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276
한자 眞谷洞
영어공식명칭 Jingok-dong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지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광주군 하남면 진곡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5년 - 전라남도 광주군 하남면 진곡리에서 전라남도 광산군 하남면 진곡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전라남도 광산군 하남면 진곡리에서 광주직할시 광산구 진곡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광주직할시 광산구 진곡동에서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으로 개편
성격 법정동
면적 2.75㎢
가구수 160가구
인구[남/여] 259명[남 163명|여 96명]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 유래]

진곡동(眞谷洞)은 진 개[浦]가 있어서 '진개' 또는 '진호', '진곡'이라 하였다. 또 진곡은 ‘갱이시암’, ‘ 달시암’, ‘독시암’, ‘성주시암’, ‘군문이방죽’, ‘수랑실보’, ‘앞방죽’, ‘진성저수지’, ‘한재시암’ 등 물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또 진곡의 곡(谷)을 상징하는 ‘건너가재울’, ‘군문이골’, ‘마우골’, ‘모골’, ‘백토산’, ‘보십등’, ‘시나매’, ‘시라산’, ‘아갓골’, ‘마랫마우’, ‘여시고개’, ‘옥댓등’, ‘왕신봉’, ‘왕신봉고랑’, ‘외얏등’, ‘웃마우’, ‘진등’, ‘천젯등’, ‘한재’ 등 산과 골짜기의 지명이 많이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형성 및 변천]

진곡동은 조선 후기 광주목 거치면(巨峙面) 지역의 가작촌(加作村), 진곡(眞谷)마을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가작리, 신안리 일부와 소고룡면의 구룡리 일부 지역이 병합되어 진곡리라 하였고 광주군 하남면에 편입되었다. 1935년 광주군이 광산군으로 개칭되면서 광산군 하남면 관할이 되었고, 1988년 광주직할시 광산구로 편입되었다. 1995년 광역시 승격으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으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진곡동은 주산인 팔왕산[121m] 아래 있으며, 진곡동의 자연마을인 가작마을의 남쪽에서는 질 좋은 고령토가 생산된다.

[현황]

2020년 12월 기준으로 면적은 2.75㎢이며, 인구는 160가구에 총 259명으로 남자 163명 여자 96명이다. 진곡동은 하남의 북서쪽에 있으며, 진곡동의 북쪽은 전라남도 장성군 남면, 서쪽은 광산구 임곡동, 남쪽은 고룡동오선동, 북동쪽은 하남일반산업단지가 자리잡고 있다. 진곡동 중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임곡로가 마을의 출입구 역할을 하고 있다.

진곡동에는 현재 진곡(眞谷), 가작(佳作), 벽계(碧溪), 진성(眞星)의 4개 자연마을이 있다. 진곡마을은 마을 우측 북서쪽으로 임곡로가 지나가고, 동북쪽으로는 하남일반산업단지 3차 단지가 있으며, 남쪽은 가작마을과 접해 있다. 진곡마을에는 덕행, 문학, 절의로 추앙받았던 조선 중기 우헌(寓軒) 박상현(朴尙玄), 손재(遜齋) 박광일(朴光一), 졸재(拙齋) 박창우(朴昌禹), 안촌(安村) 박광후(朴光後) 등을 배향하는 진천사(眞泉祠)가 있었으나 지금은 그 유허비만 남아 있다.

[참고문헌]
  • 『한국지명유래집』-전라·제주편(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 2010)
  • 『광산구사』2-마을의 역사와 문화편(광산구사편찬위원회, 2016)
  • 광주광역시 광산구청(https://www.gwangs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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