는 춘양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1.5㎞ 정도 떨어진 자연 마을이다. 마을 서쪽으로는 지석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며 남쪽으로는 사창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는 용암산 줄기가 뻗어 있다. 이 마을 앞으로는 국도 29호선이 길게 남북으로 가로 질러 지나가며, 마을 동쪽으로는 한천면, 서쪽으로는 춘양면 석정리 돌정 마을, 남쪽으로는 용두리 용두 마을, 북쪽으로는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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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 우봉 마을에서 전승되고 있는 민요. 화순 춘양면 「우봉리 들소리」는 내륙 산간 지역의 논농사 들소리로 모심기, 논매기, 풍장의 과정에서 부른 노래들이다. 모심기노래는 전남 지역의 상사 소리 맥락을 잇고 있으며 다랑이 논을 배경으로 하는 물품기 소리는 민요의 생태적 특성을 담고 있다. 마을에서 보존회를 만들어 설소리꾼 홍승동을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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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 우봉 마을에서 음력 정월 14일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 우봉 마을에서는 ‘당산제’라 하여 매년 음력 정월 14일 밤에 마을 어귀에 위치한 당산 나무에서 제를 지내고 있다. 정초에 노인회 회의를 거쳐 제관을 선정하며, 제비는 당산제답을 경작하는 사람이 부담하며 그 집에서 제물도 장만한다. 제의 절차는 당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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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를 중심으로 세거하는 풍산 홍씨 집성촌. 우봉리는 본디 우메기라 부른다. 위 메 즉 산 위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홍경고(洪景古)[1645~1699]를 입향조로 하여 세대를 이어오는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의 풍산 홍씨 집성촌이다. 1665년(현종 6) 무렵 홍경고가 현 도곡면 효산리에서 춘양면 우봉리 잿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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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파평. 자는 우삼(友三), 호는 인재(忍齋). 소정공(昭靖公) 윤곤(尹坤)의 후예이다. 할아버지는 윤심암(尹心庵)이다. 윤자익(尹滋益)[?~?]은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의 문인으로, 학문이 해박(該博)하고 예법에 맞는 몸가짐이 빼어났다. 선업(先業)을 이어 받아 만수정(萬樹亭)을 짓고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나 빈민들을 구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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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근현대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우석(愚石). 아버지는 이길주, 어머니는 백내지이다. 6남매 중 장남이다. 이진백(李鎭白)[1928~2012]은 천성이 중후하고 의지와 기개가 비범하였다. 곡성 완계 초당(浣溪草堂)에서 안훈(安壎)에게, 능주 수산 정사(壽山精舍)에서 배석면(裵錫冕)에게 수학하며 경적을 강구(講究)하였다. 학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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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순절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하남(河南). 자는 운서(雲瑞), 호는 우옹(羽翁). 건천(巾川) 정광(程廣)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판관(判官) 정영세(程永世)이다. 정득운(程得雲)[?~1593]은 1588년(선조 21)에 무과 병과에 급제하여 의흥위(義興衛) 부장(部將)이 되고,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동생인 정득원(程得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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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도암면 우치리는 우치(牛峙)·문바위[門巖]·각수 바위[角首巖]·가마터 등 4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120호가량의 주민이 거주하였으나 6·25 전쟁 이후 마을이 소각되고 폐촌이 되다시피 하였다. 이후 이농 현상으로 문바위 마을, 가마터 마을, 각수 바위 마을은 폐촌이 되고 지금은 우치 마을만 남아 1개의 자연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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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자는 운경(雲卿). 호는 모의당(謀義堂)·미달당(未達堂). 충헌공(忠獻公) 장정필(張貞弼)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장경흡(張景洽)이다. 장익(張翼)[?~?]은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삼호(三湖) 최명해(崔鳴海) 등 같은 고을의 여러 선비들과 창의하였다. 청주(淸州)까지 북상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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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운농리에 있는 터널. 화순군 동면 운농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운농 터널이라 이름 붙었다. 운농 터널은 상행선과 하행선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왕복 4차선이다. 상행선의 총 길이는 1,025m, 총 폭은 11.4m, 유효 폭은 7m, 높이는 7.0m이며, 하행선의 총 길이는 1,055m, 총 폭은 11.4m, 유효 폭은 7m,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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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동면 운농리는 운곡(雲谷)·농소(農所)·신운·정동 등 4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정동 마을은 폐촌이 되었다. 운농리는 운곡 마을의 운(雲)과 농소 마을의 농(農)을 각각 취하여 이름으로 삼았다. 운곡 마을은 예전에 운적굴로 불렀고 운적동리(雲積洞里)나 운곡(雲谷)이라고도 하였다. 마을 부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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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운농리 농소 마을에 있는 선돌. 농소 마을은 이전에 화순현의 동창(東倉)이 있었던 곳으로 농사짓는 곳이란 뜻으로 전한다. 마을의 동쪽으로는 잿등, 남서쪽으로는 집봉, 남쪽으로 천운산, 북쪽으로 시루봉이 있다. 마을은 동서가 개광되어 있고, 북쪽도 열려 있는 셈이다. 마을 입구도 북쪽이다. 농소 마을 가운데로 개울이 흐르고 개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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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경구(敬構), 호는 운사(雲沙). 할아버지는 병조 참판 민주현(閔冑顯)이고, 아버지는 민부(閔埠)이며, 어머니는 충주 박씨 만휴(萬休)의 딸이다. 민긍호(閔肯鎬)[?~?]는 시문(詩文)과 서도(書道)에 뛰어났으며, 최익현, 기우만, 송병선 등과 교유하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문집 간행에 앞장섰다. 일찍이 『대동 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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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남면 운산리는 운산·송산·신방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운산리의 지명은 운산 마을의 운(雲)과 송산 마을의 산(山)을 각각 취하여 만들었다. 운산 마을의 뜻은 원래 ‘골미산’이었는데, 고을뫼-골뫼-굴매-구루메-구름메의 변화를 거쳐 한자화되면서 운산(雲山)이 되었다. 송산 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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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순절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하남(河南). 자는 운서(雲瑞), 호는 우옹(羽翁). 건천(巾川) 정광(程廣)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판관(判官) 정영세(程永世)이다. 정득운(程得雲)[?~1593]은 1588년(선조 21)에 무과 병과에 급제하여 의흥위(義興衛) 부장(部將)이 되고,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동생인 정득원(程得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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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유천리에 있는 터널. 운알 터널은 왕복 2차선으로 총 길이 930m, 총 폭은 9.6m, 유효 폭은 9m, 높이는 6.6m이다. 운알 터널은 1993년에 준공되었고, 국도 22호선 상에 있다. 운알 터널은 화순군과 순천시를 연결하고 있으며 광주 국도 관리 사무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개통 후 화순군 동복면과 순천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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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도암면 운월리는 운포(雲浦)·복구·월포(月浦)·주례동·화포 등 5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월포 마을과 화포 마을은 폐촌이 되고 주례동 마을은 예산사(禮山祠)와 암자만 남아 있다. 운월리는 운포 마을의 운(雲)자와 월포 마을의 월(月)자를 각각 취한 것이다. 운포 마을은 원래 굴개 마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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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월리 복구 마을에 위치하고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떼. 운월리 복구 고인돌 떼는 고당산 아래 서쪽 기슭 부분으로 지방도 817호선이 지나고 있는 도암면 운월리 복구 마을에 있다. 고인돌은 운월리 복구 마을 264번지, 266번지, 267번지, 268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운월리 복구 고인돌 떼는 마을 논에 남북 일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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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월리 복구 마을에 위치하고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떼. 운월리 복구 고인돌 떼는 고당산 아래 서쪽 기슭 부분으로 지방도 817호선이 지나고 있는 도암면 운월리 복구 마을에 있다. 고인돌은 운월리 복구 마을 264번지, 266번지, 267번지, 268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운월리 복구 고인돌 떼는 마을 논에 남북 일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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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월리 운포 마을에서 음력 정월 14일에 지냈던 마을 공동 제의. 화순군 도암면 운월리 운포 마을에서는 마을 공동의 제의를 ‘당산제’라 하여 음력 정월 14일 밤에 윗 당산인 당산 할머니 앞에서 유교식 제차에 따라 제를 지냈다. 당산제를 언제부터 지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당산제를 지냈던 곳은 아랫 당산과 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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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월리 운포 마을에 있는 선돌. 운월리 운포 마을은 원래 굴개 마을이라 하는데, 이곳의 지형이 구부러진 형태로 된 포구였기 때문에 굴개 마을이라 한다. 운포 마을은 동쪽으로 해망산 줄기인 고등산이, 서쪽으로 호산이, 남쪽으로 남에서 흘러온 정천천은 북쪽으로 흐른다. 북쪽으로는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쌍옥리의 평야와 연결되어 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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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강가에 운월정을 짓고 정두섭이 읊은 한시. 한시 「운월정을 짓고서」의 작가 정두섭(鄭斗燮)의 호는 동광(東狂), 본관은 창원으로 생몰 연대나 활동 상황 등은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강동원이 정리한 『화순 시총』에 시가 수록되어 있어 화순군 동복면에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활동 했으리라는 것 정도만 알 수 있다. 시의 배경인 운월정은 현존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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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교육자이자 항일 운동가인 운인(雲人) 송홍(宋鴻)의 저술을 정리한 책. 『운인산고』는 운인 송홍[1872~1949]의 문집이다. 자는 익중(翼中), 호는 운인(雲人)이고, 본관은 신평(新平)이다. 광주 고등 보통학교 교사였고,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의 아버지로 불렸다. 1872년 9월 7일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월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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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교육자이자 항일 운동가인 운인(雲人) 송홍(宋鴻)의 저술을 정리한 책. 『운인산고』는 운인 송홍[1872~1949]의 문집이다. 자는 익중(翼中), 호는 운인(雲人)이고, 본관은 신평(新平)이다. 광주 고등 보통학교 교사였고,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의 아버지로 불렸다. 1872년 9월 7일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월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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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민족 교육 운동가. 본관은 신평(新平). 자(字)는 익중(翼仲), 호(號)는 운인(雲人). 아버지는 송용진(宋容鎭)이고 어머니는 나주 박씨이며 부인은 창령 조씨이다. 송홍(宋鴻)[1872~1949]은 한말의 애국 지사인 송병선(宋秉璿)에게 수학하였다. 1904년 9월 그는 홍종영(洪鍾榮)·이범창(李範昌)·윤흥섭(尹興燮)·윤영섭(尹寧燮) 등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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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교육자이자 항일 운동가인 운인(雲人) 송홍(宋鴻)의 저술을 정리한 책. 『운인산고』는 운인 송홍[1872~1949]의 문집이다. 자는 익중(翼中), 호는 운인(雲人)이고, 본관은 신평(新平)이다. 광주 고등 보통학교 교사였고,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의 아버지로 불렸다. 1872년 9월 7일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월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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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화순군의 효자. 본관은 장흥(長興). 자(字)는 성겸(聖兼), 호(號)는 운재(芸齋). 고현(高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고세은(高世殷)이다. 고진표(高鎭表)[?~?]는 자질이 영특하여 경학을 연구하여 조예가 깊었다. 효성과 우애가 깊었고, 순리대로 부모님을 모실 때 효성스러움이 육적(陸績)[회귤고사로 유명한 효자]과 황향(黃香)[아버지를 봉양할 때 더울 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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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주사 일원에서 매년 열리는 지역 문화 축제. 화순 운주 문화 축제는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는 축제이다. 운주사 특유의 종교적 색채를 지닌 채 마당극을 비롯하여, 도암 면민들의 고유 풍속인 집짓기 놀이, 도장 밭노래 등과 지역 주민들의 풍물놀이가 펼쳐진다. 또한 연등을 세우고 소망을 적은 깃발을 달며 저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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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주사 일원에서 매년 열리는 지역 문화 축제. 화순 운주 문화 축제는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는 축제이다. 운주사 특유의 종교적 색채를 지닌 채 마당극을 비롯하여, 도암 면민들의 고유 풍속인 집짓기 놀이, 도장 밭노래 등과 지역 주민들의 풍물놀이가 펼쳐진다. 또한 연등을 세우고 소망을 적은 깃발을 달며 저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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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운주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21 교구 본사 송광사(松廣寺) 소속 사찰이다. 천불 천탑(千佛千塔)이 있다고 기록될 정도로 많은 탑과 불상이 있으며, 모양과 배치도 특이하여 다른 곳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찰의 위치 면에서도 전라남도 나주시·영암군·화순군·장흥군이 만나는 교통 요지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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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에 있는 운주사를 주제로 한 이청리 시인의 시집. ‘다탑봉의 천불천탑’으로 알려진 운주사는 많은 불상과 탑 못지않게 많은 이야기로 넘쳐나는 공간이다. 시인 이청리는 전라남도 완도군 출신으로, 운주사와 관련된 설화, 가치, 민중적 아름다움 등을 우리의 삶과 대비해서 새롭게 노래하고 있다. 운주사의 설화, 풍경, 그리고 현재의 삶과 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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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에 있는 운주사를 모티프로 한 임동확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운주사는 좌절된 불사의 현장이라는 미완의 꿈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로 시인 임동확은 시집 『운주사 가는 길』에서 동결 건조된 것과 같이 남겨진 푸른 기억들을 운주사의 꿈으로 환치하면서 현재에 되살려 자기 존재의 거점으로 삼고자 하고 있다. 1992년 11월 1일 문학과 지성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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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운주사에 있는 석탑. 운주사는 한 계곡에 수많은 석불과 석탑이 무리지어 있다는 점이나 토속적인 조형성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스러운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처럼 운주사는 워낙 신비스러운 사찰인지라 석탑의 건립 배경이나 건립 연대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다. 양식적으로 보면 운주사의 석탑은 대부분 고려 중기 이후에 건립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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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는 운주사에 관한 설화를 강형구가 책으로 엮은 문학 작품. 강형구는 1962년 전라남도 나주시에서 출생하여 1989년 전남 대학교 인문대를 졸업하였다. 이후 10여 년간 야지에서 칩거하며 문예 창작과 문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운주사 그 신비로운 전설, 설화』는 전체 8부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운주사 창건 설화,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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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운주사에서 출토된 금동 보살 입상 운주사 금동 보살 입상은 청동으로 이동이 가능하게 만든 호신불 성격의 소지불이다. 소지불은 삼국 시대부터 제작되어 사용되었다. 1989년 전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운주사 제4차 발굴 조사에서 사찰 남쪽 입구 석불군 중 연화문 대좌가 있는 석불 좌상의 대좌 왼쪽 뒤편 표토 제거 중에 발견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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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운주사에서 출토된 금동 여래 입상. 운주사 금동 여래 입상은 이동이 가능한 호신불 성격의 소지불이다. 소지불은 삼국 시대부터 제작, 사용되었다. 운주사 금동 여래 입상은 1984년 전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제1차 발굴 조사에서 사찰 남쪽 입구의 구층 석탑 우측의 석불군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높이는 18.8㎝로 휴대하기 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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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운주사에 있는 석탑. 운주사는 한 계곡에 수많은 석불과 석탑이 무리지어 있다는 점이나 토속적인 조형성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스러운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처럼 운주사는 워낙 신비스러운 사찰인지라 석탑의 건립 배경이나 건립 연대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다. 양식적으로 보면 운주사의 석탑은 대부분 고려 중기 이후에 건립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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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운주사에 있는 모전 석탑. 운주사는 한 계곡에 수많은 석불과 석탑이 무리지어 있다는 점이나 토속적인 조형성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스러운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처럼 운주사는 워낙 신비스러운 사찰인지라 석탑의 건립 배경이나 건립 연대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다. 양식적으로 보면 운주사의 석탑은 대부분 고려 중기 이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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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운주사에 있는 석탑. 운주사는 한 계곡에 수많은 석불과 석탑이 무리지어 있다는 점이나 토속적인 조형성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스러운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처럼 운주사는 워낙 신비스러운 사찰인지라 석탑의 건립 배경이나 건립 연대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다. 양식적으로 보면 운주사의 석탑은 대부분 고려 중기 이후에 건립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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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운주사에 있는 이층 석탑. 운주사는 한 계곡에 수많은 석불과 석탑이 무리지어 있다는 점이나 토속적인 조형성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스러운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처럼 운주사는 워낙 신비스러운 사찰인지라 석탑의 건립 배경이나 건립 연대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다. 양식적으로 보면 운주사의 석탑은 대부분 고려 중기 이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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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주사에 있는 석탑. 운주사는 한 계곡에 수많은 석불과 석탑이 무리지어 있다는 점이나 토속적인 조형성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스러운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처럼 운주사는 워낙 신비스러운 사찰인지라 석탑의 건립 배경이나 건립 연대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다. 양식적으로 보면 운주사의 석탑은 대부분 고려 중기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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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운주사 대웅전 옆 마당에 있는 원형 탑. 운주사는 한 계곡에 수많은 석불과 석탑이 무리지어 있다는 점이나 토속적인 조형성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스러운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처럼 운주사는 워낙 신비스러운 사찰인지라 석탑의 건립 배경이나 건립 연대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다. 양식적으로 보면 운주사의 석탑은 대부분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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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운주사에 있는 이층 석탑. 운주사는 한 계곡에 수많은 석불과 석탑이 무리지어 있다는 점이나 토속적인 조형성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스러운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처럼 운주사는 워낙 신비스러운 사찰인지라 석탑의 건립 배경이나 건립 연대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다. 양식적으로 보면 운주사의 석탑은 대부분 고려 중기 이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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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에 위치한 운주사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집대성한 책. 전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운주사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수집·정리한 책이다. 전남 대학교 박물관이 전라남도 화순군청의 학술 용역을 의뢰받아 2008년 4월 14일부터 2009년 2월 13일까지 10개월간 운주사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였다. 『운주사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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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주사에 있는 석탑. 운주사는 한 계곡에 수많은 석불과 석탑이 무리지어 있다는 점이나 토속적인 조형성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스러운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처럼 운주사는 워낙 신비스러운 사찰인지라 석탑의 건립 배경이나 건립 연대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다. 양식적으로 보면 운주사의 석탑은 대부분 고려 중기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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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운주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21 교구 본사 송광사(松廣寺) 소속 사찰이다. 천불 천탑(千佛千塔)이 있다고 기록될 정도로 많은 탑과 불상이 있으며, 모양과 배치도 특이하여 다른 곳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찰의 위치 면에서도 전라남도 나주시·영암군·화순군·장흥군이 만나는 교통 요지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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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에 있는 운주사를 방문하고 느낀 점을 이노근이 쓰고 박수룡이 그림을 그린 기행 수필집. 운주사에 자리하고 있는 천불천탑과 관련된 이야기, 대웅전, 탱화, 칠성 바위 등 저마다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문화유산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소개하면서 동시에 저자 이노근의 역사관과 상상력 등 주관적인 요소를 결합한 독특한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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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에서 운주사와 천불천탑의 유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운주사와 운주 도사 이야기」는 운주도사가 천제의 도움으로 천불천탑을 만들고 절을 짓게 되었다는 사찰 유래담이다.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설』에 「운주사의 내력」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화순군 도암면에 운주라는 도사가 살고 있었다. 운주도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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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에 있는 운주사를 배경으로 하는 창작 전래 동화집. 운주사는 천불천탑을 통해 민중적인 상상력이 가장 역동적으로 발현된 장소로 알려져 있다.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하얀 도깨비의 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은 운주사가 이러한 민중적 상상력을 태생적 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운주사의 하얀 도깨비』는 동화 작가 김자환이 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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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화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신평(新平). 자(字)는 여진(汝眞)이고, 호(號)는 운호(雲湖).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를 지낸 송자은(宋自殷)의 후손이다. 송상언(宋相彦)[?~?]은 어버이를 섬김에 지극한 효도로써 하고, 부모님께서 병에 드시니 수십 년 동안 약 시중을 한결같이 하였다. 병이 매우 심해져서 하늘에 기원하니 천신(天神)이 감응하였다. 부모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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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과 전라남도 장흥군 장평면을 연결하는 고개. 웅치[250m]는 화순군의 최남단인 청풍면 이만리와 장흥군 장평면 우산리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곰치, 곰치재라고도 한다. 『여지도서』에는 “남쪽으로 장흥부와의 경계에 있는 웅치에서 오는 길이 44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봉미산(鳳尾山)과 가지산(迦智山) 사이에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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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원노(元老), 호는 월파(月坡). 의암(義庵) 민회삼(閔懷參)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사헌부 집의를 지낸 민여관(閔汝寬)이다. 민팽령(閔彭齡)[?~?]은 1636년(인조 14)에 발발한 병자호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남한산성에 가 왕을 지키려다가 강화했다는 소식을 듣자 통곡하며 고향으로 돌아와 두문불출하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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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음력으로 정월 초하룻날에 행하는 세시 풍속. 화순 지역에서 음력 1월 1일을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로 ‘설’ 또는 ‘구정(舊正)’이라고 한다. 설날을 한자로는 원일(元日)·원단(元旦)·세수(歲首)라고 쓰는데, 모두 새해의 처음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설날을 시점으로 새로운 해가 시작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행동거지를 조신하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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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원리 석복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떼. 원리 석복 고인돌 떼는 4개소로 9기가 나누어져 분포하고 있는데 하나는 원리 95-5번지 일원이며, 또 다른 하나는 원리 115-1번지 일원이며, 나머지는 각각 원리 126번지 일원이며, 원리 121번지 일원이다. 원리 석복 고인돌 떼는 주택가에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건물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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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원리 석복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떼. 원리 석복 고인돌 떼는 4개소로 9기가 나누어져 분포하고 있는데 하나는 원리 95-5번지 일원이며, 또 다른 하나는 원리 115-1번지 일원이며, 나머지는 각각 원리 126번지 일원이며, 원리 121번지 일원이다. 원리 석복 고인돌 떼는 주택가에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건물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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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원리 원촌 마을에서 음력 정월 14일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 화순군 백아면 원리 원촌 마을에서는 ‘당산제’라 하여 매년 음력 정월 14일 저녁 6시경에 천룡, 당산 할아버지, 당산 할머니에서 각각 제를 지낸다. 제관은 마을에서 정한 사람에 의해 주도하며, 제비는 마을 기금으로 충당한다. 제의는 유교식 제차에 따라 엄숙하게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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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원리 월산 마을에 위치하고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떼. 원리 월산 고인돌 떼는 사평면 원리 1리 월산 마을에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은 두 곳에서 확인되는데, 원리 1리 월산 마을 423-3번지 정상옥 집 일원과 마을 앞 논 가운데 민묘 일원에 분포하는 고인돌이다. 원리 월산 고인돌 떼는 묘역 주변에 모두 16기의 고인돌이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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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원리 월산 마을에 위치하고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떼. 원리 월산 고인돌 떼는 사평면 원리 1리 월산 마을에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은 두 곳에서 확인되는데, 원리 1리 월산 마을 423-3번지 정상옥 집 일원과 마을 앞 논 가운데 민묘 일원에 분포하는 고인돌이다. 원리 월산 고인돌 떼는 묘역 주변에 모두 16기의 고인돌이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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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남면 원리는 원동·개정지·월산·석복(石福) 등 4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원리는 원동리 마을에서 따온 지명이다. 원동 마을은 예전에 사평원(沙坪院)이 있었기 때문에 원리 또는 원촌이라 하였다. 개정지 마을은 산과 들이 만나는 지점을 뜻하는 개정지처럼 산 아래 밭이었던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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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북면 원리는 자연 마을인 원촌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리의 지명은 원촌 마을에서 유래하였다. 원촌 마을은 처음에 윗남재로 불렸는데 이는 아랫남재의 위쪽에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윗남재에 남치원(藍峙院)이란 조선 시대 관리들의 숙박소가 생겨나면서 원이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원촌(院村)이라 하였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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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광덕리에 있는 원불교 광주 전남 교구 소속 화순 교당 원불교는 우주의 근본 원리인 일원상(一圓相), 즉 동그라미 형상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는 종교이다. 1916년에 소태산 박중빈(朴重彬)이 전라북도 익산시에 총본산을 두고 개창한 불교 계통의 신종교로, 믿음의 대상은 법신불 일원상(法身佛一圓相)이며 정각 정행(正覺正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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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字)는 원서(元瑞), 호(號)는 근암(謹庵). 교위(校尉) 장세재(張世梓)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장일명(張一明)이다. 장표황(張表晃)[?~?]은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머니가 병환이 든 지 삼 년에 백약이 무효하고 위급해지자 아우들과 연이어 손가락을 끊고, 허벅지 살을 베어 피를 드려 수일 간 연명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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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에서 활동했던 학자. 본관은 제주(濟州). 초명은 회을(會乙), 자는 원숙(元淑), 호는 정재(正齋). 학포 양팽손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양호묵(梁虎黙)이며, 아버지는 현재(弦齋) 양재덕(梁在德)이다. 양회갑(梁會甲)[1884~1961]은 재주와 지혜가 총명하고 영특하여 문리를 일찍부터 성취하였다. 6세부터 할아버지인 양호묵(梁虎黙)에게서 글을 배웠고, 일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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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음력으로 정월 초하룻날에 행하는 세시 풍속. 화순 지역에서 음력 1월 1일을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로 ‘설’ 또는 ‘구정(舊正)’이라고 한다. 설날을 한자로는 원일(元日)·원단(元旦)·세수(歲首)라고 쓰는데, 모두 새해의 처음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설날을 시점으로 새로운 해가 시작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행동거지를 조신하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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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순절한 화순 출신의 무신. 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원중(元仲), 호는 상의재(尙義齋). 상서(尙書) 오순(吳淳)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부호군 오안적(吳安迪)이다. 오방한(吳邦翰)[?~1593]은 일찍이 박광전(朴光前)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장성하여서는 기사(騎射)에도 능하였다. 1590년(선조 23)에 무과에 급제하여 개운 만호(開雲萬戶)에 임명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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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능주면 원지리는 이못[鯉池]·도르메[元山] 2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원지리의 지명은 도르메 마을의 원(元)자와 이못 마을의 지(池)자를 각각 취하여 원지리라 하였다. 이못 마을의 뜻은 잉어떼가 많이 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며 잉어 리(鯉)자와 못 지(池)자를 써서 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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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원지리 43에 있는 삼국 시대 무덤 추정 유적. 원지리 원지 고분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원지리 원지 마을 앞 평지에 위치한다. 2000년 전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측량 조사를 실시하여 남북 지름 50m, 동서 지름 42m, 높이 9.5m의 타원형을 띤 것으로 확인하였다. 평지에 위치한 타원형 고분으로서 현지에서는 조산으로 불리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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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원지리를 중심으로 세거하는 장흥 고씨 집성촌. 이못 마을은 ‘인물(仁物)’ 즉 큰물에서 변용된 지명으로 큰물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 ‘인물’이고 ‘인물’이 ‘이못’이 된 것이다. ‘이못’은 다시 한자로 잉어 이(鯉), 못 지(池)자를 써서 이지리라 한다. 원산은 본디 도르메라 부른다. 마을 앞 조산을 돌아간다는 의미로 ‘도르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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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도암면 원천리는 통정·동두산·옥동·권동·사거리 등 5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고, 현재는 총 3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원천 1리는 통정 마을, 원천 2리는 동두산 마을과 옥봉 마을, 원천 3리는 권동 마을과 사거리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원천리의 지명이 어디에서 연원하였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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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원천리 통정 마을에 있는 선돌. 원천리 통정 마을은 통으로 만든 우물이 있어 이를 두고 통샘이라 하여 ‘통정’이라 부른다. 통정 마을은 동쪽으로 정천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매화봉이, 남쪽으로 매화봉 줄기가 감싸고 있다. 북쪽으로 약간의 평지와 정천 마을이 있다. 마을의 형국은 동향의 지세이며, 마을 입구도 동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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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운주사 대웅전 옆 마당에 있는 원형 탑. 운주사는 한 계곡에 수많은 석불과 석탑이 무리지어 있다는 점이나 토속적인 조형성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스러운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처럼 운주사는 워낙 신비스러운 사찰인지라 석탑의 건립 배경이나 건립 연대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다. 양식적으로 보면 운주사의 석탑은 대부분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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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주사에 있는 이형 석탑. 운주사는 한 계곡에 수많은 석불과 석탑이 무리지어 있다는 점이나 토속적인 조형성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스러운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처럼 운주사는 워낙 신비스러운 사찰인지라 석탑의 건립 배경이나 건립 연대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다. 양식적으로 보면 운주사의 석탑은 대부분 고려 중기 이후에 건립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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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동광주 노회 화순 시찰 소속의 교회. 노라복 선교사[남 장로회]가 인근을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한 결과 장년 50여 명이 광주에 있는 교회로 예배를 드리려 다녔다. 1904년 오원(吳元)[1867~1909] 선교사에 설립되었다고 전한다. 지역 교인 중심으로 화순군 화순면 앵남 2구 산 중턱에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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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와 천암리를 연결하는 교량. 원화교는 도곡천을 사이에 둔 지역 간의 원활한 교통 흐름을 위해 1990년에 준공되었다. 원화교는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에 위치하기 때문에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원화교의 총 길이는 66m이고 폭은 9m, 높이는 3m이다. 경간 수는 6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11m이다. 교량의 상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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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는 원동(元洞)·화남(花南) 2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원동 마을은 원화 1리, 화남 마을은 원화 2리이다. 원화리의 지명은 원동 마을에서 원(元)자를 취하고 화남 마을에서 화(花)자를 각각 취한 것이다. 원동 마을은 과거 마을에 부락암원(浮落岩院)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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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전라남도 화순 출신 서양화가인 오지호가 그린 불화. 1950년 6·25 전쟁으로 인하여 무등산에 있던 원효사가 불타 버리고, 1954년 복원불사가 진행될 때 전라남도 화순군 출신 서양화가 오지호[1905~1982]가 장모 김계(金桂)의 간청으로 3개월 동안 정성을 다해 그린 불교 탱화이다. 「원효사 탱화」는 원효사의 복원 불사가 진행되던 1954년 오지호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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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경칠(敬七), 호는 월계(月溪). 화순 입향조인 조온(曺穩)과 정곡(鼎谷) 조대중(曺大中)의 후손이다. 조선섭(曺善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창적(曺昌迪)이고, 아버지는 조희연(曺喜演), 어머니는 최종길(崔宗吉)의 딸이다. 조상진(曺相振)[1779~1847]은 1822년(순조 22)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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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화순 능주 월곡리에 입향한 문신. 본관은 남평(南平). 초명은 문상항(文尙恒), 호는 월곡(月谷). 강성군(江城君) 문익점(文益漸)의 현손(玄孫)으로, 아버지는 현감 문염(文琰)이다. 문상행(文尙行)[?~?]은 출사하여서는 나라의 인재가 되고 돌아와서는 유학의 종장이 되었다. 김숙자(金叔滋)와 종유하였으며, 1411년(태종 11) 태종(太宗) 때 진사시에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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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는 달아실·벼루굴[성곡(星谷)]·버드나무골[유곡(柳谷)]·양정 등 4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월곡리는 달아실 마을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달은 달 월(月)자로 쓰고 실은 골 곡(谷)자를 각각 사용하여 월곡리라고 하였다. 달아실 마을은 마을의 형국이 달과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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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이서면 월산리는 월평(月坪)·장월(長月)·경산(京山) 등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1971년 동복댐 담수로 월평 마을과 장월 마을은 수몰되었고 경산 마을만 소규모로 남았다. 이후 1991년 동복댐의 주변 이주 계획에 의해 경산 마을도 사라지게 되었다. 월산리의 지명은 월평 마을과 장월 마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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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월산리 월평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월산리 월평 고인돌 떼는 동복천 변의 충적 평지에 2기가 분포하고 있다. 1981년 당시 이서남 초등학교 남쪽에 있었다. 동복댐 조성은 보성강 상류인 동복천을 이용해 원래 있었던 댐을 확장해 광주광역시의 부족한 식수원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몰이 불가피한 지역에 대한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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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월산리 월평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월산리 월평 고인돌 떼는 동복천 변의 충적 평지에 2기가 분포하고 있다. 1981년 당시 이서남 초등학교 남쪽에 있었다. 동복댐 조성은 보성강 상류인 동복천을 이용해 원래 있었던 댐을 확장해 광주광역시의 부족한 식수원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몰이 불가피한 지역에 대한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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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월송리 월송 마을에서 음력 정월 5일에 지냈던 마을 공동 제의. 화순군 동복면 월송리 월송 마을에서는 마을 공동의 제의를 ‘당산제’라 하여 음력 정월 5일 밤에 당산 할머니 앞에서 유교식 제차에 따라 지냈다. 당산제를 언제부터 지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과거에는 정월 초하룻날이나 초이튿날 지내다가 초닷샛날로 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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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원노(元老), 호는 월파(月坡). 의암(義庵) 민회삼(閔懷參)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사헌부 집의를 지낸 민여관(閔汝寬)이다. 민팽령(閔彭齡)[?~?]은 1636년(인조 14)에 발발한 병자호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남한산성에 가 왕을 지키려다가 강화했다는 소식을 듣자 통곡하며 고향으로 돌아와 두문불출하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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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춘양면 월평리는 월산(月山)·옥평(玉坪)·민재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월평리의 지명은 월산 마을의 월(月)자와 옥평 마을의 평(坪)자를 합하여 월평리라 하였다. 월산 마을은 원래 민등 마을이라 불렀다. ‘민등’의 뜻은 다른 지역에 비해 나무가 없는 곳, 즉 민둥산에 위치하니 ‘민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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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월평리 문치 마을에 있는 선돌. 마을에서는 선돌을 ‘선독’ 또는 ‘두꺼비’라고 부르고, 선돌이 세워진 곳을 ‘선독배미’라고 부른다. 선돌을 세우게 된 이유는 두 가지로 전해지고 있다. 첫째, 마을 서쪽 백호동이 뱀 형국이고, 마을은 개구리 형국이어서 뱀 앞에 개구리가 잡아먹히는 형국이기에 이를 막기 위함이라고 한다. 둘째, 마을 서북간에 문치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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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괄의 난 진압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명진(明眞), 호는 월포(月圃). 아버지는 참의(參議) 김극복(金克福)이다. 의병 활동을 함께 했던 김완(金完)은 재종형(再從兄)이다. 김식(金湜)[?~?]은 1582년(선조 15)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1624년(인조 2)에 발생한 이괄의 난 때 창의(倡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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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희경(希慶), 호는 월헌(月軒). 장양공(莊襄公) 조저(曺著)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절효공(節孝公) 조억년(曺億年)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대곡에서 태어났다. 조현(曺顯)[1535~1555]은 1552년(명종 7) 무과에 합격하여 선전관(宣傳官)과 선사진 첨절사(宣沙鎭僉節使) 등을 역임하였다. 1554년에 달량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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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초상이 났을 때 장례 비용을 상부상조하기 위해 조직한 모임. 상포계(喪布契)는 보통 부모, 본인, 배우자의 4상(喪)에 필요한 경비와 노동력을 충당할 목적으로 생활권이 같은 곳에서 조직되었다. 상사 때 경비 조달 외에도 계원간의 방문 및 애도의 의무를 지녔으며, 별칭으로 위친계라고도 한다. 상포계는 조항을 두어 마을 사람들만이 소속될 수 있도록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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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유교는 공자가 체계화한 사상을 바탕으로 삼는 학문이다. 더 나아가 종교적 관점에서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공자의 가르침, 곧 유교는 인(仁)을 최고의 이념으로 삼는다. 인간의 도리를 의미하는 인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삼강오륜의 사회 윤리가 바로 그것이라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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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산이란 유네스코가 1972년 11월 제17차 정기 총회에서 채택한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에 따라 등재한 유산이다. 인류 문명과 자연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산인 세계 유산은 전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하고 이를 후손에게 전수해야 할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진 유산이다. 우리나라는 1988년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에 가입하였으며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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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음력 6월 15일에 행하는 풍속. 유두(流頭)는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인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의 약어이다. 유두 무렵은 새로운 과일이 나고 곡식이 여물어 가는 시기이기다. 따라서 유두에는 조상과 농신(農神)에게 햇과일과 정갈한 음식으로 차례를 지내기도 하고, 시절 음식을 먹으면서 쉬기도 하였다.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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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유득(有得), 호는 만은(晩隱). 민상백(閔祥伯)의 7대손으로, 증 참판 민소생(閔紹生)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동지사 민효원(閔孝源)이고, 아버지는 집의(執義) 민회삼(閔懷蔘)이다. 민사점(閔思點)[?~?]은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門人)으로 김굉필, 정여창과 도의로 사귀었다. 단종(端宗) 때 부사직(副司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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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남면 유마리는 원래 유마동·수청동·산막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산막 마을은 6·25 전쟁 당시 전소된 이후 폐촌되었다. 유마리의 지명은 유마 마을의 지명을 취하여 유마리(維摩里)라 하였다. 유마 마을은 유마사(維摩寺)의 이름을 따서 유마 마을이라 하였고 줄여서 유동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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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유마리 유마 마을에서 음력 2월 초하루에 지냈던 마을 공동 제의. 화순군 사평면 유마리 유마 마을에서는 마을 공동의 제의를 ‘당산제’라 하여 음력 정월 14일 밤에 당산 할머니 앞에서 유교식 제차에 따라 지냈다. 당산제를 언제부터 지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당산제는 원래 당산 할아버지에게 먼저 올리고 나서 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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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유마리 모후산 기슭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유마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21 교구 본사 송광사(松廣寺) 소속 사찰로 627년(백제 무왕 28)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고려와 조선 시대에 여러 차례 불사를 중창하였다. 6·25 전쟁 때 사찰과 암자가 모두 소실되어 미미하게 유지되어 오다가 현재는 대대적인 불사 중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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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유마리 유마사 앞으로 흐르는 개울 위에 놓인 돌다리. 유마사 보안교는 현재 유마사 일주문 옆에 위치하고 있는 하나의 큰 돌로 만든 다리로, 계곡의 동서 양 편을 연결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유마사를 창건한 유마운(維摩雲)이 다리를 놓기 위해 모후산 중턱에서 많은 인부를 동원하여 석재를 운반하려고 온갖 힘을 기우려도 일이 진척되지 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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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유마리 유마사에 있는 비구니를 위한 교육 기관. 화순군에 있는 유마사 선학 승가 대학원은 대한 불교 조계종 교육원의 승인을 얻어 2011년에 설립된 호남 최초의 비구니를 위한 선학 강원이다. 교육은 2년 과정으로 정원은 20명이며,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수업이 진행된다. 선학 전반에 걸쳐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교(敎)에 의해 선(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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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사평면 유마리 유마사에서 출토된 청동 시루. 시루는 우리나라에서 청동기 시대와 초기 철기 시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고유의 찜기이다. 자배기 모양으로 바닥에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는 형태이다. 유마사 청동 시루는 사찰에서 밥이나 떡을 찌는데 사용한 것이다. 아가리 아래의 외면에 ‘건륭 육년 신유 십월일 동복 유마사 동암 증 유중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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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유마리에 있는 유마사의 유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유마사의 유래」는 중국의 요동에서 살다가 남면 유마리에 온 유마운과 그의 딸 보안이 공덕을 쌓으며 살던 절의 명칭 유래담이다.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설』에 「유마사의 유래」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중국의 요동 태수 유마운은 늦은 나이에 보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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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던 물염정(勿染亭)을 유람하고 나서 다산 정약용이 쓴 기행문. 「유물염정기」는 정약용이 지은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1집 시문집 제13권에 수록되어 있는 기행문이다. 정약용이 산수의 유람을 통해 호연지기를 기르던 젊은 날 당시 화순 동복현에 있는 물염정(勿染亭)을 완상(玩賞)[즐겨 구경]하고 나서 썼다. 기행문 제목에 정유년[17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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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문화. 호는 행당(杏堂). 백천(百泉) 유함(柳涵)의 후손으로 유부(柳溥)의 아들이다. 유봉운(柳鳳運)은 도의를 강론하고 밝혔으며 사물을 대할 때 활연히 깨달음이 있었으며, 일찍이 배우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성인의 말씀을 반복하고 의리를 참고하여 지극히 마땅한 데로 돌아가길 구하는 것으로 나의 평생 동안 학문을 하는 중요함으로 삼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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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이견(利見). 아버지는 학생(學生) 유한수(柳漢樹)이고, 형은 생원(生員) 유사갑(柳思甲)이다. 유사룡(柳思龍)[?~?]은 성품이 너그럽고 화목하였으며, 효도하고 우애하였다. 1888년(고종 25)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통정대부 돈령부 도정(敦寧府都正)을 거쳐 가선대부 부호군(副護軍)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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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있는 무등산[서석산]을 정약용이 유람하고 쓴 기행문. 화순 지역의 뛰어난 산수는 청년 다산 정약용의 호연지기를 기르기에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그의 부친이 화순 현감(和順縣監)으로 있을 때에 적벽을 유람한 뒤 화순 사람 조익현(曺翊鉉)의 권유로 형제와 더불어 무등산을 오른 뒤에 쓴 기행문이다.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제1집 13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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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유석(類碩), 호는 무사재(無邪齋)·관수재(觀水齋). 박영주(朴永柱)[1803~1874]는 한평생 가난하였고 세 아들이 앞서 죽어 불우하였다. 그러나 학문은 고명하고 실천이 독실하였으며 의리(義理)를 매우 치밀하게 분별하였다. 일찍이 송치규(宋穉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송치규는 늘 “나를 일깨워 주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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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유선(由善), 호는 후송(後松). 충간공(忠簡公) 배문우(裵文祐)의 후예이고, 아버지는 참봉 배윤덕(裵允德)이다. 배경생(裵慶生)[?~?]은 기골(氣骨)이 크고 재주가 명민하였다.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의리(義理)를 강구하였다. 1618년(광해군 10)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고 1624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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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효자. 유광재(柳光載)의 현손(玄孫)이고, 아버지는 유사동(柳思東)이다. 유성오(柳成五)[?~?]는 효성과 우애가 순수하고 독실하였다. 달고 맛있는 음식으로 부모님을 봉양하였다. 화재가 나서 사당을 구원하려고 신주를 안고 나오다 죽었다. 고을 사람들이 이를 슬퍼하고 불쌍히 여겼다. 고을에서 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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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우리나라는 해방 이전인 1920년대 교육 구국 주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많은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보다 본격적인 유치원의 개원은 해방 이후인 1949년 교육법이 제정되어 유치원을 포함한 우리나라 교육 목표와 교육 방침이 제시되면서 부터이다. 또한 어린이 집은 취업모(就業母)를 위해 출발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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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전라남도 화순 지역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일어난 반독재 민주화 운동. 1986년 아시안 게임 이후 전두환 정권은 개헌 요구를 차단하기 위해 민주화 세력에 대한 탄압을 강화했다. 특히 1987년 4월 13일 대통령 간접 선출을 요체로 하는 헌법의 존치를 발표함으로써 반대 여론을 고조시켰다. 반대 여론은 점차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5월과 6월에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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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승려. 자는 무이(無二), 법호는 연담(蓮潭). 속세의 성은 천씨(千氏)이다. 유일(有一)[1720~1799]은 화순군 적천리에서 태어났다. 『통감』·『대학』·『맹자』·『중용』 등 유가 경전을 공부하였다. 1737년 18세에 승달산 법천사(法泉寺)의 성철(性哲)을 따라 출가하였고, 이듬해 안빈 노사(安賓老師)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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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승려. 세속의 성은 정씨(丁氏), 별호는 유일(有一). 연담 선사(蓮潭禪師)의 계보를 이었다. 혜원(慧遠)[?~?]의 생애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시 중에 혜원에게 보낸 시 「유일 상인에게 주다[贈有一上人]」가 있고, 그 시의 주(註)에 혜원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어 조선 후기에 정약용과 교유를 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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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 마을 회관 한쪽에 마련된 방안에는 엊그제 만들어놓은 메주가 한창 뜨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한 켠에서 아주머니 몇 분과 마을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유정자 씨가 있다. “메주를 작년에는 3백 5십 개도 넘었어. 작년에다 대면 삼분의 일로 줄었어요.” 도장 마을 영농 조합에서는 된장, 두부와 같은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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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유천리에 있는 저수지. 유천 저수지는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유천리에 위치한 1종 저수지이다. 농업 수리 시설로 이용될 뿐만 아니라 물이 깨끗하여 백로, 청둥오리 등 철새들이 자주 찾는 보존 가치가 있는 시설이다. 유천 저수지는 유천제라고도 하며, 농업 수리 시설로 1978년에 착공하여, 1984년 준공되었다. 유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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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동복면 유천리는 검천·유치(楡峙) 2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6·25 전쟁 전후로 유치 마을은 폐촌이 되고 검천 마을만 남아 이후 검천 마을을 유천 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유천리는 유치 마을의 지명에서 유(楡)자를 취하고 검천 마을의 지명에서 천(川)자를 각각 취하여 만들었다. 검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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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화순읍 유천리는 유천·갱정(更井)·백운촌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유천리의 지명은 유천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유천 마을은 원래 ‘버드내’라 불렀는데 냇가에 버드나무가 많아서 지어진 지명이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유천(柳川)이라 하였다. 갱정 마을은 고려 시대에 이곳에서 여덟 명의 판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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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유천리에 있는 저수지. 유천 저수지는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유천리에 위치한 1종 저수지이다. 농업 수리 시설로 이용될 뿐만 아니라 물이 깨끗하여 백로, 청둥오리 등 철새들이 자주 찾는 보존 가치가 있는 시설이다. 유천 저수지는 유천제라고도 하며, 농업 수리 시설로 1978년에 착공하여, 1984년 준공되었다. 유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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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는 유아 교육 기관. 유치원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1~3년 동안 유아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 기관이다. 유치원은 1945년에는 전국적으로 144개였으며 그 중 남한에 위치한 유치원은 39개소에 불과했다. 그 후 6·25 전쟁으로 현황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전쟁이 끝나고 나서 교회를 중심으로 유치원이 설립되기 시작하여, 1968년에는 475개로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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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자에서부터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활동. 유통업은 유통 활동을 담당하는 산업으로 도매·소매·운송·보관·하역·정보 등 경제 순환에 있어서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여 경제의 원활한 흐름을 유도하는 기능과 산업 자체의 발전 및 관련 산업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지원 산업의 역할을 수행한다. 「유통 산업 발전법」 제2조에 따르면, ‘유통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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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리에 있는 이병근의 강학소. 이병근(李炳根)의 본관은 광산, 자는 중엽(仲燁), 호는 도재(道齋)이며 중산(中山) 이동휴(李同休)의 둘째 아들로 1928년 화순군 춘양면 가봉리에서 태어났다. 1946년 능주 인량동 제종조 양곡 이승복 문하에서 한학과 성리학을 배웠고, 1949년 23세에 송담사 향사 제관이 됨으로써 유림에 입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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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자정(子淨), 호는 백천(百泉). 아버지는 유덕용(柳德容)이다. 유함(柳涵)[1576~1661]은 허봉(許篈), 이수광(李睟光), 정경세(鄭經世) 등과 교유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발발했을 때 격문(檄文)을 보고 조수성(曺守誠)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청주(淸州)까지 북상하였으나 강화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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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놀이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부르는 노래. 화순군의 민요는 전라남도 동부 지역의 민요와 서부 지역 민요의 특징이 융합된 지역이다. 산아지 타령권에서 부른 유희요는 「덜이덜롱」과 같이 빠르고 씩씩한 노래이고, 긴소리권의 유희요는 「강강술래」와 같이 정적인 느린 가락에서 동적인 빠른 가락까지 이어지는 유형이 대표적이다. 화순 지역에서 많이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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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1953년까지 북한의 남침으로 전라남도 화순 지역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950년 6월 25일 발생한 6·25 전쟁은 1950년 7월 북한 인민군이 전라남도 화순 지역을 점령하고 이후 9월 말엽에 서울 수복으로 퇴로가 차단된 가운데 빠르게 퇴각한 것으로 일단락됐다. 화순 지역에서는 정규군 간의 치열한 전투는 없었고 인민군의 점령 기간도 2개월 정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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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북한 인민군의 퇴각 이후 대한민국 군경과 빨치산이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대치 및 전투하는 과정에 일어난 민간인 학살 사건. 화순 지역의 민간인 학살은 본격적인 빨치산 토벌 작전이 진행되던 1950년 10월부터 1951년 3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학살은 군경과 빨치산 모두에 의해 일어났다. 전라남도 지역의 좌익 세력과 인민군은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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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50년 6·25 전쟁 때까지 전라남도 화순군 백아산 일대에서 국군과 북한 비정규군[빨치산] 사이의 전투가 벌어졌다. 백아산은 인천 상륙 작전으로 남한에 고립된 북한군과 좌익 게릴라들이 순창 회문산 및 지리산 등과 더불어 아군과 수많은 전투를 벌였던 격전지의 한 곳이다. 백아산 일대에서 활약한 유격대는 여수·순천 사건의 잔류 반란 세력과 탄압을 받은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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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천백(遷伯), 호는 육화(六化).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후예이다. 할아버지는 남주 고사(南州高士) 양지남(梁砥南)이며, 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양우규(梁禹圭)이다. 양지남은 은봉(隱峰) 안방준(安邦俊)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양거안(梁居安)[1652~1731]은 경사(經史)를 널리 섭렵하여 문사(文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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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태음력을 기준으로 일 년 열두 달 외에 불어난 달에 행하는 풍속. 윤달[閏月]은 태음 태양력에서 달력의 날짜를 계절에 맞추기 위해 삽입되는 여분의 달을 말한다. 달을 기준으로 만든 ‘태음력(太陰曆)’은 1년이 354일로 365일을 기준으로 하는 양력과 11일 차이가 난다. 양력과 날을 맞추기 위해서는 이렇게 부족한 11일을 모아 3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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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 살았던 각포에 능한 사람. 윤달노(尹達老)[?~?]는 마른 문어를 조각하여 제상 및 경축 연회상에 놓았다. 봉황이나 용 또는 매화, 국화, 화초봉접을 조각하여 진수성찬 연회상에 화심(花心)처럼 중앙에 놓아 음식의 미각을 돋우고 품위를 높이며 금상첨화로 시각미를 살렸다. 혼인상에는 봉화를 새겼고 회갑상에는 국화를 썼고 돌잔치 상에는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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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회일(會一), 호는 해은(海隱)이다. 판서(判書) 윤처관(尹處寬)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윤구(尹坵)이다. 윤만동(尹萬東)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족형(族兄)인 윤대표(尹大彪)가 의병을 모을 때 함께 했으며, 군량미가 부족하자 모아둔 돈과 곡식을 모두 내어 군량미를 조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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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능주 목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윤보(潤甫), 이호(彛好)이며 호는 노촌(老村). 임연(林煉)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도사 임세공(林世恭)이며, 어머니는 이형생(李逈生)의 딸이다. 큰아버지 임세온(林世溫)에게 입양되었고, 윤증(尹拯)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상덕(林象德)[1683~1719]은 1699년(숙종 25) 진사가 되었고, 17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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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치오(致五), 호는 죽남(竹南)이다. 아버지는 윤우은(尹佑殷)이다. 윤복형(尹福衡)[?~?]은 고종(高宗) 을축년(乙丑年)[1865년]에 경복궁 중건 사업을 시작할 때 밭을 매각하여 상납하고 병인양요(丙寅洋擾) 때에도 전토(田土)를 방매(放賣)하여 양희영(梁禧永), 양정환(梁珽煥), 김인기(金仁基) 등에게 노자를 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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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달성(達城). 충간공(忠簡公) 배문우(裴文祐)의 후손이며 유일(遺逸) 배상진(裴尙紾)의 6세손이다. 초명은 윤선(胤先)이다. 배홍립(裵弘立)[?~?]은 병자호란이 일어난 1636년(인조 14)에 청강(淸江) 조수성(曺守誠)과 함께 창의하였다. 병량미를 많이 모아서 운량관(運糧官)이 되었고, 여산회맹(礪山會盟)에서 주병 대장(鑄兵隊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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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태음력을 기준으로 일 년 열두 달 외에 불어난 달에 행하는 풍속. 윤달[閏月]은 태음 태양력에서 달력의 날짜를 계절에 맞추기 위해 삽입되는 여분의 달을 말한다. 달을 기준으로 만든 ‘태음력(太陰曆)’은 1년이 354일로 365일을 기준으로 하는 양력과 11일 차이가 난다. 양력과 날을 맞추기 위해서는 이렇게 부족한 11일을 모아 3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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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파평. 자는 우삼(友三), 호는 인재(忍齋). 소정공(昭靖公) 윤곤(尹坤)의 후예이다. 할아버지는 윤심암(尹心庵)이다. 윤자익(尹滋益)[?~?]은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의 문인으로, 학문이 해박(該博)하고 예법에 맞는 몸가짐이 빼어났다. 선업(先業)을 이어 받아 만수정(萬樹亭)을 짓고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나 빈민들을 구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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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형삼(亨三), 호는 눌와(訥窩). 소정공(昭靖公) 윤곤(尹坤)의 후예이다. 윤확(尹確)이 낙남(落南)하여 나주 영평(永平)에 터를 잡았고, 6세조 칠송(七松) 윤각(尹珏)이 화순 능주로 이거하였다. 아버지는 난곡(蘭谷) 윤영진(尹榮鎭)이고,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權氏) 권성록(權成祿)의 딸이다. 윤자현(尹滋鉉)[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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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지역 출신의 문신. 자는 윤중(允仲), 호는 성재(醒齋). 아버지는 방환종(房煥鍾)이다. 방채규(房采奎)[?~?]는 1893년에 사헌부 감찰을 거쳐 한말에 동복군 주사(主事)를 지내며 ‘성옹정(醒翁亭)’이라는 별서를 경영하였다. 1908년, 1909년 두 차례나 항일 의병들의 습격을 받기도 하였으며 1914년 조선 총독부에서 목배(木杯)를 수여받았다.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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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천(允天) 호는 추봉(秋峯). 완창대군(完昌大君)의 9대손이며 순양군(順陽君) 이석공(李石公)의 고손(高孫)으로,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거의(擧義)한 이사종(李嗣宗)이다. 이정기(李廷機)[?~1636]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둘째 형 이정추, 동생 이정근과 함께 창의하였다.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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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이양면 율계리는 정장·장산·도림촌·매남 등 4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율계리의 지명은 율계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정장 마을은 정작굴 골짜기에 있으므로 정작굴·정장굴이라 부르고, 마을 이름도 정장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장산 마을은 원래 노르목이라 불렀는데 ‘노르목’은 주된 길목이란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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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오중(五重), 호는 율재(栗齋). 옥천군(玉川君) 조흡(曺恰)과 화순 입향조인 조온(曺穩)의 후손으로, 조세명(曺世明)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조굉중(曺閎中)이고, 아버지는 조수천(曺守天)이다. 어머니는 전의 이씨(全義李氏) 이섬지(李暹之)의 딸이고, 부인은 정민행(鄭敏行)의 딸이다. 조정(曺烶)[1610~1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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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병인양요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조선 후기 1866년(고종 3)에 발생한 병인양요 때에 인근의 유생들과 함께 거의(擧義)한 의병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가(聖可), 호는 율재(栗齋). 진사(進士) 김대기(大器)의 후손이다. 김종국(金鍾國)[?~?]은 1866년(고종 3)에 발생한 병인양요 때 족숙(族叔)인 김인기(金仁基)가 같은 고을의 유생(儒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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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부터 조선 초까지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세청리 일대에 있었던 특수 지방 행정 구역. 신라의 지방 통치 체제는 주군현(州郡縣) 제도를 근간으로 하였으나, 일반 군현과는 다른 소(所)와 부곡(部曲)이라는 특수한 행정 구역이 있었다. 소와 부곡은 신분적인 면에서 집단 천민의 거주지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곡(部曲)의 기원은 중국에서는 노예 혹은 노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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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신덕리에 있는 수령 약 260년의 버드나무. 도곡면 신덕리에 자생하고 있는 버드나무로 마을의 북서쪽 하천변에 자리 잡고 있다. 흔히 ‘율치 버드나무’로 불린다. 신덕리 버드나무의 높이는 15m, 가슴 높이 둘레는 1.5m이며 수령은 약 260년으로 추정된다.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가에 자리 잡은 버드나무는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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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명절이나 정월 보름께 원형의 놀이판에 28수를 그려놓고 탱자나무 등으로 만든 네 개의 윷을 이용해 행하는 민속놀이. 윷놀이는 한자로 ‘척사(擲柶)’ 또는 ‘사희(柶戱)’라고 부르며,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하여 즐기는 온 국민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이다. 놀이판에 28수를 그려놓고 탱자나무 등으로 만든 네 개의 기다란 장작윷이나 밤톨만한 밤윷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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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절강(浙江). 자는 형복(亨福), 호는 은림(隱林).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귀화한 명나라 중군(中軍) 도독(都督) 편갈송(片碣頌)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절효공(節孝公) 편풍세(片豐世)이며 어머니는 오천 정씨(烏川鄭氏)이다. 편성대(片成大)[1605~1673]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근왕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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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자옥(子沃). 호는 은암(隱庵).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임숙(林塾)이다. 임시계(林時啓)[?~?]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동생 임시태 및 여러 종형(從兄)들과 함께 거의(擧義)하였다. 집안의 재산을 모아 군용(軍用)에 충당하였고, 전주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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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해주(海州). 초명은 창혁(昌赫), 자는 대수(大叟), 호는 은암(隱菴).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조휘(曺撝)이고, 아버지는 최언연(崔彦嚥)이며, 어머니는 금성 나씨(錦城羅氏) 나응무(羅應斌)의 딸이다. 최한창(崔翰昌)[1722~1789]은 학문이 순실하여 심경과 근사록 및 성리학 저서들을 전심하여 강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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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일대에서 서식하고 있는 은행나무속에 속하는 낙엽 교목.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릴 만큼 오래 전부터 존재하던 나무로 우리나라와 일본·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원산지는 중국이며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경기도 용문사에 있는 은행나무는 나이가 1,100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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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5년 5월 왜구가 전라도 남해안에 침입하여 전라남도 화순 지역 출신의 달량 권관(達梁權管) 조현(曺顯)[?~1555]이 전사한 사건. 조현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희경(希慶), 호는 월헌(月軒)이다. 을묘왜변 때에 왜구 토벌에 나섰다가 전사한 무신(武臣)이며, 사후(死後) 조정에서 몇 차례에 걸쳐 포상을 실시하였다. 16세기 초 조선은 삼포왜란(三浦倭亂)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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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음식물을 조리하여 판매하는 상점. 화순군은 넓은 산간 지역에서 축산물과 임산물이 생산되며, 주요 하천에서 민물고기 등이 주요 식재료로 생산되고 있다. 이를 이용한 다양한 향토 음식을 판매하는 음식점이 도곡 온천, 한천 휴양림, 안양산 휴양림 등의 관광지 주변에 밀집되어 있다. 화순군은 우리나라의 남부 내륙에 위치하고 있으며,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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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소리를 소재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우리나라의 음악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국악(國樂)과 근대에 서양에서 들어온 양악(洋樂)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요즘 통상적으로 ‘음악’이라고 일컫는 것은 양악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학교 교육을 통해 본격적으로 양악이 들어오면서 우리나라 음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화순군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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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의 13개 읍면에서 면민의 화합과 결속을 위해 개최되는 행사. 화순군의 13개 읍면에서 면민들의 화합과 우의를 다지기 위해 읍면별로 특정한 날을 정하여 ‘면민의 날’ 또는 ‘읍민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화순군 체육회 주최로 1961년 4월에 개최된 제1회 군민 체육 대회는 읍면 대항 축제였다. 이후 형편상 개최하지 못하다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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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동복면 읍애리는 읍애 마을 단일로 형성되어 있으나 세분하면 해가 비치는 쪽의 양지뜸[陽地洞]과 그늘이 지는 쪽의 음지뜸[陰地洞]으로 나눌 수 있다. 읍애리의 지명은 숯실 마을에서 유래하였다. ‘숯실’을 한자로 표기하면 ‘애곡(艾谷)’이 된다. 읍내면의 읍(邑)자와 ‘애곡(艾谷)’의 애(艾)자를 각각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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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읍애리를 중심으로 세거하는 초계 변씨 집성촌. 읍애리(邑艾里)의 지명은 동복군 읍내면에 있는 애곡(艾谷)[=쑥실=숲실] 마을이라 하여 읍내면의 읍(邑)자와 애곡(艾谷) 마을의 애(艾)자를 각각 취하여 읍애리라 하였다. ‘애곡’은 원래 숲에 가린 마을이라 ‘숲실’[=숯실=쑥실]로 불렀으며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변충렬(卞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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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응룡(應龍), 호는 창랑(滄浪). 창원군(昌原君) 정관(丁寬)의 후예이고 할아버지는 정세원(丁世遠)이고, 아버지는 정진(丁晉)이다. 어머니는 광산 김씨(光山金氏) 김옥명(金沃命)의 딸이고 부인은 강화 봉씨(江華奉氏) 봉곤(奉鵾)의 딸이다. 정암수(丁巖壽)[1534~1594]는 성품이 강직하고 도량이 컸으며 학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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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복 객사 남쪽에 있던 응취루에 대해 임억령이 읊은 한시. 한시 「응취루」의 작가 임억령(林億齡)[1496~1568]의 자는 대수(大樹), 호는 석천(石川)이며 본관은 선산이다. 그가 담양 부사로 내려오자 인재(忍齋) 김성원(金成遠), 송강(松江) 정철(鄭澈),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이 그의 문하에 들어가 시학을 배웠으며, 사람들은 이들을 성산동(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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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응행(應行), 호는 학탄(鶴灘). 아버지는 사마(司馬) 조세명(曺世明)이다. 조민중(曺敏中)[1541~?]은 문학으로 세상에 명성을 떨쳤다. 1573년(선조 6)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다. 1589년 기축옥사에 아우 조대중(曺大中)이 연루되어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고, 자신도 의금부에 구금되었으나 여러 번 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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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조선 시대와 개항기에 국가가 위급할 때 백성들이 스스로 조직한 자위군. 조선 시대 화순 지역 최초의 의병 운동은 1592년(선조 25)에 일본군의 침입으로 시작된 임진왜란 때에 일어났다. 임진왜란은 7년간이나 계속되어 참혹한 피해를 조선에 입혔다. 조선의 관군은 임진왜란 초기에 연전연패를 거듭하였고, 전라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의병이 일어나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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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1년까지 전라남도 화순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항일 항쟁. 1895년(고종 32) 명성 황후 시해와 단발령 시행으로 호남 지역에서 의병 운동이 시작되었고, 화순 지역에서도 이에 동참하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그러나 당시 화순 지역 인사들의 활동은 개인 자격으로 외지에서 일어난 거병에 참여하는 수준이었다. 1896년 능주 지역의 정의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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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 사람들이 입었던 의복 및 이와 관련된 생활 풍속.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의생활 문화는 우리나라 다른 지역의 의생활과 마찬가지로 현대화되어 있다. 현재 결혼식이나 상을 당할 때 입는 관혼상제 복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상복으로 서양복을 착용한다. 이에 화순 지역에서 50여 년 이상 거주해 온 주민을 대상으로 면담 조사를 하여 전라남도 화순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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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의식을 행할 때 부르는 민요. 화순 지역 주민들이 의식을 거행하면서 신에게 인간의 생존과 관련하여 화를 쫓고 복을 비는 노래들이다. 특수 집단의 무가와 불가로서의 의식요가 있고, 비전문적인 서민들의 민요로서 부르는 의식요로 나눌 수 있다. 화순 지역은 조선 인조 시대에 능주가 관아의 고을이 된 이후 많은 예인과 무속인이 거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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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이견(利見). 아버지는 학생(學生) 유한수(柳漢樹)이고, 형은 생원(生員) 유사갑(柳思甲)이다. 유사룡(柳思龍)[?~?]은 성품이 너그럽고 화목하였으며, 효도하고 우애하였다. 1888년(고종 25)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통정대부 돈령부 도정(敦寧府都正)을 거쳐 가선대부 부호군(副護軍)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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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이견(而見), 호는 연파(蓮坡).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양재욱(梁在郁)이다. 양회일(梁會一)이 형이다. 양회룡(梁會龍)[1881~1959]은 1907년에 형 양회일과 함께 화순군 이양면 쌍산리에서 의병을 모아 거의하였다. 그 후 능주, 화순, 동복의 관아 등을 공격하였고, 광주(光州)로 진군하던 도중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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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출신의 기독교인. ‘도암의 성자’라고 불리는 이세종은 조선조 말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1920년경 성경을 처음 읽은 후 진리임을 깨닫고 성경대로 실천하면서 금욕, 금육, 절제된 삶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며 살다가 신사참배를 피해 1939년 화학산에 은거하여 산막에서 살다가 1942년에 죽었다. 이세종(李世鐘)[1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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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의병장. 이관회(李貫會)[1871~1910]의 본적은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이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 후 보성에서 봉기한 안규홍(安圭洪) 의병 부대에 가담했다. 1908년 2월부터 1909년 7월까지 선봉장으로 활동하며 보성·고흥 일대에서 많은 전과를 올렸다. 특히 1908년 8월에는 파청에서 수호(水戶)와 평정(平井)이 지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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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독립 운동가. 이덕우(李德宇)[1908~1950]는 전라남도 화순군 출생으로, 본적은 전남 화순군 동면 대포리 292번지이다. 전남 공립 사범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 7월 초순 수피아 여학교 뒷산에서 송동식(宋東植)·이신형(李信珩)·홍귀주(洪貴周) 등 10여 명과 함께 비밀 결사를 조직하고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다. 이들은 다시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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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일대에 있었던 백제의 지방 군현. 백제는 538년 사비 천도를 전후하여 담로제(檐魯制)를 대신하여 방군성제(方郡城制)를 실시하였다. 백제 전역을 5방으로 나누는 한편 지금의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 일원을 관할하기 위해 남방을 두었고, 그 밑에 14군(郡)과 44현(縣)을 설치하였다. 이에 따라 화순 지역에는 이릉부리군(尒陵夫里郡)과 두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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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이만리에 있는 저수지. 이만 저수지는 ‘이만제’, ‘이만 청풍제’, ‘청풍 저수지’, ‘청풍제’라고도 하며 농업 수리 시설물로 1종 저수지이다. 이만 저수지는 농업용수 개발을 위해 1992년 1월 1일에 착공하여 1998년 1월 1일 준공되었다. 총 저수량 115만 4000㎥, 유효 저수량 100만 5000㎥로 1종 저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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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청풍면 이만리는 진전·학송리·너멍굴·강촌·이목동·세류동 등 6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학송 마을과 이목동 마을은 폐촌이 되었다. 이만리의 지명은 진전·학송리·너멍굴 마을이 속한 내만경(內晩頃)과 강촌·이목동·세류동 마을이 속한 외만경(外晩頃)을 합하여 이만리라 이름한 것이다. 진전 마을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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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이만리에 있는 저수지. 이만 저수지는 ‘이만제’, ‘이만 청풍제’, ‘청풍 저수지’, ‘청풍제’라고도 하며 농업 수리 시설물로 1종 저수지이다. 이만 저수지는 농업용수 개발을 위해 1992년 1월 1일에 착공하여 1998년 1월 1일 준공되었다. 총 저수량 115만 4000㎥, 유효 저수량 100만 5000㎥로 1종 저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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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일대에서 서식하고 있는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교목. 원산지가 한국인 이팝나무는 골짜기나 해변가 등에서 양지바르고 토심이 깊은 비옥적인 토양에서 생장한다. 이팝나무는 중국·대만·일본 등에 분포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전라도·경기도·제주도에서 분포되어 있다. 지금과 같이 항상 밥상에 쌀밥이 오르지 않던 배고픈 시절에는 사람들이 이팝나무에 핀 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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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찬화(贊華), 호는 석천(石川). 완창대군(完昌大君)의 8대손이며, 순양군(順陽君) 이석공(李石公)의 증손(曾孫)이고, 증 참의(參議) 이희춘(李希春)의 아들이다. 이사종(李嗣宗)[1543~1634]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고경명(高敬命)이 금산성 전투에서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동생 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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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광견(光見), 호는 죽오(竹塢). 양도공(襄度公) 이천우(李天祐)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문계(李文繼)이고, 어머니는 화순 최씨(和順崔氏) 최봉권(崔鳳權)의 딸이다. 이상백(李常白)[1857~1924]은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의 문인으로, 조용하거나 혼자 있는 곳에서도 삼가 몸을 지키고, 성리학의 깊은 뜻을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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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무숙(茂叔), 호는 삼괴(三愧). 양도공(襄度公) 이천우(李天祐)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충의위(忠義衛) 이제(李濟)이다. 이상회(李相檜)[1679~1748]는 어려서부터 자질이 아름다웠고 실덕(實德)을 근본으로 삼아 영화(榮華)를 추구하지 않았다. 성장하여 송시열(宋時烈)의 학통을 이은 손재(遜齋) 박광일(朴光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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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인택(仁宅), 호는 송암(松庵). 공숙공(恭肅公) 이명덕(李明德)의 후예로 아버지는 이화제(李華齊)이다. 이생후(李生厚)는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1702~1772]의 문인(門人)으로 절개가 뛰어나 칠송정(七松亭)을 짓고 성리학(性理學) 연구에 전념하였다. 증손(曾孫) 이약수(李藥秀)가 귀하게 되어 이조 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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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에 있었던 시장. 이서 시장은 『호남 읍지』[1871]에 석보시(石保市)로 불리우고 있고 『동복지』[1915]에 내서면[현재의 이서면] 도석리에서 매순 4일·9일에 열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서 시장은 장이 위치해 있던 지명을 따라 방석굴장 또는 방석보장이라고도 불렸다. 이서장이 열리던 방석보[옛 도석리]도 1984년에 지역이 수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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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서 잠업 농가로 이루어진 작목반. 이서 잠업 작목반은 잠업 농가의 소득 확대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설립되었다. 이서 잠업 작목반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서는 1960년대부터 잠업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2000년부터 누에와 뽕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많은 농가가 참여하여 이서 잠업 작목반을 설립하였다. 주요 사업은 누에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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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이서(異瑞). 판서(判書) 정흠지(鄭欽之)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봉사(奉事) 정인직(鄭仁直)이다. 정기용(鄭奇龍)[1577~1592]은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관직은 주부(主簿)를 역임했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중봉 조헌을 따라 금산(錦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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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일대에서 전해지는 효자에 관한 이야기. 「보암리 효자 이야기」는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보암리에서 어머니를 지극히 봉양하였던 정자근노미의 효행담이다. 1981년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발행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에 「효자 정자근과 적벽」이란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설』에 「보암리 효자」라는 제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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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 속하는 행정 구역. 화순군의 북쪽에 위치한다. 이서면 동쪽은 북면·동복면, 서쪽은 광주광역시와 화순읍, 남쪽은 동면(東面), 북쪽은 전라남도 담양군과 접하고 있다. 1914년 동복군이 화순군에 편입되면서 내서면과 외서면을 합해서 이서면(二西面)이라 칭한 데서 이서면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이서면에는 청동기 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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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의 대표 특산품인 뽕잎과 누에를 소재로 하여 만든 노래극을 할 때 부르는 노래. 화순군 이서면에서는 뽕잎을 채취할 때 「뽕따러 가세」, 누에에서 실을 뽑을 때 「물레 타령」, 명주실에서 비단을 만들 때 「베틀 노래」와 풍요를 기원하는 「풍년 노래」를 부른다. 1993년 강동원이 편찬하고 도서출판 民에서 발행한 『화순의 민요』에 화순 지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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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에 있는 이서면 관할 행정 기관. 이서면사무소는 화순군 이서면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주민 복리 증진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1910년 10월 1일 칙령 제354호, 칙령 제357호에 의거하여 도(道)·부(府)·군(郡)·면(面)을 정비하면서 면사무소를 두기 시작했다.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내서면과 외서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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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에 있었던 시장. 이서 시장은 『호남 읍지』[1871]에 석보시(石保市)로 불리우고 있고 『동복지』[1915]에 내서면[현재의 이서면] 도석리에서 매순 4일·9일에 열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서 시장은 장이 위치해 있던 지명을 따라 방석굴장 또는 방석보장이라고도 불렸다. 이서장이 열리던 방석보[옛 도석리]도 1984년에 지역이 수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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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인계리에서 발원하여 도석리를 거쳐 동복호로 흘러드는 하천.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서쪽의 무등산 국립 공원에 속한 북산[신선대] 남쪽 산록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동복호로 유입하는 지방 하천이다. 하천이 지나는 화순군 이서면에서 비롯되었다. 『해동여지도』에 이서천에 해당되는 유로가 방하치(方下峙)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복천에 유입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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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 마을은 서쪽 무등산에서 발원한 이서천변에 자리하고 있다. 물길과 어우러진 야사 마을의 터를 보면 배 형국이라고 한다. ‘장수 마을 건강 관리실’에 놓여 있는 「1945년의 야사리 전도」를 보면, 처음 야사 마을이 들어선 아리데미는 이서천 물길을 좇아 자리 잡은 영락없는 배 형국이다. 이 그림 지도는 1999년에 하장호 씨의 옛 기억을 옮긴 것이다. 하장호 씨는 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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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화순 지역으로 입향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완(聖完), 호는 퇴일당(退逸堂). 완창대군(完昌大君) 이자흥(李子興)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문안공(文安公) 파성군(坡城君) 이사철(李思哲)이다. 이석공(李石公)[1438~1493]은 1462년(세조 8)에 문과에 급제하여 양주 목사(楊州牧使)에 제수되었다. 장수의 천거로 1477년에 특별히 전라 병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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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동학 농민 운동 때 화순군 한천면 집강으로 일읍을 수성한 인물. 본관은 능성. 자는 덕서(德瑞), 호는 이섭재(利涉齋). 청계(淸溪) 구희(具喜)의 후예로 아버지는 구본혁(具本赫)이다. 구길모(具吉謨)는 동학 농민 운동 때 한천면 집강이 되어 군수 조존두(趙存斗)와 함께 읍을 수성(守成)하였다. 조정에서는 나중에 가선대부를 증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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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출신의 기독교인. ‘도암의 성자’라고 불리는 이세종은 조선조 말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1920년경 성경을 처음 읽은 후 진리임을 깨닫고 성경대로 실천하면서 금욕, 금육, 절제된 삶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며 살다가 신사참배를 피해 1939년 화학산에 은거하여 산막에서 살다가 1942년에 죽었다. 이세종(李世鐘)[1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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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덕수(德受), 호는 양곡(良谷). 청심당(淸心堂) 이조원(李調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동표(李東杓)이고 어머니는 장흥 고씨 고경진(高敬鎭)의 딸이다. 생부는 이동고(李東高)이다. 이승복(李承福)[1886-1961]은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으며, 종형인 죽곡(竹谷)에게서 수학하였고, 자라서는 일신재(日新齋) 정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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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관여(寬汝), 호는 난계(蘭溪). 청심당(淸心堂) 이조원(李調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지호(李贄鎬)이다. 이승우(李承愚)[1855~1919]는 화순 출신으로,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재주가 영오하고 뜻이 확고하였다. 과거 시험 공부를 전폐하고 경전 공부에 침잠하였다. 노사(蘆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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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승정(李承正)[1871~1924]은 1910년 8월 경술국치 직후 “남아가 세상에 태어나 국수(國讐)를 갚지 못하고 어찌 가히 집에 거(居)하여 도식 투생(徒食偸生)하리오”라며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서울 동대문 김태영(金泰榮) 집에 기숙하며 1914년 9~11월 김규석(金圭錫)·유병하(柳秉夏) 등에게 “국권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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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승정(李承正)[1871~1924]은 1910년 8월 경술국치 직후 “남아가 세상에 태어나 국수(國讐)를 갚지 못하고 어찌 가히 집에 거(居)하여 도식 투생(徒食偸生)하리오”라며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서울 동대문 김태영(金泰榮) 집에 기숙하며 1914년 9~11월 김규석(金圭錫)·유병하(柳秉夏) 등에게 “국권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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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화순읍 이십곡리는 숨은실·압곡의 2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이십곡리(二十谷里)의 지명은 숨은실 마을의 지명을 한자로 표기한 데서 온 것이다. 숨은실 마을의 뜻은 골짜기가 구부러져 마을이 외부에서 보이지 않고 숨겨져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상촌·중촌[건너새터]·하촌[아래새터]로 구분된다. ‘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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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이십곡리에 있었던 청동기 시대 고인돌. 이십곡리 고인돌이 있는 곳은 국도 15호선 주변으로 광주광역시에서 화순군으로 진입하는 입구에 해당하며, 옛 검문소 앞에 고인돌 7기가 있었다. 이십곡리 고인돌은 능주·화순 간 국도 확·포장 공사로 인하여 화순읍 연양리 옹관묘와 함께 조사하게 되었다. 조사는 1999년 5월부터 6월까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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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이십곡리 상촌 마을에서 음력 정월 14일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 이십곡리 상촌 마을에서는 ‘당산제’라 하여 매년 음력 정월 14일 저녁에 할아버지 당산과 할머니 당산 앞에서 제를 지낸다. 제를 지내기에 앞서 마을 회의를 통해 제관을 선출하며, 제비는 호당 갹출하여 마련한다. 당산제를 언제부터 지내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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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이십곡리 압곡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압곡 마을은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서 광주로 가는 너릿재의 고개 길이 시작되는 곳에 위치하며, 화순천의 지류인 벌고천의 최상류에 해당하는 곡간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 이십곡리 압곡 고인돌은 마을로 진입하는 도로 변에 있으며, 발굴 조사된 이십곡리 고인돌과는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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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이십곡리 압곡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압곡 마을은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서 광주로 가는 너릿재의 고개 길이 시작되는 곳에 위치하며, 화순천의 지류인 벌고천의 최상류에 해당하는 곡간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 이십곡리 압곡 고인돌은 마을로 진입하는 도로 변에 있으며, 발굴 조사된 이십곡리 고인돌과는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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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이십곡리 중촌 마을에서 음력 14일 지냈던 마을 공동 제의. 화순군 화순읍 이십곡리 중촌 마을에서는 마을 공동 제의를 ‘당산제’라고 하며, 음력 정월 14일 밤에 천륭과 할머니 당산 앞에서 유교식 제차에 따라 지냈다. 당산제를 언제부터 지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과거에는 정월 초하룻날이나 초이튿날 지냈으며,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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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이십곡리에 있었던 청동기 시대 고인돌. 이십곡리 고인돌이 있는 곳은 국도 15호선 주변으로 광주광역시에서 화순군으로 진입하는 입구에 해당하며, 옛 검문소 앞에 고인돌 7기가 있었다. 이십곡리 고인돌은 능주·화순 간 국도 확·포장 공사로 인하여 화순읍 연양리 옹관묘와 함께 조사하게 되었다. 조사는 1999년 5월부터 6월까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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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에 있는 오수 처리 시설과 이동식 오수 처리 화장실을 생산하는 기업. 21세기 환경은 광주와 화순에 본사와 공장을 두고 오수 처리 시설과 오수 처리 화장실을 생산, 시공하는 기업이다. 21세기 환경은 하수 처리 시공 및 하수 처리 장치 생산 등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2005년 7월 18일에 21세기 환경을 설립하였다.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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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수민(壽民), 호는 노월당(蘆月堂). 공숙공(恭肅公) 이명덕(李明德)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응열(李應烈)이며, 아버지는 이문시(李文蓍)이다. 생부는 승지(承旨) 이문한(李文漢)이고 어머니는 김윤적(金潤迪)의 딸이다. 이약수(李藥秀)[1807~?]는 1870년(고종 7)에 문과에 급제하여 감찰(監察), 전적,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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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오류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전남 노회 화순 시찰 소속 교회. 1954년 10월 1일 교회를 창립하고 1960년 5월 20일 노회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1967년 9월 10일 오류리에 교회 대지를 매입하고 1968년 6월 3일 예배당을 신축했다. 1977년 8월 11일 예배당 현관을 신축하고, 1980년 6월 26일 구 예배당을 교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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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품평리에 있는 농공 단지. 이양 농공 단지는 공장을 유치하여 지역 주민의 농외소득을 증대시키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며, 나아가 도시와 농촌 간의 지역 격차를 완화하기 위하여 조성되었다. 이양 농공 단지는 1994년 12월 27일 농공 단지로 지정되어 1995년 11월 22일 농공 단지 조성 실시계획이 승인되었다.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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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이양리에 있는 정기 시장. 이양 시장은 예전부터 전라남도 장흥 장평 사람, 보성 복내 사람들이 장을 보기 위해 이용하던 제법 큰 장이었지만 지금은 옛 성세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쇠퇴했다. 지석천 변에 있는 이양 시장은 청풍면 차리 방면과 이양면 쌍봉 방면으로 갈라지는 교통의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어 이전부터 사람들이 모이기 쉬운 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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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품격인], 깊이 생각하며 공부하는 어린이[창의인], 큰 꿈을 갖고 도전하는 어린이[자주인], 재능을 살린 개성 있는 어린이[개성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고운 마음과 슬기로운 지혜를 가꾸는 창의적인 어린이’이다. 1920년 8월 31일 이양 공립 보통학교로 인가를 받고, 이듬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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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품격인], 깊이 생각하며 공부하는 어린이[창의인], 큰 꿈을 갖고 도전하는 어린이[자주인], 재능을 살린 개성 있는 어린이[개성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고운 마음과 슬기로운 지혜를 가꾸는 창의적인 어린이’이다. 1920년 8월 31일 이양 공립 보통학교로 인가를 받고, 이듬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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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율계리에 있는 터널. 화순군 이양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양 터널이라 이름 붙었다. 이양 터널은 상행선과 하행선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왕복 4차선이다. 상행선의 총 길이는 445m, 총 폭은 9m, 유효 폭은 5m, 높이는 4.8m이며, 하행선의 총 길이는 445m, 총 폭은 9m, 유효 폭은 5m, 높이는 4.8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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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바른 생활 태도로 민주 시민의 자질을 갖춘 사람[민주인], 자기 주도적 학습력을 길러 스스로 앞날을 개척하는 사람[실력인], 맑고 밝은 심성으로 이웃과 국가에 봉사하는 사람[봉사인], 몸과 마음을 단련하여 심신이 조화롭고 건강한 사람[건강인], 탐구하는 자세로 창의성을 발휘하는 사람[창조인]을 육성하는 것을 교육 목표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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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이양면 이양리는 중촌·야문·귀미·장터 등 4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이양리의 지명은 이양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이양 마을은 원래 오얏나무가 많아 오얏골이라 불리던 곳인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이양(李陽)이 되었다. 이곳은 전라남도 장흥군과 전라남도 보성군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어 주막과 여관이 발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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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이양리 귀미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떼. 이양리 귀미 고인돌 떼는 5기이다. 귀미 마을의 남서쪽 산기슭에 제주 양씨의 분묘가 조성되어 있는데 분묘 위쪽 평평한 구릉 상에 5기의 지석묘가 분포하고 있다. 이양리 귀미 마을 고인돌 군은 5기 모두 판석형 상석이며, 석재는 역암 계통으로 풍화가 심한 편이다. 고인돌 상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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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이양리 귀미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떼. 이양리 귀미 고인돌 떼는 5기이다. 귀미 마을의 남서쪽 산기슭에 제주 양씨의 분묘가 조성되어 있는데 분묘 위쪽 평평한 구릉 상에 5기의 지석묘가 분포하고 있다. 이양리 귀미 마을 고인돌 군은 5기 모두 판석형 상석이며, 석재는 역암 계통으로 풍화가 심한 편이다. 고인돌 상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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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 속하는 행정 구역. 화순군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전라남도 보성군 복내면, 서쪽은 청풍면, 남쪽은 전라남도 장흥군 장평면과 전라남도 보성군 노동면, 북쪽은 한천면과 접하고 있다. 극동 지점은 이양면 증리에 있는 계당산 아래쪽 산이며, 극서 지점은 이양면 초방리 서쪽 399.3m 산 서편, 극남 지점은 이양면 초방리 남쪽, 극북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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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오류리에 있는 이양면 관할 행정 기관 이양면사무소는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주민 복리 증진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1910년 10월 1일 칙령 제354호, 357호에 의거하여 도(道)·부(府)·군(郡)·면(面)을 정비하면서 면사무소를 두기 시작했다. 도림면사무소는 화순군 도림면 이양리 311에 두었고, 송석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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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오류리에 있는 철도역. 이양 마을의 원래 뜻은 오얏골에서 전해진 지명으로 오얏나무가 많이 있어 이양(梨陽)으로 부르던 곳이다. 이곳은 전라남도 장흥군과 보성군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있어 주막과 여관이 발달하였다. 장(場)이 형성되어 상업이 발달하였으며 이 연유로 "장터"라는 지명을 낳게 되었다. 현재 이양면의 지명은 도림면과 송석면을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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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에 있는 공립 중학교. 바른 생활 태도로 민주 시민의 자질을 갖춘 사람[민주인], 자기 주도적 학습력을 길러 스스로 앞날을 개척하는 사람[실력인], 맑고 밝은 심성으로 이웃과 국가에 봉사하는 사람[봉사인], 몸과 마음을 단련하여 심신이 조화롭고 건강한 사람[건강인], 탐구하는 자세로 창의성을 발휘하는 사람[창조인]의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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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품격인], 깊이 생각하며 공부하는 어린이[창의인], 큰 꿈을 갖고 도전하는 어린이[자주인], 재능을 살린 개성 있는 어린이[개성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고운 마음과 슬기로운 지혜를 가꾸는 창의적인 어린이’이다. 1920년 8월 31일 이양 공립 보통학교로 인가를 받고, 이듬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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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대리에 있는 배드민턴 전용 체육 시설. 이용대 체육관은 화순군 출신의 배드민턴 국가 대표 이용대 선수의 인지도를 활용하여 대외적으로는 스포츠 마케팅을 강화하고, 대내적으로는 체육 시설 공간 확충으로 군민의 여가 선용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된 배드민턴 전용 구장이다. 화순군에서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화순군 출신 이용대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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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주최하는 전국 초·중·고등학교 대항 배드민턴 선수권 대회. ‘이용대 올림픽 제패 기념 전국 학교 대항 배드민턴 대회’는 전라남도 화순군 출신 이용대 선수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을 기념하여 2010년에 시작되었으며, 2013년 현재 4회까지 치렀다. 대회에는 ‘제2의 이용대’를 꿈꾸는 초·중·고등학교의 차세대 배드민턴 선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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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대리에 있는 배드민턴 전용 체육 시설. 이용대 체육관은 화순군 출신의 배드민턴 국가 대표 이용대 선수의 인지도를 활용하여 대외적으로는 스포츠 마케팅을 강화하고, 대내적으로는 체육 시설 공간 확충으로 군민의 여가 선용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된 배드민턴 전용 구장이다. 화순군에서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화순군 출신 이용대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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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이월 초하룻날 행하는 풍속. 화순 지역에서는 2월 초하룻날이 되면 “머슴들이 썩은 사내끼[새끼줄]를 가지고 산에 목매달려 올라간다.”는 말이 있다. 이때부터가 본격적으로 농사가 시작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날은 콩을 볶아 먹기도 하고, 노래기를 쫒는 등 다양한 풍속이 행해진다. 이월 초하루는 중화절이라 하여 임금이 대나무나 향나무로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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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이월 초하룻날 행하는 풍속. 화순 지역에서는 2월 초하룻날이 되면 “머슴들이 썩은 사내끼[새끼줄]를 가지고 산에 목매달려 올라간다.”는 말이 있다. 이때부터가 본격적으로 농사가 시작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날은 콩을 볶아 먹기도 하고, 노래기를 쫒는 등 다양한 풍속이 행해진다. 이월 초하루는 중화절이라 하여 임금이 대나무나 향나무로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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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광보(光甫), 호는 회재(悔齋). 공숙공(恭肅公) 이명덕(李明德)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참판에 증직된 이영숙(李靈肅)이다. 이위(李韡)[?~?]는 화순 출신으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어린 나이에 안방준(安邦俊)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학문을 성취하고, 「분의편(奮義篇)」과 「계자서(戒子書)」를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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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거주한 이윤덕에게 발급한 조선 후기 노비 매매 문기. 화순현에서 이윤덕에게 발급해 준 노비 매매 문기이다. 1745년[을축년] 12월 28일 이윤태가 이윤덕에게 자기 노비 4명과 나중에 생산되는 노비 모두를 방매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노비는 처가 쪽 금득, 여종 옥이 낳은 비(婢) 원례와 동 여종이 낳은 비 금덕 그리고 금덕이 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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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 거주한 이윤덕에게 발급한 조선 후기의 노비 매매 문기. 화순현에서 1745년(건륭 10) 12월에 이윤덕(李潤德)에게 발급해 준 노비 매매 문기이다. 화순현에서 이윤태를 불러 사실을 확인하고 이윤덕에게 발급해 준 노비 매매 문기이다. 입안의 크기는 26.5×123㎝이다. 종이에 한자와 이두로 기재되어 있다. 낱장 1장이다. 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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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이자 청백리. 세조 때 좌익공신(左翼功臣)으로 능성부원군(綾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청백리의 본보기가 되었다.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이율(而栗)·경률(景栗). 시호는 충렬(忠烈). 구예(具藝)의 후손으로, 증조 할아버지는 구의(具褘), 할아버지는 구성로(具成老)이고, 아버지는 목사인 구양(具揚)이다. 어머니는 윤사영(尹思永)의 딸이며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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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유(伯由) 호는 모재(慕齋). 완창 대군(完昌大君)의 9대손이며 순양군(順陽君) 이석공(李石公)의 고손(高孫)이고,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거의(擧義)한 이사종(李嗣宗)이며 어머니는 남평 진씨(南平陳氏)로 주부(主簿) 진복흥(陳復興)의 딸이고 부인은 나주 오씨(羅州吳氏) 오진남(吳進男)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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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천(允天) 호는 추봉(秋峯). 완창대군(完昌大君)의 9대손이며 순양군(順陽君) 이석공(李石公)의 고손(高孫)으로,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거의(擧義)한 이사종(李嗣宗)이다. 이정기(李廷機)[?~1636]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둘째 형 이정추, 동생 이정근과 함께 창의하였다.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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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유(士由), 호는 도곡(道谷). 완창대군(完昌大君)의 9대손으로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거의(擧義)한 이사종(李嗣宗)이다. 동생 이정추(李廷樞), 이정기(李廷機), 이정근(李廷根)은 병자호란 때 의병이다. 이정립(李廷立)[?~?]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고경명(高敬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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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공거(公擧). 호는 죽계(竹溪). 이조원(李調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여복(李汝福)이다. 이정익(李廷翼)[?~1593]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사종조(四從祖)인 이언찬(李彦贊)을 따라 거의(擧義)하였다. 대오를 정비하여 남원(南原)을 거쳐 순창(淳昌)에 이르러 왜병과 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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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서원(瑞元), 호는 도계(道溪).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거의(擧義)한 이사종(李嗣宗)이다. 이정추(李廷樞)[?~?]는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자제들을 거느리고 의병을 일으켰다. 충청남도 아산(牙山)에 나아가 과천(果川)의 남태령(南泰嶺)에서 청나라 군대와 맞서 싸웠으나 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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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이직(而直), 호는 농음(聾瘖). 옥천군(玉川君) 조흡(曺恰)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참봉 조세명(曹世明)이며, 아버지는 정곡(鼎谷) 조대중(曺大中)이다. 어머니는 경주인(慶州人) 김응성(金應星)의 딸이며 부인은 홍주인(洪州人) 송방형(宋邦衡)의 딸이다. 조수정(曺守正)[1575~1638]은 어렸을 때부터 글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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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근현대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우석(愚石). 아버지는 이길주, 어머니는 백내지이다. 6남매 중 장남이다. 이진백(李鎭白)[1928~2012]은 천성이 중후하고 의지와 기개가 비범하였다. 곡성 완계 초당(浣溪草堂)에서 안훈(安壎)에게, 능주 수산 정사(壽山精舍)에서 배석면(裵錫冕)에게 수학하며 경적을 강구(講究)하였다. 학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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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북면 이천리는 자연 마을인 도촌(桃村)·학천(鶴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천리의 지명은 도천(桃川) 마을과 학천((鶴川) 마을의 천(川) 자를 취하여 지어졌다. 도촌 마을은 처음에 어림굴[어림곡(魚林谷)], 소통굴[가마쏘들]이라 불리다가 후에 도천(桃川)으로 바뀌었다. 마을 앞을 흐르는 내가 돌아가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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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에서 활동한 효부. 본관은 수원(水原). 이택화(李宅和)의 며느리이다 이택화(李宅和) 자부 수원 백씨(水原 白氏)[?~?]는 시아버지가 황해도에서 죽었다는 부음을 듣고 시동생과 같이 시신을 운반해 오는데 이동 중 시동생도 죽었다. 이에 백씨가 두 시신을 담은 널을 짊어지고 머리에 이고 울부짖으며 왔다. 가는 곳마다 지방수령들이 운반하는 데 호송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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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일대에서 서식하고 있는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교목. 원산지가 한국인 이팝나무는 골짜기나 해변가 등에서 양지바르고 토심이 깊은 비옥적인 토양에서 생장한다. 이팝나무는 중국·대만·일본 등에 분포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전라도·경기도·제주도에서 분포되어 있다. 지금과 같이 항상 밥상에 쌀밥이 오르지 않던 배고픈 시절에는 사람들이 이팝나무에 핀 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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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임곡리에서 신비한 총으로 호랑이를 죽이고 사람을 구했다고 전해오는 이야기. 「이 포수와 신총 이야기」는 이군찬이라고 하는 사람이 명포수가 가지고 있던 총을 얻어 지리산 호랑이를 잡아 호환(虎患)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했다는 이야기이다.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설』에 「이 포수와 신총」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화순군청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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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출신으로 기독교 수도 공동체를 이끌던 종교인. 자연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을 품은 이세종의 토착적 영성의 핵을 계승한 제자가 이현필이다. 이현필은 한국의 성 프란치스코, 맨발의 성자로 불리울 정도로 예수의 삶과 성경 말씀을 실천했던 신앙의 뿌리였다. 화순 화학산과 남원 지리산과 경기도 양주에서 수년씩 은거하며 금식, 명상, 기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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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풍암리에 있는 현대 효행비. 이형호(李亨鎬)는 화순군 청풍면 풍암리 출신으로 자는 국형(國亨)이며 순조 때 모친이 천식으로 온갖 약이 효험이 없었는데 의원이 정월의 비둘기가 효험이 있다는 말을 하자 그물을 치고 하늘에 기도하니 수마리가 잡혀 어머니께 드렸더니 완쾌되었다. 부친이 후두 종기로 신음하자 7년간 환부를 빨아 주어 완치하게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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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능주 목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윤보(潤甫), 이호(彛好)이며 호는 노촌(老村). 임연(林煉)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도사 임세공(林世恭)이며, 어머니는 이형생(李逈生)의 딸이다. 큰아버지 임세온(林世溫)에게 입양되었고, 윤증(尹拯)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상덕(林象德)[1683~1719]은 1699년(숙종 25) 진사가 되었고, 17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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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민족 교육 운동가. 본관은 신평(新平). 자(字)는 익중(翼仲), 호(號)는 운인(雲人). 아버지는 송용진(宋容鎭)이고 어머니는 나주 박씨이며 부인은 창령 조씨이다. 송홍(宋鴻)[1872~1949]은 한말의 애국 지사인 송병선(宋秉璿)에게 수학하였다. 1904년 9월 그는 홍종영(洪鍾榮)·이범창(李範昌)·윤흥섭(尹興燮)·윤영섭(尹寧燮) 등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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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인계리 일원에 조성된 전원주택 단지. 인계 지구 전원주택 단지는 화순군에서 경관이 빼어난 무등산 뒷자락의 이서면 인계리에 조성되는 전원 마을이다. 화순군청에서 젊은 귀농인들을 유입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한 전원주택 단지이다.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주택지이므로 무등산 뒷자락, 동복호 상류, 화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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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이서면 인계리는 자연 마을인 송계(松溪)·용계(龍溪)·인동(仁洞)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현재는 서동(瑞洞)·용강(龍江)·송계로 이루어져 있다. 인계리의 지명은 인동 마을의 인(仁)자와 송계 마을·용계 마을의 계(溪)자를 각각 취한 것이다. 서동 마을은 처음에 서석산(瑞石山)[현재의 무등산(無等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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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인계리 서동 마을에 있는 조탑. 인계리 서동 조탑은 마을 앞 하천 양쪽으로 원형의 탑을 쌓고 그 위에 입석을 올려놓은 것으로 마을 지킴이로서의 성격이 강한 귀중한 지역 문화 유산이다. 서동 마을의 입구는 원래 동쪽에서 진입하도록 되었으나 현재의 도로가 개설되면서 남쪽에서 진입한다. 이로 인해 조탑들도 약간씩 옮겨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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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인계리 송계 마을에 있는 조탑. 인계리 송계 마을에는 하천을 따라 2기의 조탑[돌탑]이 조성되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탑’, ‘할아버지탑’이라 부르고 있다. 이 조탑은 여느 마을의 조탑과 함께 마을 지킴이로서의 성격이 강하며, 지역 문화의 특성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서 면사무소에서 북서쪽으로 약 4㎞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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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 화남 마을에 있는 목전 바위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목전 바위 이야기」는 억울하게 죽은 처녀의 죽음을 밝혀낸 나주 고을 원님의 이야기로 영웅담과 지명 유래담이 합쳐진 이야기이다.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설』에 「목전 바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또한 1991년 전라남도에서 발행한 『전남의 전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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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 거주하는 주민 또는 집단의 수. 인구란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인간 집단을 지칭한다. 집단으로서의 인구는 일정한 공간상의 영역을 점유할 뿐 아니라, 경제·사회·사상 등의 문화를 향유하며 생활 양식을 전개하는 환경 변화의 주체자이다. 따라서 특정 지역의 인구 현상을 파악함으로써 인간 생활과 환경을 이해하고, 미래에 대한 예측도 할 수 있다. 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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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 화순 지역은 전라남도 중앙부에 위치한다. 내장산·추월산·설산으로부터 이어져 온 호남 정맥이 무등산에서 안양산·두봉산·국사봉으로 연결된다. 하천은 지석천과 동복천이 화순군의 유역을 나누고 있다. 지석천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구례리에서 발원하여 화순군 서쪽을 유역 면적으로 하여 북쪽의 화순천을 합해 전라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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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 설치·운영되었던 경양도에 속한 역. 인물역이 있던 지역은 지금의 화순군 이양면 금릉리 인물 마을이다. 『호구 총수(戶口總數)』 능주목 상동면(上東面)에 인물리(仁物里)가 기록되어 있는데 뒤에 송석면에 속했다가 1932년 이양면에 속하였다. 인물역은 화순 가림역과 보성 가신역을 연결하는 지역에 있었다. 인물역은 전라남도의 중심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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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사원(士遠), 호는 인산재(仁山齋). 충간공(忠簡公) 배문우(裵文祐)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의당(義堂) 배상룡(裵相龍)이다. 배현기(裵玄基)[1881~1954]는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과 월파(月坡) 정시림(鄭時林)의 문하에도 출입하여 본원을 탐구하고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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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운농리에 있는 생활 도자기 및 타일 생산 기업. 인스나인은 예술의 일상화, 산업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문화 기업으로 미술과 생활의 접목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자한 젊은 예술가 집단임을 표방하고 있다. 현대와 전통을 아우르는 우리 예술 문화 자원을 담는 디자인 정체성으로 품격 높은 삶과 건강한 소비문화를 제공하고자 설립하였다. 1997년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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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덕용(德容), 호는 인재(忍齋). 최충(崔冲)의 후손으로, 증조는 최윤범(崔尹範)이고, 할아버지는 증 영의정 최천부(崔天符)이다 최홍우(崔弘宇)[1562~1636]는 정개청(鄭介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작은아버지인 최경회를 따라 금산(錦山), 무주(茂朱), 개령(開寧)의 싸움에서 많은 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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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파평. 자는 우삼(友三), 호는 인재(忍齋). 소정공(昭靖公) 윤곤(尹坤)의 후예이다. 할아버지는 윤심암(尹心庵)이다. 윤자익(尹滋益)[?~?]은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의 문인으로, 학문이 해박(該博)하고 예법에 맞는 몸가짐이 빼어났다. 선업(先業)을 이어 받아 만수정(萬樹亭)을 짓고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나 빈민들을 구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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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화순 출신의 학자이자 선행인. 본관은 남평(南平). 자(字)는 인좌(仁佐), 호(號)는 농은(農隱). 면수재(勉修齋) 문자수(文自修)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문기림(文琦林)이다. 문계환(文啓煥)[?~?]은 품성(稟性)이 강직(剛直)하고 풍모가 있으며 도량이 컸다. 부모를 정성으로 봉양하고 선조의 업[유학]을 잘 계승했다. 농민의 복리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매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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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동복댐 상류에서 재배되는 인진쑥의 즙. 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동복댐 상류에서 인진쑥이 재배되어 약용과 건강 보조 식품으로 상품화되고 있다. 인진쑥은 예로부터 한방 약제와 민간요법으로 널리 애용되었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성질이 따뜻하며, 경략을 잘 통하게 하여 100가지 효능이 있는 약초”로 기록되어 있다. 인진쑥은 불미나리를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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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인택(仁宅), 호는 송암(松庵). 공숙공(恭肅公) 이명덕(李明德)의 후예로 아버지는 이화제(李華齊)이다. 이생후(李生厚)는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1702~1772]의 문인(門人)으로 절개가 뛰어나 칠송정(七松亭)을 짓고 성리학(性理學) 연구에 전념하였다. 증손(曾孫) 이약수(李藥秀)가 귀하게 되어 이조 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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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유재란 때 순절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인화(仁和), 호는 죽제(竹堤). 병사(兵使) 형군철(邢君哲)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형응희(邢應禧)이다. 형운창(邢運昌)[?~1597]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 1593년(선조 26)에 거의(擧義)하여 남아 있는 왜병을 소탕하여 고을을 안정시켰다. 1597년(선조 30)에 다시 창의하여 전라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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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 마을 입구의 다리를 건너면 바로 보이는 방앗간 건물이 있다. 그곳은 야사 마을 김덕남 부녀회장이 음력 12월부터 다음해 정월 보름까지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마을을 찾은 날 조사자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방앗간 안으로 들어서자, 부녀회장님이 할머니 몇 분과 함께 방안에서 한과를 만들고 있었다. 아직 설날이 남았는지라 당연히 마을의 대표산물인 뽕엿을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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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에 있는 일봉암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봉암에 해를 붙들어 맨 마구 할미 이야기」는 마고할미가 운주사에 천불천탑을 세우기 위해서 일봉암에 해를 묶어 두었다는 신이담이다. 1998년 화순군청과 남도 민속 학회가 간행한 『화순군의 민속과 축제』에 「일봉암에 해를 붙들어 맨 마구 할미」라는 제목으로 수록하였다. 또 화순군청 홈페이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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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 마을에 실학을 뿌리내린 하백원은 책 읽는 것은 주체적 사고를 돕고 실제적인 지식을 획득 수단이 되며 그것을 통해 실효와 실용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주체적 책읽기를 강조하였다. 이를 통해 발현된 그의 내면적 자각과 학문적 반성 태도가 실천적 사고와 이어져 오늘날의 그를 있게 하였던 것이다. 하백원은 당시의 주자학적 학문 체계가 왜곡되고 변질되어 모순이 드러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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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계방(季方), 호는 일신재(日新齋). 응교(應敎) 정태(鄭態)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제현(濟玄)이고, 어머니는 진원 박씨(珍原朴氏) 치성(致聖)의 딸이다. 정의림(鄭義林)[1845~1910]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3대 제자 중 1인으로, 노사학파의 인물 중 비교적 큰 규모의 문인 집단을 형성한 사람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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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군 능주면 출신인 한문학자 정의림의 시문집. 정의림(鄭義林)[1845~1910]은 본관이 광산(光山)으로 능주(綾州) 대덕(大德)에서 태어났다. 호는 일신재(日新齋)로 정제현(鄭濟玄)의 아들이다.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으로 천문·지리·역학·복서 등에 뛰어났다. 『정일신 유집(鄭日新遺集)』이 있다. 목활자본이다.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반곽 치수는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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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군 능주면 출신인 한문학자 정의림의 시문집. 정의림(鄭義林)[1845~1910]은 본관이 광산(光山)으로 능주(綾州) 대덕(大德)에서 태어났다. 호는 일신재(日新齋)로 정제현(鄭濟玄)의 아들이다.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으로 천문·지리·역학·복서 등에 뛰어났다. 『정일신 유집(鄭日新遺集)』이 있다. 목활자본이다.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반곽 치수는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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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화순읍 일심리는 용곡·일심동·순곡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화순읍의 주거 중심지이다. 일심리는 일심동 마을의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일심동 마을의 뜻은 고려를 섬기는 충신들이 조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한마음의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용곡 마을은 산등에 형성된 마을이어서 ‘미르골’이라 불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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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지역에 입향한 문신. 본관은 흥덕(興德). 자는 면부(勉夫), 호는 일심재(一心齋). 안경공(安敬公) 장연우(張延祐)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사직(司直) 장몽량(張夢良)이며 부인은 보성 선씨(寶城宣氏)이다. 장희성(張希聖)[1558~1613] 충청도 공주(公州) 유구리(維鳩里)에서 출생하였으며, 천성이 강직하고 바르며 재주가 명민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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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역사. 전라남도 화순군은 조선 시대에 능주목·동복현·화순현의 세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786㎢의 지역이 능주목·동복현·화순현 세 개의 행정 단위로 나뉘어 있었던 것은 화순 지역의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능주목의 면적은 화순 지역 전체의 약 45%, 동복현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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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선우(善遇), 호는 삼계(三溪)·일휴당(日休堂). 고려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의 16세손이고, 최혼(崔渾)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증 승지(承旨)인 최윤범(崔尹範)이고 아버지는 증 영의정 최천부(崔天符)이며 부인은 나주 김씨 김원(金遠)의 딸이다. 최경회(崔慶會)[1532~1593]는 1548년(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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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북면 임곡리는 자연 마을인 임곡(林谷)으로 이루어져 있다. 임곡리의 지명은 임곡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임곡리는 임곡 마을 단일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래는 쑥실[숲실]이라 하였고 한자로 애곡리(艾谷里)라 표기하기도 하였다. 1912년 행정 구역 변경 시 ‘숲실’이란 지명이 두 군데[동복군 읍내면 숲실,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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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임곡리를 중심으로 세거하는 전주 이씨 집성촌. 임곡리(林谷里)는 본디 숲실, 쑥실이라 불렀다. 마을이 풍수상 맹호출림(猛虎出林) 형국이라 숲을 가꾸었는데 ‘숲실’이 와전되어 ‘쑥실’이라 했고 ‘쑥실’이 ‘애리(艾里)’라 표기되었는데, 읍내면의 애리(艾里)와 구분 짓기 위해 이곳을 외북면 애리 즉 외애리(外艾里)라 하였다. 이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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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효부. 본관은 단양(丹陽). 임남수(林南洙)의 부인이다. 임남수 처 단양 우씨(林南洙 妻 丹陽 禹氏)[?~?]는 40살이 못 되어서 남편이 죽었다. 시부모를 모시고 어린 아이를 양육하려고 고기를 잡고, 나무를 하고, 밭도 갈고, 길쌈도 하며 성실하게 살았다. 시어머니의 성격이 가혹했으나 시어머니의 뜻을 잘 받들고 시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데 힘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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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화순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연지(年之), 호는 동계(東溪).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의 후손으로, 진사 임회(林檜)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임명(林蓂)이다. 임대년(林大年)[1539~?]은 1606년(선조 39)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주부(訓練院主簿)가 되었다. 전라남도 화순군 대리 대동 마을로 이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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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남면에 있는 조선 후기 민주현이 지은 누정. 임대정은 국가 문화재 명승 제89호로 지정된 화순 임대정 원림 안에 자리하고 있다. 임대정 원림을 조성한 이는 조선 시대 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판서를 지낸 사애(沙厓) 민주현(閔冑顯)[1808~1882]이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 이곳에서 초가집을 짓고 원림을 조성하며, 여생을 지냈다. 이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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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사평리에 있는 임대정에 대해 민주현, 송태회, 김문옥 등의 문인들이 읊은 한시. 임대정은 화순군 남면 사평리 상사 마을 사평천 변에 있는 단층의 팔작지붕 골기와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중앙에 제실을 갖추고 있다. 측면에 작은 연못이 있으며, 전면의 사평천에도 연꽃이 가득하다. 1851년(철종 2)에 등과한 후 한성부 우윤(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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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능주 목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윤보(潤甫), 이호(彛好)이며 호는 노촌(老村). 임연(林煉)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도사 임세공(林世恭)이며, 어머니는 이형생(李逈生)의 딸이다. 큰아버지 임세온(林世溫)에게 입양되었고, 윤증(尹拯)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상덕(林象德)[1683~1719]은 1699년(숙종 25) 진사가 되었고, 17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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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택. 자는 무경(武京), 호는 세심정(洗心亭).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의 후예로, 아버지는 임낙기(林洛基)이다. 임상우(林相雨)[?~?]는 재주와 행실이 뛰어나서 도내 선비들이 예조에 천거하여 1834년(헌종 즉위년)에 건원릉(健元陵) 참봉과 같은 해 돈령부 도정을 지냈다. 「도솔산 대참사 고사(兜率山大懺寺古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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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풍류객. 본관은 평택(平澤). 호는 호석(湖石). 임석윤(林錫潤)[1907~1976]은 명망이 있는 가문인 평택 임씨 가문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풍류를 즐긴 풍류객이다. 거문고와 가곡·가사를 전공하여 거문고 명인으로 명성이 높았다. 김용남과 김연수에게 거문고 풍류와 가곡을 배웠으며, 말년에는 서울에 살면서 가곡의 명인 이주환(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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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전라남도 화순 지역 인근을 포함한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농민 항쟁. 1862년(철종 13) 2월 4일 단성현에서 일어난 민란을 시작으로 그 해 말까지 37차례에 걸친 민란이 일어났다. 전라도는 3월 27일 익산 지역을 시작으로 4월과 5월에 집중적으로 민란이 발생하였는데, 함평·고산·부안·금구·장흥·순천·강진 등 54개 군현 가운데 38여 곳에서 항쟁이 일어났다. 지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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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자옥(子沃). 호는 은암(隱庵).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임숙(林塾)이다. 임시계(林時啓)[?~?]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동생 임시태 및 여러 종형(從兄)들과 함께 거의(擧義)하였다. 집안의 재산을 모아 군용(軍用)에 충당하였고, 전주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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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자구(子求), 호는 임천(林泉).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임숙(林塾)이다. 병자호란 때 활약한 임시계(林時啓), 임시태 등이 형이다. 임시민(林時敏)[?~?]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형 임시계 등 여러 종형(從兄)들과 함께 거의(擧義)하였다.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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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평택(平澤)이고, 자는 군신(君信), 호는 묵암(默庵). 할아버지는 임대년(林大年)이고, 아버지는 참봉 임탄(林坦)이다. 임시익(林時益)[?~?]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여러 종형(從兄)들과 의병을 일으켜 청주(淸州)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강화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돌아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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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평택(平澤). 호는 송계(松溪). 할아버지는 임대영(林大榮)이며, 아버지는 임발(林撥)이다. 임시준(林時儁)[?~?]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여러 종형(從兄)들과 함께 거의(擧義)하였다. 청주(淸州) 서평원(西平原)으로 진격하여 적 9명을 제거하였다. 이어서 북상하려 했으나 강화가 성립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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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동복 현감을 지낸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대수(大樹), 호는 석천(石川)이다. 증조(曾祖)는 참의(參議)에 추증(追贈)된 임득무(林得茂)이고, 할아버지는 현감(縣監)으로 참판(參判)에 추증된 임수(林秀)이며 아버지는 판서(判書)에 추증된 임우형(林遇亨)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음성 박씨(陰城朴氏)이다. 부인은 지례 전씨(知禮錢氏)이며 아들 임찬(林粲)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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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의 각종 임산물에서 얻는 경제적 이윤을 위하여 삼림을 경영하는 산업. 임업의 개념을 보면 초기에는 천연림을 벌채하여 생산된 목재를 이용하는 것에 국한된 원시적인 약탈 행위를 의미하였다. 그리고 중기에는 산림을 인공적으로 조성 및 보육하여 임산물의 영속적인 수확을 꾀하는 육성적인 토지 생산 활동을 의미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조림 사업이 꾸준히 추진된 결과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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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한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민 가옥. 임원록 가옥은 1800년대 초쯤에 지어진 작은 규모의 서민 주택이다. 현재는 살림집으로서 그 편익성 때문에 여러 곳을 개·보수하여 건립 당시 초기의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동복면 한천리 한천 마을 오세탁 가옥과 같은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한천(寒泉)이란 차가운 샘이 있다는 찬샘에서 유래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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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평택(平澤). 초명은 상록(相祿), 자는 계천(啓天), 호는 농은(農隱).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임고(林熇)이고, 어머니는 수원 이씨 이세익(李世益)의 딸이며 부인은 남평 문씨 문연겸(文演謙)의 딸이다. 임중록(林中綠)[1737~1775]은 초야에 은거하며 경학으로 스스로 즐겼다. 책 한 권을 저술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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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에서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전라남도 화순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부산포에 도착한 왜군은 경상도 지역 주요 고을을 차례로 점령하였다. 화순군을 비롯한 전라도 일대는 왜군의 직접적인 침입을 받지는 않았으나 전직 관료, 양반 유생, 일반 백성들이 의병을 일으켜 항쟁에 나섰다. 최경회(崔慶會)[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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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회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자는 선우(善遇)이고 호는 삼계(三溪), 일휴당(日休堂)이다. 최충(崔冲)의 후손이며 최혼(崔渾)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윤범(崔尹範)이다. 아버지는 최천부(崔天符), 어머니는 순창(淳昌) 임씨(林氏)로 1532년 전라남도 화순읍 삼천리에서 태어났다.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과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의 문하에서 수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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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자구(子求), 호는 임천(林泉).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임숙(林塾)이다. 병자호란 때 활약한 임시계(林時啓), 임시태 등이 형이다. 임시민(林時敏)[?~?]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형 임시계 등 여러 종형(從兄)들과 함께 거의(擧義)하였다.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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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화순 지역에 우거한 문신. 본관은 평택(平澤), 호는 금사(錦沙). 충절공(忠節公) 임팔급(林捌汲)의 후손이고, 순창군(淳昌君) 임중연(林仲沇)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이다. 임치지(林致之)[?~?]는 품성이 곧고 바르며 지기가 고상하며 덕의(德義)를 높이 받들어 귀하게 여겼다. 학문을 갈고 닦음에서도 명석함이 매우 뛰어 나서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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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군의 관리. 본관은 장흥. 호(號)는 소산(小山). 임태현(任泰賢)은 방은(芳隱) 임호응(林鎬應)에게 수학하였다. 1921년부터 1924년까지 화순 군청 및 면사무소에서 근무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 국민회 화순군 부회장을 역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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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병인양요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임헌진의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대규(大奎), 호는 남파(南坡).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임수익(林守翼)이다. 임헌진(林憲鎭)[1856~?]은 1880년(고종 17) 진사(進士)에 급제하였다. 1866년(고종 3)에 발발한 병인양요 때 같은 고을의 사람들과 함께 격문(檄文)을 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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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풍암리 입교 마을에 있는 갓다리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갓다리 전설」은 안동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의 부인이 남편의 뿌리를 찾기 위해 공을 들였는데, 이 정성으로 등과하여 감사로 부임한 원님에 의해 양반 행세를 하게 되었다는 신이담과 부인이 삿갓을 쓰고 엎드렸던 돌다리를 갓다리[笠橋]라고 칭했다는 유래담이 합쳐진 이야기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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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 노동자들은 지하 갱도에서 탄가루를 마시며 고된 노동을 해야 한다. 그래서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이 마지막 일터로 찾는 곳이 탄광이라고들 한다. 어두운 갱도와 검은 흙더미 속에서 탄광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을 일해야 한다. 또한 언제 닥칠지 모를 사고에 노출된 채 고된 노역을 해야 한다. 이렇게 힘든 일터지만 대한 석탄 공사 화순 광업소는 일거리 없는 농촌에서 품팔이를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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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주도리 상촌 마을에 있었던 선돌. 액을 막는 돌로 마을에서는 ‘벅수’, ‘벅수독’ 등으로 부르고 있다. 1985년 간행된 『화순군 문화 유적 지표 조사 보고』에 의하면, 마을 입구의 좌측·우측에 위치한 선돌을 ‘벅수독’이라고 부르고, 개인 집 축대로 쓰이고 있는 선돌을 ‘벅수’라고 불렀다고 한다 주도리 상촌 선돌은 상촌 마을로 들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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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주도리 새터 마을에 있는 선돌. 새터 마을에서는 마을로 들어오는 액을 막아 주기 위해 세워진 선돌을 ‘벅수’라고 부른다. 이 마을에는 2기의 선돌이 있었는데, 1기는 유실되고 1기만이 개인 집의 담장 밑의 축대용으로 남아 있다. 주도리 새터 마을의 선돌은 현재 마을 하천 북쪽의 개인 집 담장 밑에 선돌 1기가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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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연화리에 있는 선돌. 연화리에서는 액운을 막아주는 선돌을 ‘선독’이라고 부른다. 또한 선돌이 있는 곳을 ‘선독거리’라고 부른다. 마을 도로 변 양쪽에 선돌 2기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선돌 1기, 즉 선돌 3기가 전해져 왔다. 현재 선돌 1기만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연화리 선돌은 마을로부터 북쪽 도로변에 위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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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대비리 대비 마을에 있는 선돌. 대비리에서는 선돌을 ‘수구맥이’라고 부른다. 이는 마을의 액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을을 지켜주는 선돌이 본래 4기가 전해지고 있으나, 근래에 농지 정리를 하면서 선돌 1기가 유실되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선돌은 3기이다. 대비리 대비 선돌 1은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 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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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석정리에 있는 선돌. 춘양면 소재지에 위치한 석정리는 마을 동남쪽에 위치한 느티나무에 큰 돌이 박혀 있기에 ‘돌정지’ 또는 ‘석정’이라고 이름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돌이 마을의 액을 막아 주는 선돌이다. 석정리 선돌은 마을의 동남쪽의 철도변에 위치한 느티나무 아래에 박혀 있다. 석정리 선돌은 석정리의 당산나무인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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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로 봄이 왔음을 알리는 풍속. 입춘은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로서 보통 양력으로는 2월 4일이나 5일에 해당하는데,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든다. 입춘은 24절기 중에서 첫 번째 드는 절기로 봄과 관련된 민속적인 행사가 행해진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이날 “대궐 안에 춘첩자를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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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입춘(立春) 날 대문이나 기둥에 봄이 온 것을 기리어 축하하거나 기원하는 내용을 적은 글을 붙이는 풍속. 입춘은 24절기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이기 때문에 한 해의 행복을 기원하는 글귀를 적은 입춘축(立春祝)을 붙이는 풍습이 행해진다. 입춘축은 ‘춘축(春祝)’, 혹은 ‘입춘첩(立春帖)’이라고 하는데, 문이나 기둥마다 대구의 글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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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春大吉(입춘대길) 建陽多慶(건양다경)’. 2013년 올해 입춘 날 마을 회관 입구에 붙혀놓은 입춘첩이다. 이 입춘 글씨는 올해도 어김없이 마을의 정기호 씨가 도맡아 썼다. “어저께도 농협에 가서 입춘대길 그것 써주고 왔어. 여기 이서농협 지점에서 5일 전부터 입춘날 와서 글씨 좀 써달라고 부탁해서 어제도 오후에까지 입춘대길 글자를 써주고 왔어.” 조사자가 마을 회관에서 만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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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입춘(立春) 날 대문이나 기둥에 봄이 온 것을 기리어 축하하거나 기원하는 내용을 적은 글을 붙이는 풍속. 입춘은 24절기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이기 때문에 한 해의 행복을 기원하는 글귀를 적은 입춘축(立春祝)을 붙이는 풍습이 행해진다. 입춘축은 ‘춘축(春祝)’, 혹은 ‘입춘첩(立春帖)’이라고 하는데, 문이나 기둥마다 대구의 글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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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과 동면 일대에 있었던 백제의 지방 군현. 백제는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한 후 지방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6세기 중엽 성왕 때에 이르러 방군성제(方郡城制)를 실시하며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직접 지배를 시작하였다. 백제는 전국을 5방으로 나누었는데, 지금의 전라남도 지역은 그 중 남방에 속하였고, 남방에는 14군(郡)과 44현(縣)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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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일대에서 전해지는 효자에 관한 이야기. 「보암리 효자 이야기」는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보암리에서 어머니를 지극히 봉양하였던 정자근노미의 효행담이다. 1981년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발행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에 「효자 정자근과 적벽」이란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설』에 「보암리 효자」라는 제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