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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425
한자 華城 唐城
영어공식명칭 Dangseong Fortress
이칭/별칭 당항성,고당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산32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
집필자 손설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1년 4월 15일연표보기 - 화성 당성 사적 제217호로 지정
현 소재지 화성 당성 -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산32 지도보기
성격 산성
양식 테뫼식|포곡식
관리자 화성시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정의]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있는 삼국~남북국 시대 산성.

[위치]

화성 당성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산32번지 일대에 있다.

[변천]

화성 당성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당항성으로 비정되는 성이다. 『동국지도』[1463년]에는 당성, 『동국여지승람』[1481년]에는 고당성(古唐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전고』[19세기 말]에는 폐성 목록에 들어가 있으며, 당시 과수원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형태]

화성 당성은 테뫼식의 1차 성과 포곡식의 2차 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1차 성은 구봉산[167m] 정상부와 남쪽의 능선을 포함하여 석축하였으며, 네 모서리가 돌출된 장방형의 평면 형태를 하고 있다. 둘레는 약 610m, 면적은 약 1만 4,299㎡이다. 서벽과 북벽 일부는 편축하였고, 남벽과 북벽 일부는 협축하였다. 북벽 잔존 성벽은 약 3m이고, 최대 15단이 확인된다. 남·북벽 협축부의 너비는 약 5~6m이고, 2~3차례의 보축 흔적이 확인된다. 외벽은 암반 위에 치석된 장방형 성돌을 이용하여 정연하게 축조하였고, 최대 12단이 남아 있다. 반면, 내벽 하부는 치석되지 않은 성돌이며, 3단 위로부터 정연하게 쌓았다. 최대 7단이 잔존한다.

2차 성은 토축하였는데, 1차 성 축조 후 계곡부를 포함하여 확장한 것이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전체 길이는 1,168m, 면적은 7만 2,598㎡이다. 성벽 기저부의 폭은 6.6m이고, 잔존 최대 높이는 3m이다. 성벽은 중심 토루 양쪽에 기단 석렬을 배치하였고, 성벽 외면에 영정주와 협판을 사용하여 내면과 수평이 되도록 판축하였다. 2차 성 동벽 계곡부 일부에는 토루 하부에서 석축열이 확인된다. 문 터는 개거식의 북문 터·동문 터와 현문식의 서문 터가 확인되었다.

건물터 유구는 22동 정도 확인되는데, 망해루 추정 건물터, 팔각 건물터, 1차 성 서편 장방형 건물터, 1차 성 서벽 주변 건물터, 북편 건물터, 2차 성 내부 평탄지 건물터 등이 있다. 물과 관련된 유구로는 집수 터와 연못이 있다. 또한 집수 시설의 재퇴적층 안에서 다수의 철재 유물이 확인된 것으로 보아 철기 생산 관련 유구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출토 유물]

화성 당성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기와, 토기,중국 자기, 토제 마, 금속 유물 등이 있다. 1차 성 내부에서는 당(唐), 한산(漢山), 내오관택(內午舘宅), 성신(城新), 황(黃), 관택(舘宅), 청(靑) 등이 새겨진 명문 기와가 출토되었다. 중심 문양은 선조문, 격자문이며, 일부 우상문, 복합문도 출토되었다. 2차 성 성벽 절개부에서는 병(丙), 공(公), 진정사년(秦定四年), 대관(大官), 본(本) 등이 새겨진 명문 기와가 출토되었으며, 문양은 무문, 선조문, 우상문, 복합문, 청해파문 등이 확인된다.

토기는 신라 양식 토기가 주를 이루지만, 1차 성 서편 중복 건물터 트렌치 최하부 퇴적층에서는 백제 양식 토기가 출토되었다. 2차 성 성벽 절개 조사에서도 신라 양식 토기가 주로 출토되었고, 백제 양식 토기는 매우 적은 수량만 확인되었다. 이외에 특이한 기형의 접시형 시루가 출토되어 주목받았다.

중국 자기는 1차 성 서편 중복 건물터에서 백자 해무리굽 완 2점, 2차 성 동편 계곡부 연못에서 각병 편이 확인되었다. 토제 마는 망해루 추정 건뭍터 주변에서 23개체가 출토되었는데, 몸통, 머리, 다리, 꼬리가 절단된 상태였다. 금속 유물은 청동 장식 패, 청동 그릇 편, 추정 철제 마구, 걸쇠, 철재 등이 수습되었다.

[현황]

화성 당성은 1971년 4월 15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한편, 화성 당성에 대한 발굴 조사는 1998년 성벽 복원 공사 과정에서 제기된 구조 논란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한양대학교 박물관에서 1998년과 2000년에 1·2차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고, 이후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에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3차~7차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의의와 평가]

화성 당성에서 출토된 '당(唐)'자 명문 기와는 당성의 위치를 규명하는 결정적인 근거 자료가 되었다. 또한 성내에서 출토된중국 자기는 화성 당성이중국과의 교류를 위한 관문 역할을 하였던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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