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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899
한자 龍珠寺
영어공식명칭 Yongjusa Temple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경기도 화성시 용주로 136[송산동 18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태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90년연표보기 - 용주사 창건
중수|중창 시기/일시 1900년 - 용해(龍海)가 중수
중수|중창 시기/일시 1931년 - 강대련(姜大蓮)이 중수
중수|중창 시기/일시 1965년 - 대웅보전 중수
중수|중창 시기/일시 1987년 - 대웅보전 중수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84년 - 명부전 및 지장전 건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77년 - 일주문 건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1년 - 부모은중경탑 조성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8년 - 호성전 복원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3년 - 천불전 신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8년 - 홍살문 복원
최초 건립지 경기도 화성시 용주로 136[송산동 188]
현 소재지 용주사 - 경기도 화성시 용주로 136[송산동 188]지도보기
성격 사찰
전화 031-234-0040
홈페이지 yongjoosa.or.kr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건립 경위 및 변천]

조선은 유교국가였지만 조상을 추복(追福)하기 위한 불교의례는 꾸준히 이어졌다. 국왕뿐만 아니라 왕실 비빈의 요구에 의해 능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사찰은 조선후기까지 존속되었다. 용주사현륭원(顯隆園)의 원찰로 창건된 사찰이다. 정조가 승려 사일(獅馹)로부터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설법을 듣고 크게 감동하여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있던 부친의 묘를 천하제일의 복지(福地)라 하는 화산으로 이장하였다. 그리고 사일(獅馹)을 팔도도화주로 삼아 갈양사(葛陽寺)의 옛터에 절을 지어 현륭원의 재사(齋寺)로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호하고 명복을 빌게 하였다. 『홍재전서(弘齋全書)』 「화산용주사봉불기복게(花山龍珠寺奉佛祈福偈)」에서 정조현륭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절이라 하여 용주사의 창건 동기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정조대부터 임금이 화산으로 원행을 할 경우 용주사 총섭은 대황교에 군막을 설치하고 하사받은 별군장 복장은 입고 말을 타고 도열하여 맞이하였다. 용주사 승려들의 군장은 총용청에서 지급하였고, 이후 장용영 외영에 소속되어 포 쏘는 법을 시험하고 인근의 독성을 함께 수비하는 역할도 하였다. 이러한 용주사의 위상으로 인해 왕실의 지속적인 지원을 받아 사찰 중수에 필요한 공명첩을 꾸준히 발급받았다.

용주사의 가람은 평탄한 지형에 계획적으로 완공했기 때문에 창건 이후부터 큰 변화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찰은 홍살문으로부터 시작하는 진입로에서 천보루와 대웅보전을 차례로 지나 호성전이 있는 사찰의 영역 끝까지 계단과 축대로 각 영역을 구성하였다.

용주사는 일반 사찰과는 다른 독특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첫째, 용주사는 중심 축선상의 전각 배치와 철저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은 건립에 드는 비용과 설계, 필요한 인력의 수급 등이 일시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이다. 둘째, 왕릉의 수호와 호성전의 비호라는 기능을 위한 폐쇄적인 가람 배치이다. 셋째, 기단과 주춧돌에 숙석(熟石)을 사용하여 궁궐 건축처럼 장엄하게 보이려고 하였다.

1931년 주지 강대련(姜大蓮)이 중수하였다. 1965년 대웅보전을 중수한데 이어, 1966년 주지 희섭(喜燮)이 동국역경원(東國譯經院)의 역장(譯場)을 두었다. 1969년 전강(田岡)이 중앙선원(中央禪院)을 설립하고 1975년 지장전을 중수하고, 1977년 일주문을 세웠으며, 1981년 3층의 부모은중경탑을 세웠다. 1985년 불음각(佛音閣), 1986년 중앙선원 건물을 건립하였고, 1987년 대웅보전을 중수하고, 1988년 호성각을 다시 지었다. 1993년 천불전을 짓고 만수리실을 개축하였다.

[활동 사항]

2007년부터 용주사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는데, 연간 1,500여 명이 이용하고 있다. 용주사불교대학은 2002년 4월에 개교하여 기본교육과정, 불교대학[전문과정], 불교대학원[심화과정]으로 세분하여 운영하고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대한제국은 1902년 「국내사찰현행세칙」을 통해 경기 남부를 용주사가 담당하게 하였고, 조선총독부는 1911년 사찰령을 통해 30본산 중 하나로 지정하여 경기남부 및 평안북도 일부까지의 55개 사찰과 암자를 담당하게 하였다. 해방 후 1954년 교구제를 도입하여 제2교구 본사로써 59개 사찰과 암자를 말사로 거느리게 되었다. 2021년 홈페이지 상 말사는 105곳이다.

용주사는 1988년 7월 28일 전통사찰 30호로 등록되었다. 현재 전각으로 불전은 대웅보전, 천불전, 지장전이 있고 부속 전각으로 범종각, 법고각, 시방칠등각, 불음각, 천보루, 호성전이 있다. 조직 구성을 보면 조실 아래에 주지, 전강문도회, 중앙선원이 있다. 사찰 조직은 주지 아래에 본사종무회의, 선거관리위원회, 각말사·암, 교구종회로 구성돼 있다. 본사종무회의 산하에 총무국, 기획국, 교무국, 재무국, 사회국, 문화국, 포교국, 호법국, 연수국이 사찰 업무를 보고 있다.

2020년 관리카드에 의하면 신도수는 전산등록 69,550명이지만 2만 여 명이 활동하고 있고, 승려수는 안거 45명, 해제 17명이다.

[관련 문화재]

국가지정 문화재로는 국보 용주사 동종과 보물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佛說大報父母恩重經版), 보물 대웅보전(大雄寶殿)이 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는 금동향로, 청동향로, 용주사 상량문, 전적수사본(典籍手寫本), 용주사 병풍, 용주사 대웅전후불탱화, 오층석탑, 대웅보전목조삼세불좌상, 목조감실, 지장전목조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 일괄, 삼장보살도, 중종(中鐘), 남무대성인로왕보살번(南無大聖引路王菩薩幡), 전답양안 2건이 있다. 경기도 문화재자료는 천보루(天保樓), 목조불패, 목조소대(木造疏臺), 청동시루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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