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925
한자 -春香歌(東超制)
영어공식명칭 Pansori-Chunhyangga(Dongchoje)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0년연표보기 - 판소리춘향가(동초제)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6호 지정
성격 남도판소리
토리 육자배기
가창자/시연자 방성춘
문화재 지정 번호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6호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명창 김연수가 정립한 동초제를 기반으로 하는 판소리.

[개설]

판소리 다섯바탕 중 하나인 「춘향가」는 이 도령과 춘향의 사랑과 이별, 지배층에 항거하는 춘향의 수난, 이 도령과 춘향의 상봉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중 동초제 「춘향가」는 완창 시간이 약 8시간으로 가장 긴 판소리이다.

동초제는 전라남도 고흥 출신 김연수(金演洙)[1907~1974]가 일가를 이룬 유파이다. 김연수는 근현대 창극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동초제라는 신개념 유파를 형성하는 등 뚜렷한 행적을 남기고 있어 현대 판소리사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또한, 판소리 다섯 바탕 창본을 새롭게 정리하였고, 오랜 기간 수행한 창극 활동의 경험을 토대로 소리의 이면에 맞는 연극적인 발림을 정립하였다. 오늘날 동초제는 많은 전승자를 파생시킨 대규모 유파로 확립되었다. 이러한 동초제를 기반으로 하는 판소리춘향가는 2000년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보유자로는 방성춘[1948년생]이 인정받았다.

[구성 및 형식]

동초제 「춘향가」는 정정렬제를 바탕으로 여러 유파의 사설을 수용하여 새롭게 짠 소리이다. 사설이 매우 정확하고, 사설의 합리성과 구성의 통일성, 서사적 완결성 등이 매우 높다. 또한, 김연수의 소리를 창극소리라고 하듯이 동초제 「춘향가」는 아니리가 확장되어 있으며, 연극성과 사건 서술의 효과 등도 잘 나타난다.

[내용]

동초제는 여러 판소리 명창들의 소리 중 좋은 점만을 골라 새로운 소리로 탄생시킨 소리로, 동편제와 서편제의 특성을 두루 아우르고 있다. 김연수는 다른 유파의 사설을 그대로 차용하기보다는 비판적인 안목을 가지고 취사선택하여 새롭게 써 넣기도 하면서 창본을 정리하였다. 선율 역시 전통적인 판소리를 배우기는 하였으나 자신만의 소리를 만드는 데 주력하여 독창성이 강한 소리로 정착시켰는데, 김연수의 소리를 일러 ‘옛 소리를 현대화한 소리’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현황]

방성춘[1948년생]의 본명은 방야순이며, 전라남도 광주시 북구 오룡동에서 출생하였다. 13세 때 어머니의 권유로 광주 대촌[현 광산구]에 있던 박채선에게 「춘향가」 도막소리를 배우면서 입문하였다. 박채선은 박동실의 동생이며 본명은 박지초이다. 1965년경부터는 공대일(孔大一)[1911~1990]에게 「춘향가」, 「흥보가」를 학습하였고, 1970년경에는 정광수(丁珖秀)[1909~2003]에게 「흥보가」, 「수궁가」를 배웠다. 방성춘은 어린 시절 서편제 판소리를 학습하였으나, 1975년 전라북도 전주 범어사에서 오정숙에게 백일공부를 하고 난 이후 동초제 소리로 영역을 넓혔다. 오정숙에게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를 사사받았다.

방성춘은 한때 남편을 따라 부산에 거주한 바 있으나, 1987년 광주로 돌아와 1989년 광주시립국극단 상임수석을 역임하였다. 1988년 5월 방성춘은 5~6시간 동안 「춘향가」를 연창하여 광주 지역에 방성춘의 이름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1991년에는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명창부 장원을 차지하였고, 전남도립국악단 수석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97년부터는 전남대학교, 광주남부대학교, 광주예술고등학교, 전주예술고등학교 등에서 소리 강사로 활동하였고, 1999년 광주광역시 남구 서동에 동초제판소리연구원을 열어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2000년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6호 판소리춘향가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의의와 평가]

광주·전남 지역은 예부터 서편제가 강세한 곳이다. 서편제가 강세한 곳에서 동초제가 자리 잡고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가치 있는 일이며, 광주 지역 판소리 유파의 확대는 물론, 판소리 문화의 저변을 넓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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