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930
한자 大木匠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숙희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보호하는 규모가 큰 전통 건축물을 짓는 대목에 능한 장인(匠人).

[개설]

대목장(大木匠)은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건물을 새로 짓거나 수리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목수(木手) 또는 목공(木工)이라고 한다. 목공일은 대목(大木)과 소목(小木)으로 구분되며 이 가운데 대목일을 하는 목공 분야의 기술 총책임자를 대목장이라고 한다. 대목장은 집을 짓기 위한 전반적인 계획을 하고 필요한 재목의 마름질부터 완성까지의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목수의 우두머리이다. 집을 짓는 과정에는 보이지 않는 건축 기술이 존재하는데 그 기법을 중심으로 한 기문이 만들어지게 되고 그 기법은 엄격히 전승되는 것이기에 그 전통 기술을 잇는 중요한 임무를 대목장이 맡게 된다. 대목일은 건물의 주된 골조공사[기둥, 보, 도리, 연목, 추녀, 사래, 창방, 평방, 공포 등]를 하는 일이다. 주로 궁실(宮室), 성곽(城郭) 등을 짓는 목수를 궁궐목수라 하였으며, 민가를 짓는 목수는 일반적으로 목수라고 하였다. 대목장은 목수 중에서 궁궐이나 불전 또는 가옥을 짓는 건축과 관계된 일을 하는 장인으로, 오늘날의 건축가를 일컫는 전통적 명칭이라 할 수 있다.

[대목장 기능 보유자]

박영곤 대목장은 전통 건축에서 핵심이 되는 기둥의 귀솟음과 안쏠림, 처마의 곡선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그 근본은 주변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철저하게 계획하고 시공함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2010년 2월 16일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9호 대목장의 보유자로 지정 받았다. 박영곤 대목장의 기문은 처마의 앙곡(昻曲)[끝이 번쩍 들린 추녀]이 급격하게 치솟지 않는 입면을 보인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경사가 급하지 않은 완만한 산자락이 많은 호남의 자연경관과 흡사함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박영곤 대목장이 지은 건물은 처마의 곡선을 주변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구현한다는 점에서 예술적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박영곤은 1954년 승주에서 태어났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5세 때인 1968년 외삼촌의 소개로 목수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24세에 스승 임채점으로부터 독립해 처음 지은 건축물이 대흥사 토산품 전시장이었다. 이후 해인사 약사전을 만들며 해인사의 크고 작은 암자 20여 채를 지었다. 박영곤은 주로 사찰에서 활동하였는데 무등산 증심사, 속리산 법주사, 나주 불회사, 화순 유마사, 나주 미륵사 등 크고 작은 사찰에서 130여 채의 불전과 암자 등을 지었다. 특히 30세에 해인사 삼선암을 지을 때 다락을 만들었던 시도가 성공하며 그는 다락이 있는 한옥을 짓는 데 독보적인 권위자가 되었다

박영곤 대목장은 작업을 시작하기 전 모형을 만들어 오류를 찾아내는 일을 중요시한다. 또 틈틈이 옛 건축물을 모형으로 만들며 숨어 있는 선조들의 기술을 파악한다. 이 모형 작업을 통해 백제시대 건축 기술인 '하앙식 기법' 원리를 확인하였다. 전통 건축물을 지을 때 구조적으로 튼튼할 것, 생활하는 데 편리할 것, 보기에 아름다울 것, 비용 측면에서 경제적일 것 등을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다.

현재 10여 명의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이수자 두 명과 전수장학생 세 명을 배출하게 되었고, 이수자 두 명은 공사 현장을 이끌어 가는 대목수로 활약하고 있다. 그 외의 제자들에게는 보유자가 직접 수주한 것이나 이수자의 공사 현장에서 기법과 같은 기술적인 부분들을 포함하여 먹매김과 바심질 등의 기능까지 현장 지도하는 방식으로 꾸준한 전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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