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677
한자 文學
영어공식명칭 Literatur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신송

[정의]

전라도 광주 지역과 관련하여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개설]

전라도 광주 지역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문학 작품의 산실이었다. 고전문학 분야에서는 주로 무등산이 중요한 소재이자 주제로 활용되어 무등산을 오르며 지은 한시와 시조, 무등산을 여행하며 쓴 유산기 등이 다수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호남 지방의 특성상 누정문학도 광주 문학의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으며, 구비전승문학(口碑傳承文學) 또한 고전문학에서는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광주에 전해지는 구비전승문학 중 무등산김덕령에 관련된 전설이 다수 내려오고 있다.

현대문학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재능 있고 뛰어난 시인들이 등장하였다. 특히, 김현승(金顯承)[1913~1975]과 박용철(朴龍喆)[1904~1938]은 시와 평론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다. 소설 분야에서는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작품이 다수 발표되었다. 한국의 민주화를 앞당긴 사건 중 하나이자 수많은 민중이 희생된 5.18광주민주화운동은 많은 작가들의 창작 활동에 영향을 미쳤고 발표된 작품은 다시 영화와 드라마, 연극으로 만들어지며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알렸다.

[광주의 고전문학]

[광주의 시조문학]

전라도 광주의 시조문학은 대부분 15~16세기 조선 전기에 창작되었다. 광주 출신으로 현재까지 작품이 전해지고 있는 작가는 이조원(李調元)[1433~1510], 기대승(奇大升)[1527~1572],고경명(高敬命)[1533~1592], 김덕령(金德齡)[1568~1596], 정충신(鄭忠信)[1576~1636] 등이다. 이조원은 연산군의 폭정을 보고 광주로 귀향한 인물로, 「연화조(蓮花操)」 1수와 「환향가(還鄕歌)」 1수 등 2수의 시조 작품이 남아 있다. 「연화조」는 단종의 폐위를 애통해 하며 지은 시조이고, 「환향가」는 나라의 앞날을 염려하는 우국시조이다. 기대승은 16세기 명망 있는 성리학이자 문신으로 “호화(豪華)코 부귀(富貴)키야”로 시작하는 1편의 시조를 남겼는데, 기대승의 문집인 『고봉집』에는 수록되지 않고 다른 가집에 실려 전하고 있다. 고경명의 시조로 알려진 작품은 3수인데, 이 중 2수는 전하는 문헌에 따라 작가가 다르게 기록되어 있어서 작자 논란이 있다. 김덕령이 옥중에서 지었다고 알려진 시조 「춘산곡(春山曲)」 1수가 유고 문집인 『김충장공유사(金金忠壯公遺事)』에 전한다. 정충신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3수의 시조가 여러 가집에 전하고 있는데, 이 중 2수는 가집에 따라 작가가 다르게 표기되어 있어 작가 논란이 있다.

[광주의 가사문학]

전라도 광주의 가사문학은 무등산 주변에 형성된 누정을 배경으로 하는 강호은일(江湖隱逸) 가사를 중심으로 창작되었다. 16세기 호남 지역에는 '무등산권'이라 부를 수 있는 지역에 여러 누정들이 건립되었는데, 이 중 전라남도 광주 충효동과 전라남도 담양(潭陽) 성산(星山)[별뫼마을]의 경계에 위치한 환벽당(環碧堂), 소쇄원(瀟灑園), 식영정(息影亭)은 특히 유명하다. 이들 누정은 무등산의 다채로운 승경을 배경으로 가까운 거리에 조영되어 예로부터 '일동삼승(一洞三勝)'으로 알려져 왔다. 다양한 문인들이 누정에 서로 출입하면서 시문으로 교유함으로써 이른바 '성산시단(星山詩壇)'을 이루었다. 성산시단과 견줄 수 있는 또 다른 무등산권 시단으로 '면앙정시단(俛仰亭詩壇)'을 들 수 있다. 성산시단과 면앙정시단의 중심에는 16세기 강호은일 가사를 형성하고 성행시키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친 송순(宋純)[1493~1582]과 정철(鄭澈)[1536~1593]이 있다.

[광주의 한문학]

한문학은 운문(韻文) 갈래인 한시와 산문(散文) 갈래인 한문 문장류로 구분된다. 광주 지역에서 한문학이 가장 융성하였던 시기는 16세기이다. 이러한 사실은 17세기 뛰어난 문인이자 비평가였던 이수광(李睟光)[1563~1628]과 허균(許筠)[1569~1618]의 저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수광은 자신의 저서인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근세에 뛰어난 호남 시인으로 박상(朴祥)[1474~1530], 임억령(林億齡)[1496~1568], 임형수(林亨秀)[1514~1547], 김인후(金麟厚)[1510~1560], 양응정(梁應鼎)[1519~1581], 박순(朴淳)[1523~1589], 최경창(崔慶昌)[1539~1583], 백광훈(白光勳)[1537~1582], 임제(林悌)[1549~1587], 고경명 등을 언급하고 있다. 허균 역시 비슷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 『지봉유설』에서 소개한 문인 외에 최산두(崔山斗)[1483~1536], 유성춘(柳成春)[?~?], 유희춘(柳希春)[1513~1577], 양팽손(梁彭孫)[1488~1545], 나세찬(羅世纘)[1498~1551], 송순, 오겸(吳㻩)[1496~1582], 이항(李恒)[1499~1576], 기대승 등을 덧붙이고 있다.

조선 후기 광주 지역 한문학의 양상 중 주목할 점은 무등산을 유람하고 그 여정과 감상을 기록한 '무등산 유산기(遊山記)'가 활발히 창작되었다는 것이다. 무등산 유산기는 15세기 후반 정지유(鄭之遊)[15~16세기]의 「유서석산기(遊瑞石山記)」를 시작으로, 16세기 후반 고경명「유서석록(遊瑞石錄)」[1574] 등의 작품이 있으나, 그 후로 한동안 창작되지 않았다. 이후 18세기 후반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유서석산기」[1778]를 쓴 이래, 19~20세기에 16편이 집중적으로 창작되었다.

한편 19세기 이후 광주 지역 한문학은 기정진(奇正鎭)[1798~1879]의 제자들이 크게 주도하였다. 대표적으로 기정진의 손자이기도 한 기우만(奇宇萬)[1846~1916]과 오준선(吳駿善)[1851~1931], 박노술(朴魯述)[1851~1917] 등이 있다. 이들의 활동 시기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엽에 이르는 역사적 격변기이자, 전통 시대 문학의 종언을 고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들은 유생들을 규합하고 의병 운동을 독려하는 한시문을 창작하여 1910년 대한제국의 국권 상실 이후 시작된 일본의 식민 통치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광주의 누정문학]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누정은 고려 말엽부터 등장하고 있다. 누정(樓亭)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의 약칭이다. 누정은 집이기는 하지만 일상적 주거지가 아닌, 특별한 별서(別墅) 공간이다. 누정 공간에서 시문 제작, 강학, 접객(接客), 회합, 휴식 등 다채로운 문화 활동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누정제영(樓亭題詠)·누정기(樓亭記)와 같은 누정문학이 형성되었다. 광주 지역에 있는 누·각·정·당 중 누정문학이 전해지고 있는 곳은 59개소이다. 이 중 임진왜란 이전에 창건된 조선 전기 누정이 10개소, 조선 후기부터 근대 시기에 창건된 누정이 49개소이다.

조선시대에 사대부 집안에서 누정을 건립하는 일이 성행하였다. 16~17세기에 조영된 광주 지역의 대표적인 누정으로 환벽당(環碧堂), 풍영정(風詠亭), 풍암정(楓岩亭) 등이 있다. 이들 누정에는 주인과 개인적 인연이나 친분이 있는 문인들이 수시로 방문하였는데, 이들을 중심으로 일종의 문학 동호회가 조성되었다. 즉 광주 및 인근 지역 문인들이 누정을 문예적 교류의 주요 공간으로 삼아, 누정시나 누정기와 같은 다채로운 누정문학을 제작하며 집단적인 문학 활동을 전개한 것이다. 이러한 누정문학 작품들은 판각되어 누정에 걸리기도 하고, 개인 문집에 실리기도 하였다.

누정문학 중 가장 대표적인 유형은 누정제영(樓亭題詠)이다. 누정을 대상으로 창작한 시들은 일반적으로 대상 누정의 당호나 주변의 경관을 제명(題名)으로 삼아 지어졌으며, 동일한 제명을 활용하여 집단적이거나 지속적으로 창작이 이루어질 때는 원운(原韻)과 차운(次韻)의 형태를 가지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이러한 관습 아래 제작된 일군의 누정시를 누정제영이라고 한다. 누정제영은 연의 구성 형태에 따라 단작 제영과 연작 제영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단작 제영은 하나의 연이 한 편의 시 작품을 이루는 것이며, 연작 제영은 여러 연이 모여 한 편의 시 작품을 만든다. 단작 제영 작품으로 임억령의 칠언절구 「환벽당(環碧堂)」과 같은 제명으로 김인후가 지은 칠언율시 「환벽당」을 들 수 있다. 기대승의 「차환벽당송판부운(次環碧堂宋判府韻)」은 송순의 원운을 차운한 단작 제영으로, 환벽당의 승경에 대한 감상과 송순에 대한 존숭의 마음이 드러난다. 연작 제영은 제재로 삼은 경관의 성격에 따라 세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시가(四時詞)’라는 제명을 가진 사시가형 연작 제영, ‘~구곡(九曲)’이라는 제명을 가진 구곡가형 연작 제영, ‘~영(詠)’이나 ‘~경(景)’이라는 제명을 가진 팔경가형(八景歌型) 연작 제영이 그것이다. 이 중 팔경가형 연작 제영이 가장 많이 창작되었는데, 특정 장소에 팔경을 설정하고 각각의 경관을 지시하는 소제목을 수반하는 특징이 있다. 8영을 기본으로 하지만, 12·16·18·20영 등 형태가 변형되기도 한다.

[광주의 구비전승문학]

'구비(口碑)'는 입으로 전하되, 그것이 빗돌에 새긴 것과 같이 변하지 않은 '말의 빗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구비전승은 단순한 구전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과 감정을 말에 새겨 놓은 언어 예술이란 의미를 지니며, 더불어 계층성에 얽매이지 않는 보편의 언어 예술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구비전승문학에는 설화, 민요, 무가, 판소리, 민속극, 속담, 수수께끼 등이 있다.

전라도 광주 지역의 설화는 인물이나 지명과 관련된 전설이 많다. 대표적인 인물전설에는 신화적 요소를 구비하고 있는 견훤 전설, 다양한 파생담을 가진 김덕령 전설 등이 있다. 지명전설에는 광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무등산 주변의 지명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광주에 전해지는 구비전승문학 중 민요는 대표적으로 「용전들노래」, 「서창들노래」, 「콩밭매기 노래」 등의 노동요와 「상여소리」, 「달구질소리」 등의 의식요가 있다. 무속인에 의해 무속 의례에서 가창되는 무가를 보면, 「성주풀이」, 「손님풀이」, 「오구풀이」, 「제석풀이」 등이 전승되고 있다. 한편 광주광역시는 서편제의 주요 전승 지역으로서, 「남도창동편제」, 「남도판소리」, 「판소리 춘향가(동초제)」, 「판소리고법」 등을 시 지정문화재로 지정해서 보존하고 있다.

[광주의 현대문학]

[광주의 현대시]

전라도 광주의 현대시는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언어 예술로서 서정시의 전통과 민족적 자부심을 지키기 위한 민족운동이라는 입장에서 식민지 상황과 근대화의 물결에 대응하며 발전하였다. 아울러 광주의 현대시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다정한 관심과 함께 민주화운동의 중심 도시로서 현실과 사회 문제를 반영하고 극복하기 위한 치열한 의지를 견지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해방 이전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광주에서 최초로 시작(始作) 활동을 한 시인으로 김태오가 있다. 김태오는 일제 치하의 식민지 상황에서 우리의 언어와 민족정신을 지키기 위하여 소년 운동과 동요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틈틈이 시와 시조를 창작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달밤」, 「고향」 등이 있다. 이 무렵 박용철은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시문학파를 결성하고 『시문학』을 창간·발행하였다. 우리말로 시를 써서 민족의 언어를 완성시키자는 목적으로 탄생한 시 전문지는 광주는 물론 한국 시문학이 발전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다. 주요 작품으로 「떠나가는 배」, 「싸늘한 이마」 등이 있다. 아울러 이 시기 김현승이 등단하면서 광주의 현대시가 발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일제가 전시 동원 체제에 돌입하자 해방까지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시를 쓰지 않았다.

해방 직후인 1940년대에서 1950년대에 이르는 시기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광주의 현대시도 공백기였다. 이 시기 『광주신보』의 전신인 『조선중보』에 이해동[1916~]이 시로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김현승도 8년의 침묵을 깨고 다시 펜을 들어 시작 활동을 재개하였다. 해방기 이후 광주 현대시의 흐름은 민족관의 확립과 문화 향상을 기치로 내걸고 1950년 1월에 창간한 『호남공론』은 다시 제호를 바꿔 『젊은이』로 이어졌다. 시인으로 김현승, 이동주(李東柱)[1920~1979], 이수복(李壽福)[1924~1986], 박봉우(朴鳳宇)[1934~1990], 정현웅(鄭顯雄)[1932~], 박성룡(朴成龍)[1930~2002], 주명영(朱命永)[1935~] 등이 참여하였다. 한편 6.25전쟁기에 광주에서 창간된 『신문학』은 순문예지를 표방한 잡지였으며, 광주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시문학의 공백기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김현승, 박흡(朴洽)[1912~1962], 이동주, 이석봉(李石奉)[1928~1999], 이수복 등이 시를 발표하였다. 이 무렵 목포해군 정훈실에서 발간한 기관지로 『전우』, 『갈매기』가 있었으며, 광주의 김현승, 이동주, 이수복, 박흡, 김악(金岳)[1917~1973], 박정온(朴定慍)[1926~], 이석봉 등이 필진으로 이름을 올렸다. 1952년 목포에서 발간된 『시정신』, 『시와산문』에도 광주의 시인들이 활발하게 참여하였다. 1953년 광주고등학교 문예부가 광주 최초의 학생 동인을 결성하고 동인지 『상록집』을 발간하였다.

1960년대 벽두부터 일어난 4.19혁명으로 인해 정치·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광주에는 문학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였다. 1950년대 동인지나 문예지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창작 열기는 문학청년들이 대거 등장하고 등단하는 동력이 되었다. 이 시기에 등단한 시인으로 이성부(李盛夫)[1942~2012], 조태일(趙泰一)[1941~1999], 손광은(孫光殷)[1936~], 박홍원(朴烘元)[1933~2000], 범대순(范大錞)[1930~2014], 문병란(文丙蘭)[1935~2015], 임보(林步)[1940~], 강인한(姜寅翰)[1944~], 이향아(李鄕莪)[1938~], 김종(金鐘)[1948~], 김만옥(金萬玉)[1946~1975], 문도채(文道采)[1928~2003], 김재흔(金在欣)[1935~], 김준태(金準泰)[1948~], 진헌성(陳憲成)[1932~], 양성우(梁性佑)[1943~] 등이 있다.

1970년대 광주의 시인들은 시대적 암울함 속에서도 서정적 건강성을 잃지 않고 있었다. '한국문인협회 전남지부'는 1974년 『전남문단』 창간호를 발간하였으며, 허연(許演)[1923~2017], 차의섭(車義燮)[1919~1995], 진헌성, 주기운(朱其運)[1928~2007], 정재완(鄭在燮)[1936~2004], 정소파(鄭韶坡)[1912~2013], 전원범(全元範)[1944~], 이영권, 오명규, 양성우, 송선영(宋船影)[1936~], 범대순, 박홍원, 문병란, 문도채, 김현곤, 김만옥 등이 시를 발표하면서 유신정권의 겨울 공화국에서 광주의 시인들이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 시국의 현실을 논의하고 염려하는 문인들이 모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결성하였으며, 유신 체제에 맞서 「자유실천문인협의 101인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에는 강태열(姜泰烈)[1933~2011], 김남주(金南柱)[1946~1994], 박봉우, 문병란, 이성부, 조태일, 양성우 등이 참여하였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면서 광주의 현대시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광주의 시인들은 시대가 주는 암울과 침체에 빠지지 않고 인간과 자연, 현실과 사회에 대한 서정과 사상을 다양한 동인 활동 및 작품 활동을 통해 담아내고자 노력하였다. 이 시기 이영진, 박주관(朴柱官)[1953~], 박몽구, 곽재구(郭在九)[1954~], 나종영 등이 주축이 된 『오월시』 동인은 1980년 5월 광주의 체험을 시화하였으며, 고정희(高靜熙)[1948~1991], 허형만(許炯萬)[1945~], 강인한(姜寅翰)[1944~], 김종(金鐘)[1948~], 국효문(鞠孝汶)[1949~], 김준태 등이 참여한 『목요시』 동인은 역사의 희망과 구원의 길을 모색하였다. 박선욱(朴善旭)[1959~], 김남주, 김하늬, 최승권, 임동확(林東確)[1959~] 등은 '민족작가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박주관, 나종영, 나해철(羅海哲)[1956~], 곽재구, 황지우(黃芝雨)[1952~] 등의 시는 전국 문단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86년 광주시가 직할시로 승격함에 따라 '광주문인협회'가 구성되었으며 기관지 『광주문학』을 발간하였다. 초대 회장은 손광은이 맡았으며 '광주문학상'을 제정하였다. 1990년대 문민정부 시대 이후로 다양한 문학 동인의 등장과 함께 문학잡지도 풍성하게 발간되었다.

[광주의 현대 소설]

소설 작가들은 표현의 자유와 민주화, 올바른 민족문학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여 왔다. 나아가 광주의 오월 정신을 표방하며 정의와 진보, 참여적 작가정신을 글로 실천하고 있다. 특히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시민사회는 물론 광주 지역 문학계에도 큰 충격을 준 사건이자 지역 문단의 변화와 사회참여를 이끈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나아가 광주 이외 지역의 작가들에게도 민주주의와 정의의 가치를 되새겨 보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오월문학은 5.18광주민주화운동 발생 이후 이에 대한 역사적 재해석과 상처의 치유, 명예 회복과 진상 규명을 목표로 하여 발표된 일련의 소설들이다. 시가 순간의 예술이고 정서와 감정의 예술이라면 소설은 성찰과 회고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소설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끝나고 나서 그 의미를 역사적으로 되살리고 고통을 재현하는 역할을 해왔다. 오월문학은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의미를 제시하고 나아가 상처에 대한 치유를 시도하면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역사적으로 재평가받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이제 오월소설은 단지 광주의 문학이 아니라 반복되는 국가 폭력에 고통 받는 모든 민중의 문학이자, 이에 뜻을 같이 하는 모든 작가들의 문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월문학은 이후 점차 활동 영역을 넓혀 영화와 드라마, 연극으로 진출하였다.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가 제작되기도 하였고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 장선우 감독의 『꽃잎』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연극 「그들의 새벽」처럼 소설이 연극으로 만들어져 공연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희곡작가로는 극단 토박이를 만든 박효선(朴曉善)[1954~1989]을 들 수 있다. 박효선의 작품으로는 「그들은 잠수함을 탔다」, 「어머니」, 「금희의 오월」, 「부미방」 , 「딸들아 일어나라」, 「모란꽃」, 「청실홍실」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다큐드라마와 판소리 사설, 마당극 형태의 다양한 작품들이 오월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주요 작가와 소설로는 우선 임철우(林哲佑)[1954~]의 『백년여관』, 『봄날』, 「직선과 독가스」, 문순태(文淳太)[1941~]의 『그들의 새벽』, 『타오르는 강』, 「일어서는 땅」, 「최루증」, 「녹슨 철길」, 송기숙(宋基淑)[1935~2021]의 「우투리」, 『오월의 미소』, 황석영(黃晳暎)[1943~]의 『오래된 정원』, 한강(韓江)[1970~]의 『소년이 온다』, 최윤(崔允)[1953~]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한승원(韓勝源)[1939~]의 「어둠꽃」, 홍희담의 「깃발」, 「이제금 저 달이」 등을 들 수 있다.

[광주의 문학 단체]

광주광역시에는 2022년 기준하여 전통 시조 및 현대문학과 관련한 많은 문학 단체가 있으며, 여기에 소속된 문인들이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지역 문화계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대표적으로 1967년 결성된 '원탁문학회'[이후 '원탁시문학회'로 변경]는 동인지 『원탁문학』[이후 『원탁시』로 변경]을 발간한 이래로 아직까지 발간되는 최장수 동인지로 기록되고 있다. 창간 동인으로 권일송(權逸松)[1933~1995], 문병란, 박홍원, 범대순, 손광은, 윤삼하(尹三夏)[1935~1995], 정현웅, 김현곤, 송선영, 허연, 황길현(黃吉顯)[1933~2002] 등이 이름을 올렸다. 1992년 박형철이 발행인을 맡고 전원범이 주간을 맡은 순수 문예지 『문학춘추』가 창간되었다. 1994년 '광주광역시시인협회'가 창립되었으며 기관지 『광주시문학』을 발행하였다. 1996년에는 강경호가 발행인을 맡고 고재종이 주간을 맡은 계간지 『시와 사람』이 간행되었다. 소설 분야에서는 현재 '광주전남소설가협회'와 '광주전남작가회의', 그리고'한국문인협회 광주광역시지회' 등의 문학인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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