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069
한자 芝山齋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광주광역시 남구 지산재길 51[양과동 715-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한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37년연표보기 - 지산사 최치원 영당으로 건립
훼철|철거 시기/일시 1868년 - 지산사 훼철
개축|증축 시기/일시 1846년 - 지산사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22년연표보기 - 지산사 지산재로 개칭하고 복설
문화재 지정 일시 1979년 8월 3일연표보기 - 지산재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호 지정
현 소재지 지산재 - 광주광역시 남구 지산재길 51[양과동 715-1]지도보기
성격 사우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1칸
관리자 경주최씨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우.

[개설]

지산재는 본래 광주 지역 경주최씨 문중에서 세운 최치원(崔致遠)[857~?]을 배향한 지산사(芝山祠)의 강당이었다. 1868년(고종 5) 영당만 남고 모두 훼철되었으나 1922년 강당이 복설되고 지산재로 이름을 바꾸었다.

[위치]

광주광역시 남구 지산재길 51[양과동 715-1]에 있다.

[변천]

지산재는 본래 고운(孤雲) 최치원을 배향했던 지산사(芝山祠)의 강당이었다. 1737년(영조 13)에 광주 지역에 있는 경주최씨 문중에서 시조인 최치원의 영정(影幀)을 모시기 위하여 영당(影堂)을 세웠다. 1846년(헌종 12) 경주최씨 문중과 지역 유림들이 최치원 외에 최운한(崔雲漢)[1444~1499], 최형한(崔亨漢)[1446~1504], 정오도(鄭吾道)[1641~1732]를 추가로 모시면서 지산사로 이름을 바꾸고 서원이 되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영당만 남고 모두 훼철되었다. 1922년 경주최씨 문중을 중심으로 강당이 복설이 되고 지산재로 이름을 바꾸고 최치원만 모셨다. 이후 내삼문과 외삼문이 건립되어서 현재 모습을 갖추었다. 1979년 8월 3일에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형태]

지산재는 정면 4칸, 측면 1칸 구조이며 팔작지붕 건물이다. 중앙 3칸은 마룻바닥이고 나머지 1칸에 방을 두었다. 지산재의 편액은 김규태(金奎泰)[1902~1966]가 작성하였다.

[현황]

지산재 앞에 외삼문과 동재, 서재 건물이 있으며, 지산재 뒤로 내삼문과 영당이 있다. 지산재 옆에 1985년에 세운 유허비가 있다. 경주최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9월 9일에 제사를 지낸다. 1979년 8월 3일에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광주 지역 문중에서 시조를 어떻게 제향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서원 철폐령 이후 다시 세워졌던 사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영당과 서원이 함께 있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참고문헌]
  • 『문화유적분포지도』-광주광역시(전남대학교박물관, 2004)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http://www.gjsgcc.or.kr)
  • 국가문화유산포털(http://www.heritag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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