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이씨의 손(孫)을 지킨 종」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5237
한자 光山李氏-孫-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염승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18년 3월 6일 - 「광산이씨의 손(孫)을 지킨 종」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절골마을에 거주하는 이우춘의 이야기를 채록
채록지 절골마을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586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광산이씨의 아들|종|종의 아들|부잣집 주인
모티프 유형 가문|희생|후손

[정의]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절골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광산이씨 일가에 관한 이야기.

[개설]

「광산이씨의 손(孫)을 지킨 종」광산이씨(光山李氏) 집안에서 살아남은 아이와 아이를 지켰던 종에 관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2018년 3월 6일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절골마을에 거주하는 주민 이우춘[여, 80세]의 이야기를 채록하였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주관하는 한국구비문학대계(https://gubi.aks.ac.kr)에 수록되었다.

[내용]

예전 광산이씨 일가(一家)가 모략을 당해 집안의 사람들이 모두 죽는 사건이 있었다. 일가의 아들 한 명만 살아남았는데, 종이 일가의 그 아들은 등에 업고, 종의 아들은 걷게 하였다. 모략을 꾸민 사람들이 종에게 누가 그 일가의 아들이냐고 물었는데, 종은 걷고 있는 아들이 일가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종 덕분에 광산이씨 일가의 아들은 살아남았고, 종에게서 족보를 건네받았다. 살아남은 아들은 어느 부잣집에서 머슴살이를 하였다. 어느 날 부잣집 주인은 머슴이 족보를 몰래 펴보고, 처마 밑으로 족보를 숨기는 것을 보게 되었다. 주인이 머슴이 숨겼던 족보를 확인해 보니, 머슴이 이름 있는 성씨의 아들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주인은 광산이씨의 아들을 자신의 딸과 혼인시켰고, 광산이씨 가문은 그 자손이 퍼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모티프 분석]

「광산이씨의 손(孫)을 지킨 종」의 모티프는 '가문의 후손을 지킨 종의 희생'이다. 광산이씨 일가의 멸문지화(滅門之禍)는 정여립(鄭汝立)[1546~1589]의 난에 연루되었던 필문(畢門) 이선제(李先齊)[1389~1454] 선생의 5대손인 이발(李潑)[1544~1589]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발은 1573년 문과에 급제하여 1584년 대사간에 올라 동인의 지도자가 되었는데, 당시 서인이었던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과 크게 대립하였다. 결국 이발은 정여립의 모반(謀反) 사건인 기축옥사(己丑獄事)에 연루되어 동생 이길(李洁)을 비롯해 3대가 멸족되었다. 다만, 살아남은 일가 사람들이 진도로 피신하였는데,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그곳에서 정착하여 가문의 대를 이었다고 한다. 「광산이씨의 손(孫)을 지킨 종」 이야기에서도 광산이씨 한 명이 살아남아 가문을 이을 수 있었는데, 이때 아들을 바친 종의 희생이 가문의 명맥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내용과 연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한국구비문학대계(https://gubi.aks.ac.kr)
  • 디지털진도문화대전(http://jindo.grandcultur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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