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972
한자 觀瀾書院
영어공식명칭 Gwanranseowon Confucian Academy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서원천로 268-21[미산리 86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백지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59년연표보기 - 관란서원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715년 - 관란서원 사당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743년 - 관란서원 사당 중수
훼철|철거 시기/일시 1868년 - 관란서원 훼철
개축|증축 시기/일시 1901년 - 관란서원이 관란서당으로 재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3년 - 관란서당에서 관란서원으로 변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1년 - 관란서원 제단비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4년 - 관란서원 관리사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6년 - 관란서원 하당 개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4년 - 관란서원 사당 복원
현 소재지 관란서원 -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서원천로 268-21[미산리 863]지도보기
원소재지 관란서원 -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성격 서원
양식 팔작지붕[강당]|맞배지붕[안인사]
정면 칸수 4칸[강당]|3칸[안인사]
측면 칸수 1.5칸[강당]|2칸[안인사]
소유자 관란서원
관리자 관란서원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미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개설]

관란서원(觀瀾書院)은 이언적(李彦迪)[1491~1553]을 제향하는 서원으로, 1659년(효종 10) 이승증(李承曾)[1515~1599]의 은거지에 건립되었다. 이언적의 본관은 여강(驪江)이고, 초명은 적(迪),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자계옹(紫溪翁), 시호는 문원(文元)이다. 경상북도 경주 출신으로 1514년(중종 9)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좌찬성(左贊成)에 올랐다. 1610년(광해군 2) 문묘(文廟)에 종사되었고, 경주의 옥산서원(玉山書院) 등에 제향되어 있다. 우리나라 성리학 정립에 있어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승증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희로(希魯)·백순(伯純), 호는 관란(觀瀾)이다. 경상북도 경주 출신으로 1558년(명종 13)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여러 관직에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만년에는 자인현(慈仁縣)에 은둔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며, 격문을 돌려 창의를 격려하기도 하였다.

[위치]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에 소재한 당리교차로에서 당리교를 건너 남쪽으로 400m 가량 이동한 후, 지방도 제919호를 따라 다시 경산시 자인면 방면으로 900m 정도 이동하면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서쪽으로 난 서원천로를 타고 약 1㎞ 직진하면, 고은교 앞에 세워져 있는 ‘관란서원’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안내판이 가리키는 남쪽 방향으로 200m 가량 떨어진 지점에 관란서원이 위치한다. 관란서원은 나직한 용산(龍山) 기슭에 북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아래로 오목천이 흐르고 있다.

[변천]

관란서원은 1659년(효종 10) 이승증의 유허지에 건립되었다. 경상북도 경주 출신의 이승증은 만년에 경주의 속현(屬縣)이었던 자인현(慈仁縣)에 삼회당(三會堂)과 어초와(漁樵窩)를 지었으며, 인근에 맹구대(盟鷗臺)와 관란대(觀瀾臺)를 축조하였다. 이승증은 이곳에서 자신을 찾아 온 수백 명에 이르는 선비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에 자인 지역 사림들이 이승증을 기리고자 별업(別業)에 원우(院宇)를 짓고자 하였다. 그러나 1653년(효종 4) 자인현이 경주부에서 이탈하여 복현(復縣)됨에 따라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대신 1659년에 이승증의 호를 딴 관란서원(觀瀾書院)을 짓고, 1660년에 이언적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1715년(숙종 41)과 1743년(영종 19) 사당을 중수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으나, 1901년(광무 5)에 지역 사림들이 강당을 새로 짓고 관란서당(觀瀾書堂)이라 하였다. 1923년에 후학 윤현기(尹玄基)가 ‘관란서원’ 현판을 썼다. 1971년에는 관란서원 내에 제단비(祭壇碑)를 건립하였으며, 1994년에 관리사를 건립하였고, 1996년에 하당(下堂)을 개축하였다. 2004년 경상북도와 경산시의 지원을 받아 사당을 복원하고, ‘안인사(安仁祠)’라 편액하였다.

[형태]

관란서원은 높은 축대 위에 건립되었으며, 주위에는 토석 담장이 설치되어 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온돌방 1칸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 구조이다. 전면에 반 칸 규모의 툇간이 있다. 가구는 대량 위에 동자주 대공을 세워서 마룻대와 장혀를 받게한 3량가 구조이다.

사당인 안인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가구는 3량가이다. 관란서원 오른쪽에는 이언적의 단비(壇碑)가 별도의 영역을 구성하고 있다.

[현황]

관란서원은 매년 음력 9월 9일에 향사를 지낸다. 관란서원 옆에는 관리사가 있으며, 강당에는 1923년에 조희원(曺喜元)이 쓴 「관란서당중수기(觀瀾書堂重修記)」를 비롯한 여러 점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관란서원자인현에 설립된 최초의 서원으로서 조선 시대 자인 지역의 학풍에 큰 영향을 끼친 유교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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