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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114
한자 朴鳳石
영어공식명칭 Bak Bongseo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5년연표보기 - 박봉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8년 11월 13일~1909년 9월 24일 - 박봉석 안규홍 의병부대 포군으로 전라남도 보성·장흥·순천 등지에서 무장투쟁
활동 시기/일시 1909년 5월 18일 - 박봉석 전라남도 보성군 복내장에서 일본군 2명과 한인 통역 1명과 교전
활동 시기/일시 1909년 9월 24일 - 박봉석 일본군에게 체포
활동 시기/일시 1910년 2월 7일 - 박봉석 광주지방재판소에서 교수형 선고받음
몰년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 박봉석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박봉석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출생지 전라도 광주목 도천면 수박치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안규홍 의병부대 포군

[정의]

개항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의병.

[개설]

박봉석(朴奉石)[1885~1910]은 전라도 광주목 도천면 수박치(水朴峙)에서 태어났다. 1908년 안규홍(安圭洪) 의병부대에 들어가 포군(砲軍)의 직책을 가지고 전라남도 곳곳에서 무장투쟁을 벌였다. 1909년 일본군에게 붙잡혔고, 1910년경 교수형으로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박봉석 1908년 11월 13일 안규홍 의병부대에 들어가 포군의 직책을 가지고 5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총으로 무장한 후 1909년 9월 24일까지 전라남도 보성·장흥·순천 등지에서 무장투쟁을 벌였다. 1909년 5월 18일 안규홍의 지시로 부하 7명을 거느리고 전라남도 보성군 율어면 유치(柳峙)의 복내장(福內場)에서 물품을 사던 일본군 2명과 한인 통역 1명을 상대로 교전을 벌여 일본군 1명을 죽이고 1명에게는 중상을 입혔으며, 한인 통역에게도 머리에 상처를 입혀 추후 사망하도록 하는 전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이른바 '남한대토벌작전(南韓大討伐作戰)' 기간 중이던 1909년 9월 24일 일본군에게 붙잡혀 1910년 2월 7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폭동 및 살인·강도죄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그 뒤 항고하였으나 1910년 3월 22일 대구공소원과 1910년 5월 2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당하고 형이 확정되어 1910년경 교수형으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별집 1(국가보훈처, 1974)
  • 『독립유공자공훈록』9(국가보훈처, 1991)
  • 「판결문」(대구공소원, 1910. 3. 22.)
  • 「판결문」(고등법원, 1910. 5. 2.)
  •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국가기록원, https://www.archives.go.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03.15 내용변경 [표준시대], [시대] 일제 강점기→개항기, [정의] 일제 강점기→개항기, 독립운동가→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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