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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방위군 일기』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491
한자 國民防衛軍 日記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철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950년 12월 23일연표보기 - 유정수 『국민방위군 일기』 저술 시작
저술 시기/일시 1951년 3월 11일연표보기 - 유정수 『국민방위군 일기』 저술 종료
발견|발굴 시기/일시 2010년 - 박환, 유정수의 집에서 『국민방위군 일기』 발견
성격 일기
저자 유정수
편자 박환

[정의]

1950년 12월 23일부터 1951년 3월 11일까지 경기도 화성 출신 교사 유정수가 국민방위군에 대해 기록한 일기.

[개설]

『국민방위군 일기』는 유정수(柳靘秀)가 국민방위군에 소집된 1950년 12월 23일부터, 귀향길에 오른 1951년 3월 10일 사이에 작성한 76편의 일기이다.

한편, 국민방위군은 중공군의 6·25전쟁 개입으로 악화되어가는 전황을 타개하고 젊은이들이 북한의 의용군에 징집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1950년 12월 17일 제2국민병소집령을 발동하여 조직된 부대이다. 소집된 국민방위군 100만 명은 전선이 한반도 중부 지역에 형성됨에 따라, 경상도 등 남부 지방의 교육대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민방위군은 정부의 제대로 된 지원 없이 추운 겨울에 남부 지방으로의 장거리 행군을 감내하여야 하였으며, 교육대 도착 후에도 국고금과 군수 물자를 고급 장교들이 착복하여 최소한의 먹거리와 잠자리도 보장되지 않았다. 국민방위군이 운용된 약 4개월의 짧은 시간 동안 굶주림·추위·질병 등의 이유로 사망한 사람이 90,000여 명에 이르렀다.

국민방위군사건은 6·25전쟁 당시 국군에 의해 자행된 참극 중 하나이다. 1951년 국민방위군사건의 책임자라 볼 수 있는 김윤근을 비롯한 군 간부 일부가 전시 국방 예산 비리 등의 근거로 처형당하였으며, 2010년에는 1차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를 권고하였다. 그러나 피해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은 드물었는데, 이는 피해자의 진술과 기록이 희소한 탓이다.

[저자]

『국민방위군 일기』의 저자 유정수는 1925년 8월 16일 경기도 수원군 양감면 요당1리[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요당1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1932년 양감면에 있는 4년제 양감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1936년 졸업하였다. 양감공립보통학교 졸업 뒤, 지금의 경기도 평택시 청북읍에 있는 6년제 평택공립보통학교에 다시 진학하여 6학년으로 졸업하였다. 1941년 3월에 서울 선린상업학교 전수과를 졸업한 뒤, 1941년 4월 10일부터 1942년 10월 25일까지 일본인이 운영하는 경성 삼립상회의 사원으로 근무하였다. 이어 1944년 6월 18일부터 1945년 10월 20일까지 조선총력연맹에서 운영하는 울북학원 국어강습소 교사로 일하였다.

해방 후에는 모교 양감국민학교의 촉탁 교사로 임명되었고, 1946년 8월 12일에 개성공립사범학교 하기(夏期) 연수, 1947년 1월 24일에 경기도 제2회 동기(冬期) 학기를 수료하였다. 1949년 8월 1일 국민학교 조건부 정교사 자격증을 획득하였으며, 1949년 9월에 동탄국민학교 교사로 임명되어 국어와 사회생활 과목을 맡았다. 이후 6·25전쟁이 발발하자 고향 양감면에 돌아갔다가, 1950년 7월 초 인민군이 화성 지역을 점령함에 따라 피신하였다. 국군이 서울을 수복하자 12월 23일 국민방위군에 소집되었으며, 1951년 3월경에 소집 해제되어 귀향하였다. 이후 1970년까지 교사로 근무하였고, 과수원 운영과 지역 사회 활동 등에 참여하다가 2010년 사망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국민방위군 일기』는 유정수가 1950년 12월 23일 국민방위군에 소집된 뒤, 집결 장소인 수원공설운동장으로 이동하며 작성을 시작하였다. 일기의 첫 페이지에 "사랑하는 내 어머니와 아내와 동생들에게 이 기록을 드리노라"라고 밝히고 있다.

[구성/내용]

『국민방위군 일기』는 내용상 크게 4개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소집 후 수원공설운동장으로 집합할 때까지의 일기이다. 두 번째 부분은 집합 후 경상북도 청도군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쓴 일기들이다. 세 번째 부분은 청도군 풍각초등학교 도착 후 제22교육대 제6대대에서의 훈련 및 생활에 대해 기록한 일기들이다. 마지막 네 번째 부분은 1951년 2월 이후의 귀향 과정을 적은 일기들이다. 청도군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기록한 일기는 짧은 편이지만, 제22교육대에 편입된 뒤의 일기는 열악한 보급 상황과 비위생적인 환경 등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국민방위군 일기』국민방위군으로 소집된 유정수가 청도군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겪은 고충과 교육대 내의 열악한 환경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유정수의 일기 외에 국민방위군 당시를 기록한 글은 제주도로 이동한 심대갑의 수기뿐이다. 또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었던 22교육대 제6대대에 관한 자료 역시 유정수의 일기가 유일한 상황이어서, 『국민방위군 일기』가 가지고 있는 사료적 가치와 의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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