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431
한자 慶山靑年同盟
영어공식명칭 Gyeongsan Youth League
이칭/별칭 경산청맹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7년 10월 18일경 - 경산청년동맹 창립
성격 청년운동 단체

[정의]

1927년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결성된 사회주의 계열의 청년 단체.

[개설]

경산청년동맹(慶山靑年同盟)은 사회주의 계열의 경산 지역 청년운동 단체로 1927년에 결성되었다. 이후 다른 청년운동 단체를 통하하여, 산하에 하양지부와 안심지부를 두었다.

[설립 목적]

경산청년동맹은 사회주의 계열의 청년운동을 전개하고 단일 노선을 지향하기 위하여 1927년 10월 18일경에 결성되었다. 이에 앞서 1927년 2월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同盟)은 전민족적 청년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조선청년총동맹의 방향 전환에 발맞춰 지방 청년단체들은 기존의 강령과 조직 내용을 변경하였다. 그런 가운데 경산 지역에서는 경산청년회(慶山靑年會)를 사회주의 청년운동 단체로 전환하기 위한 움직임이 1926년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1927년 2월에는 경산 지역 무산청년(無産靑年)들의 사회운동을 이끌어가는 경우단(慶友團)이 창립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 경산 지역 청년운동 단체들도 단일 청년동맹으로 방향전환을 하게 되고, 경산청년동맹이 결성되었던 것이다.

[변천]

경산청년동맹은 1927년 10월 18일경에 처음 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1927년 11월 19일 경산청년위원회(慶山靑年委員會)와 경산청년회가 임시의장 정덕진(鄭德辰)의 사회로 집행위원회를 개최하였는데, 여기서 보이는 경산청년위원회를 경산청년동맹의 초기 형태로 보고 있다.

경산청년동맹이 결성되면서 경산 관내의 각 청년운동 단체들도 경산청년동맹의 지부로 전환하였다. 이에 하양청년회는 1928년 5월 11일 경산청년동맹 하양지부로, 안심청년회는 6월 2일 열린 제5차 정기대회에서 해체를 선언한 뒤 경산청년동맹 안심지부로 전환이 이루어졌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경산청년동맹은 1928년 6월 9일 경산청년회관에서 집행위원장 김기양(金基陽)의 사회로 집행위원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회의에서 경산청년동맹 집행위원회는 ‘1. 맹원명부정리의 건, 1. 동맹조직방침의 건, 1. 상무위원증설의 건, 1. 맹원모집의 건, 1. 자인시민운동회의 건’ 등의 사항을 결의하였다. 당시 결의 내용을 볼 때, 1928년까지도 경산청년동맹의 조직은 아직 완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경산청년동맹은 1928년 6월 23일 제3회 집행위원회를 개최하여 진량의 부호 김홍배가 소작권의 이전 문제로 소작인을 구타한 사건을 논의하였다.

[의의와 평가]

1927년 6월 이후 조선청년총동맹의 방향전환에 발맞춰 단일 청년동맹으로 조직된 경산청년동맹은 하양지부와 안심지부를 산하에 두고 경산 지역 청년운동을 이끌어 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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