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마을 나주오씨 세거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715
한자 明谷-羅州吳氏世居地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정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는 나주 오씨 세거지..

[개설]

'명곡(明谷)'은 담양 고서면 산덕리에서 살았던 오희도(吳希道)[1583~1623]의 호이다. 오희도가 태어났던 명곡마을에서 호를 땄다. 오희도는 나주오씨 8세로 영의정을 지낸 오겸(吳謙)[1496~1582] 종손이고, 아버지는 오언표(吳彦彪)이고, 친할아버지는 오겸의 동생 오원(吳謜)[1511~1596]이다.

오겸이 영의정을 지낸 뒤 낙향하여 송산동 내동마을 광산촌에서 지내다가 죽은 뒤 광산촌에 오겸의 재사인 광산사(廣山祠)에 모셨다. 오겸의 동생이며 오희도의 할아버지 오원은 처가가 도림의 토박이였던 서씨(徐氏)였으므로 그때 풍습에 따라 도림에서 살았을 것이다. 오원은 도림에서 아들 9명을 낳아 넷째아들 오언표를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후산마을 순천박씨 박명성의 딸에게 장가보내 처가살이를 시켰다. 오언표는 오희일(吳希一), 오희도(吳希道)[1583~1623], 오희유(吳希有)의 3형제를 낳았다.

오희도는 오이두(吳以斗), 오이규(吳以奎), 오이익(吳以翼)[1618~1666], 오이정(吳以井), 오이성(吳以星)의 다섯 아들을 낳아 아들이 없던 동생 오희유의 양아들로 셋째아들 오이익을 보내었다. 양아버지 오희유가 석문동(石門洞)에서 살아 석문공파 파조가 되었다. 오언표의 큰아들이며 오희도의 장남인 오희일은 할아버지 동네인 도림을 지켰고, 아들 오이구(吳以久)[1608~1653]를 낳았다. 오이구는 도림파 또는 장한공파의 파조이다. 비록 명곡 동네 이름이 담양 창평오씨의 파조가 된 오희도의 호가 되었지만, 명곡동네에 뿌리를 내린 집안은 담양 외가에서 오희유의 양아들이 양가집으로 되돌아온 오이익의 후손들이다. 임진왜란 전 조선 풍습은 처가집으로 장가가서 살면서 자식들을 낳아도 본가를 드나들고 노년에는 본가에 돌아와 살거나 처가 동네에 정착하기도 하였다.

[형성 및 변천]

명도동은 본디 나주목 적량면에 속하였던 동네이다. 1906년 함평군에 속하였다가 1914년 다시 나주군에 속하여 자연부락인 명곡, 예림, 가마, 감도의 네 동네를 합하여 명곡리라 하고, 1949년 광산군에 편입되었다. 가마동네 38집 가운데 28집이 나주오씨이다. 명곡동네 20집 가운데 12집이 나주오씨이며, 예림동네 32집 가운데 19집이 나주오씨이므로, 오씨 자작일촌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오씨들이 많이 살아서 이 동네 출신 오효덕의 강학소였다는 영사재가 있으며, 오효덕과 송시열을 모신 대명사(大明祠)[1963년 초설]도 있다. 장사재, 감도재 등 오씨들 묘제를 지내는 제각이 있고, 평림장터에는 오씨 3효자비가 있다.

나주오씨들의 본터라 할 삼도동 도림동네에서 북쪽으로 평림천 건너에 있는 동네가 명곡이다. 명곡 앞들인 염해평[염바다들]은 도림오씨들의 농장이 많았다. 명곡과 도림 사이에 있던 평림동네에서는 5일장이 섰으나 1982년에 폐쇄되었다. 서쪽의 감도산을 싸고 오른쪽으로 돌면 청송심씨 자작일촌인 동호동이 나온다. 왼쪽[북쪽]으로 돌면 창평오씨 집성촌인 목산동이 있다. 오자치장군의 묘와 영당은 본량동 원동리 원당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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